원자력 발전소는 지어질 것이다. 그리고…

최근 EU에서는 원자력 발전 에너지를 ‘녹색’ 에너지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곧 있으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바뀔 것이고 후보자의 성향에 따라 탈원전 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갖춰야 할까?

2022년 2월 2일 유럽연합은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하였다. 6개월간의 법안 검토를 거친 뒤 문제가 없을 시 내년 2023년 1월 1일부터 법안이 발효된다. 이에 몇몇 언론에서는 원자력을 ‘녹색’으로 분류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돌아보고 있다.

혹시나 원자력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필자도 잘 알지 못한다. 전문가들이 ‘녹색’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정도의 지식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나의 수준에서는 정확한 기술적 실체를 알기 어려웠다. 정말 ‘녹색’인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말이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극명하게 나눠지고 있다. 그런데 의견 충돌 지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 많은 일들이 그렇듯 서로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쉽게 협의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쪽은 양질의 전기를 탄소 배출 없이 얻는 것에, 다른 한쪽은 그 대가에 따른 위험성에 관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전기세를 조금 덜 낼 수 있고 사회의 발전에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고 하니 원전 짓는 것을 지지해야 할까? 아니면 사고가 났을 때 국가적 재난이 될 수 있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드넓은 땅을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는 위험성을 고려해 원전을 반대해야 할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체르노빌의 목소리』 (새잎, 201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체르노빌의 목소리』 (새잎, 201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대한 리뷰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민이 되었다. 첫째로 고통스러운 과거를 돌이켜봐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고 둘째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이미 다큐,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수많은 매체에서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리뷰를 쓰더라도 같은 말을 되새김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결국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대한 리뷰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글은 어떤 글일까? 원전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하지도 않았고 원전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수도 있는 것 혹은 원전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그런 글도 의미가 있겠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생산적인 논의는 사회 여기저기서 알아서 일어날 것이고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원자력에 대해 잘 정리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지금은 그런 논의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는 무엇을 써야 할까?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중

묘하게 끌리는 말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섭기도 한 말이다. 조금 찾아보니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인용한다는 것도 알았다. 7등급의 가장 큰 원전사고로 전 세계를 놀라고 했던 두 사건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이다. 이를 겪었던 두 나라는 놀랍게도 현재 탈원전 국가가 아니다. 비교적 최근까지 탈원전을 고수했던 일본은 결국 다시 원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묘한 불편함이 계속해서 정신을 산란하게 했다. 후쿠시마에 있던 누군가는 분명 격렬하게 반대했을 텐데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다시 원전을 가동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심리적 상처를 주게 되는 건 아닐까?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산업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말한들 그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우리의 욕망은 본래 그런 것일까? 상처받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정말 모두가 원했던 것일까?

대선공약으로 본 원전

유럽의 두 나라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다른 에너지 정책의 길을 가고 있다. 프랑스는 탈원전에서 다시 원전을 지지하는 나라가 되었고 독일은 2022년(올해) 남은 3기를 정리하면 완전한 탈원전 국가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현 정부에서 탈원전은 주요한 정책이다. 노후 원전의 가동은 멈춘 상태이고 새로운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대선이 있고 대선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마 탈원전 정책은 금세 바뀔 것이다.

잠시 각 정당의 공약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린피스에서 정리한 각 정당의 기후 공약 답변서의 내용 중 원전에 대한 입장만 살펴보니 아래와 같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순서는 그린피스의 소개 순서를 따랐다.

‘원전과 관련해서는 신규 원전 건설하지 않고, 가동 중인 원전은 사용기한 내에 안전하게 사용하며, 안전을 위해 수명 만료된 원전은 폐쇄한다’

이재명 후보

‘원자력은 탄소중립 달성에 아주 효과적인 저비용 청정에너지원입니다. 원전이 사고가 나면 위험할 수는 있으나 치명률은 의외로 높지 않다.’

윤석열 후보

‘원전과 관련해서는 신규 원전 건설하지 않고, 가동 중인 원전은 사용기한 내에 안전하게 사용하며, 안전을 위해 수명 만료된 원전은 폐쇄한다’

심상정 후보

‘현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는 탄소중립 불가능. 2030년까지 폐쇄 예정인 원전 11기를 정상 가동하고, 신한울 3, 4호기 공사를 즉시 추진해 2030년 40%의 탄소 감축할 것임.’

안철수 후보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현정권과 같은 탈원전 정책을 ‘윤석열’후보와 ‘안철수’후보는 원전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안전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5년 혹은 10년마다 탈원전과 원전을 반복할 것이다. 
사진출처 : 에너지정의행동 https://www.flickr.com/photos/energyjusticeactions/44084807081
우리는 5년 혹은 10년마다 탈원전과 원전을 반복할 것이다.
사진출처 : 에너지정의행동

‘결국 원자력 발전소는 지어질 것이다. 그리고 안전하게 운영될 것이다.’ 앞의 문구는 예측이고 뒤의 문구는 희망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우리는 5년 혹은 10년마다 탈원전과 원전을 반복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대의 민주주의 아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각자가 원하는 정책을 최대한 많이 지원하는 정당을 찍는 것뿐인데 역사를 살펴보면 보통 정당은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며 계속 돌아가면서 그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러니 좋건 싫건 국내의 두 거대 정당이 한쪽은 탈원전, 다른 한쪽은 원전을 외치는 한 계속 번갈아 가며 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이야기이다. 그러니 결국 원전은 지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바랄 수 있는 건 ‘제발’ 안전하게 운영되기 것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안전하기를 바라며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려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원전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다가 원전 광고를 우연히 보았다. 우리나라 원전은 일본 원전에 비해 격납고 두께가 매우 두껍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생각했다. ‘그래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더 안전하게 만든다면 꼭 위험하다고만은 볼 수 없겠지’. 그러나 바로 밑에 추천 알고리즘으로 나오는 기사는 국내 한빛 원전 격납고에 초대형 구멍이 발견되어 실제 두께가 10cm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안전하다’는 말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안전하다고 그러니 믿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직접민주주의가 나설 때

고민 끝에 생각이 다다른 것은 국민투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의 입장을 조금 살펴보면 국민투표는 원전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가 원한다. 다만 그 시기가 다를 뿐이다. 보통 정부가 지지하는 정책과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이 반대됐을 때 국민투표를 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국민투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원전이라는 것은 큰 이익만큼이나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정책을 대의 민주주의 아래에서 결정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선택권을 주어 직접 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해 보는 건 어떨까 한다.

특정 기간을 정하고 대선 혹은 총선을 할 때 한 번씩 국민 안건에 부치는 것이다. 그러면 투표를 위해 원자력 발전의 득과 실에 대해 사회적으로 활발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 국민적인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지지 않을까? 물론 이것도 완벽한 해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대통령 선거 혹은 총선 때 묶음으로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 사이에 끼어 함께 처리하기에는 원자력 발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전기세가 인상되더라도 탈원전을 했으면 좋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미래가 아닌 그저 과거 인류의 어리석었던 한때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상도는 인구 1000만 명의 부울경 메가시티를 만든다고 한다. 서울에만 사람이 너무 몰려있는 건 좋지 않으니 서울 같은 메가시티가 또 생기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지방의 많은 도시들도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원전이 가장 많은 경상도에서, 그것도 부울경 메가시티 근처의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과거 원전에서 18km 떨어져 있던 체르노빌 시는 현재 유령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기장 신도시에서 11km, 울산에서 23km 떨어진 곳에 원전이 있다. 만약 이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날 것이고 수많은 유령도시들이 생겨날 것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가?

이상

컴퓨터 프로그래머. 과학과 동물, 자연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 경계 어딘가에서 삶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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