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요가, 도자기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쓰는 삶의 가치.

태국에서 참여했던 원데이 클래스 사진들. 사진 제공 : 이연우
태국에서 참여했던 원데이 클래스 사진들. 사진 제공 : 이연우

작년 여름부터 취미로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도자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건 3년 전, 태국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했을 때부터였다. 원데이 클래스로 하루 반나절을 넓은 마당에서 흙을 만지며 보냈는데, 그날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흙을 조물조물 만지는 것과 유용한 것을 직접 만들어내는 경험은 생각 이상으로 큰 치유였다. 그 따듯한 여운은 내가 만든 그릇에 음식을 내어 먹을 때마다 이어졌다. 한국에 가면 꾸준히 배워보겠다는 마음이 그 당시엔 꽤 강했는데, 현실로 돌아오니 바로 지켜지진 못했다. 그러다 다시 그 생각이 떠오른 건 작년 봄에 다녀온 여행에서였다.

작업한 그릇 1. 사진 제공 : 이연우
작업한 그릇 1. 사진 제공 : 이연우

그 여행에서 나는 오랜만에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일에만 전념했던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모습을 향해 가고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진지하게 물었다. 이러한 고민은 마음에 찾아온 변화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목적지가 없는 여정에서 그때그때 경험할 수 있는 풍경을 즐기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가 갈 곳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고 직접 운전대를 잡아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꿈꾸는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은 이러했다. 가족이 있는 산골1이나 바닷가 마을에 자리 잡고 2~30대에 배워 둔 기술들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직접 빚어낸 것들로 채워진 공간과 삶.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세상의 흐름에 치우치지 않는 삶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목표로 30대에는 그를 위한 채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에 가서도 적당히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커리어와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 기술’을 닦아놓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미뤄두었던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작업한 그릇 2. 사진 제공 : 이연우
작업한 그릇 2. 사진 제공 : 이연우

제대로 배워보니 도자기는 변수도 많고 많은 단계를 충실하게 거쳐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드는 기쁨을 넘어 수련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먼저 흙과 물이라는 날 것의 재료를 가까이하는 것부터 건강한 자극을 준다. 모양을 빚는 과정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마음이 정해지지 않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그것이 도토2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과정이 많고 서두를 수 없다는 점도 시간에 쫓기면서 사는 게 익숙한 내게 가르침을 준다. 그때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그 과정 마디마디에 정성을 쏟게 되는 것도 배울 점이다. 결과물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달의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는데 그 시간을 품고 탄생하는 물건은 돈을 주고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를 준다.

다시 생각해보면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은 보다 깊은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미래는 단순히 ‘내 것으로 채워진’ 삶이라기보단,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은 주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워 보이기도 불행해 보이기도 하기에, 나는 어쩌면 ‘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 대한 고민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몸을 위해 요가를 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좋은 취미로 도자기를 만났다. 지금까지 약 6개월간 도자기를 배웠지만, 도자기가 전해주는 삶의 태도가 몸에 밸 때까지는 계속 배울 생각이다. 일과 시간에 치이며 사는 걸 당장 멈출 순 없어도, 내가 생각하는 가치로운 삶에 조금씩 다가가는 재미로 30대를 살아보겠다고 가다듬어 본다.


  1.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산골 마을로 귀촌하여 살고 있다.

  2. 도자기에서 사용하는 흙(점토).

이연우

생물과 무생물을 모두 좋아한다. 직업은 시각예술작가이자 출판/콘텐츠/문화기획자, 한마디로 프리랜서다. 독립출판물 가지가지도감과 장롱다방:대화집, 방산어사전 등을 엮었으며, 〈Portrait in Plastic〉과 〈정서적고향〉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동물권과 환경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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