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정동은 곧 사랑이다. 곁을 닦고 아끼고 정돈하고 보살필 때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 그 누군가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나를 위해 양치질을 하고, 음악을 듣고,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 또는 나 자신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 하다못해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행동조차 정동이다. 그래서 정동의 동의어는 사랑,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 섬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동은 곧 사랑입니다. 스피노자는 기쁨, 슬픔, 욕망이 정동의 기본적인 형태이며, 여기서 우울, 희망, 공포, 연민, 호의, 후회, 겸손 등이 파생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희로애락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모두 사랑이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모습을 바꾼 것일 뿐이고, 그 근본 원인은 사랑이라는 말이지요. 물론 ‘정동’이라는 어려운 말 대신 우리는 이것을 그냥 ‘감정’이라고 부릅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동과 감정은 조금 다릅니다. 스피노자에게 감정(emotion)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기분을 일컫는 개념입니다. TV를 보면서 깔깔깔 웃는 것과, 아이의 재롱을 보면서 웃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가 일시적인 기쁨의 감정이라면, 후자는 ‘이 녀석 많이 컸구나’ 하는 감동과 사랑이 담긴 기쁨입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이것은 감정’, ‘저것은 정동’이라고 구분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감정과 정동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움직일 때가 생각이 많나요? 아니면 꼼짝 안 할 때가 생각이 많나요?” 아마 꼼짝 안 하고 멍하니 있을 때가 생각이 많다고 대답하겠지요. 그러나 움직일 때나 꼼짝 안 할 때나 생각의 비중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다만 꼼짝 안 할 때 하는 생각은 대부분 개인의 감정생활, 환상, 망상, 의식의 흐름 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반면 정동은 움직일 때 하는 생각이고, 곁을 닦고 보살피고 아끼고 정돈할 때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철저히 삶과 관련된 것이고, ‘왜 그것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아끼고 정돈하고 보살필 때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누군가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위해 양치질을 하고, 나를 위해 음악을 듣고,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늘 기쁨이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요. 슬픔이나 연민, 때로는 좌절일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사랑의 다른 얼굴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또는 나 자신의 삶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 하다못해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행동조차 정동입니다. 그래서 정동의 동의어는 사랑,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 섬김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사랑이나 정동이라는 관념어가 돌봄, 보살핌, 모심, 살림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단어와 같은 말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정신과 신체가 각기 독립되어 있지만 함께 움직인다는 스피노자의 평행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는 사람의 행동은, 삶도 그렇게 세심하게 가꾸며 살겠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결국 그것은 사랑이면서 동시에 돌봄입니다.

신승철 저,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2019, 사우)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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