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은 없다(上)

최근 출산율 저하와 노령인구 증가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 기관들은 앞다투어 ‘30년 뒤면 우리나라 지자체의 1/3이 소멸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지역 위기, 국가 위기, 인류 위기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우리는 너무 많이 만들었고, 너무 많이 소비했고, 너무 많이 가졌다. '적정인구'를 가늠하는 기준부터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지방소멸론이 허구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보자.

오늘날의 우리나라 인구 정책은 출산율 높이기와 늘어나는 노령인구 부양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아직도 생생한 산아제한과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인구밀도를 강조하던 목소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유입도 거론한다. 그 이유는 노령화 가속에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데에 있다.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 인구와 다른 개념이지만 혼재해서 쓴다)는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청장년층을 말한다. 이 연령층을 늘이되 이왕이면 청년층을 늘이고자 하는 것을 각 지방 정부는 최대 과제로 삼고 있다. 그래서 법도 새로 만들고 지방조례도 만들고 있다. 정부의 ‘지방소멸 대응 기금’도 여기에서 나온다.

여러 단체와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30년 뒤면 우리나라 지자체의 1/3이 소멸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사진출처 : EFDAL YILDIZ

우리나라는 물론 내가 사는 고장의 인구가 얼마나 줄어들었고 노년 인구 비율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거의 매일 보도된다. 어떤 위기 상황이 벌어질지 섬뜩한 경고가 잇따른다. 인구 담론은 아래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모든 민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책과 요구가 전 사회,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지역과 나라의 인구 정책이 우리 인류가 봉착한 범지구적 문제들을 악화시키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는 이런 기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 인구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친다. 공돈이거나 빚낸 돈으로 술 잔치 벌이는 격의 정책들이 많다. 모여 앉아서는 너나없이 지구 걱정, 기후 걱정을 한다. 행동은 다르다. 지방은 나라를 망치는, 나라는 세계 인류를 망치는 정책들을 만든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다가 이런 인구문제를 직면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지역 위기, 나라 위기, 인류 위기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뭘 하고 있는가. 앞으로 뭘 하고자 하는가. 혼돈을 거듭하는 사회와 경제와 정치는 경제활동인구가 모자라서 생긴 문제들인지 봐야 한다. 소득격차와 권력 집중, 권력의 회전문 현상, 기회의 편중 등이 북핵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본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제 인류는 지역에서건 나라 차원에서건 어떤 일을 벌일 때는 우리 지구의 숨 가쁜 구조요청을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이 만들었고, 너무 많이 소비했고, 너무 많이 가졌다. 그것 때문에 지구가 신음하게 되었다.

이런 악순환 고리에 인류는 포박되었다.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하는 중독, 정신 착란에 빠져 있다고 보인다. 지금 우리(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봐야 한다. 백척간두에 서 있다. 가뭄, 홍수, 산불, 여기에 전쟁, 자살, 혐오, 우울, 증오 등은 죄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크게”를 외치다 생긴 일들인데 인구문제 대응이 그걸 더 부채질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죽음의 길이다.

지방소멸론은 허구다

‘지방소멸’이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소멸’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섬뜩하다. 그러나 지방이 ‘소멸’하는 일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여러 지표와 사회현상으로 ‘지방소멸’의 위험성을 입증코자 하는 연구발표와 보도가 있는 걸 안다. 그것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해하지만, 그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허구다.

지방소멸론의 주된 근거는 지방의 인구감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출산율 저하와 고령 인구의 증가다. 가임 여성이 큰 폭으로 준다는 것과 생산가능인구 감소와도 연결된다. 이 말의 기원을 보자.

2011년에 일본 국토교통성이 〈국토의 장기 전망〉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했고 2015년에 마스다 히로야라는 도쿄대 교수가 널리 퍼뜨려 위기의식을 높였다. 이런 위기론은 종합적인 지구환경 측면에서나 인류 문명사적으로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 현실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 그 사실관계는 이렇다.

20-39세 가임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지수가 0.5 미만이면 ‘지방소멸 위험지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소멸 위험지역’ 지수가 있다면 당연히 지방이 사라지는 ‘소멸’지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법에도 그런 용어는 없다. 지수가 1.0을 넘어서면 ‘지방 생성’ 지수인가? 소멸 위험 지수가 있으면 생성 지수가 있어야 마땅하다 하겠으나 위기를 강조하는 것이 목적이라 그런 개념은 애초부터 없었다.

0.5 미만의 지수가 되면 인구가 줄고, 소비가 줄고, 공공기관이 줄고 복지 인프라가 사라진다는 건 맞다. 그러나 이런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사람을 생산 도구나 소비자로만 바라보는 저급한 시각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이 있으면 행정상 통폐합할 수도 있고, 인구밀도가 낮아짐에 따른 정치적·행정적인 대응을 해서 다른 방식의 삶을 설계하면 되는 일이다. 여러 이유로 행정구역 통폐합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전라북도에 ‘이리’라는 지명이 있었으나 사라졌다. ‘익산’에 통폐합되었다. 우리를 이를 ‘이리’의 소멸이라고 법석을 떨지 않았다.

일본에서 만들어낸 이 개념과 지수를 놓고서 우리나라 〈한국고용정보원〉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와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30년 뒤면 우리나라 지자체의 1/3이 소멸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이런 담론이 출산율 저하에 따른 정책적 대응을 요청한다는 점은 동의한다.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경제활동인구 감소 현실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음도 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빠졌다.

우리나라 또는 세계 적정 인구는 얼마인가?

인구수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한국의 적정 인구는 얼마라고 보는가? 지금처럼 출산율 높이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며 출산을 독려하는 정책 당국은 한국의 적정 인구를 얼마로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런 말은 아무도 안 한다.

1983년인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 인구가 4천만 명을 돌파했다. 당시의 산아제한 구호가 생생하다.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거나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같은 것이었다. 참고로 1911년 우리나라 남북 인구는 1,400만이었고 1925년에 1,900만이었다. 2000년도에는 4,500만이 되었다.(북 2,200만 제외)

남한의 현재 인구는 모든 측면에서 과잉이다. 이 땅에서 나는 것으로 2023년 현재의 5,155만 명이 먹고, 쓰고, 입고 살 수가 없다.1 다른 나라의 자원을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 한계에 직면한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 생태계에 끼치는 부담을 ‘생태발자국’이라는 개념으로 수치화하여 표시하는데, 1인 기준으로 한국은 평균 기준치의 3.3배다. 그만큼 인구 과밀현상과 과소비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80억 지구인2이 한국인처럼 생태자원을 소비하면서 산다면 3.3개의 지구가 필요한 셈이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가 발표한 〈한국 생태발자국 보고서 2016〉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적정 인구는 인구수만 따질 수 없다. 생태발자국은 소비량을 기준으로 한다. 4000만 명에 접근했던 40년 전 한국인 1인 평균 소비(온실가스 배출)량과 지금 현재 한국인 1인의 평균 소비량은 그 차이가 몇 배는 될 것이다.

탄소 배출 지도(Carbon Emissions Map).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비율에 따라 국가별 영토 크기를 조정하고 1인당 배출량에 따라 색상을 지정하여 그래픽화한 것이다. 자료출처: 영국 왕립기상학회

이 사진에서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실제 면적은 작은데 에너지 지도에서는 몇 배 크다. 5배는 될 듯싶다. 한국의 에너지 지도는 아프리카 전체 대륙보다도 크다. 이래도 인구 늘이자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인구밀도를 살펴보자. 우리의 인구 담론에서 전혀 거론하지 않는 인구밀도 말이다. 2023년 12월 현재 한국은 단위면적당 515명으로 세계 13위다. OECD 국가 중에서는 단연 1위다. 우리나라는 70%가 산림지역임을 감안하고 실제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중심으로만 따지면 순위는 껑충 올라갈 것이다.

이런 이론도 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 조건에 따른 생체호르몬 반응 체계가 바뀌는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개체 수를 조절한다는 설이다. 환경이 급변하거나 식량 공급량이 줄어들면 호르몬 체계가 작동해서 정자의 숫자나 활동성을 떨어뜨리고 난자 생존율도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실제 수조에 사는 물살이들도 수조의 크기에 적당한 개체의 수만큼 번식하다가 멈춘다는 보고도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사회의 출산율 저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인구 조절 과정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60-70년대는 임신율도 높고 출산율도 높았다. 당시가 지금보다 주거 조건이 좋았고 육아나 교육 부담이 없어서 그랬는가? 나는 전쟁이나 끔찍한 재해보다는 출산율 저하가 인구 조절의 평화로운 연착륙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을 수용하고 이를 전제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좋다. 출산율 높이기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연구에서는 한국에는 2,700만 정도의 인구가 적정수준이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현재 인구의 반 조금 넘는 수이다. 세계 인구도 2100년이면 현재의 80억에서 140억이 된다는 말이 있다. 탄소중립 1.5도 못지않게 인구감소 정책이 필요하다. 지구의 몸살은 지구 인구 과잉과 과소비로 인한 것이다.

노령화 문제도 과장되어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맞고, 노령화 관련 통계도 맞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를 넘어 초고령 사회(65세 이상이 20% 이상)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십몇 년간의 통계만 인용하며 강조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양심 불량이라고 본다. 6~7년쯤 전에 나는 구례 자연드림에서 열린 농촌인구 노령화 대책 포럼에서 이 점을 발표한 적이 있다. 아래에 그때의 근거를 소개한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세대는 이미 사회의 청·중년층이 되고 있다. 평균수명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그들도 언젠가 노년층으로 진입하면서는 노령화 비율이나 가임 여성과의 비교 지수가 낮아질 것은 명백하다. 가분수형 인구분포에서 항아리형으로 바뀔 것이고 종내에는 안정적인 모델로 갈 것이다. 그 과정을 차분히 맞이하는 게 맞다.

일본의 통계를 보자. 일본 내각부에서 나온 『고령화 사회 백서』 2016년도 통계다. 이를 보면 노령화 증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2000년도에서 20년까지는 노령화 증가율이 11.7%였지만 20년에서 40년까지는 7%이고, 다시 60년까지는 3.7%에 불과하다. 저출산 세대도 나이를 먹는다. 인간이 천년만년 사는 게 아니다.

경제문제와 노령화, 1인 가구 증가, 경제성장률 둔화 등 많은 부문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18년 통계청의 ‘고령화 통계’를 보면 고령화 지수가 2020년에서 40년까지는 근 3배가 증가하지만 40년에서 60년까지는 기껏 1.3배 증가에 그친다.

전문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인구 피라미드’ 그림도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30~40여 년 전의 완전한 피라미드 형태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 연령층이 불룩한 항아리형 그림에 이어 고려청자와 같이, 위쪽의 노령인구가 가분수 꼴인 그림까지만 보여준다.

그 다음 시기의 그림을 추론해 보자. 평행의 사다리뿔 형태가 될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균형을 이루는 시기를 맞게 된다. 그런데 이런 그림은 안 보여준다. 인구수에 따른 사회경제적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분석하려면 그런 그림도 같이 놓고 얘기하는 것이 옳다.

이런 식의 전문가 집단의 ‘양심 불량’ 현상은 치매 문제 토론장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그들은 비선형적인 치매 인구 증가율을 보여주는데, 당연히 노인 인구 증가라는 모 집단의 크기를 놓고 치매 유병률을 말해야 함에도 치매 노인 증가만 얘기하는 경우다. 치매 인구수가 늘어난다는 것만 가지고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인구수의 증가도 중요하지만 모 집단인 노인 인구의 급증을 함께 다뤄야 객관적인 실체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자주 거론되는 우리나라 인구의 연령별 구성표는 전형적인 위기 조장형 그림이라 하겠다.

인구 연령별 모형이 가장 왼쪽의 마름모꼴 형태에서 가장 오른쪽의 백자 형태로 바뀐다. 자료출처 : 통계청

이 그래프는 한국통계청에 가서 내가 직접 추출해 온 것들이다. 현재 걱정하는 게 가장 왼쪽의 항아리형 인구 구조다. 이게 점점 백자형으로 바뀐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사다리형을 향해 간다.

(우측)2100년 한국 인구피라미드 예측(출처 : 통계청)처럼 될 거라고 걱정하지만, 나중에는 (좌측)2017년 미국 인구피라미드(출처: 세계 인구통계정보 데이터베이스)처럼 가분수 형태를 지나 사다리뿔 형태를 만들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생산가능 인구에 대해 살펴보자. 15~64세의 인구가 줄어든다면서 이들이 부양해야 할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걱정한다. 이 역시 인용하는 숫자는 맞다. 하지만 곧장 큰 위기가 닥친 것으로 진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선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인구 노령화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 활동 연령도 상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65세, 즉 법적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뒷방살이 자처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 나이는 여전히 활동력이 왕성하다. 그래서 서울 지하철 적자를 거론하면서 노인 연령을 70으로 올리자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온다. 이런 현실은 외면하고 옛날 기준을 가지고 경제활동인구를 따지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소멸’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출산율 저하를 바로 떠올린다. 그러고는 ‘농촌이 소멸한다’라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출산율은 도시가 농촌보다 훨씬 낮다. 그 부분을 보지 않고 농촌인구가 줄어드는 사실만 부각하니 농촌 소멸은 농촌 출산율 저하 때문이라고 인식하는 착시현상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도시권 인구 집중이 저출산을 얼마나 부추기는지 알아야 한다. 아래 기사를 보자.

저출생과 수도권 집중은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다. 수도권 인구집중도는 우리나라가 50.24%로 일본 30.12%보다 훨씬 높다. 2021년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0.81명(일본은 1.3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대체출산율(한 나라의 인구수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합계출산율)이 대략 2.1명인 것을 고려하면, 이대로 가면 언젠가 우리나라 자체가 소멸할 것이다. 서울의 출생률은 세계 역사상 가장 낮은 0.63명으로, 전국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친다. 수도권 인구 집중은 대한민국의 소멸을 가속화할 것이다. 지방소멸론대로라면 지방이 소멸하고 대한민국이 소멸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박진도, 「‘지방소멸’ 부추기는 지방소멸론」, 〈농정신문〉 2022.7.3)

지방소멸을 기정사실로 하는 과도한 공론들은 지자체들이 지방 정부 예산 늘리기와 지방 공무원 수 감소를 막기 위해 퍼뜨리는 이데올로기가 아닌지 그 배후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농촌 지역에 과도한 토목 사업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인구감소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시설투자와 중복 투자는 끊이질 않는다. 인구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복지를 늘린다는 미명 아래.

오늘은 저출산으로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든다고 난리를 치다가 내일은 그 입으로 로봇과 에이아이(AI 인공지능) 등장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난리다. 일을 할 사람이 줄 때, 일자리도 같이 줄면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뜨거운 얼음’과도 같은 모순된 주장을 되풀이한다. 인구감소의 가장 극악한 비약은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주장이다. 외신의 터무니없는 기사를 확대 재생산하는 우리나라 언론의 작태다.

북한 문제만 나오면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한국 사회를 유럽의 어느 지식인은 ‘거대한 정신 병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난 5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평화학 전문가 이재봉 교수의 논평이 있었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북한이 서쪽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포탄 200발을 발사하고, 오후에 한국이 400발을 발사하는 과정에서, 백령도와 연평도 주민들이 대피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 언론이 이를 집중해서 보도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북 해상사격 도발 재개” 또는 “북이 새해 벽두부터 무력시위” 따위의 제목을 붙였다. 대북 적개심을 부채질하는 호전적인 왜곡이다.

북은 포사격을 실시한 게 “새해의 한미 연합군 훈련에 대한 대응”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이 도발하면 강력 대응하겠다”라고 했다. 어떤 언론도 이 주장을 다루지 않았다. 〈연합뉴스〉 2024년 1월 4일 보도에도 나온다.

이런 식의 왜곡과 편파가 인구문제 담론에도 많다. <(下)편에 계속>


  1. 이 글을 처음 쓰던 2020년 시점의 대한민국 인구는 ‘5,182만 명’이었다. 지난 3년 사이에 약 30만 명이 줄었다. 우리는 이미 순 인구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2. 지구 인구는 2022년 11월 15일에 80억 명을 넘어섰다.

전희식

농부. 마음치유농장 대표. 건강한 노동, 깊은 마음 챙김, 이웃과 사회에 봉사, 모든 일과 공부를 놀이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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