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온 편지 – 코로나 이후의 쿠바 경제 이야기

미래를 위해서 쿠바는 여러 가지 결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이라고 생각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듯이 독재체제에서의 횡포는 많은 것들을 썩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곳에서 막힌 수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쿠바의 하늘이 다시 맑아지길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2023년 3월 한 달간 쿠바를 여행하면서 느낀 여행자의 쿠바 경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을 위해 로이터 통신, 블룸버그, 알자지라, 하바나타임즈 4곳의 언론사를 참고하였고, 현지인들과의 대화, 직접 보고 경험한 것, 다큐 《쿠바 리브레》 등을 참고했습니다.

이 글은 3월 30일을 전후로 쓰였습니다. 현재 쿠바는 투표 독려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인데 결과적으로 투표에 등록한 810만 명 중 610만 명이 투표했고 빈 투표 및 무효표가 약 10%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로이터 통신) 참고로 쿠바의 전체 인구는 2021년 기준 1126만입니다.(세계은행) 쿠바는 공산당이 심사한 후보가 국회의원 후보로 나오고(야당 후보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합니다. 제가 묵었던 숙소의 호스트 Hector(가명)는 자신은 투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의 투표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며 진정으로 온 국민이 원하는 이를 뽑을 수 있을 때 투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야당에서는 투표에 참여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쿠바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는 트위터를 통해 이 선거가 민주적이지 않다1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항상 그랬듯이 통과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카리브 해의 전경과 하바나의 야경. 그러나 처음 쿠바를 가면서 가장 궁금한 모습은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보다도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의 모습이었다. 사진제공 : 이상

처음 쿠바를 가면서 가장 궁금한 모습 중 하나는, 아름다운 카리브 해나 천혜의 자연이 아닌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의 모습이 어떤지였습니다.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살아온 삶과 다른 방식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짧은 여행에서는 많은 불편(잦은 정전, 식료품-생활용품 등의 부족, 심각한 매연 등)과 불평(“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경제는 60년부터 줄곧 추락하고 있다.”, “우리는 한걸음 나아가고 열 걸음 뒤로 간다.”, “우리 자식들은 다른 나라에서 살게 할 것이다.”)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쿠바는 일면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019년을 기점으로 사유재산을 조금씩 인정하고 있으며 인터넷도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2018년 국가평의회 의장직(대통령)을 기존 라울 카스트로에서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넘겨받으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1956년부터 2018년까지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 형제는 독재체제를 이어왔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경제적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아왔고 소련 붕괴 이후로는 베네수엘라의 지원을 받아 국가의 경제를 연명해 왔으나 현재는 그마저도 힘든 상황입니다. (베네수엘라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석유를 쿠바에 저렴한 가격에 넘겼고 쿠바는 이 석유의 절반을 자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해외시장에 팔아왔으나 현재 베네수엘라는 정치 등 여러 이슈로 쿠바보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쿠바의 현재 경제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매우 어렵다’입니다. 쿠바의 가장 큰 수익은 관광 수입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하여 약 75%가량 줄었다고 합니다. 흔히들 쿠바의 주력 상품으로 사탕수수와 럼, 시가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 모두를 합쳐도 관광수입에 미치지 못합니다. 심지어 설탕의 경우 브라질에서 조금씩 수입2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리케인으로 인해 많은 농작물을 잃었습니다. 또한 창고에 불이 나고 대규모 정전 등을 겪으며 시가나 기타 공장들의 가동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국가적인 악재가 겹친 셈이죠.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2+2=5를 형상화한 그림. 이는 하바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낙서로, 당에서 2+2=5 라고 한다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부조리를 표현한 것이다.
사진제공 : 이상

통화개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입니다. 쿠바는 오랫동안 2개의 화폐를 사용했었습니다.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CUP(쿱, 모네다)과 여행자 화폐인 CUC(쿡)입니다. 쿠바는 그동안 달러대비 1:24였던 CUC을 2021년 초부터 CUP으로 통합했습니다. 고정 환율(약간의 변동 있었음)이기 때문에 무역업자들이 사용하기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시장 개혁을 하려는 현 대통령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문제가 있던 화폐이기에 이 화폐개혁으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CUP(현재 유일한 쿠바 화폐)과 달러의 환율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요. 처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달러를 바꿔줄 때 1:110이었지만 암시장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바꿔주기 때문에 점점 더 환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 현지인은 암시장과 정부가 환율 싸움을 하면서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시장에서의 달러(혹은 유로)의 가치는 훨씬 높기 때문에 암시장에서 공공연히 더 높은 CUP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죠. 제가 여행을 하면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환전할 생각 없냐고 물어왔습니다. 현재 암시장에서의 달러 가치는 약 160~180 정도입니다.

이 환율상승을 부추기는 독특한 구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달러상점입니다. 달러로만 결제를 할 수 있는 상점이 있는 것이죠. 주로 수입품들인데 어떤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줄 잼을 사기 위해 상점에 간다고 말했습니다. 얼핏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죠. 쿠바에서는 현지 물가의 저렴한 상품을 사려면 날짜에 맞춰 줄을 서야 합니다. 그마저도 물건이 많지 않고요. 이것은 나름 독특한 풍경을 야기하는데 쿠바 거리를 걷다 보면 매일 같이 다른 곳에서 긴 줄을 서는 쿠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현지인의 말로는 해외로 망명(혹은 밀입국) 하기 위해 달러를 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쿠바의 역사는 식민지배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 왔고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미국의 간섭을 받아 왔습니다. 카스트로의 혁명은 그런 식민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쿠바에 있는 미국 기업을 강제로 뺏으면서 미국과 척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정치적으로 소련의 손을 잡아 원조를 받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공산주의를 채택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애초에 혁명에 가담한 동생 라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다큐 《쿠바 리브레》에서는 혁명의 시기 피델 카스트로를 공산주의자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를 떠나 죽게 되죠.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까지도 피델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금수조치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오바마 정권 때 잠시 갈등이 해소되는 듯도 보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후 다시 쿠바를 제재하기 시작했고 임기 만료 직전에는 테러국가에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조금씩 제재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 현지인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쿠바에는 오래된 자동차나 전자제품이 많은데 이를 고치는 많은 부품을 모두 미국에서 공급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박물관’이라는 말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사진 제공 : 이상

여행을 위해 인터넷에서 쿠바에 대해 찾아봤을 때 쿠바는 ‘국가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보였습니다. 여행자인 제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195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쿠바는 어떤 모습일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에서 본 쿠바는 많은 영역에서 그 시대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시대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온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것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박물관’이라는 말은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쿠바는 식량, 의약품, 연료, 전력이 부족합니다. 2021년 7월에는 섬 전체에서 역사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강력한 탄압으로 이어졌습니다. 2022년에는 기록적인 숫자의 사람들이 쿠바를 떠났습니다. 220,000명 이상이 미국-멕시코 국경에 도착했는데 이는 쿠바 인구의 2%입니다(그마저도 한 기사에서는 성공하는 이들이 5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합니다. 멕시코를 지나는 길목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2%가 어느 정도일까요? 우리나라에 비교해 보면 살기 힘들어 나라를 떠나는 인구가 약 100만 명이나 되는 것입니다. 웬만한 규모의 지방 도시가 통째로 사라졌다고 보면 됩니다. 그것도 1년 만에 말이죠.

과거는 과거이고 미래를 위해서 쿠바는 여러 가지 결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글이 투표에서 시작했듯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이라고 생각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듯이 독재체제에서의 횡포는 많은 것들을 썩게 만들었습니다. 소련이 사탕수수를 비싼 값에 사주고 여러 공산국가들에 수출하기 시작하자 피델 카스트로는 생산 계획을 과하게 잡고 온 국민이 모든 생업을 뒤로 미루고 사탕수수 농장으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이 지게 되었고요. 또 독재체제를 지키기 위해 많은 돈을 국방비에 쏟아 부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곳에서 막힌 수문을 열어야 합니다. 정치, 경제 등 모든 곳에서요. 그래서 아름다운 카리브 해가 쿠바 곳곳을 흐르게 하여 다시 맑은 물이 흐르고 매연 가득한 쿠바의 하늘이 맑아지길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이상

컴퓨터 프로그래머. 과학과 동물, 자연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 경계 어딘가에서 삶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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