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참여의 적절한 콜라보가 필요해! – 녹색정치에서의 조직전략 제안

녹색정치에서의 조직전략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상향식·직접 및 참여 키워드를 빼놓기 어렵다. 매우 타당하게도 시민의 참여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보장하는 권리이다. 그래서 시민의 참여는 생태파괴와 기후위기를 막는 녹색정치에서만이 아니라 개발과 성장을 좇는 보수적인 정치 진영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책임’이라는 키워드를 제기하고자 한다.

녹색정치에서의 조직전략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상향식·직접 및 참여 키워드를 빼놓기 어렵다. 매우 타당하게도 시민의 참여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보장하는 권리이다. 그래서 시민의 참여는 생태파괴와 기후위기를 막는 녹색정치에서만이 아니라 개발과 성장을 좇는 보수적인 정치 진영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책임’이라는 키워드를 제기하고자 한다. 정치 대표자(representative)는 유권자의 의사에 반응(response)해야 하지만 또 동시에 책임(responsibility)도 져야 한다. 그런데 녹색정치에서 주로 추구하는 직접 및 참여의 키워드는 책임보다 반응하는 정치를 요구한다.

시민은 결코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시민 집단, 서울시 학생인권조례폐지 주민발안을 조직하고 여기에 서명한 4만이 넘는 서울시민을 생각해보자. 이 시민 집단 역시 시민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의회와 정부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수용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녹색정치 진영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주장의 근거가 시민이 원한다는 표현일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민 정체성의 강조보다 그 정치적 주장의 충분한 근거와 타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과 개별 시민을 비교해볼 때, 정치적 입장을 수립하고, 그 타당한 근거를 마련해 확산하는 데에는 개인보다 조직이 더 수월하다. 그래서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직이라면 대표성과 책임성을 표방하는 위계를 갖춰야 한다. 위계에 따라 대표 단위는 의제를 정하고, 정보를 정리하는 등 개입과 매개의 책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위계 자체를 거부해야 할 대상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제도로 위계를 명시하지 않을 때, 오히려 위계의 남용을 견제할 수 없다. 위계로 대표성과 책임성을 실체화한 조직은 구성원의 적절한 참여 경로를 제공하며 부당한 위계를 문제로 드러낼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바로 대의제도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 참여를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라고 보는 측에서는 이러한 대의제도가 비민주적이라고 평가하곤 한다.

참여와 책임은 한 쌍으로 적절히 배치해야 하는 개념이다. 이 둘은 길항작용을 일으키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관계다. 사진 출처 :  Peggy_Marco
참여와 책임은 한 쌍으로 적절히 배치해야 하는 개념이다. 이 둘은 길항작용을 일으키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관계다. 사진 출처 : Peggy_Marco

직접 참여의 강조는 의도는 선하지만 여러 이유로, 특히 돈과 시간의 여유가 적어서 참여가 어려운 구성원의 현실을 간과하는 면이 있다. 또, 책임을 다해 정책을 설계하고, 정치적 주장의 근거를 마련해 타당성을 높이는 과정의 중요성 또한 간과하는 면이 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시민의 요구와 그에 반응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라면 다수의 시민 의사를 반영하는 경제성장, 개발, 이익추구와 같은 주류 정책은 그 타당성이 매우 높은데, 이를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가? 시민의 의사는 언제나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대표 단위의 책임 역시 중요하다. 이 두 부분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유동적이며 떼어 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시민 정체성만을 강조하기보다 어떤 참여가 좋은 참여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책임 정치가 바로 그 참여의 경로를 설계한다. 조직의 대표 단위는 참여자가 적절한 정보를 취해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를 만들어야 좋은 참여를 실현할 수 있다. 참여의 경로를 만든다고 해서 예상되는 결과 값까지 도출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단계마다 참여자는 저마다의 선택을 한다. 정리된 정보를 두고, 참여자는 관심을 둘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관심을 두기로 했다면, 동의 및 비동의 의사를 형성하고, 그 다음 동의 및 비동의에 따르는 행위 여부를 선택한다.

정당은 여러 대의 절차를 마련해서 각 단위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 그 절차마다 의안은 경합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절충이나 관철이 이뤄진다. 그런데 직접 참여를 강조하는 입장은 그 절차마다 참여자의 의사를 반영했는지 여부를 묻고, 매 절차에 반응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풀뿌리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은 조직의 결정도, 결정의 평가도 어렵게 만든다. 대표 단위는 참여자에게 위임을 받은 권한으로 최선의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추진한 결과로 평가를 받고, 다음 과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참여는 평가로 드러난다.

어떤 결정이든 모두가 동의하는 결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표 단위의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 대표 단위는 반대 입장에 있는 구성원도 만나 설득하고, 다른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대표 단위가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구성원 간의 입장 차이는 대립으로 격화될 수 있다. 대표 단위가 설득과 의견 수렴을 잘 해낼 때, 구성원은 조직을 신뢰할 수 있다. 여기서 참여는 어디에 있느냐고? 참여자의 의사를 관철하는 일만이 참여가 아니라 여론을 형성하고,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 역시 참여의 한 형태다.

책임을 강조하면 권위의 남용이 발생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완전한 예방이 불가능하더라도 대표의 권한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룰 위계 및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당을 생각해보면, 대표가 있고, 대표와 균형과 견제를 이룰 위원회를 둔다. 또, 그 위원회를 견제할 또 다른 위원회를 두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최후에는 대표를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유권자 집단이 있다. 참여만 우선하지도 않고, 권한만 키우지도 않는 적절한 배치가 녹색정치의 조직전략에서 매우 중요하다.

참여를 강조하며 책임의 필요성을 간과하거나 리더십을 권위주의적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여와 책임은 한 쌍이다. 다시 말해, 모두의 참여만이 아니라 대표자의 책임 역시 민주주의에서 꼭 필요한 요소다. 필자는 이를 ‘중간에서 만나자’고 표현하곤 한다. 참여자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열린 과정은 민주적인 게 아니라 무책임하다. 그리고 참여자의 선택이 완전히 배제된 결정은 책임이 아니라 비민주적인 결정이다.

‘중간에서 만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어디에든 양면이 있기에 그렇다. 풀뿌리라고 해서 언제나 옳지 않다. 풀뿌리주의는 간혹 토호세력과 극렬주의자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든다. 참여민주주의는 간혹 인기영합주의를 미화한다. 참여와 책임은 한 쌍으로 적절히 배치해야 하는 개념이다. 이 둘은 길항작용을 일으키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관계다.

잠시, 정당법에서 명시한 정당의 정의를 보자.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다. 어떤가? 정당은 조직의 형태로 책임 있는 주장과 정책을 추진하며 시민의 의사 형성을 돕는다. 시민이 직접 참여한다면 이러한 정당 조직은 필요 없다. 하지만 정당이라는 조직이 있을 때, 시민은 의사 형성에 도움을 얻고, 조직의 매개와 개입으로 특정 정치적 주장으로 힘을 모을 수 있다. 정치적 자유는 개별 시민의 참여만이 아니라 이렇게 조직된 참여를 의미하기도 한다. 조직은 책임성과 대표성을 표방하는 위계를 마련해야 운영이 가능하다.

그리고 잊지 말자. 권위주의 정부와 신자유주의가 조직과 책임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권위주의 정부는 정부 외 조직이 정부를 위협할 거라고 여기기에 그렇고, 신자유주의는 개별성, 자유를 강조하며 개입과 매개를 배제하고자 한다. 책임성과 대표성은 비민주적인 개념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방법론의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대표성, 책임성을 적절히 구현하는 조직은 개별 시민의 직접 참여보다 목적이 명확한 참여 경로를 제시하고, 비주류의 정책과 정치적 주장에도 힘을 모아낼 수 있다.

김유리

녹색 가치를 정치로 실현하는 여러 방법론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녹색당의 정치인으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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