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⑥ 왜 지금-여기-가까이에 주목해야 하는가?

친구들과 놀이하던 골목, 이웃들과 정을 나누던 골목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현재의 축제는 미래를 위한 준비로 대체되고 말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사라지고 대출상환과 연금계산의 소리가 가득하다. 기존 삶에 의문을 품고 바로 옆사람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자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 여백, 공동체, 축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서로 얘기를 못했지?

정말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말이지요. 신혼 초 맞벌이였던 우리 부부에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엄청난 속도로 지나치는 삶의 여정이었지요. 아침에 밥 해먹고, 간단히 운동하고, 출근 전쟁을 치르며, 일터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고,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와서 침대에 몸을 누이면 하루가 섬광 같은 영상으로 지나쳤지요. 가뭄의 단비와 같은 활력소는 점심시간에 아내와 영상통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블링블링한 대화가 오가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말을 듣다 보면 금방 다시 오후 일과를 시작할 시간이 다가왔지요. 그나마 저는 시민단체에 다니는 터라 더 여유가 있는 편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밤12시에 잠에 들고, 아내는 새벽 4시, 저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하는 일상 없는 일상, 여유, 여백, 여가가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피곤하다 보면 그냥 말 몇 마디 못 나누고 잠에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에 30분도 대화하지 않고 잠드는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희는 불현듯 왜 우리가 이렇게 숨 가쁘게 달려가야 하는지 서로에게 반문하기 시작했지요. 그 이유를 묻다 보니 우리가 너무도 통속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 다녀서 돈 벌고, 돈 쓰고, 돈 모으고, 이런 데 익숙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저기 저편을 바라보고 있을 뿐 바로 가까이에 있는 서로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때 저는 아내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졸려서 잠에 들기 직전까지 아내와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출근길을 함께 걸어 다니며 또 대화를 했습니다. 곧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의 직장 근처에 연구실을 잡아 학위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서로의 꿈, 서로의 일상, 서로의 친구 등등 이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와 늘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가족회의를 했지요. 그 결과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저와 글을 함께 쓰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하루 종일 있을 수 있게 된 셈이지요. 그리고 저기 저편으로 달려가던 일상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에 있는 현재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사랑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의 영상통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밥을 해먹고, 같이 세미나를 하고, 같이 글을 쓰는 현재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아내와 저는 저기 저편이 아니라, 지금, 여기, 가까이에 대해서 느끼고 알고 배우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늘 오늘만 같아라!

아내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는 너무 먼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여서 무리하게 여러 적금과 보험을 들고 있었고, 늘 보다 나은 미래를 현존 사회에서 꿈꾸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평수를 넓혀서 부모님을 모셔야겠다는 계획, 연금을 들어서 노후를 대비하여야겠다는 계획, 최신 휴대폰을 구입해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계획 등등이 저희의 생활에 아로새겨져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들을 탈탈 털어내니 저희는 놀랍게도 현재의 순간을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서 길냥이에게 밥을 주는 일상이 재미있었고, 연구실 앞 텃밭에다가 상추며 토마토며 치커리 등을 심어서 기르는 재미도 재미있었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e메일을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연구실까지 걸어오면서 오늘 있었던 일이며, 어제 있었던 일들. 내일 있을 일 등을 함께 얘기하며 걷는 시간도 재미있고 의미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재는 미래에 차압되지 않는 현재였고, 과거에 저당 잡히지 않는 현재였습니다. ‘늘 오늘만 같아라’라는 의미의 “오, 늘!”밖에는 없었지요. 밤에 자면서 아내의 조용한 숨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오늘이 소중했고, 오늘이 재미있고, 오늘이 의미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협착으로부터 벗어나 지금 이 시간이라는 찰나의 순간을 늘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고자 했지요. 그렇게 아내와 함께 한 시간도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잘 생각해 보니, 저희는 현재만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시간을 총동원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세대를 고려하기 시작했고, 오래된 미래인 과거의 전통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지금 이 순간인 현재에 담아보려고 노력했지요. 어느 날 인생이 마치 소풍과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재만을 살다보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스스르 잠에 들기 전에 행복감이 밀려왔지요. 그 순간순간이 소풍길만 같습니다.

추억소환마법, 골목을 찾아라!

어릴 적 저는 골목에서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딱지치기며 제기차기, 공놀이, 줄넘기, 구슬놀이를 하면서 자라왔습니다. 골목은 아이들만의 세상이었고, 아주 가까이에 있는 놀이터였습니다. 저녁이 되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우리 집 담장을 넘어 흘러나왔고, 어머니께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골목에 있는 가게에서 쥐포와 맥주를 사다가 친구들과 함께 마시고 놀았던 기억이 참 많습니다. 골목은 저기 저편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여기-가까이의 유토피아였습니다. 특히 직장 다닐 때 토요일 날 오후에 집 근처 골목에 도달하는 순간, 아이들이 놀고 있고 동물들이 오락가락 하고 미장원에서 머리 하고 나온 아주머니, 목욕탕에서 나온 아저씨들, 맥주집에서 웃고 떠드는 젊은이들 등의 모습은 골목이 정말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지상낙원처럼 느껴졌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을 골목에서 모두 해결한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골목은 자동차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기 저편으로 향하기 위한 도구지요. 이제 골목은 아이들이 놀기도, 동물들이 뛰어다니기에도 위험천만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동차들이 틈새 하나 없이 좁은 골목을 곡예를 하듯 빠르게 지나치니까요. 지나갈 때마다 그 많던 아이들과 동물들이 다 어딜 갔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동네 목욕탕이 문을 닫았고, 동네 미용실이 문을 닫았고, 동네 슈퍼가 폐업을 했습니다. 그 대신 골목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게가 들어왔고, 편의점이 곳곳에 생겼고,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울리며 지나칩니다. 우리 세대는 마음의 고향, 뿌리내림의 장소성을 완벽히 상실한 세대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래 전에 자주 가던 건물들이 어느 날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고 사라집니다. 물론 지금은 개발주의 시대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의 추억소환마법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친구와 함께 술 마시던 호프집이 사라졌고, 첫사랑의 기억이 있던 서점이 없어졌고,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놀던 선술집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지금-여기-가까이를 사라지게 하면서, 끊임없이 저기 저편을 만들어왔던 셈이지요.

지나칠 풍경으로 간주된 주변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는 사람들 중 하나로 부서져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은 살아있는 존재의 음화(淫火)처럼 늘 따라 다닌다. 사진출처 : pxfuel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는 사람들 중 하나로 부서져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은 살아있는 존재의 음화(淫火)처럼 늘 따라 다닌다.
사진출처 : pxfuel

저와 아내도 어느 때부터인가 자동차를 구입해서 몰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벚꽃 가로수 길을 걸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출근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문명의 편리와 이기에 편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반 일리치의 “자동차는 거리를 좁히는 것 같지만,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넓힌다.”라는 말을 체감했습니다. 출근길 동안 아내와 천일야화와 같이 얘기를 했던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대신 자동차를 타고 옆 자동차의 위험한 행동에 대해 욕을 한다거나, 침묵과 고요 속에서 운전에 집중한다거나, 골목길을 지나칠 때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쌩쌩 운전하는 등의 일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함께 연구실로 출근하면서 나누었던 달콤한 대화가 무척 그리워져서 자동차를 타지 않고 대신 걸어 다니기도 했지만, 다시 급하다는 핑계, 날씨가 무덥다는 등의 핑계로 자동차를 타곤 했습니다.

제가 최근 뼈저리게 느낀 것은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저의 소중한 사람들과 저의 소중한 장소들을 그저 지나치고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입니다. 최근 제 은사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말기 암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몇 개월 전 전화를 드리니 밝게 웃으시면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 잘 지내고 또 연락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날부터 저는 은사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무슨 말씀을 드릴지 고민에 고민을 했습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전화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있었지요. 그리고 시간이 자꾸자꾸 지나갔습니다. 며칠 전에 저는 친구로부터 부고 메일을 받았습니다. 은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고, 마지막 말씀이라도 듣지 못한 저의 게으름과 무심함에 통탄을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지나치는 풍경으로 간주하는 자동차같이 살아온 일상을 깊이 후회했지요. 자동차처럼 가까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쳐 온 일상 속에서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는 사람들 중 하나로 부서져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사랑은 여백을 만들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뻔하게 보는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사실 놀리듯이 ‘그 친구는 원래 그래!’ 이런 식으로 말하던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뻔하게 보다 보니 그 친구의 일상도 굉장히 비루해졌습니다. 그의 논지는 “세상에 새로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논리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사람들의 삶과 실존의 깊이 속에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잠재성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규정하고 단정내리고 정의하면 끝난다는 통속적인 아카데미의 논리를 배워서 삶에 적용했지요. 그런데 최근에 만난 그 친구는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나고 어려워진 것입니다.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그는 놀랍게도 삶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에 먹고 놀고 자고 숨 쉬는 모든 것이 신비로운 시간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지요. 그는 자신의 한계와 끝을 응시하면서 그는 하이데거가 말했던 ‘될 대로 되라’식으로 살던 속인(Das Man)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변에서 이러한 사례를 무수히 발견하게 됩니다. 저 역시도 통속적인 삶을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게임에 빠져 있었고, 직장에서는 일중독과 경쟁 심리에 사로잡혀 있었고, 과식과 폭음으로 방탕하게 살던 시절이죠. 그런 일상은 아내를 만나고 직장생활 하던 때도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 직장에 회식이 있어 늦은 밤 술취한 아내를 데리러 가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술집을 찾아다녀도 아내가 없는 것입니다. 밤이 깊어 가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골목에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그 순간 놀라고 화나고 가슴 절절히 아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아주 가까이에 있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저를 색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에 대해서 단정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실존과 삶의 물음표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었지요. “너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라고 행위와 마음의 지도를 그리듯 얘기하는 것도 참 재미있게 되었습니다. 이걸 들뢰즈의 발견주의나 잠재성 논의라고 정의내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랑을 통해서 삶의 여백과 여유를 찾게 되면서 저의 삶에 심원한 변화가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도 사치이고 여유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오히려 “사랑이 여백과 여유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는 바로 지금-여기-가까이에 있다

어떤 사람은 공동체를 말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는 대화도 하지 않고 통속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중년의 나이인 제 친구들이 가족들과 하루에 30분도 대화하지 않는다고 넌지시 말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약간 놀라기도 하고 제 예전 직장 다닐 때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이 가족이라 하더라도 – 공동체의 오래된 꿈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일전에 제 지인 중 맑스주의자 한 사람이 ‘가족은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세포단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만큼 끈끈한 관계망을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가족도 역시 공동체이고, 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성숙시킬 아주 가까이의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서로 가깝고 친밀하다 보면 뻔하게 보는 심리가 슬금슬금 생기는 데 있습니다. 물론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당위나 의무는 아닙니다. 서로에게 통하는 것이 없는 데 공동체를 만들라는 것은 굉장히 억지니까요. 그러나 적어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깊이와 잠재성을 조금씩 응시하다 보면,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작은 공동체의 희망이 싹트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둘 사이의 작은 공동체로부터 출발한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서로에 대한 매력에 대해서 점점 눈 떠가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침묵할 때도 있고, 떠들 때도 있습니다. 서로에게 토라질 때도 있고, 오해가 생겼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하고 서로를 애틋이 생각하다 보면 점점 서로의 깊이를 시추하듯 서로의 매력에 대해 느끼게 될 때가 많습니다. 일상을 자동적이고 기계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저는 작은 무대를 만들어 아내에게 춤을 추기도 노래를 하기도 재미있는 말을 만들어 얘기해 주기도 합니다. 일상이 축제가 되고, 연극이 되고, 노래마당이 되고, 춤판이 되니, 굳이 저기 저편을 꿈꾸지 않아도 오늘, 지금, 여기, 당장, 가까이가 좋습니다. 그래서 삶의 여백, 일상성의 회복, 저녁이 있는 삶이 소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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