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㉑ 사람이 용기가 생기면 사는 모양이더라

젊은 시절 몸이 아프셨던 부천댁 할머니는 산과 들에 나는 풀을 가마솥에 삶아 약 대신 마십니다. 신약을 먹으면 속이 아파 못 드시고 동의보감과 약초책을 읽으며 몸의 증세에 맞게 약 아닌 약을 만듭니다.

서낭재가 보이는 부천댁 할머니의 마당 텃밭.(2022. 2. 24.) by 김진희
서낭재가 보이는 부천댁 할머니의 마당 텃밭.(2022. 2. 24.) by 김진희

비조마을회관 아래 골목길 오른쪽집에 사는 부천댁 할머니 최분남 님은, 2년 전부터는 힘에 부쳐 밭일은 따로 안 하시고 집안에 만들어둔 텃밭만 가꾸십니다. 시멘트 블록을 쌓아 흙을 붓고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시금치, 대파 곰보배추, 상추, 마늘, 냉이가 있습니다. 곰보배추는 처음 봐서 뭔가 물어봤더니 피 삭는 데 좋다고 삶아서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동의보감이나 약초책을 읽으며 들에 나는 풀을 가마솥에 삶아 조약(造藥)을 하는데 안 먹어 본 게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할머니께서 부지런히 조약을 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37살 때 1년을 죽다 살았다

옛날에 내가 37살 때 1년을 죽다 살았다. 다리 여 내놓고는(여기 빼고는) 허리까지 다 아파가 일라서면(일어나면) 아파가 못 일라고(일어나고) 했지. 왼쪽 다리에 어혈이 좀 있었는데 차츰차츰 올라가디 각제(갑자기) 아픈기라. 요새 같으면 병원에 가지만 그때는 그라도(그렇게) 못했지. 그 해 따나(그해 따라) 가물어가 모심기 다 하고 갔지. 부산에 어디 병원에 갔는데 올라가는 길도 근근이 올라갔는기라. 그 길로 내(계속) 아파가 어무이자테(어머니한테) 근 1년을 밥을 얻어묵었다.(얻어먹었다) 굿도 마이(많이) 하고 약도 이거저거 해다먹고 한번두번 먹고 낫나? 방 얻어가 입실에 지압으로 만치는 데(만지는 데) 가가(가서) 하루에 천원씩 주고 석달을 있으면서 많이 나샀지.(나았지)

사람이 용기 생기면 사는 모양이더라

수술해야된다커는 거를 안 하고 죽을 날 밑에 살 날인가 싶어가 용기가 생기더라카이. 사람이 용기 생기면 사는 모양이더라. 그래가 이래저래 했지. 옛날에 대봉양이라고 있거든. 대나무 밑에 봉양. 대나무밑에 솔 송진맨치로(처럼) 노랗다고. 요새는 없드라. 그거를 술로 담아가 내(늘) 먹고 기침도 사카주고.(가라앉혀 주고) 약된다고 빈속에 먹고 하이끼네 아무래도 위장이 안 좋아. 요새는 술 먹으면-술은 한 10년 끊었고-우야다가 한잔 먹으면 아랫배가 부른 증세가 있어. 무슨 병이든 딸깍 낫는기 없더라고.

꿈적거리면(움직이면) 또 아프지. 그래도 내가 일로(일은) 옛날에 논 50마지기 짓지, 거다가(거기에다) 깨 땄지, 밭 20마지기 맸지러.(밭 20마지기에 김을 매었다) 놀 여가가 어딨노. 요새 조용하이 지여버가(지겨워서) 절따이지.(절단이지) 점점 더 아프고 몇 년 전부터는 힘이 없는기라. 진땀이 나고 그래가 밭하고 깨는 안 하고. 요것(텃밭)도 씨게 하마(힘들게 하면) 진이(힘이) 빠지고 그렇데. 그래가 우리 딸래미가 돈을 비싸게 주고 먹어라고 포에 들었는 거를 사왔어. 요거 먹고는 피곤한 게 마이 없어져. 아픈 거하고 피곤한 거하고는 다른 기거든.

내가 들에 안 묵는기 없다… 식당에서 사먹는건 독약이나 한가지

한방책과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부천댁 할머니. (2022. 3. 6.) by 김진희
한방책과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부천댁 할머니. (2022. 3. 6.) by 김진희

신약 먹으면 속이 아파가 못 먹으이 조약을 해가 부지런하이(부지런히) 해먹고 내(늘) 먹으이 (먹으니)또 해지고. 몸이 괜찮아 지고하이 또 하지. 옛날 한방책, 약책 안 있나. 동의보감도 보고 무슨 풀이 어디 좋고 하는 게 다 나오거든. 그거보고 쪼매씩쪼매씩 만들어봤지.

뽕오디 담을 때는 설탕을 더 여야돼.(넣어야 돼) 오갈피 나무도 담고 산딸기도 1년에 열엿근씩 담고 비름나물 돌냉이맨크로(돌냉이처럼) 크다큼한 거(큼직한 것) 20킬로씩 담고 제피도 담제,(담그지) 이래저래 담는 게 많다. 수세미도 담아 놓이(놓으니) 감기 든 사람들 그거 한 잔 주마 낫고 그러데. 보리수도 감기에 좋더라. 위 아픈 데는 삽추 가지고 먹고 넉삼대는 건 아주 쉽다고. 풀대가 올라가는 게 있거든. 고거 따서 삶으면 돼. 칠기(칡)도 있고, 뭐 얘기해보면 내가 들에 안 묵는 기(먹은 게) 없다. 곰보배추도 삶아가 그 물에 감주를 담아가 근 1년을 먹는데 피삭는 데 좋다. 몸이 안 좋으이 자꾸 조약하는 데 신경이 쓰이데. 난두지름(제피기름)도 제피를 제법 많이 따야 되거든. 한 되 해도 지름(기름)은 2홉들이 요마이밖에 안 나온다고. 달맞이꽃도 두 되를 짜봤고. 나가마(나가면) 내(늘) 여(여기) 뭐있더라 싶어가. 내가 논다케도(논다해도) 부지러이(부지런히) 하지. 돈 안 들고 노력해가 보통 부지런 해가지고는 안 되는기라. 내가 논다 해도 낮에 눕지는 안 하는기라.

사가 먹는 거카며 식당에 뭐 사먹는 거는 독약 먹는거나 한가지다. 그릇도 올케(제대로) 안 씼제 미원 넣고 안 그렇나. 맛있는 향만 내지. 집에 먹는기 이기(이게) 진짠기라. 그래도 독약 무러(먹으러) 간다카며 사먹기는 하지.

일찍 이름을 내놔야 그 이름이 되지

비조에는 41살에 왔거든. 올해 77이니까 40년 다 되어가제. 나는 경주 내남이 고향이라. 월성 최가지. 마실이 부지고 천면이라 ‘부’자하고 ‘천’자를 따가 부천댁이라 택호를 지았는기라.(지었다) 여(여기) 첨에(처음에) 이사올 때 내가 택호를 안 지았나. 일찍 이름을 내놔야 그 이름이 되지. 지우카마 지우 장개갈 동안 지운기라. 안 그렇나. 그래가 내가 택호를 내놔가 부천댁이지. 부자되고 싶어가 그래 지았지. 멀리 시집온 건 아인데 우리 이웃들이 내마이 산중에 온 사람은 없는기라. 친정이 별로 살지도 안 해서 어데라도 쪼매 가진 게 있으면 된다 싶었지 이마이(이만큼) 산중인 줄도 몰랐는기라.

50마지기 손까 비는데 둘이서 열흘 비지더라

초승달과 불빛과 부천댁 할머니. (2022. 3. 6.) by 김진희
초승달과 불빛과 부천댁 할머니. (2022. 3. 6.) by 김진희

영감 고향은 중리라 윗대 산소도 다 거기 있고 물레방앗간 잩에(옆에) 양달에 살았지. 고종사촌이 잘 살았는데 비조에서 논 부치라해가지고 이사를 왔지. 그 집꺼하고 같이 50마지기를 지았는기라.(지었어) 손까(손으로) 비는데(벼를 베는데) 둘이서 열흘 비지더라.(베게 되더라) 내가 그런걸 생각하면… 그 때 골탕이 다 들었지. 앉아가 그래 하겠나? 하루도 무서븐데(무서운데) 열흘로 밥만 무마(먹으면) 가가 비가지고(벼를 베고)… 우리가 그래도 일로 좀 잘 하이끼네(하니까) 그랬지. 글때도(그때도) 아프기는 해도 다 했는데 내가 골탕이 그래가 일찍 들어가 영 힘을 못 쓰는기라. 다른 사람보다 아이(아직) 힘이 낫지. 해볼시를해가.(일을 해본 게 있어서)

열흘 동안 손으로 벼를 베던 이야기를 하시던 부천댁 할머니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지금도 그때 고생한 게 생생한 것 같습니다. 농기계도 없을 때라 오직 사람손으로만 농삿일을 해서 나이가 들수록 아픈 곳이 많아집니다. 산에 들에 나는 풀을 가마솥에 삶아 약대신 마시며 몸을 돌봅니다. 신약은 맞지 않고 한약을 지으러 나가기 힘든 교통불편한 산골에 살며 익히게 되었습니다.

부천댁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나오니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아주 예쁘게 떴습니다.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방엔 불빛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까지 비조마을의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집으로 걸어오며 가마솥에 약초를 달여 마법의 약을 만드는 마녀가 나오는 동화가 생각난 건, 마녀도 초승달도 할머니도 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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