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운동특집]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 실패를 인정해야 출구가 열린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공론화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되었다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삐걱거리다가 위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주민설명회는 잇달아 무산되고 있으며, 지역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시민참여단 모집은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출구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지난 6월 26일, 정정화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사실상 좌초되었다.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된 재검토위원회였지만, 위원장이 주무 부처를 비판하며 사퇴하는 일이 일어났다. 결정적인 계기는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정 전 위원장이 사퇴하기 전 월성 원전이 위치한 경주시 양남면의 주민설명회가 잇달아 무산되었고 지역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시민참여단 모집은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울산 북구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월성 원전 임시저장시설 증설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 전 위원장은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독립적인 기구 구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재검토위원회를 떠났다. 정부는 위원장을 새로 선출한 뒤 의견수렴 절차를 계속 밟고 있지만 사회적 합의는 이미 오래 전에 물 건너갔다.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된 과제다. 이처럼 재공론화가 추진된 이유는 명확하다. 박근혜 정부는 2년 가까운 공론화를 거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반쪽짜리 공론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환경·시민단체는 공론화위원회의 구성과 공론화 방식 등을 문제 삼으며 공론화에 참여하지 않았고, 원전 소재 지역주민들의 의사 또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재공론화를 약속했고, 전철을 밟지 않으려 2018년 재공론화를 위한 준비단까지 운영했다. 하지만 이제 별반 다르지 않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워졌다.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증설 밀어붙이기

핵폐기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는 중이다. 폐기장은 아직 없다. 핵폐기물 시한폭탄 퍼포먼스 사진. 출처: 환경운동연합 누리집(http://kfem.or.kr/?p=207339)
핵폐기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는 중이다. 폐기장은 아직 없다. 핵폐기물 시한폭탄 퍼포먼스 사진.
사진 출처: 환경운동연합 누리집

사실 예견된 파행이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2019년 5월 출범할 때부터 삐걱거렸다. 재검토위원회는 환경·시민단체는 물론이거니와 원전 소재 지역주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올해 1월에는 전문가 검토 그룹 34명 중 11명이 재공론화가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하며 검토 그룹에서 탈퇴하는 일도 있었다. 이미 상당수의 전문가가 재검토위원회와 거리를 두고 있었던 터라 균형있는 검토는 사실상 물 건너 간 셈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재검토위원화는 중장기적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과 더불어 임시저장시설과 같은 단기 대책을 서둘러 추진해오고 있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참여단을 모아 전국과 원전 소재 지역에서 의견수렴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예고된 갈등이 하나씩 현실화되었지만 정부는 강행하는 길을 선택했고, 이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의 공론화, 문재인 정부 시기의 재검토 준비단과 재검토위원회를 거치며 첨예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지점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재공론화를 위한 위원회의 구성 방식으로 이해당사자의 참여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환경·시민단체와 지역주민들은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정부는 ‘중립적인’ 갈등 관리 전문가를 앞세웠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핵심적인 이해당사자들이 배제되면서 위원회의 조정 능력은 제한되었다. 위원의 중립성은 계속 논쟁거리였고, 기계적인 중립성은 위원회의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문제를 낳았다. 이해당사자를 우회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정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둘째, 공론화의 목표와 연관된 문제로, 공론화의 진행 순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은 영구처분시설의 형태 및 입지, 중간저장시설의 필요성 및 입지, 임시저장시설의 증설 여부 등 다양한 문제를 풀어야한다. 원론적으로 볼 때,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에 따라 영구 또는 중간 저장시설의 규모가 결정되고, 임시저장시설의 규모나 운영 기간은 영구처분시설이나 중간저장시설의 운영 계획에 좌우된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전국 단위의 공론화가 진행된 뒤, 필요한 지역에서 의견을 모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러나 정부는 단기간에 결론을 내리기 힘든 중장기적인 관리정책은 미뤄두고, 당면한 문제인 임시저장시설 확충에 매달렸다. 이로 인해 공론화는 임시저장시설 증설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왜곡되었다.

셋째, 지역공론화를 추진할 때 결정권이 부여되는 지역의 범위를 결정해야하는 까다로운 문제가 있다. 울산 북구 주민투표가 실시된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울산 북구는 경주 시내보다 월성 원전에서 가깝지만 울산 북구 주민들은 지역공론화에 참여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가 없다. 지역의견 수렴의 범위를 원전 소재지를 포함하는 반경 5㎞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법 상으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은 반경 20-30㎞로 설정되어있다. 영향을 받는 이들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내의 주민들에게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정부와 재검토위원회는 외면했다.

위원회 절차는 이해당사자가 배제된 요식행위

잠시 과거로 눈을 돌려보면, 한국의 탈핵운동은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준위핵폐기물 문제가 표면화된 것 또한 1989년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다. 당시 정부는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의 포화 예측을 근거로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영덕, 안면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역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부지 선정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사회적 저항을 피하기 위해 굴업도를 부지로 낙점했으나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핵폐기장 건설은 다시 무산되었다. 상황은 2000년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노무현 정부의 핵폐기장 건설 계획은 부안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좌초되었다. 정부가 찾은 출구는 고준위 핵폐기물과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분리하고 주민투표의 형태로 지역 간, 그리고 지역 내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2005년 중저준위 방사선폐기물처분장 부지를 선정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분은 결국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더구나 중저준위 방폐장을 짓는 조건으로 경주에는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을 건설하지 않고 고준위 핵폐기물을 반출한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 후 15년이 흘렀지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수립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정부는 다시 임시저장시설의 포화를 앞세워 시급한 문제부터 풀고 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월성 원전이 갈등의 핵으로 부상한 까닭은 다름아니라 월성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가장 빨리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완전 포화가 예상되는 시점으로부터 공사기간을 역산하면 올해 8월에는 착공을 해야한다는 것이 지역공론화를 서두르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조금 긴 호흡으로 보면, 정부는 ‘포화’와 ‘시급성’을 앞세워 계속 ‘임시’저장시설을 늘려왔다. 또한 중간저장이나 영구처분이 요원한 것을 감안하면, 특히 지역주민의 입장에서는, 최소 수십년 간 사용될 ‘임시’저장시설이 언제 중간저장시설으로 전환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경주는 2016년 이후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하겠다는 공약까지 했던 곳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재검토를 내걸었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재공론화에 대한 기대를 허물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40년 내내 임시 저장중

한발 더 떨어져서 보면,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된 만큼 재검토위원회의 실패는 탈핵 정책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의 범위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계기로 축소되었다.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은 신고리 5·6호기 뒤로 미뤄졌고, 노후 원전 폐로는 월성 1호기 폐로에서 멈췄다. 유일한 위안거리가 있다면, 정부와 여당이 미래통합당과 원자력계, 보수언론이 앞장 선 탈핵 정책 철회 시도에 호응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정부는 두산중공업의 경영위기를 탈핵 정책 탓으로 호도하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요구하는 움직임이나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월성 1호기 재가동을 추진하는 흐름과 공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다만 탈핵 정책의 추가적인 후퇴는 없을 것이라 낙관하기는 어렵다. 진위를 정확히 확인할 순 없지만, 신한울 3·4호기나 월성 1호기를 둘러싼 정부 내부의 불협화음이 점점 더 자주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의 파행과 임시저장시설 증설 강행은 탈핵 정책의 후퇴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탈핵 정책이 강화될 가능성은 없지만 추가 후퇴의 여지는 남아있는 상황에서 약속했던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로부터의 후퇴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찬핵 진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탈핵 정치의 전선을 재구축하는 효과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대책이 없으면, 일단 멈춰야한다

현재까지 입증된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방안은 없다. 찬핵과 탈핵을 말하기 전에 이 사실부터 직시해야한다. 1950년대 이래 기술 낙관주의가 반복적으로 등장했지만 누구도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핀란드가 유일하게 고준위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을 건설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더 지켜봐야하는 상황이다. 단적으로 스웨덴은 사용후핵연료 보관 용기의 부식 가능성을 이유로 영구처분을 재검토하고 있고, 미국 역시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유카산 영구처분장 건설 계획을 보류했다.

핵폐기물을 반대하는 독일에서의 시위 장면(2008), 핵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갈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r%C3%BCne_protests_against_nuclear_energy.jpg)
핵폐기물을 반대하는 독일에서의 시위 장면(2008), 핵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갈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또 하나 기억해야할 사실은, 대책이 없는데 사용하고 있다면 그 비용은 누군가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핵폐기물 대책없이 원전을 가동하는 것은 미래세대로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경제적 보상을 통한 회유로 지역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현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간간히 시설 포화의 위협이 곁들여짐은 물론이다. 이 근원적인 피해와 희생의 구조를 직시하지 않으면 핵폐기물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고준위핵폐기물은 서두르면 더 풀기 어려워지는 문제이다.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확실한 것이 가득한 만큼 시간을 정해놓은 공론화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출발을 제대로 해야 머리를 맞대고 하나씩 매듭을 풀어갈 수 있다. 너무나 많은 난제가 있는데, 영구처분의 안전성, 중간저장시설의 필요성 및 형태, 고준위핵폐기물의 발생량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의 처리·처분 방안이 결정된다고 해도 부지 선정 등 넘어야할 산이 많다. 이 과정에서 책임을 전가하거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시설 입지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선택권을 지역주민들에게 보장해야할 것이다. 혹여 지역사회에서 반대해서 갈 곳을 찾지 못하거나 임시저장시설을 더 늘릴 수 없다면, 일단 원전 가동을 멈춰야한다. 그리고 원전으로부터 나온 전기를 이용해오기만 한 이들이 언제까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원전을 이용할 것인지, 책임감 있게 토론해야한다. 지역의 저항은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는 재공론화라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 만큼 해체가 불가피하다. 지금 시점에서 얽히고설킨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임시저장시설 증설 유혹을 떨치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당장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도,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할 때다.

홍덕화

사회생태적 위기의 배경을 추적하며, 어딘가 있을 전환의 길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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