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확신과 범주 설정의 오류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조던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혼돈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보고 혼돈을 제거하고 질서를 정립하고자 헌신한 어류 분류학자였다. 그는 인간을 퇴보시키는 모든 것은 부적합한 것으로 보고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가진 확신을 고수했다. 자신의 확신에 문제가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확신을 버리지 않고 고수한다. 잘못된 범주에 확신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우생학처럼 사회에 커다란 악을 초래한다.

저자는 염세주의적인 생화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장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던 중, 혼돈이 지배하는 자연계에 질서를 정립하려고 고군분투한 어류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에게 매료되어 그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면모의 조던을 만나게 된다.

룰루 밀러 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출판, 2022)
룰루 밀러 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출판, 2022)

조던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혼돈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보고 혼돈을 제거하고 질서를 정립하고자 어류의 분류 범주를 만드는 데 헌신한 학자였다. 이 투철한 긍정적 확신으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고, 그 결과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총장까지 역임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조던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성을 강하게 인식하며 인간을 퇴보시키는 모든 것을 부적합한 것으로 치부하며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가진 우생학적 확신을 고수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처럼 잘못된 신념의 소유자였던 조던은 과연 행복했고, 또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을까? 자신의 확신에 문제가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각종 핑계와 정당화로 자신의 확신을 고수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부조화’ 혹은 ‘정신 승리법’이라고도 말한다. 이처럼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확신 또는 범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우리의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다. (중략) 어떤 인지 과제에서 동물들이 우리보다 뛰어나다면 그들은 그것을 지능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치부한다. 이것을 ‘언어적 거세’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해 동물들의 중요성을 박탈하는 방식이자, 우리 인간이 정상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단어들을 발명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불굴의 의지와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인 조던의 주장처럼, 쓸모없는 인간은 사라져야 하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주장하며 ‘민들레 법칙’을 소개한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자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하게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자연계에 있어서 범주는 하나가 아니라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자신들의 편의대로 범주를 설정하여 그것을 질서라 명명한다. 현재 과학계에서는 어류라는 분류상의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저승에 있는 조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던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조던이 추종했던 우생학처럼 잘못된 범주에 확신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사회에 커다란 악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이다.”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있는’ 회의로 닦인다.” 사진출처 : Jeswin Thomas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있는’ 회의로 닦인다.”
사진출처 : Jeswin Thomas

우리 사회는 지금도 열심히 범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 범주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우리 사회가 진보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추종하는 확신 또는 범주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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