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과학을 넘어 정치에 희망을 걸다.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관련 지식이 부족해 무관심하기보다는 구체적인 해법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아 관심을 덜 기울이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해법과 사례가 제시될 필요가 있는데, 인류 문명의 큰 성과인 〈몬트리올 의정서〉를 통해 사례와 해법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2003년 초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유일한 국제 협정서”라는 말로 〈몬트리올 의정서〉를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1980~90년대 인류는 남극의 상공에서 발견된 거대한 오존층 구멍에 대해 큰 위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위기의 상황을 얘기하지 않는데요. 그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오존층’이란 태양이 방출하는 해로운 자외선을 막아주는 층으로서, 하늘에 떠있는 자외선 차단제와 같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구 생태계는 오존층 덕분에 자외선 영향이 적은 환경에서 활기차게 살 수 있었는데,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면 세포의 DNA가 손상돼 성장이 멈추거나 심하면 생명을 잃기 때문입니다. 오존층이 굳건히 유지돼야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남극 상공에 커다란 오존층 구멍이 있다는 사실은 1970년대부터 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오존층 파괴는 프레온 가스(CFCs)라는 화학물질이 주범인데, 이 물질은 냉장고나 에어컨의 냉매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존층 회복을 위한 프레온 가스 규제에 산업계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오존층 파괴현상에 대한 연구결과와 실측 자료가 축적되면서 1986년 9월 전 세계 주요 국가와 프레온 가스 생산업계 대표들이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는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1987년 9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24개국과 유럽경제공동체(EEC) 간에 [오존층 파괴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가 정식 국제협약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해 과학자들이 객관적인 사실과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산업과 정부가 새로운 조정에 합의하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 의정서는 현재까지 4차례의 개정이 있었고, 총 96종의 오존층 파괴물질을 규제대상물질로 정한 다음 생산량 조정 및 폐기 일정을 확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존층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아직, 완벽한 상황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은 크게 우려할 상황은 지났다고 얘기합니다. 〈몬트리올 의정서〉에 대한 유엔 사무총장의 평가는 이런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였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기후위기의 해결 방안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 대한 경고는 넘쳐나는데, 해법에 대해 속 시원한 얘기는 듣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반복된 자극에 대응하는 대안이 없으면 자극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해 시민들의 경각심과 열의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이유도 적절한 대안의 부재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당면한 환경 문제를 국제적인 합의에 의해 해결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몬트리올 의정서〉가 그 사례입니다. 기후위기는 오존층 파괴보다 훨씬 범위가 큰 문제이지만, 근본적인 성격은 다르지 않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먼저 10km를 뛸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파리협약〉의 완주를 위해 먼저 〈몬트리온 의정서〉를 연구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에 대해 과학자들은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세 개의 길,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2010년을 지나면서 과학자들의 연구 주제는 지구 생태계의 한계선이 어디이고, 한계선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진단은 2015년에 나왔습니다. 지구의 위험 한계선을 분석한 논문(Steffen et al., 2015)은 9가지 지구 위험 한계를 파악했고,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변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다른 7가지 요소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연구는 더욱 정교해져서 지구 생태계가 당면한 위험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들이 꾸준하게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UN 산하의 과학기구인 IPCC는 인류의 해답을 몇 가지 시나리오로 정리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IPCC는 산업혁명 전과 비교해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인 예측일 뿐, 이를 위해 인류가 사회 경제적으로 어떤 일들을 수행해야 하는지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서사구조가 필요한데, 이를 정리한 것이 5가지 공동 사회/경제 진로(Shared Socio-Economic Pathways: SSPs)입니다. 이 제안을 보면, 미래 기후변화의 완화와 대응이 각각 상대적으로 얼마나 쉽거나 어려울지를 알 수 있습니다(O&Neill et al., 2017). 5가지 SSP를 조금 더 구체화하면 3가지 시나리오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2020).

기후변화행동연구소, 2020
기후변화행동연구소, 2020

시나리오 1. 중도

몬트리올 의정서에서 보듯이, 기후변화에 대한 중요한 협의는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흔히 〈파리기후협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협약은 200여 개 국가가 참여했고, 이 국가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이행방안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합니다. [시나리오 1]은 모든 국가가 제시한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여전히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기대를 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이기도 합니다.

이 시나리오를 해석해 보면,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경향이 과거 양상과 뚜렷하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고, 국가 및 국제기관들의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 노력은 천천히 진행될 것입니다. 세계 인구 증가 속도는 둔화되고, 21세기 후반에는 안정될 것입니다. 현재까지 화석연료의 소비는 뚜렷한 변화가 보이지 않지만, 재생에너지의 보급 속도는 점차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가 확산되고 있으나, 탄소가격 수준은 지속가능한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Stiglitz & Stern, 2017).

중도적인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위험이 완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보듯이, 폭염, 가뭄, 홍수, 식량 감소 등의 환경 위험이 확대될 것이고, 극단적 폭염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할 것입니다. 또한, 생태계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대폭 상승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면, 일부 생태계의 붕괴는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나리오 2. 붕괴

IPCC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과학전문 잡지 Nature에 실린 논문은 지구 온난화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Xu, Ramanathan, & Victor, 2018). 이 예측에 따르면, 1.5도 온난화는 IPCC의 예측보다 10년 이른 2030년에 도달하고, 2도 온난화는 2045년입니다. 사실, 이런 예측은 지금도 계속 제기되고 있고, 예측 모델도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면, 인류가 어떻게 손을 써보기도 전에 지구 생태계는 파멸적인 상황을 맞이할 것입니다. 중위도의 여름 온도는 4도까지 상승하고, 고위도의 겨울 온도는 6도까지 상승할 것입니다. 위에서 본 [시나리오 1]보다 위험이 2배 이상 커질 것이고, 생태계는 급격한 멸종을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소수의 국가들은 혜택을 보겠지만, 극한 기상현상으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매년 반복될 것이고 사회적/정치적 안정성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드시 피해야할 경로이지만, 이미 시작되었다는 경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과학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조바심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나리오 3. 변혁

몬트리올 의정서는 ‘역사상 성공했던 유일한 국제 협정서’로 평가 받는다. 국제사회는 오존층 파괴물질을 성공적으로 규제·관리했고 그 결과 오존층은 다시 회복되었다. 탄소감축 계획에도 이 모델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사진은 2016년 제28차 몬트리올 의정서 당사국 회의 모습. 사진출처 : Paul Kagame
몬트리올 의정서는 ‘역사상 성공했던 유일한 국제 협정서’로 평가 받는다. 국제사회는 오존층 파괴물질을 성공적으로 규제·관리했고 그 결과 오존층은 다시 회복되었다. 탄소감축 계획에도 이 모델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사진은 2016년 제28차 몬트리올 의정서 당사국 회의 모습.
사진출처 : Paul Kagame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몬트리올 의정서의 성공 사례가 기후변화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피나는 노력으로 인해 지구 평균온도는 앞으로 30년 동안 그 상승세를 멈추고 1.5도를 넘기지 않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인류는 2010년 수준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 감소시켜야 합니다. 계산해보면, 2020~2030년 동안 매년 7.6%씩 탄소배출량이 감소되어야 합니다. 과학계와 유엔이 “사람들이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세상에서 번영하는 지구”를 위해 함께 만든 국제연구 플랫폼인 미래지구(Future Earth)의 보고서는 이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Falk et al., 2020). 이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당장 실행해야 하는 정책을 8개 부문(에너지, 제조업, 디지털 산업, 건물, 수송, 식품 소비, 자연기반 기후변화 완화, 자연기반 탄소 저장)에 걸쳐 연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너무 낙관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49개국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감소 중이고, 몇몇 국가들은 2035~2045년 사이에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점점 확산되어 시민들의 인식 변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미국 예일대를 비롯한 국제 연구진은 비국가 주체들(기업, 도시, 지방정부, 투자기구)의 자발적인 기후행동 목표가 달성되면 국가들이 제시한 목표를 보완하여 1.5도 온난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Hsu et al., 2018).

앞에서 본 세 가지 시나리오를 보면, 몇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앞으로의 10년이 핵심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무서운 시나리오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둘째, 어떤 시나리오를 따르더라도 기후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한 노력과 함께, 새로운 기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합니다. 셋째, 너무 늦긴 했지만, 과학은 제 할 일을 했습니다. 몬트리올 의정서처럼 남은 해법은 국가와 정치가 담당해야 합니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세력으로 정치권력을 교체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책을 적극적으로 확대시켜야 합니다. 석탄발전을 폐기하고, 재생가능에너지를 매년 10%씩 증가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될 것입니다.

전병옥

기술마케팅연구소 소장. 고분자화학(석사)과 기술경영학(박사 수료)을 전공. 삼성전자(반도체 설계)에서 근무한 후 이스트만화학과 GE Plastic(SABIC)의 시장개발 APAC 책임자를 역임. 기술의 사회적ㆍ경제적 가치와 녹색기술의 사회적 확산 방법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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