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원칙과 방도 그리고 실마리를 찾다 -기후 위기 속에서 『예기』 「곡례」 상·하 읽기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해서 행위와 언어사용 방식에 관한 약속을 정할 때, 모든 사람이 그 약속을 기꺼이 지키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 약속이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거나 이익을 침해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일상을 어느 정도는 그 약속에 맞추어 꾸려나가고 있기 마련이다. 예(禮)는 이러한 약속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예기』 「곡례」 상·하는 이러한 예를 나눔과 동일시하는 설명체계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문서이며, 그런 만큼 갈등의 중심에 놓일 수 있는 문서이다.

“좋은 아침!”부터 제천의례까지 걸쳐있는 예

『예기』 「곡례」는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번역본을 내놓았다. 사진은 학고방(정병섭 역, 2012)에서 출간한 책표지이다.
『예기』 「곡례」는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번역본을 내놓았다. 사진은 학고방(정병섭 역, 2012)에서 출간한 책표지이다.

예(禮)는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낮익은 것이면서도 생소한 것인 듯하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처럼 눈에 뜨이는 동작을 하지 않지만, 매일 누구나 한번쯤은 경례를 하기 마련이다. “식사하셨어요?”, “좋은 아침!” 등등이 바로 예의 일종인 것이다. 관혼상제(冠婚喪祭)도 예이다. 관례가 낮선 사람은 있을지라도 혼례·상례·제례가 생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들은 20세기 이후 한국의 가족들이 대단히 중히 여겨 온 가정의례이다. 2022년에서 1910년으로, 110여 년 시간을 되돌려 보면, 조선에는 오례(五禮)라는 국가전례(國家典禮) 즉 형식과 절차가 잘 짜여지고 그 형식과 절차를 기록한 안내서[홀기(笏記) 등등]에 따라 국가와 왕실이 행하는 예 체제가 있었다. 오례는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그 이전부터 여러 왕조에서 행하여지던 예들을 길례(吉禮)·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嘉禮) 등의 범주에 따라 정리 분류한 것으로, 당나라 이후의 중국 왕조들과 고려 조선 등의 나라가 이 국가전례체계를 대체로 따랐다. 이 가운데 길례는 조상의 혼을 포함한 여러 신들을 대접하는 제례(祭禮)이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흉례에는 사망을 애도하는 상례(喪禮), 해(害)가 있는 사람과 물건을 애도하는 황례(荒禮), 물과 불의 재난을 애도하는 조례(弔禮), 동맹국이 재화를 모아 포위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를 돕는 회례(禬禮), 나라 안팎으로 일어난 군대의 반란을 애도하는 휼례(恤禮) 등이 있다고 하지만, 조선의 흉례는 상례로만 구성되었다. 오례가 시사하는 바는, 제례 속에 하늘과 산천초목 등등을 대접하는 의례가 포함될 수 있으며, 상례 속에 조상뿐이 아닌 뭇 생명의 죽음을 다독이는 상장례(喪葬禮)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지신명께 고사 지내는 절차를 거치는 지역축제, 안타까운 죽음이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추도행사 등이 예의 범주 속에서 논의되고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 속에는 다양한 현상들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로 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복잡한 예를, 맹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 사양하는 마음을 실마리로 예(禮)라는 덕(德)이 자라날 수 있다.”1 예를 행하는 자의 마음의 바탕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잘 드러내는 정리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매개하는 예로부터 지고의 존재인 하늘을 대접하는 제천의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예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깔끔하게 정의된 설명도 유용하겠지만, 예가 작동하는 다양한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예를 설명했던 옛 기록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기』는 바로 이 대목에서 읽어볼 만한 옛 기록이다.

예절·의식·처세술 구축의 참고자료인 『예기』

『예기』는 예(禮)에 대한 기(記)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늘날 중국이라고 부르는 지역에서 사회가 형성 전개되면서, 개인적 사회적으로 행하여진 행위들 가운데 예라는 이름으로 지칭되었던 것들을, 설명·보완·정당화한 후기[後記 post script]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예에 밝았으며 또한 그것을 중시하였던 공자가 예에 관련된 자료들을 만들거나 모은 듯하고, 그의 제자들도 공자의 그러한 작업을 계승하였다고 하며, 한나라 시대에 대덕과 대성 두 학자가 그동안 전승축적되어왔던 문서들을 취사선택하여 『예기』를 편찬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이 잡다하게 기록한 것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체계가 없다.

이 책의 맨 앞 부분에 놓여있는 「곡례」 상·하도 그러하다. 「곡례」 상 앞 부분에는 예 일반론이라 할 수 있는 논설이 펼쳐져 있으나, 그런 부분이 끝나고 나면 여러 가지 예를 행하는 절차와 방식이 두서없이 나열된다. 「곡례」하는 전체가 여러 가지 예를 행하는 절차와 방식의 기록으로 가득차 있다. 예 일반론이 더 중요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예를 행하는 절차와 방식의 기록들 속에도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무릇 남의 자식 된 자는 나갈 때는 반드시 고하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뵙는다. 놀러 다니는 곳이 반드시 일정하고, 익히는 것은 반드시 과업이 있으며, 항상 말할 때 자신을 늙었다고 말하지 않는다.”2 이 부분 속 “나갈 때는 반드시 고하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뵙는다[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식된 자의 바른 행실로 당연시 되었으나, 지금은 한 인간의 성장을 가로막아 미성숙한 존재에 머무르게 만드는 가족문화의 한 단면 정도로 평가될 수 있는 생활습관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생활 습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않을 듯하다. 이는 한때 바람직하게 여겨졌으나 시대상의 변화에 퇴색되어가는 예속을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성에 올라서는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또 성 위에서는 큰소리치지 않는다.”3 이 부분은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을 혼란이나 두려움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행동방침의 권유이다. 특정 행위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적(公的) 상황을 예상하여 사적(私的) 행위의 범위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전제에 따른 지침이라 하겠다. 이 전제는 선공후사(先公後私)로 압축하여 표현할 수 있겠는데, 이는 오랫동안 바람직한 행위의 기준으로 통용되었다. 이에 비하여 지금 여기에서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이라는 조건이 붙은 상태에서, 사적 감정 내지는 취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개인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 허용될 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증폭하여 활력 넘치는 사회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권장되기도 한다. 한편 지금 여기에서 공(公)과 사(私) 사이의 균형이 지나치게 사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면서 선공후사(先公後私)를 행위의 기준으로 다시 중시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면, 위의 부분은 지금 여기의 사람들이 『예기』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하다.

“견문이 넓고 많이 알면서도 양보하고, 착한 행동을 돈독하게 하여 게을리하지 않아야 이것을 군자라고 한다. 군자는 남의 즐거움을 다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친절을 다하게 하지 않아서 사귐을 온전히 한다.”4 이 부분 속 양보라는 낱말에서 볼 수 있듯, 앞 문장이 동서고금을 통털어 널리 받아들여질 듯한 행동방침으로 널리 쉽게 받아들여질 듯하면서도 예라는 덕 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을 충실히 설명하고 있다면, 뒷 문장의 ‘남의 즐거움을 다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친절을 다하게 하지 않음[부진인지환, 불갈인지충(不盡人之歡, 不竭人之忠)]’은 과유불급(過猶不及)과 시중(時中) 즉 모자람과 넘침을 모두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행동방침과 관계의 상대에 따라 그에게 적절한 대접을 하여주어야 한다는 행동방침 등과 따로 노는 예의 시행이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예는 서인에게 내려가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 올라가지 않는다.”5 원문이 ‘예불하서인, 형불상대부(禮不下庶人, 刑不上大夫)’인 이 부분은 예가 지배집단 성원들에게 요구되었던 덕목임과 동시에 지배집단 성원들에게만 허용된 자율성의 근거였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인용문은 고대에 형성된 예를 고대하는 맥락으로부터 떼어내서 지금 여기에 이식하여 재맥락화 하고자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울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의 사람들은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이 구획된 사회를 원하지 않는 듯하기 때문이다.

“아비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지 않는다. 형제의 원수와는 병기를 도로 거두지 않는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하지 않는다.”6 이 부분의 앞 부분의 ‘부지수, 불여공대천(父之讎, 弗與共戴天)’, 『예기』 「단궁」상의 ‘부모지구 …… 불여공천하(父母之仇 …… 弗與共天下)’ 등은, 인간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족관계를 최우선적 고려사항으로 하는 예속(禮俗)의 강고함을 짐작케 한다.

이상의 인용문들에서 보았듯, 『예기』 「곡례」 상·하의 내용은 잡다하다. 이 속에는 여러 모임과 행사에서 예를 행할 때 충족시켜야 할 격식과 권장되는 행동방식이 열거되어있으며, 왕실에서의 인간관계를 비롯한 각종 인간관계에서 유념해야 할 점들도 열거되어있다. 그러므로 이 텍스트는 다양한 현실 속에서 예가 작동하는 양상 그리고 그 가운데 『예기』 형성 당대 혹은 『예기』에 반영된 시대의 사람들이 행동방침을 세워나갔던 과정을 추정하여볼 수 있는 단서들을 보여준다. 이것들은 지금 여기에서 적절한 예절과 의식을 구축하는 데 대단히 유익한 참고가 될 수 있다. 이것들은 처세술[處世術 the art of living] 구축의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다.

『예기』 「곡례」 상·하에서 나눔의 원칙과 방도 그리고 실마리를 찾다

한편, 앞서 적어놓은 바와 같이, 『예기』 「곡례」 상 앞 부분에는 예 일반론이라 할 수 있는 논설이 펼쳐져 있다. 편명 곡례(曲禮)는 ‘자세한 예의’, ‘예의의 세칙’ 등등으로 풀이되는 낱말이다. 편명 그대로 곡례는, 전체가 예를 설명·보완·정당화한 후기라 할 수 있는 『예기』의 맨 앞에 놓여있으면서, 예 일반론을 정리하여 보여주는 성격이 조금 더 강해 보이는 글이라 할 수 있다.

“곡례에 말했다.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고, 엄숙하게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하고, 말을 안정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만한 마음을 자라게 해서는 안 되고, 욕심을 마음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뜻은 가득 차게 해서는 안 되고, 즐거움을 극도에 달하게 해서는 안 된다.”7 안 들어갔어도 될 듯한 구절인 ‘곡례에 말했다’를 빼고 나면 『예기』 「곡례」 상의 첫 구절이 되는 것은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음[무불경(毋不敬)]’이다. 이는 하느님, 사람 등 관계의 상대방을 모두 공경하라는 것이다. 이어 거만한 마음과 욕심을 경계한다. 존중을 의미하는 공경과 아울러 거만함의 반대인 나를 낮춤을 강조한 것은, 그렇게 하여야만 욕망에 사로잡혀있을 때 나의 몫이라고 굳게 생각하였던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눔 달리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논리를 보면, 양보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예를 시행한다는 것이, 사적 소유권 만을 중시하면서 욕망을 제한없이 낱낱이 실현하려 하거나, 욕망 충족을 위하여 가속적으로 상품화를 추구하다가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데 이를 수 있는 정치-경제의 경향성과는 대척점에 서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의 공경이 타자에 대한 공경을 의미한다고 볼 때 그것은 양보나 나눔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초래하는 기후환경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겠다.

“어진 사람은 사이가 몹시 가까워도 공경하고, 두려워도 사랑하고, 사랑해도 그 사람의 악한 것을 알고, 재물을 쌓아도 능히 이것을 헐고, 편안한 곳을 편안히 여기지만 능히 옮긴다. 재물에 임해서는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말고, 어려운 일을 당해서는 구차하게 면하려고 하지 말라. 싸움에는 꼭 이길 것을 구하지 말고, 재물을 나누는 데에는 많이 얻으려고 하지 말라. 의심나는 일을 밝혀내려고 하지 말고, 몸을 곧게 가지고 내 의견을 고집하려고 하지 말라.”8 『예기』 「곡례」 상의 앞 부분을 장식한 공경 논리는 재물의 나눔이라는 구체적 실천을 논하는 데로 이어진다. 보다시피 이 이야기의 뒷 부분에는 ‘의심나는 일을 밝혀내려고 하지 말고, 몸을 곧게 가지고 내 의견을 고집하려고 하지 말라’는 권고가 붙어있어서, 지적인 행동을 저지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이 권고가 ‘자기’를 강하게 내세움으로써 양보를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이 인용문의 논리를, 재물과 관련하여 나눔을 다시 설명하고 나눔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마음가짐을 경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독점과 무제약적 소비주의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기후 환경 위기 속에서 사람과 자연 사이의 궁극적 관계에 대한 성찰로서 「예기」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진출처 : Picryl
독점과 무제약적 소비주의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기후 환경 위기 속에서 사람과 자연 사이의 궁극적 관계에 대한 성찰로서 「예기」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진출처 : Picryl

“무릇 앉는 것은 시동처럼 하고 서 있는 것은 재계할 때처럼 한다. 예의는 마땅한 바를 따르고 사신으로 나가서는 그 나라 풍속에 따른다. 무릇 예라는 것은 원근한 것과 소원한 것을 정하고, 혐의스러운 것을 결정하며, 같고 다른 것을 분별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예라는 것은 망령되게 남을 즐겁게 해주지 않으며, 말을 많이 허비하지 않는다. 예는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며, 남을 침모(侵侮)하여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며, 친밀하여 예절이 없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9 이 부분의 주제는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는데, 인용문 속 ‘예는 절도를 넘지 않는 것[예불유절(禮不踰節)]’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표현할 수도 있을 듯하다. 예를 여러 당사자들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나누는 일로 바라본다면 조건과 제한 없는 베품을 경계해야만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원칙과 방도가 서지 않은 상태에서 무제약적으로 베푸는 것은 나눔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인용문에 포함되어있는 듯하다.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하는 것을 착한 행동이라고 한다. 행동이 닦아지고 말하는 것이 도에 맞는 것이 예의 근본인 것이다. 예는 남이 자연히 이것을 본받게 하는 것이고, 남을 억지로 행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예는 남이 와서 내게 배우는 것이요, 내가 가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10 이전의 부분과 비교하자면 이 부분에서 말하는 ‘예를 행한다’는 것은 모범을 보인다는 것이다. 먼저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하는 것’을 선행(善行)이라 하였는데, 선행은 착한 행동으로 번역하는 것이 시류에 부합되겠으나, 그것이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따라야만 할 질서를 따르는 것’에 이르는 것이라면, 선행은 질서를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질서는 무엇일까? 아마도 독점 상태를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 질서의 일부였을 것 같다. 세계를 관계적으로 인식하고 관계적 상황을 ‘주어진 것’ 즉 누군가가 변경시킬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독점을 질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할 듯하다.

“도덕도 인의도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르쳐서 풍속을 바르게 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갖추어지지 않는다, 분쟁을 분별하고 송사를 판단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갖추어지지 않는다. 분쟁을 분별하고 송사를 판단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결정지을 수가 없다. 임금과 신하, 윗사람과 아랫사람, 그리고 아버지와 자식, 형과 아우도 예가 아니면 정해지지 않는다. 벼슬하고 학문하며, 스승을 섬기는 것도 예가 아니면 정해지지 않는다. 조정의 반열에 나아가고, 군사를 다스리며, 벼슬에 나아가서 법을 시행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위엄이 행해지지 않는다. 기도드리고 제사 지내어 귀신을 섬기는 일도 예가 아니면 정성스럽지 않고 엄숙하지 못하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공경하고, 절도를 지키고, 사양하고 겸손해서 예를 밝히는 것이다.”11 이 부분은 마치 모든 것이 예에서 출발하여 예로 귀결되는 것처럼 썼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공경 절도 사양 겸손이 예의 속성인 양 정리해 주고 있다. 덧붙이자면, 공경 절도 사양 겸손은 나눔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앵무새는 말을 하지만, 나는 새에 지나지 못한다. 성성(猩猩)은 말을 할 줄 알지만, 금수(禽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사람으로서 예가 없고 보면 비록 말을 잘한다고 하지만 역시 금수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금수에게는 예가 없다. 그러므로 아비와 자식이 암컷을 함께 데리고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인이 일어나서 예를 만들고 사람을 가르쳐서, 사람으로 하여금 예를 가지게 하여, 스스로 금수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했다.”12 이 인용문은 인간과 금수를 구별하는 유교 특유의 상투적인 인본주의를 보여준다.

“상고 때에는 덕을 높였고, 그 다음 시대에 와서는 베풀고 보답하는 일에 힘썼다. 예라는 것은 오고 가는 것을 숭상한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 사람이 예가 있으면 곧 편안하고, 예가 없으면 곧 위태롭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예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대체로 예는 자기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존경한다. 비록 등짐 진 장사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존경할 점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부귀한 사람이겠는가, 부귀하고서도 예를 좋아할 줄 알면 교만하지 않고 음란하지 않다. 빈천하고서도 예를 좋아할 줄 알면 뜻이 겁내지 않는 것이다.”13 『예기』 「곡례」 상 앞 부분의 예 일반론을 마감하는 이 인용문 속에서는 ‘예라는 것은 오고 가는 것을 숭상한다[예상왕래(禮尙往來)].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고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옴-감’은 ‘줌-받음’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연상은 결국 나눔으로 이어질 듯하다.

『예기』 「곡례」 상 앞 부분에 보이는 예 일반론은 유교 특유의 상투적인 인본주의를 보여준다.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은, 아직 불교가 전래되지 않은 고대에도, 수양과 실천의 표리관계에 대한 고착된 관념이 중국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는 추정을 하게 만들었다. 이는 실천을 마음으로 회귀시켜 사회적 갈등의 책임을 마음과 수양에 귀속시키는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몇몇 경향성을 제외하고 나면, 『예기』 「곡례」 상 앞 부분에 보이는 예 일반론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나눔이라고 할 수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논의의 내용은 나눔의 원칙과 방도로 재구성될 수 있다. 논의는 예를 공경하지 않음이 없음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사양 겸손 절도와 예를 엮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논의는 예가 나눔과 다를 수 없음을 시사하는 데로 흐른다. 논의 과정에서 무제약적 베품과 나눔과 같을 수 없음이 주장되기도 한다. 지속 가능성의 측면에서 양자가 같을 수 없음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후 환경 위기 시대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지금 여기의 시대 상황 속에서, 그 위기의 돌파를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물적 세계[자연] 사이의 관계, 사람과 궁극적 실재[신(神)] 사이의 관계를 새삼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예기』 「곡례」 상 앞 부분에 보이는 예 일반론은, 나눔에 대한 논의로 재구성되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를 안겨주었다. 이 논의는 급변하는 시대 못지않게 명멸하는 예절[manner]이나 주체 못하는 여가에 편승하여 넘쳐나는 것 같은 수많은 축제들 그리고 그것을 열고 닫는 억지스런 의례[ritual]들을, 독점과 무제약적 생산/소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기후 환경 위기에 지워져가던 나눔의 장으로, 새삼스레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상상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1. 『맹자』 「공손추」상 : “無辭讓之心, 非人也, …… 辭讓之心, 禮之端也.”

  2. 『예기』 「곡례」 상. 戴聖[撰], 李民樹[譯註], 『禮記』, 惠園東洋古典 15, 서울 : 혜원출판사, 1993, 26쪽.

  3.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27쪽.

  4.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41쪽.

  5.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44쪽.

  6.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46쪽.

  7.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20쪽.

  8.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20~21쪽.

  9.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21쪽.

  10.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22쪽.

  11.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22쪽.

  12.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23쪽.

  13. 『예기』 「곡례」 상. 위와 같은 책, 23쪽.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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