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망이 더 절망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 – 기후 환경 위기 속에서 《아기장수 전설》 읽기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향유하면서 살고 있다. 한국의 옛 이야기들도 그 이야기들에 속한다. 그런데 현실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이제 옛 이야기들은 너무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아기장수 전설을 예로 들어, 옛 이야기를 지금 여기의 현실 속에서 새삼 자리매김해 본다.

아기장수 전설

2019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라는 제목의 종이책을 역락이라는 출판사를 통하여 펴내고 있었다. 이에 앞서 1981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한국구비문학대계』 2-2를 펴냈는데, 그 책의 670~673쪽에, 1980년 8월 11일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에서 박광철(남, 46세) 님으로부터 채록한 아기장수 전설이 수록되어 있었던 듯하다.

이 아기장수 전설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만들었고 현재 열어 볼 수 있는 웹 아카이브 『한국구비문학대계』1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거기에서 ‘제목’으로 범주를 정하고 ‘아기장수’를 검색하였을 때 ‘날개달린 아기장수’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 이야기의 목록이 먼저 꽤 길게 나왔던 것은 아기장수 전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 보였다. 아기장수는 무엇이고 날개달린 아기장수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먼저, 『신동흔과 함께 여는 구비문학 고전문학세상』2에서 찾을 수 있었던, 박광철 님이 들려주신 아기장수 전설을 보도록 하겠다.

“장씨네 들어오신 담에 박씨네가 인제 들어왔잖어요. 들어와가주구선 우리 박씨네가 젤 어딜 들어와 계시냐 하면 저 구멍동이라는 데 있잖어요. 여기 지도 보며는 구멍동 있죠.
근데 참 하루 인제 애기를 뱃는데요. 게깐 이거 내가 삭갈렸어. 이제 부모가 돌아가셨어. 그래서 인제 산자릴 못 잡구서 인제 임시 이렇게 아무데나 묻어놓구 있는데 하루는 중이 와서 저 자구 가자 그래요. 그래 자라 그래니깐, 봐두 벌써 상제가 다르잖어요.
“아, 쥔양반 상제가 아니냐?”구.
“그래 난 상제다.”
“아버지 어떻게 산자리나 바루 구해 썼느냐?”
그래서,
“못 살다 보니깐 산자리두 구해 못 씨구 이렇게 아무데나 그냥 모시구 있다.”
구 그래니깐,
“그러냐”구.
“그럼 내가 산을 한 자리 본 게 있으니깐 내일 상제님들이 거길 가자.”
이거예요. 게 참 밥을 싸가지구 일찍아니 떠나자구 그래선 밥을 싸가지구 가는데, 어디냐하면 지금 그 동면 번개터지. 저 덕받제 동면이야 거기가.
[청중:시방은 홍천군이야.] 아 그전엔 동면 덕받젭니다. 그 동면 덕받제라는 델 가더니 턱지관이 하는 말이,
“여기다 산을 쓰슈.”
이말야. 게 보니까 참 앞에 장군석이 서이가 돌이 서 있어유. 그래서,
“알었다.”

아기장수 전설은 전국 곳곳에 여러 가지 버전으로 남아있다. 
사진출처 : Silvana Carlos
아기장수 전설은 전국 곳곳에 여러 가지 버전으로 남아있다.
사진출처 : Silvana Carlos


구 말야. 그래선 와가지군, 참 중들은 간 담에 신체를 모셔다 거기다 썼어요. 썼는데, 그 후루 참 태기가 있어가주구서 언낼 뜩 났는데, 이 언네 어머니가 밤에 한 밤중된예 보면 언네가 땀이 촉촉히 난단 얘기야, 이상허게. 이것두 사흘째 그렇게 땀이 나거던. 게 하룻 제녁엔 아주 새우면서 이걸 봤어. 이게 왜 이렇게 땀이 나나 하구 보니깐, 이 새빨구뎅이 어린애가 바시시 일어나더니 문을 열구 나가더란 얘기예요. [조사자:예, 갓난애가요.] 예, 갓난언애가. 나가더니 고 앞에 가래낭기 커다만 게 하나 있는데 훌쩍 날아 올라가더니, 가래낭구에 인제 오르락 내리며 인제 재줄 허는 기야. 재주를 디려 허더니 내려오더니, 들어와선 어머니 품속에 딱 들어오넌데 맨져보니 그때 땀이 나더란 얘기야. 게선 시아부지한테 얘길 한 거야.
“큰일 났습니다.”
“왜 그러니?”
“저 인제 한 나달 된 게 저렇게 가래남글 뚸넘어가서 밤이면 재주를 부리구 그러니 이 어떡헙니까?”
“쥑여야 된다.”
이거지, 그럼 잘못되면 역적이구 잘 됨 충신이니까 이거 안된단 얘기야. 그러니까 팥섬을 막 지질러 놓니까 참 들썩들썩하더니, 이놈을 쥑였어요. 아주 지지 눌러 가지고 쥑였는데, 사흘만에 아 중이 찾어온 거야. 찾아오더니,
“이 집이 아기 낳으니 아기 내놔라.”
이러거든. 아 그래선,
“아, 안 낳다.”
구 그래니깐,
“아, 그런 얘기 없다.”구.
“빨리 내놔라.”
이거야.
“이거 내가 데루구 갈 테니깐 내놔라.”
그래선 그런 일 없대니깐 절대 꼭 났이니깐 내노라구. 그래선 노골적 얘길 했어.
“이거 잘못 되면 우리 역적으루 몰려서 우리 박씨네가 죽을 거 같어서 이걸 지지 눌러서 쥑였다.”
구. 그래니깐 아 자기 복장을 막 디려 치더래요. 분하다구 말야.
“이걸 내가 데려다 꼭 키워야 되는데 어쩐 말이냐.”
그래니깐,
“앞으루 둘이 또 날 테니깐 이거는 꼭 날 뒀다 다과.”
게군 중은 가더란 얘기야. 그런데 기 이튿날 아 으앙 소리가 나더니 용마가 하나 와가주구선 마당에서 말야 네 무릎을 꿇곤 볶아치더래요. 그래더니 훌쩍 건너가서 그 근너 가서 엎드려 죽어서, 거기서 인제 배낭기 하나 올라왔거던요. 그래 지끔두 거길 ‘용의배나무꼴’이라구 그럽니다. 여기 올라가면, 구멍동 가면 예, 용의배나무꼴이 있어요. 게 거기가 용이 엎드려 죽었는데 거기서 배 이 하나 올라왔어요. 그래 용의배나무꼴이예요. 게 우리 박씨네가 장사 또 둘 난다는 바람에 이걸 아주 못 나게 하느냐구, 아주 저 처녀 총각 죽은놈에 뫼를 파다간, 송장을 파다간 앞뒤다 콰 눌러 썼어요. 게선 꼼짝을 못하죠. 게 지금두 이게 우리 조상이지만 이제 묵어요.
[조사자:아, 그걸 파내버림 되잖어요.]
지금 그래서 우리가 해마두 얘길해요. 이걸 우리가 가 파내자. 이게 여러 갈랜데, 우리 여기 우리 동네 사는 사람 멫 안돼요. 그래구 전체 나가 있는데 이놈의 거 합동이 안돼요.”3

해석이 필요한 우회적 표현들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할 수 있다.

“정처 없이 떠돌던 박씨 일가는 강원도 구멍동에 정착하였다. 여기에서 박씨가 죽었는데 가세가 빈곤했던 박씨의 아들은 죽은 아버지의 산 자리[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묻을 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어떤 중이 나타나 덕받제를 산 자리로 권하였다. 여기에 박씨를 묻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 아들 부부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난 지 채 한 달이 안 된 어느 날 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남몰래 가래나무를 뛰어넘는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며 노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머니는 아이의 얼굴을 팥섬에 엎고 눌러 죽였다. 그리고는 죽은 아이 할아버지가 나타나 “이 아이는 역적이 될 수도 있고 충신이 될 수도 있는 아이니까 죽여야 한다”고 하였고, 자신은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덕받제를 산 자리로 권하였던 중이 찾아와, 아이가 태어났을 것이니 그 아이를 자기에게 달라고 다그치자, 박씨네 사람들은, 그대로 자라게 두면 언젠가 아이 때문에 자기들이 역적으로 몰려 몰살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기에,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노라고 변명하였다.

몹시 애석해 한 중은 앞으로 두 아이가 더 태어날 테니 그 아이들은 자기에게 줘야 한다고 당부하고 떠났고, 다음 날 용마 한 마리가 박씨네 뜨락에 내려앉아 몸부림치고는 인근으로 날아가 엎드려 죽었는데, 그 자리에 배나무가 하나 자라났다. 그 이후 사람들은 그곳을 ‘용의배나무꼴’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사 둘이 또 태어난다는 말에 겁이 덜컥 난 박씨네 사람들은 용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하여 시집 장가 못가 원한 맺힌 채 죽은 처녀총각을 용마가 죽은 곳 앞뒤로 옮겨 묻고는, 아기장수와 용마에 관한 기억을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지우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면서도, 가끔 자신들의 비겁함을 민망해하였다. 세 번째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을 사람들은 두려워하였을까 다행으로 생각하면 기다렸을까?”

위의 요약 정리는 가능한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다른 방식의 요약 정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위의 요약의 끝 부분 즉 “박씨네 사람들이 가끔 자신들의 비겁함을 민망해 하였다”라는 요약에는 요약자의 평가가 강하게 개입되어있으므로, 이와 같은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요약자는 크게 다른 방식으로 요약 정리할 듯하다.

‘용의배나무꼴’에서 배나무는 한자로 이목(梨木)이다. 이는 이무기[이목(璃目)] 즉 용왕의 아들 혹은 용이 될 수 있었는데 원통하게도 용이 되지 못한 존재를 우회적으로 지칭하는 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박씨 일가가 정착한 곳이며 나중에 용의배나무꼴로 불리게 된 구멍동의 구멍도 용과 관련 있는 곳일 수 있다. 우선 구멍 대신 샘이나 우물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샘은 물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샘은 물길을 통하여 어느 멀고 깊은 곳 즉 용왕이 있는 곳과 연결되어있는 곳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샘을 용궁과 연결된 통로로 보았다고 한다. 샘은 용의 출입구이며, 샘 앞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은 용왕님을 향한 것이고, 샘에 있는 물은 사람과 용왕을 이어주는 것이 된다. 우물 또한 마찬가지이다. 옛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을 정화수(井華水)라 하면서 이 물을 부엌신 조왕에게 가족의 안위를 의탁하는 기도를 올릴 때 쓰는 등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세계관의 연장선 위에 놓고 보면 구멍동의 구멍은 용왕과 이어지는 통로일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 첫 아이의 몸에 날개가 있었다거나 돋아나려 하였다는 말은 없다. 그렇지만 중이 언약하였던 두 번째 아이 대신 용마 한 마리가 잠시 박씨네 뜨락에 날아들었었다는 말이 있다. 용마는 날개 달린 말을 상상하게 하는 모습의 존재였을 듯하다. 용마산이나 용마골 등은 전국에서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지명이다.

그들의 절망과 나의 절망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될 선택도, 한 번 실수를 후회하면서도 다음에 갈아엎기를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일까? 사진출처 : CDD20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될 선택도, 한 번 실수를 후회하면서도 다음에 갈아엎기를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일까?
사진출처 : CDD20

용마산이나 용마골은 용마가 죽은 땅이며, 용마 때문에 역적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용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하여 저주(詛呪)[방자]를 걸어 둔 땅인 것인데, 그와 같은 이름의 땅이 전국에 많이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뛰어나고 훌륭한 이웃이나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공포에 시달린 듯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자식을 죽이거나 자신을 찾아온 영웅의 기를 꺾고 다시는 펴지 못하게 저주를 건다. 아이 어머니는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아이를 죽이라고 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패륜적 행위를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영웅이 억울하게 죽은 땅에는 용마산 용마골 등의 이름이 붙어서, 겁에 질린 사람들이 영웅에게 민망한 짓을 했다는 것과 영웅에 대한 안타까움을 후대의 사람들이 두고두고 상기하게 되었다.

이야기 속 겁에 질린 박씨네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사람들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다양한 평가를 할 듯하다. 아이를 죽인 어머니의 행동을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야기 속 사람들과 지금 여기의 사람들 사이에 확연한 차이 하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속 사람들과는 달리 지금 여기의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 아닐까? 잘난 아이를 죽이고 용마에게 저주를 건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차하고 비겁하면서 패륜적인 행위에 민망함을 느끼는 동시에 영웅의 비극적 최후에 대한 안타까움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다가 언젠가 세상을 갈아엎는 동력을 삼을 것을 기대하였을 수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세 번째 아이가 남아있는 것도 기대를 놓지 않게 한다. 용마산이나 용마골이라는 지명이 생겨나고 지속적으로 불린 것도 이런 기대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될 선택도, 한 번 실수를 후회하면서도 다음에 갈아엎기를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일까? 이를테면 기후 환경 위기 앞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한 결과 인류 전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하여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스스로 절망하다가, 이야기 속 사람들이 느낀 절망과 두려움이 내가 느끼는 절망보다 더 무거웠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선시대에만 하여도 어떤 사람이 모반을 하였다고 해서 그의 출생지를 천한 곳으로 격하시키는 일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 지역을 반역의 땅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이럴 경우 그 지역 사람들이 당하는 차별과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기후 환경 위기와 맞닥뜨리고 있는 나의 절망이 크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 속 사람들이 느꼈을 절망과 두려움의 크기가 나의 절망보다 작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절망에만 사로잡혀있다면 나는 미성숙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 생각하고 내 고통과 공포에만 사로잡혀있어서 남의 고통과 공포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미성숙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신동흔은 구비전승되는 아기장수 전설을 각색하여 ‘아기장수 우뚜리’4라는 제목의 어린이용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여기에서도 아기장수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만, 신동흔은 결말 부분에 낙관과 긍정의 여지를 담았다. 이러한 방식의 이야기 만들기는 ‘원본’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쉽게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을 하고 싶다면 전국 각지에서 유통되고 있는 여러 개의 날개달린 아기장수 이야기들을 비교하여 보아야 할 것 같다. 원본 혹은 이야기의 최초 상태가 있었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시공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와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손질하고 향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그 향유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도 절망보다는 낙관과 긍정이 있었을 것이다. 신동흔도 이에 동조하여 ‘아기장수 우뚜리’를 만들면서 결말 부분에 굳이 낙관과 긍정의 여지를 담은 것 같았다. 이와 같은 신동흔의 이야기 만들기는 절망을 안고 사는 모든 사람이 성숙해지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어떤 것일까를 새삼 생각하게 하여주기도 하지만, 이야기란 각자가 자신의 절실함에 답하는 방식으로 변형시키며 향유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는 듯하다.

유사 이래 가장 절망적인 시대라 할 수도 있는 기후 환경 위기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절망에만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여주는 이야기들은 그들을 미성숙으로부터 구원할는지도 모른다.


  1. 한국구비문학대계

  2. 신동흔과 함께여는 구비문학 고전문학세상

  3. 신동흔과 함께여는 구비문학 고전문학세상』 → 감상실 → 설화감상 → 전설 → 아기장수(1)

  4. 신동흔과 함께여는 구비문학 고전문학세상』 → 감상실 → 우리 옛이야기 → 11 [전설-동화] 아기장수 우뚜리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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