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정치세력화가 필요할 때 -『녹색 계급의 출현』을 읽고

우리는 모두 ‘녹색 계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생존이 녹색 계급으로 나서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인간으로서의 생존과 지구 전체의 생존을 위해 하나의 단합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 생존의 문제를 보듬는 모두가 이해하고 따를 이념이 필요하다.

기후는 정의다. 기후 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브뤼노 라투르・니콜라이 슐츠 저, 『녹색 계급의 출현 -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이음, 2022년)
브뤼노 라투르・니콜라이 슐츠 저, 『녹색 계급의 출현 –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이음, 2022년)

9. 24. ‘세계 기후 행동의 날’ 기후 정의 행진이 광화문에서 열렸다. 많은 단체들이 하나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거대한 띠를 이루었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과 의지는 그들이 속한 크고 작은 단체들을 통해 서로 결속을 이루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과 시청. 덕수궁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진행하는 거대한 사람들을 쳐다보며 지나갔다. 어떤 단체는 확성기를 통해 이날 행진을 반대하는 구호를 행진하는 사람들 옆에서 외쳤다. 같은 장소에서 기후위기라는 상황에 대해 보이는 각각의 모습들은 서로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하나의 그림처럼 보였다.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하나의 구호가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닿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물론 바라보던 그 사람들의 일부는 소극적인 지지를 담아 응원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에 닿지 않는다는 느낌이 어설프게 내린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다른 정치단체들의 시위와 다른 시선의 비중으로 행진을 바라본다고 느낀 것은 아직은 절실하지 않은, 나와는 별 관련이 없는 퍼포먼스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가 『녹색 계급의 출현』에서 말한다.

생태주의가 그저 운동에 그치지 않고 정치를 조직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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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생태학은 사회 세계 외부의 근심을 토대로 하고 있었기에 교착적으로 인식된 그 행동 노선 역시 오랫동안 지나치게 교육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자연은 통합을 고취하기는 커녕 분열을 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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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계급 자체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계급 갈등에 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생태학이 어떤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 정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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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단체들이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세계 기후 행동의 날’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고 한 목소리를 냈지만, 그들의 소리를 누가 주의 깊게 들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단일화된 하나의 세력이 아닌 점점이 흩뿌려진 상태의 단체들은 그 누구에게도 위협을 주지 않는다.

기후 정의나 생태환경에는 우리 인간이 속한 환경. 자연이 필연으로 속한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거대한 보호막은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의 한 부분처럼 섞여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자연은 누구나 누리면서도 누구나 누릴 수 없는 독특한 공공재와도 같다. 자연이 주는 깨끗함을 특정 계급의 전유물처럼 누릴 수 있는 계층과 신선한 자연을 함께 할 수 없는 계층이 분류의 관계로 나타나고 있다.

녹색 계급은 생산의 개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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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이론은 사회적 풍경의 어디에 위치하는지, 누구와 싸움을 벌이는지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녹색 계급 또한 존재하고자 한다면 자기 역사의 방향을 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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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의 생산체계는 파괴체계와 동의어가 되었다. 오늘날 유물론적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유리한 물질적 조건의 재생산 이외에도 지구라는 행성의 거주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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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만을 지향하는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경제화에 대한 사회의 저항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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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행진의 구호는 급박한 지구 환경의 변화를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살 수 없을까? 북극의 녹는 얼음과 북극곰의 처참한 생태는 먼 곳의 일일 뿐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느낄 수 없다. 기후의 변화로 식물들의 재배 지도가 바뀌고 있다고 해도 행진 때 받은 사과는 아직도 먹을 수 있었다. 석유가 고갈되고 높아진 기온으로 사막화가 진행되어 난민이 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해도 아직은 삶에 힘들지 않으니 남의 일과 같다. 인간이 살기 위해,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지구 속에서 파낸 것들로 지금의 부를 누리고 있고, 그 부의 모습은 녹아내리는 빙하의 양처럼, 쌓여가는 쓰레기들처럼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다들 내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아직은 살만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행진을 지켜보던 사람들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행진이 불편하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박수를 보냈을까.

현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제는 모두가 파국을 막기 위한 결정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행동을 가능하게 해줄 중계점. 동기. 지침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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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량을 높이는 데 양쪽이 완벽한 일치를 이루었다. 생산의 결실을 분배하는 올바른 방식에서 불일치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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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활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생명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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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계급을 다른 모든 계급들과 대립시키는 요소는 녹색 계급이 생산 관계의 자리를 제한하고자 하는 반면에 다른 계급들은 확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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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하는 죽음의 순간을 나타내는 퍼포먼스는 오히려 딱딱한 아스팔트 아래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력과 지구가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사진제공 : 생태적지혜
멸종하는 죽음의 순간을 나타내는 퍼포먼스는 오히려 딱딱한 아스팔트 아래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력과 지구가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사진제공 : 생태적지혜

행진 도중 모두가 제자리에 누워 멸종을 상징하는 Die-in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환한 대낮에 도로 한가운데서 바닥에 눕는 행위는 무척 낯설고 어색했지만, 사람들과 함께라는 동질성은 어떤 용기를 갖게 했다. 알림 소리와 더불어 웅성거림도 모두 멎어버린 거리에 누워 맛본 햇빛과 따끈한 바닥이 의외로 편안하고 낯설지 않음이 놀라웠다. 멸종하는 죽음의 순간을 나타내는 퍼포먼스는 오히려 딱딱한 아스팔트 아래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력과 지구가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날은 파란 하늘이 무척 높은 날이었다.

생산을 둘러싸고 허용하고 제한하고 통제하는 모든 것이 재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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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계의 호소력있는 전형적인 가치는 번영. 해방. 자유였다. ~계급들은 생산의 발전에 나섰고. 반짝이는 부와 자유의 약속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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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계급은 거주 가능성의 유지를 중시한다. 생명체들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구라는 행성, 또는 적어도 지구 위의 거주 가능한 아주 작은 부분을 서서히 생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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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아스팔트로 덮인 길에서는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지만, 그 또한 성장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생산의 부산물이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땅 위의 생물들을 막아 그 자리를 차지하고, 땅에서 찾아낸 것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했다. 부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지구 위의 비인간들인 생명들을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 과정에서 이익은 우리 인간들, 그 중 특정한 누군가들에게 집중되었고, 현재도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소수들의 더 많은 부를 위해 지구를 파헤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악이 누구에게 향하게 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만 아니면 혹은 아직은 가지고 있는 부로 나만은 해당 사항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근대화된 이들은 과학에 의해 인식된 유일한 물질세계만 존재했다. 그렇기에 행동의 통일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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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계급은 잠재적으로 다수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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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계급에게는 스스로를 다수파로 규정하는 것만이 결여되어 있다. 옛 제 3신분처럼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미래을 확신하는 긍지가 없을 뿐이다.

73p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간에서 나름대로 기후를 걱정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크고 작은 단체를 만들어 기후 정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장에서 펄럭이던 많은 깃발들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시야를 가렸고, 크게 외치는 하나의 구호들이 가지는 힘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을 해야 할까? 세상에 보여지는 우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너무 작았고, 그날 외쳤던 구호들이 얼마나 사회를 끌어가는 이들에게 닿았을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변화하고 있지만, 그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고, 밑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 더 큰 영향력을 내는 세력으로 발전을 바라지만 각각의 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 달랐다. 그리고 인간이 바라보는 지구와 자연이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도 많이 다르다. 살 땅을 잃어가고 있는 비인간인 생물들 속에 얼마 지나지 않아 터전을 잃은 많은 인간들이 속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다른 계급들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미디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잡지, 텔레비전, 주간지에 기사가 나가고 국가의 주체 형성을 독점하고 비즈니스 스쿨과 경제학과를 늘어나게 한다. 하지만 녹색 계급의 기관들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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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념 투쟁은 엄청나게 격화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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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계급의 의식은 대체로 자연과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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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가는 수단으로서의 세계와 사람들이 사는 장소로서의 세계 사이에 맺어질 수 있는 관계의 재검토는 녹색 계급의 자기규정에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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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딛고 사는 지구는 인간 외에 비인간들인 생명들이 함께 살고 있다. 지금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이 지구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미디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누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싸움에서 이기는가이다. 직접 몸으로 결핍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난 뒤일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땅도 이미 예전의 그 땅은 아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다. 그럼 우리에게는 지금까지의 편리와 생활을 버리고 불편을 감수하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땅에서 밀려난 자연의 생명들에게 지구의 살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더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일까?

태도, 가치. 문화를 이익의 논리와 동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계급의식을 키워야 한다. 정치적 제안을 창출하여 계급들이 제도화된 형태로 갈등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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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의 리듬에 맞춰 나아가기를 계속한 이들은 이 활동가들을 ‘사회로부터 소외된‘자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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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계급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세계를 일치시키려고 시도하자마자, 국경과 국민 국가에 고유한 땅의 점유 유행, 그리고 또 지구 정치. 무역. 국제법의 문제가 각 주체에게 다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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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을 구성하고 ‘전체‘를 형성하는 자기 자신의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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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계급은 각 계급의 현실과 함께 형성된다. 부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든 원하는 때 자연을 누릴 수 있기에 지구의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생활이 힘든 사람들은 삶의 힘듦으로 마음과 달리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하기를 힘들어한다. 그럼 누가 녹색 계급을 이루어야 할까? 환경 운동이 가진 한계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현실의 정치인들은 ‘부’라는 일관된 하나의 가치. 생활의 질의 향상. 이익 추구 등 현실적 욕망을 중족시키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환경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 없는, 오히려 불편을 요구하는 주장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통된 하나의 가치를 제시하기 힘들다. 각각 분산된 힘은 밀도도 낮아져 기존의 정치 세력들에게 대항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다.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가 공저한 『녹색 계급의 출현』은 모두 76개의 메모로 이루어져 있으며, ‘녹색 계급’들이 생태주의의 정치를 주도할 조건을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라투르와 슐츠는 생산과 부의 확대를 내세우는 정통적인 계급들 속에서 녹색 계급들의 위치와 정치적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구의 환경문제는 단순히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국가가 가진 영토의 재분할을 요구하고 있고, 각각이 아닌 ‘하나’의 지구로 거대한 생태화된 국가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녹색 계급은 자신들의 계급의식을 규정하고 주변부가 아닌 중앙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라투르와 슐츠는 『녹색 계급의 출현』을 통해 녹색 계급 형성의 이론적 배경과 바탕을 이야기하면서 적극적이고 빠른 행동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부록으로 첨가되어 있는 한국의 녹색 운동에 대한 글도 ‘녹색 계급’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을 규정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414 기후정의 파업이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진행되었다. 현 정권이 탄소배출허용량을 기존 목표보다 810만 톤이나 늘리는 기후정의에 역행하는 정책에 대한 항의가 이루어졌다.

독일은 15일 현재 운영 중인 원전 3곳의 가동을 완전 중단하고 탈원전의 시대를 연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가 멈춘 원전의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부지를 마련해야하는 계획과 부족한 에너지를 석탄발전소 가동을 늘려 보충한다는 문제도 있지만, 독일 정부의 탈원전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독일, 오늘부터 ‘완전한 탈원전 시대’_ 경향신문 2023. 4. 14. 정원식 기자

우리는 모두 ‘녹색 계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생존이 녹색 계급으로 나서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인간으로서의 생존과 지구 전체의 생존을 위해 하나의 단합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 생존의 문제를 보듬는 모두가 이해하고 따를 이념이 필요하다.

『녹색 계급의 출현』의 사상적 바탕과 배경. 이유, 당위성 등에 대해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정작 라투르와 슐츠는 모두에게 당장 일어나 하나된 행동을 할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철학적 이론적 논리의 바탕을 말하는 것은 책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대중을 포용하고 조직화해서 녹색 계급을 세력화 할 수 있는가이다. 지금이 진정 우리의 단합된 노력이 필요한 때다.

우리 모두에게 지구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다랑

모두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다랑’이라 합니다.
혼자보다는 모두와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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