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㉕ 어릴 때 뺄개이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

두동주민에게 들은 6.25 전쟁때 이야기.

책이나 영화로만 알던 6.25 전쟁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70대가 된 밤골에 사는 할머니는 자라면서 부모님께 수없이 들었다고 합니다. 80~90대가 된 비조마을 할머니들은 피난갔을 때를 이야기하며 지금도 휴전이라고 하십니다.

뺄개이라 하니까 뺄간 줄 알았더만 똑같드라

만화리 밤골마을에 사는 이정숙님
사진제공 : 김진희 (2021.2.21.)
만화리 밤골마을에 사는 이정숙님
사진제공 : 김진희 (2021.2.21.)

우리는 어릴 때 뺄개이(빨갱이) 때문에 그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 범서로 피난 가고.., 우리 고모 결혼한다고 옛날에는 베를 짜가지고 이불이고 뭐고 다 하잖아. 뺄개이가 산에서 내려와가 뺏어갈라 해사서(해가지고) 그거를 물에 척척 씻어가 햇빛에 바래고 해야 색이 맑게 나오잖아. 첨에 베 짜노면(짜놓으면) 색이 탁한데 햇빛에 널고 널고 해야 바래져가 하야이(하얗게) 되는데, 그거를 뺄개이들이 내려오면 사정없이 뺏어가니깐 일부러 물에 담가놨다 하대. 못 가져가라고. 나중에 또 가지러 와가지고 물에 담가져 있으이 지랄지랄 하더라네. 그래가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그 이튿날 낮에 그거를 건지가 소에다가 질메(길마:짐을 싣거나 달구지를 채울 수 있도록 말이나 소의 등에 얹는 운반구) 지어다가 물 철철 흐르는 거를 실어가 범서 외가집으로 내려갔다 하더라고.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뺄개이라 하니까 뺄간 줄 알았더만 똑같드라 카면서…

우리 아부지는 살아가 돌아왔는데…

장성에 뒷산 쪽에 외딴 집이 2~3채 있는 데 있거든. 그 사이로 가는 길에 뺄개이가 많이 나왔다 하대. 우리 아버지가 거(거기) 친구집에 갔는데 친구 아버지가 마(이제) 저문데(저물었는데) 자고가라 그라시는데 아버지가 자꾸 오고 싶더라대. 그래가 오는데 버스 타고 박제상 유적지 오는 길로 오면 장성으로 가는 길 있제? 거 접어드이끼네(접어드니) 총소리가 빵!빵!하고 나드래. 뒷골이 땡기드라는 거라. 집에 왔는데 그 다음날 보니까 그 집에 들어와가 아들하고 다 죽었대. 우리 아버지도 거 있었으면 죽었는 거라. 자꾸 붙잡는데도 집에 가고 싶더라는 거라. 우리 아부지는 살아가 돌아왔는데 같은 한 날 제사 들어가는 사람이 그 동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당했다 하더라고.

동네 사람이 물들어가 뺄개이가 된 일이 더러 많았어. 누가(누구인지) 형제간에 뺄개이가 되가 있는데 한 사람이 우리 아버지하고 동기래. 학교를 다닐 때 같이 다니고 했는데 우리 집에를 왔는데 우리 아부지를 델꼬(데리고) 나갔는데 우리 아부지는 표적물이 되는기라. 특무상사였기 때문에 모르스부호 해독하는 거를 했거든. 그때 우리 아버지는 좀 멋쟁이라서 맨날 울 엄마 말에 의하면 느그 아부지는 천날만날(매일) 나까오리(중절모자) 모자 쓰고 팔에 시계 끼고 양복바지만 입고 다니고, 그래가 멀리서 봐도 아는까이(알아보니) 아부지가 집에 오는 날은 뺄개이가 온다는거라. 그날도 제사라고 왔는데 있으니까 집에 들어왔더라는 거라. 우리 엄마가 젖이 모자라가 미제 분유있는 거를 밥물에다 가루를 타면 애가 잘 먹더라는 거라. 그것도 와가 다 뺏어가삐고(빼앗아 가버리고) 그래가 울 알라(우리 아기) 무야된다면서(먹어야 된다면서) 울엄마가 그라이끼네(말하니) 사정없이 다 가가뿌더라는 거라(가지고 가버리더라).

그라고 울 아부지를 데리고 나가는데 아무꺼시 니 이름을 대면서 느그 얼라가 이라드라는 거라(너 아기냐고 묻더라는 거야). 울 아부지가, 우리 딸이고 안공기다. 옛날에는 안식구를 안공기라 했거든. 니는 들어가라면서 보내주면서 그 대신 집에는 오지 마라 그래 가지고 울 아부지는 그 이튿날 부산 내려갔다하대. 그라고 울 아부지는 나중에 포항에서 기림사에서 넘어가는데 격전지가 있는데 거기서 전쟁 중에 총을 맞아서 죽을 뻔했는데 살았지.

우리 엄마가 내가 나이는 얼마 안 먹어도 이 집에 시집와가 별거별거 다 겪었다 카면서… 우리 엄마가 19살에 내를 낳고 20살 때 있었던 일이고 아부지하고 엄마 8살 차이니까 울아부지는 20대 후반이랬지. 지금도 나는 들은 소리가 있어가 지금도 산책갈 때도 아부지 친구집 있었다는데 거기는 가기 싫대.

비조마을 할머니들이 피난 갔을 때

2016년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처음 했을 때 비조마을 할머니들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풀어 썼고 사진에는 사투리 그대로입니다.


구술 비조마을 할머니들 / 글, 일러스트 율림마을 문ㅇㅇ (출처: 2016.만화리 마을이야기-울주군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 자료집)
구술 비조마을 할머니들 / 글, 일러스트 율림마을 문ㅇㅇ (출처: 2016.만화리 마을이야기-울주군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 자료집)

6.25가 몇 살 때 났냐면 16~7살 때 났지.
해방되고 얼마 안 되어 또 6.25 사변이 났어.
저기 안강까지 올 때 피난민이 넘어오는 걸 봤거든.
대밀서 봤지.
군인 가는데, 요새는 군인(군대) 가도 갈 때가 되야 가지.
그때는 덩치만 크면 모두 다 데리고 영장도 없이 잡아갔다.
전쟁터에 바로 간다고 그랬지.
6.25 때는 그랬어.
여기서 보면 폭탄소리가 나고 안개가 끼고 그랬다.
지금도 휴전이지. 나라가 휴전이 되어 있어.
피난은 안 갔다.

왜 안가. 갔지.
고개 넘어가고 대밀에도 가고 삼동에도 가고 솥까이 안 갔나.
솥까이1 간다 그랬거든. 솥을 가지고 간다고.
마을은 비워놓고 솥을 가지고 다 갔지.
웃동네 여기만 갔지.
땅 파고 그릇 같은 거 묻어놓고 음력 정월달이었어.
겨울이라 춥고말고.

그때가 내가 조금 컸을 때였는데
음력 보름 쉬고 금방 (피난) 갔지.
우리는 대밀 외가에 가있었거든.

우리는 그때 한ㅇㅇ집에 가 있었거든.

그때 나는 시집왔다.


1951년 말경 아군의 반격 작전으로 고립화된 인민군과 재산공비(在山共匪)들은 합세하여 야간에 마을로 내려와서 식량을 약탈하고 살상, 방화함에 따라 치안상태가 극도로 혼란하게 되었다.

이때 군경 당국은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그 해 가을 추수를 끝내기가 무섭게 은편·율림·칠조·장성·당지 등 5개 행정리동 주민전체에 대한 소개(疏開) 명령을 내렸다. 졸지에 피난민이 된 주민 대다수는 두동초등학교에 수용되거나 일부는 면 소재지 마을 가정에 분산 거주하게 되었다. 엄동설한의 한 해 겨울동안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고통을 겪다가 1952년 봄, 군당국에서 공비들의 본거지인 신불산(神佛山) 작전을 벌여 잔당을 소탕한 후에 소개령이 해제되자 귀가하게 되었다.

출처: 두동면지(2001년 발행, 발행인 두동면지 편찬위원회) ‘우리 고장의 역사’ 가운데

  1. 솥 가지고 피난 가니 솥까이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셨다지만, 두동면지에 주민소개(住民疏開)라는 말이 나오는데 소개의 일본어 발음이 そかい(소까이)입니다.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대상황으로 봐서 소개의 일본어 발음 그대로 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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