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형벌보고서] ② 5월 보고서, 담배꽁초 줍기

본격적인 봉사형벌의 시작으로서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웠습니다.

지구인 살림 월간 결산

보고서 상세내역 링크

• 가장 높은 점수 소비 : 급하게 건널목을 건너다가 넘어짐. 낙법을 잘 해서 무릎이 약간 까진 것 외엔 몸이 다친 건 없으나, 쥐고 있던 핸드폰이 충격을 받아서 먹통이 됨. 당근거래 직거래로 저가 중고 핸드폰 구매.

• 가장 낮은 점수 소비 :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커피와 디저트를 사드림. 논비건이라 낮은 점수.


이달의 봉사형벌 수치

담배꽁초: 1812개

사탕/과자 포장지: 100여 개

자전거 정리: 2대

킥보드 정리: 1대

비인간 동물 똥: 1건

인간 똥: 0건

토사물: 0건

칭찬받음: 2회

비 때문인 휴무: 2일

무단 휴무: 6일


특이사항

-하루에 한 시간씩 봉사형벌을 수행하면 누적시간에서 1시간이 차감된다. 그렇게 채워야 할 시간이 8,472일, 약 23년에 해당한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지구인살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동안 쌓인 부주의함을 만회하려면 23년이 걸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23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막연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투입한 시간 대신 실제로 처리한 결과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들을 치운 개수만큼 시간을 차감하는 방식이다. 우선은 담배꽁초부터 시작한다. 담배꽁초 100개를 수거할 때마다 1시간을 차감한다.

-논산, 대전, 제주도를 다녀왔다. 논산은 시골이라 꽁초가 거의 없어서 쉬었고, 대전 제주도에선 밤에 밖에 나가 꽁초를 주웠다. 도시라면 담배꽁초는 어디에든 있는 것 같다. 한 번 보이기 시작하니 온 세상이 다 담배꽁초다.

-칭찬을 두 번 받음. 한 번은 동네 골목길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자동차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미시더니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씀하셨다. 난 뻘쭘해서 “예 예”하고 넘어갔다. 한 번은 대전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강아지와 함께 나와 꽁초를 줍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께서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을 거셨다. 저번 아주머니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씀하셨다. 다른 칭찬의 말이 없을까 생각해봤다. 대단하세요. 멋지십니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좋은 일 하시네요’가 가장 적절하게 칭찬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다음에는 “벌 받는 중입니다”라고 답을 해봐야겠다.

-담배꽁초 군락 발견.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기에 아파트 단지와 아닌 곳. 그 사이 경계지점에서 담배꽁초 군락을 발견했다. 수백 개의 담배꽁초와 똑같은 브랜드의 사탕 봉지가 쌓여있었다. 하나둘 쓰레기봉투에 꽁초와 사탕 봉지를 담았다. 담은 꽁초가 백 개가 넘고 이백 개가 넘어갈 때 내가 이곳을 치워봤자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또 와서 피울 텐데, 그 사람들은 내일 나와서 이곳이 치워진 것을 보며 여기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듯 행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형벌답다고 생각했다.

-과시욕. 강아지를 산책시키면서 쓰레기도 줍는 착한 내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래도 되나 싶었다.

왼쪽부터 불광동, 제주도, 풍무동에서 주운 담배꽁초 봉투들. 사진 제공 : 김이중.

소감

고등학생 때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거나 지각을 자주 하는 등 규율을 어긴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이 ‘노력봉사’를 시키곤 했다. 교내 쓰레기를 줍거나 잔디밭의 잡초를 뽑는 등의 노동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잘못했을 때 자신에게 벌을 줄 수 있는 용기가 모두에게 있다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하다.

담배꽁초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혐오감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것들을 치우는 만큼 시간이 차감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활동의 가장 이상하면서도 특별한 점은, 원래 싫고 혐오스럽게 느껴지던 것을 점차 반갑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어 간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김이중

존재 방식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치 지렁이의 완벽함을 닮아 지렁이 인간이 되어 지렁이 말을 구사하고픈 게으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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