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아랍어를 배우고 있다. 내 선생님은 فلسطين (팔라스띤) 출신이다. 얼마 전, 수업에 함께하던 동료 활동가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지금 여기서 삶을 지속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그는 빠르게 블랙 유머라 덧붙이며 웃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도 같이 웃으며 탄식했다. 옆의 동료가 당신은 아랍어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계속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난 언젠가 내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는데, 그 말을 한 그와 나의 이유는 달라서, 쉬이 맞장구를 칠순 없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와 불법 점령은 78년째, 가자지구 집단학살은 2년 반 넘게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7만 5천 명이 넘는 가자지구 주민이 살해되었다. 지난해 10월 체결된 휴전협정은 이스라엘의 끈질기고 반복적인 폭격을 허용하는 허울일 뿐이다.1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불법점령 계획은 더욱 치밀해지고 있다. 그들은 보이지도 않는 노란색, 주황색 선을 긋고, 총을 쏘고, 굶주린 이들을 향한 음식과 물자를 차단한다. 세계가 팔레스타인에 무심해지는 동안, 시온주의 국가의 포악한 만행을 멈추기 위해 애쓰기는커녕 그것을 지원하는 동안, 아니 무심하게 폭력을 지원하기 때문에, 불법 점령과 식민 지배, 인종학살은 진행 중이다. 이런 서술을 읽으면 당신이 어떤 장면, 얼굴을 떠올릴지 혹은 그 무엇도 떠올리지 않을지 궁금하다. 괴로운지 놀라운지 믿기지 않는지 무력한지 궁금하다. 그게 무엇이든 당신이 떠올리는 장면은 이 사태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것이 내가 팔레스타인 연대 현장을 오가며, 팔레스타인을 만나며 가장 크게 배운 것이다. 집회에 갈수록, 팔레스타인 글과 영상을 볼수록, 알게 되는 장면은 늘지만, 그것은 언제나 일부일 뿐이다. 살해, 폭력, 구금, 불법 점령의 장면엔 끝이 없다. 끝없이 새로 생성된다.
격주마다 서울에서 진행하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집회2에서는 매번 팔레스타인 정세 보고를 하는데, 지난 5월 30일 소식은 이렇게 시작했다. “수요일에 이슬람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가 시작됐습니다. 명절 첫날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맹폭을 가해 이틀간 최소 20명을 살해했습니다.”3 폭격으로 살해된 소녀 사라 라잡이 생전에 웃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떠 있고, 이어 활동가님은 “명절을 맞이해 차려 입은 사라의 오렌지색 드레스는 폭격으로 녹아들어 사라의 몸과 하나가 됐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소식은 쥐와 기생충으로 주민들이 피부병을 앓고 있으며, 식량 배급이 되지 않아 여전히 굶주린다는 얘기. 다음 장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는 탱크. 그다음, 바다로 육지로 가자지구를 향해 가던 활동가들이 구금되고 경찰 권력에 폭력을 당했다는 소식. 팔레스타인에 대한 괴로운 서술, 잔혹한 이야기는 늘어간다. 그 서술은 하나의 장면이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반복되는 구체적인 폭력과 그에 대한 저항, 그것을 다 담지 못하는 언어의 실패를 무릅쓰고 터져 나오는 증언 조각이다. 팔레스타인을 보고 듣고 읽는 것은 집단학살과 불법점령, 추방과 구금, 굶주림과 빈곤, 낙인, 차별과 혐오, 무심함과 공모, 폭력의 조각들을 모으는 일에 가깝다. 그 유사한 조각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각을 그러안고서, 울다가 화내다가 절망한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팔레스타인은 이—끔찍한, 격렬한, 위태로운, 산산조각 난—세계의 축소판이다.”4

저항하기로 한다. 이 결론, 폭력 조각을 만들어낸 세계에 저항한다. 조각조각 침투해 있는 폭력 고리에 저항한다. 다른 세계를 요구한다, 다른 세계를 짓는다. 파업, 사회운동, 예술, 무장 저항, 좌파 정치 등 여러 형태로 저항한다. 총칼 앞에서도 학교에 가겠다고 노래한다. 땅을 봉쇄해버리면 바다를 통해 항해한다. 군수 용품을 실은 선적이 이스라엘로 향한다면 노동자들은 이를 멈춘다.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진다. 폭력을 강요하는 군대를 거부한다. 각종 아트워싱이며, 핑크워싱으로 은폐하려는, 혹은 은폐를 시도조차 않는 폭력을 끈질기게 폭로한다. 이와 연루된 한화, 현대, 매일유업, 한국석유공사, 코카콜라, 에어비앤비 등 거대 자본을 호명하고, 책임을 묻는다. 보이콧하고, 투자를 철회하며, 제재를 가한다(Boycott, Divestment, Sanction). 이 땅에 얽혀 있는 폭력의 굴레를 멈출 것을 요구한다. ‘피 묻은 돈’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이 테러리즘5이라고 불릴지라도, 폭력으로 가로막힐지라도 저항한다. 이것은 ‘수무드’( صمود)다. 아랍어로 인내, 불굴의 저항을 뜻하는 단어이자, 팔레스타인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세계가 전수받고 있는 정신이다. 끈질기고 전복적이다. 저항이 유효할수록 억압과 폭력은 강해지고 그럼에도 저항은 멈추지 않는다. 폭력의 장면만큼이나, 저항의 장면 또한 끝없이 생성된다. 아름다우며 놀랍다. 거저 주어지는 장면이 아니므로 더욱 귀하다. 이 장면들은 저항의 역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들, 폭력과 억압의 세계에 균열을 내며, 정말로 누구도 남겨두지 않고서 다른 세계에 서겠다고 분투하는 이들이 만들어낸다. 어디에서든.

“팔레스타인을 위한 연대는 폭격이 멈출 때까지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 검문소가 사라질 때까지, 식민 정착민들이 떠날 때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팔레스타인이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진정으로,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행동하고, 배우며, 이 폭력을 유지하는 체제에 맞서야 한다.”6 삶을 지속할지 말지 모르겠다던 나의 아랍어 선생님은 이렇게도 썼다. 그의 냉소적인 농담은 끝까지 저항하자는 투지와 끈적하게 붙어 있다. 비관과 낙관, 회의와 희망, 경탄과 절망, 억압과 저항이 쌍을 이룬다. 분열된 상태, 지친 상태로 계속해서 싸운다. 모순, 분열의 고통, 세계에 대한 울분과 불만, 그것이 우리가 느끼는 것. 그 감각이라면 나도 안다, 그것을 안고서 함께 싸우겠다고 말해본다. 조각난 몸들이 해방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믿어본다. 조각인 우리는 해방된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
이스라엘은 2025년 10월 10일 휴전협정 체결 이후 2026년 6월 9일 현재까지 휴전 협정을 3200번 이상 위반했다. 휴전 협정 이후 거의 매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여전히 휴전 중이라고 주장한다. Al Jazeera, &How many times has Israel violated the Gaza ceasefire? Here are the numbers ↩
7월에는 7월 11일, 25일 토요일 오후 5시, SK 서린빌딩 앞에서 진행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긴급행동 SNS(인스타그램) 혹은 웹페이지 참고.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홈페이지에서 격주간 정세 보고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뎡야핑, “사라의 오렌지색 명절 드레스 – 2026.5.30 격주간 정세 보고” ↩
무함마드 엘쿠르드, 『완벽한 피해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 박종주 옮김, 마티, 2026 ↩
서구를 비롯한 세계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알 아크사 홍수 작전을 테러리즘으로 프레이밍했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팔레스타인의 정당 하마스, 팔레스타인인 뿐 아니라 그들과 연대하는 이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은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를 대테러법 상 금지하고, 연대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체포했다. 한국 외교부는 가자지구로 평화항해를 감행한 한국인 활동가 김아현(해초)의 여권을 무효화했다. ↩
Sima Zayed(시마 자예드), “가자지구는 그리 멀지 않다: 팔레스타인인과 한국인의 연대” 2025.10.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