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함을 견디게 하는 이야기의 힘 -기후 위기 속에서 『삼국유사』 「신주」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 읽어보기

종교에 신통력을 발휘하는 만능 해결사가 끼어있는 것은, 분명 위험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듯하다. 『삼국유사』 「신주」편에는 세 명의 만능 해결사가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 한 명인 혜통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여러 문제가 끼어있음에도, 혜통의 이야기와 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기후 위기 시대에 가져다 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관하여서도 논하여 본다.

세상의 모든 일이 연관되어 있음 ; 어린 혜통의 깨달음?

『삼국유사』 「신주(神呪)」에 실려있는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惠通降龍]’ 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보면, 승려 혜통(惠通)은 어린 시절 “하루는 집 동쪽의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그 뼈를 동산에 버렸다.”1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그 뼈가 없어져서, 핏자국을 따라 찾아갔더니 뼈가 자신의 굴 속으로 돌아가서 다섯 마리의 새끼를 안고 웅크리고 있었다.”2고 한다. 이 일이 혜통이 출가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e북), 저자 일연, 번역 신태영,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e북), 저자 일연, 번역 신태영,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혜통이 먹고 버린 수달의 뼈는 가족 사이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보기 전에 어린 혜통은 가족 사이의 사랑을 몰랐을까? 알았을 것 같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혜통이 수달의 뼈로 인하여 깨달은 것은 세상사 사이의 연관이었을 것 같다. 삼국 시대에는 누구든 기회가 되면 짐승을 사냥하여 잡아먹었을 것이다. 안 그러는 게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어린아이가 사냥을 하였다면 그것은 칭찬이나 포상을 받을 일이었을까 아니면 비난이나 처벌을 받을 일이었을까? 사실 여기에서 어린아이라는 표현부터 문제가 있는 듯하다. 그 시대는 어린이가 없는 시대였을 것이다. 지금을 기준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 한 사람의 몫을 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니 혜통은 수달을 잡아먹고는 스스로 칭찬받을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혜통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든 듯하다. 새끼들을 보호하는 수달의 뼈를 보고, 혜통은, 아주 명확히는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일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은 듯하다. 그리고 자기가 그 연관의 사슬을 모르고 한 생명을 함부로 수단화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空)・무명(無明)・연기(緣起) ; 어린 혜통에게는 어려웠을 경지

그리고 어쩌면 혜통의 깨달음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 그는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공(空)하나, 사람이 무명(無明, ignorance) 즉 ’알지 못하는 것’에 의지해 있으므로 고(苦)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깨달음에 도달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諸法有定性 [각각의 법이 고정된 성품을 지니고 있다면]
則無因果等諸事 [곧 원인과 결과 등의 모든 일이 없어질 것이다.]
如偈說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설명한다.]

衆因緣生法 [여러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법(法)[존재]이다.]
我說即是無 [나는 이것을 공하다[無]고 말한다.]
亦為是假名 [그리고 또한 가명(假名)이라고도 말하며,]
亦是中道義 [중도(中道)의 이치라고도 말한다.]
未曾有一法 [단 하나의 법(法)[존재]도]
不從因緣生 [인과 연을 따라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다.]
是故一切法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법(法)[존재]이]
無不是空者 [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3

위의 인용문은 불교의 핵심 논문 중 하나인 『중론』 「관사제품」의 일부이다. 일상인에게 인연은 ‘소중함’이라는 마음의 움직임[정동(情動),affect]이 일어나게 하는 것 정도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위의 인용문을 보면, 불교에서 인과 연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무명(無明) 즉 ’알지 못하는 것’에 의지해 있으므로 고(苦)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과관계라 할 수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한다. 이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연(因緣)에 따라 생겨남’이라는 말을 두 자로 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겨남[生起]은 무명에 의지함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뭘 제대로 모르기[無明] 때문에 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緣起] 것과 같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고통[苦]을 느끼는 것이지, 첫 자리가 무명임을 깨달으면 세상에는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존재가 없다[空]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까지 깨닫는 것은, 똑똑하고 조숙하였다 하더라도 아직 아이였을 혜통에게는, 조금 어려운 일이었을 듯하다. 그리고, 그때 혜통이 이것까지 깨달았다면, 출가하여 스승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들어 조용히 깨달음을 즐기거나,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만방에 전하러 나섰을 것 같다.

방편(方便)

『삼국유사』 「신주(神呪)」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1) 출가하여 이름을 혜통으로 바꾸고 당나라로 가서 무외삼장(無畏三藏)이라는 중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차력(借力)같은 기행을 선보여 왕화상(王和尙)이라는 이름을 얻고 무외삼장의 제자가 된 이야기. 2) 흰 콩 검은 콩으로 군대를 만들어 당나라 황실의 공주를 병들게 한 용을 쫒아낸 이야기. 3) 신라로 도망간 용이 혜통의 조력자 정공(鄭恭)과 신라 왕 사이를 이간질하여 생긴 긴장관계를 극복하고, 기장산(機張山)에 들어가 곰신[熊神]이 되어 행패를 부리는 용을 타일러 행패에 따른 해독을 없앤 이야기. 4) 병든 공주를 치료하고 용의 이간질 때문에 죽은 정공의 억울함을 풀어준 이야기. 5) 왕의 등창을 즉시 낫게 해준 후, 왕으로 하여금 신충봉성사(信忠奉聖寺)와 절원당(折怨堂)을 지어 전생에 신충에게 지은 악업을 씻도록 한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삼국유사』 「신주」 편에는 위와 같이 정리되는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와 아울러 두 개의 이야기가 더 들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밀본법사가 요사한 귀신을 물리치다[密本摧邪]’는 밀본이 귀신을 퇴치하여 병을 고친 이야기이고, 나머지 하나인 ‘명랑법사의 신인종[明朗神印]’은 명랑이 용을 부렸으며 고려조에서도 명랑의 계통이 이어졌음을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 「신주」편 전반에서 어린 혜통이 수달을 잡아먹고 깨달은 이야기를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이야기들은 신주(神呪) 즉 신비로운 주문으로 집약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두 부류의 이야기들이 보여주는 특성은 확연히 구분된다. 하나는 초보적인 깨달음 이야기이고, 나머지 하나는 만능 해결사들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들이 『삼국유사』 「신주」편 지면의 70% 정도를 점하고 있다. 이렇듯 대비되는 두 부류의 이야기들에 대한 일연의 생각은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의 끝부분에 수록된 찬미의 시에 나타나 있는 듯하다.

산 복숭아와 시내의 살구가 울타리에 비치고
오솔길에 봄이 깊어 양쪽 언덕에 꽃이 피었다네.
혜통이 한가로이 수달을 잡은 인연으로
서울 밖 먼 곳의 마귀까지 모두 교화시켰다네.

시는, 어린 혜통이 수달을 잡아먹은 일은 세상사의 하나의 원인으로, 마귀를 교화시킨 일은 그에 따른 결과로 묘사하였다. 일연은 공(空)・무명(無明)・연기(緣起) 등의 개념을 사용하여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세상에는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없다’는 세계설명으로 나아가는 논리를 소개한다거나 암시하는 데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일연은 신비로운 주문으로 집약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넓은 지면을 할애하였고, 찬미의 시에서도, ‘마귀’를 ‘교화’시킨 것을 찬미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연은 불법(佛法) 자체도 중요하지만 방편(方便) 즉 중생 교화의 다양한 수단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삼국유사』 「신주」편을 편찬한 것 같고, 여기에 실린 방편 이야기는 보는 이들을 속 시원하고 의지하게끔 만드는 세 만능 해결사들의 활약상이다.

아득함을 견디게 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내가 운 좋게도 수달을 잡아먹고 뼈를 버려두었는데, 다음 날 그 수달의 뼈가 자신의 굴속으로 돌아가서 다섯 마리의 새끼를 안고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1) 다섯 마리 새끼도 잡아먹는다.
(2) 귀신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관습적인 비방(祕方)을 써서 귀신 쫓기를 시도한다.
(3) 신기한 일을 보았다고 사방에 알리며 깔깔거린다.
(4) 새삼 가족 사이의 사랑을 느낀다.
(5)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내가 그 연관의 사슬을 모르고 한 생명을 함부로 수단화한 것을 자책한다.
(6)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공(空)하나, 사람이 무명(無明) 즉 ’알지 못하는 것’에 의지해 있으므로 고(苦)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5)’나 ‘(6)’처럼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안 그러겠지만, 삼국시대에 가져다 놓는다면, 어린 나는 ‘(1)’처럼 행동하였을 듯하다. 이랬을 내가 지금 여기에서는 일연이 『삼국유사』 「신주」편에 방편에 해당하는 만능 해결사들의 활약상 만 잔뜩 늘어놓았다고 불평한다면, 내가 분열적인 정신상태에 빠진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지금 여기에서 나는, 최고 수준의 불법 근처에도 가지 못하였으면서도, 다양한 방편을 사용하여 보다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불법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노력들에 결코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고 있다. 철학 물을 먹어서인지 내게는, 공(空)・무명(無明)・연기(緣起) 등등이 멋져보이고, 만능 해결사들의 활약상은 유치하고 촌스러워 보이며, 평생 그런 존재들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지 않으리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다.

내가 불법과 방편 사이에서만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과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행동 사이에서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카우스피라시(Cowspiracy: The Sustainability Secret),2014》와 《씨스피라시(Seaspiracy),2021》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글을 써서 공개한 적도 있지만, 가격이 적당하다면 돼지고기나 북해에서 잡았다는 고등어를 사 먹어볼 생각을 한다. 나는 분열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기후 위기 인식에 투철하지 못하다. 나를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편은 다양하게 사용되어야 할 듯하고, 나 또한 그런 방편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마음을 항상 열어놓아야 할 듯하다.

불교에서의 윤회사상이 그러하듯이, 일상에서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작은 실천조차도 나 자신이 일생 동안 쌓아온 습관을 되돌아보고 고쳐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사진출처 : dominik hofbauer
불교에서의 윤회사상이 그러하듯이, 일상에서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작은 실천조차도 나 자신이 일생 동안 쌓아온 습관을 되돌아보고 고쳐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사진출처 : dominik hofbauer

최상의 불법에 완전히 도달한다거나 깨닫고 열반에 드는 것은, 그 과정에서 소멸시켜야 할 업장(業障)이 너나없이 두텁기 때문에, 사람들을 힘겹게 하고, 절집으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것 같다. 그 목표는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여기에 업장의 소멸이 억겁의 윤회, 즉 아주 여러 번 다시 태어나면서 선업을 쌓는 것을 통하여 가능하다는 가르침도 더해진다. 한편 기후 위기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완전히 해소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우며, 일상에서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작은 실천조차도 나 자신이 일생 동안 쌓아온 습관을 되돌아보고 고쳐야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기에 기후 위기 대처라는 목표의 달성은 아득히 멀리 있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기후 위기가 파탄으로 치달아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따른 허탈함이 더해진다.

일연이 『삼국유사』 「신주」에 채워 넣은 신주(神呪) 즉 신비로운 주문으로 집약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아득함을 견디게 하는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대표적 신주인 『반야심경』 끝 부분의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는 “가라, 가라, 저 너머로 가라, 완전히 저 너머로 가라, 완전한 깨달음에 안주하라” 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무시 이래로 중생들의 집이 되어버린 윤회의 이 언덕을 버리고 해탈/열반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라” 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주문에도 뜻이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여, 일연이 『삼국유사』 「신주」편에 채워 넣은 이야기들은 뜻이라기보다는 힘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흔들리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이끄는 힘. 혜통은 만능 해결사로 그려져 있다. 밀본과 명랑도 그러하다. 용을 부려 나라를 구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의 본질을 힘의 숭배라고 해도 반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나하나의 사람은 대개 약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은 몹시 어려운 것이다. 힘 숭배 경향에 편승하여 ‘법사’나 ‘스승’을 참칭하는 모습은 지금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큰 뜻과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권하는 『반야심경』의 주문보다, 만능 해결사 혜통의 활약상에 기대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듯하다. 만약 불교라는 종교가 혜통 같은 만능 해결사들의 활약으로만 채워져 있다면 큰 문제이겠지만, 다행히 불교는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수양과 깨달음 그리고 무엇보다 참회와 선업 쌓기를 권고하는 내용이 확고한 자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이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데에도 아득함을 견디게 하여 주는 이야기의 힘이 필요한 듯하다. 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인류가 멸망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서로 “내 집 뒤뜰엔 안 돼” 라고 할 것 같은 전 사회적 분위기, 나도 모르게 기후 위기를 더하게 만들고 있었음을 뒤늦게 발견하는 나날들, 해도 해도 표가 나지 않는 것 같은 기후 위기 대응. 이런 흐름이 뒤섞인 속에서 해결의 시점은 아득히 멀어 보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할수록, 『삼국유사』 「신주」 속 만능 해결사들과 같은 존재가 나오는 이야기들을 만들어서, 그런 이야기에라도 기대야 할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들 또한 기후 위기 대처에 나름대로 합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날 선 문제의식도 좋고, 남다른 파격적이며 선도적인 실천도 좋다. 그러나, 기후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거나, 약간 있으면서도 머뭇거리거나, 좀 안다고 하면서도 실천을 버거워하는 사람 등등, 기후 위기를 대하는 온도 차가 확연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 각각의 마음 속에서 마음의 움직임[정동(情動),affect]이 기후 위기 대처 쪽으로 조금이나마 선회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편들을 모색하는 것도, 지금 충분하지 못한 듯하다.

【『삼국유사』 인용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일연, 신태영)


  1. 『삼국유사』 「신주」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

  2. 『삼국유사』 「신주」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

  3. 용수(龍樹), 『중론(中論)』 「관사제품(觀四諦品)」. 위키백과 ‘연기’에서 재인용.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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