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장] ⑱ 마라도 고양이와 비행기

문화재청과 세계자연유산본부는 멸종위기조류 뿔쇠오리를 사냥한다고 알려진 마라도 고양이 40여 마리를 우리 마을에 있는 유산본부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환경부는 중요 철새도래지가 있는 성산읍 일대에 건설될 제주 제2공항에 대해 ‘조건부 동의’ 의견을 냈다. 과연 마라도 고양이와 제2공항에 굉음을 내며 셀 수 없이 뜨고 내릴 비행기 중 멸종위기 야생조류들의 생존에 더 위협적인 존재는 무엇(누구)일까?

풍경1. 뿔쇠오리와 마라도 고양이

요즘 우리 마을 핫이슈는 섬에서 섬으로 이주(?)해서 세계자연유산본부에 주소가 생긴 ‘마라도 고냉이’들이 아닐까한다. 최근 문화재청과 제주세계유산본부가 마라도에 살던 고양이 마흔 일곱 마리를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 뒷 마당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세 고양이들의 충성스런 집사이자, 마을 곶자왈에 멸종위기조류 생태조사 뿐 아니라 그걸 찍어서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거문오름마을의 산새들”이라는 엽서북까지 판매하고 있는 아마추어 조류 사진가로서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조심히 밝혀 본다.

언뜻 믿기 힘들겠지만 마라도 주민들은 가정집 쥐를 잡기 위해 마라도에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고 한다. 4년 전 새끼를 밴 길냥이 한 마리가 불쌍해서 밥을 주다 졸지에 간택되어 현재는 세 마리 고양이들의 집사가 되었고, 밤새 외출하는 주인님들께서 부지런히 물어와 보은 선물로 문 앞에 던져주는 쥐사체를 아침마다 수습해야 하는 나로서는 마라도에서 전해지고 있는 ‘쥐퇴치용 고양이 입도설‘이 무척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얘들아! 이제 은혜는 그만 갚아라 ㅜ.ㅜ)

마라도는 0.3㎢ 정도의 초소형 섬이지만 먼 바다를 이동하는 철새들이 쉬어가는 중간기착지다. 쥐를 잡기 위해 마라도로 데려온 고양이가 많이 번식하게 되었고, 이 친구들이 쥐뿐만 아니라 멸종위기조류인 뿔쇠오리를 사냥한다고 알려지면서 뿔쇠오리 학살의 주범으로 몰렸다. 논란이 일자 2021년에 동물단체들이 마라도 고양이 120여 마리에 대한 대대적 중성화 사업을 시행했지만 언론과 학계에서는 여전히 멸종위기 조류인 뿔쇠오리가 위험하다며 마라도 고양이에 대한 처리를 요구해왔다. 특히 최근 유명 새탐조 유투버가 논란의 영상을 올리면서 유투버 개인의 선의와 달리, 고양이를 외래종 ‘털바퀴(털달린 바퀴벌레)’라고 혐오하는 사람들까지 가세하게 되었고, 논의되어야 할 사안은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된 모양새다.

여론이 악화되자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과 제주세계유산본부가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고, 올해 3월, 멸종위기 철새들이 마라도에 도래하는 시기를 앞두고 마라도 고양이 40여 마리를 제주도로 데리고 나왔다. 고양이의 생명도 존중해야 한다는 동물단체의 주장도 일리가 있으니 고육지책으로 세계유산본부 뒷편에 보호공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제주세계유산센터 뒤편 120평 부지에 마련된 마라도 고양이 보호 시설(사진=이상영 제공)
제주세계유산센터 뒤편 120평 부지에 마련된 마라도 고양이 보호 시설(사진=이상영 제공)

현재 고양이들은 유산센터 내 120평 부지에 컨테이너 3개로 만든 시설에서 지내고 있으며 동물단체들과 자연유산해설사들이 당번을 정해 보살피고 있다. 거문오름해설사님들은 오름을 안내하고 나서 좀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컨테이너를 그동안 요구했었는데, 이를 모른척하던 세계유산본부가 마라도고양이들에게 컨테이너를 세 개나 내줬다고 ‘사람보다 좋은 팔자’라고들 하신다.

하지만 우리집 냥님들은 아무리 집사들이 따뜻한 집에서 지극정성으로 봉양해도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문을 열어달라고 야옹거린다. 외출 나가서는 약 300미터 떨어진 선인분교까지 가서 동네 아이들을 홀리고 귀가하신다. 고양이들의 습성이 이럴진대 40여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지내기엔 유산본부에 마련된 120평의 공간은 다인실 감옥이나 다름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도 뿔쇠오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논의 끝에 이렇게 기민하게 움직인 문화재청과 세계자연유산본부의 입장을 환영하는 편이다. 고양이 집사로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멸종위기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다니… 이제서야 간판에 걸맞는 본연의 일을 제대로 하려나 보다.

풍경2. 철새 도래지와 제주 제2공항

우리 마을 이슈가 마라도 고양이라면 요즘 제주도의 핫이슈는 또다시 제2공항이다. 2021년 우여곡절 끝에 실시된 제주도민 공론화 조사에서 제2공항 건설반대가 우세했고, 환경부마저 부실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보완하라고 통보했었다. 하지만 일련의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제주도지사 출신 원희룡국토부장관은 자신의 재임 시절에 끈질기게 고집한 제2공항 건설을 확정할 모양이다. 정권이 바뀌자 국립공원 설악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동의한 환경부는 국책기관마저 부정적 의견을 표명한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조건부 동의’라는 폭탄을 다시 제주사회에 던졌다.

제주도 제2공항 예정지 일대 하도리, 오조리, 성산 등에는 해안 철새도래지와 내륙 습지가 곳곳에 포진해있는데 당연히 먼 바다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요 서식처이자 중간기착지다. 0.3㎢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섬인 마라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조류들과 여러 철새들이 이곳에서 머물다 간다.

넓적한 부리로 물을 휘저으며 먹이를 찾고 있는 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 멸종위기1급)와 하늘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힘차게 내리꽂는 물수리(천연기념물 243호, 멸종위기2급) 등 국제보호종 조류들을 너무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올해 3월 초 제주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한 3일만의 모니터링만으로도 제2공항 인근 예정지 주변에서 저어새, 흑두루미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6종 등 41종 1만여 마리의 조류들을 확인했을 정도다.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 쉽게 관찰되는 천연기념물 저어새와 물수리. 2020년 10월 17일 촬영 (사진=이상영 제공)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 쉽게 관찰되는 천연기념물 저어새와 물수리. 2020년 10월 17일 촬영 (사진=이상영 제공)

뿐만아니라 환경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도 제2공항은 현 제주공항보다 조류충돌 위험성이 최대 8배가 높고, 제일 사고가 많은 인천국제공항, 김포공항과 비교해도 조류 충돌 우려가 최대 5배가 높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제안한 보안안이 이 문제에 대응하기에 미흡하고, 근본적으로 공항 입지가 적정한지가 제대로 검토되지 못했다는 우려도 함께 내놓았다.

이쯤 되니 문득 떠오른 질문 하나!

중성화 수술로 더이상 번식조차 할 수 없는 40여마리의 마라도 고양이와 제2공항에 굉음을 내며 셀 수 없이 뜨고 내릴 비행기 중 멸종위기 야생조류들의 생존에 더 위협적인 존재는 과연 무엇(누구)일까?

마라도 고양이와 뿔쇠오리 논란에 의견을 표명하신 모든 분들. 전국의 조류와 관련한 학계, 동물단체, 시민단체, 유투버를 포함한 시민분들의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입장표명을 부탁드린다. 특히 금번 마라도 고양이 이주에 발벗고 나선 문화재청과 세계자연유산본부는 본연의 임무에 걸맞는 논의를 다시 재개하고 이 사태에 책임감 있게 임하길 당부드린다.

참고로 뿔쇠오리 학살의 주범으로 내몰린 마라도 고양이들은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타향살이와 외출 제한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우리들은, 제주도민들은 무엇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제주투데이』 2023년 3월 20일 자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사진저작권 : 이상영)

이상영

2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에서 지리(사회)를 가르치다, 2018년 한라산 중산간 선흘2리로 이주한 초보 제주인. 2019년 초 학부모들과 함께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으로 선출된 후, 2021년 어쩌다 이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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