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마주보기] ③ 그 많던 노랑어리연꽃 누가 다 갉아 먹었나?

새미(솔빈)는 숲정이의 딸이다. 숲정이는 새미의 엄마이다.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답게 가꾸기 위해 시민운동을 하였다. 정성스럽게 ‘선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좌절과 허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지를 잃은 엄마가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딸 새미는 고단한 엄마, ‘숲정이’를 위로하고 ‘엄마’를 바라본다. 이것은 주고받는 “마주보기 이야기 글”이다. 숲정이와 새미는 화포천 노랑어리연꽃을 떠올린다.

새미에게도 고운 그들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솟구치는 봄을 만나면 어찌나 화포천으로 달려오고 싶은지. 마음이 근질근질 딱딱 때 구멍을 못 맞추다 드디어 지금 화포천에 있다.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의 일이지만 사랑에 애써 힘주고 살아가련다. 이 수줍은 연두를 사랑한다. 곧 지나갈 봄색이지만 내 눈에, 내 맘에 꼭꼭 붙잡아 본다.

새봄 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엄마는 화포천1이 그립단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겠니? 사랑이라면 이별 할 수가 없단다. 화포천을 사랑하여 올해도 화포천이다. 마침 우수2 즈음이라 내 사랑, 당신은 촉촉 하더구나.

스무해 전 무렵, 엄마는 화포천과 첫선을 봤단다. 수질오염 정도를 조사했단다. 체로 바닥을 긁어 들어 올려서 물이 빠졌을 때, 체 바닥에 남아 있는 생명체들을 확인했어. 대부분 빨간 깔다구3였단다. 낚시꾼들이 잉어나 붕어4, 배스 등을 잡고 있었고 수질은 나빴단다. 당시, 김해는 이미 골짝마다 공장들이 납작하게 꽉꽉 들어찼었다. 당연한 결과였지. “물이 썩었구나” 실망했어. 그렇지만 엄마의 어렴풋한 어린 시절 배경이 습지인 까닭일까. 저절로 화포천을 다시 찾게 되고 점점 사랑에 빠졌어.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습지 화포천이다.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를 정화하더구나. 아름다움을 키워내고 있었단다.

사진제공 : 숲정이
사진제공 : 숲정이

화포천의 여름을 더욱 사랑했다. 세상이 억새와 갈대가 꽃 피는 가을에 열광할 때, 엄마는 높게 쭉쭉 뻗어 오른 녹색빛 갈대 숲 가운데 한참 서 있기를 무척 좋아했단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온 몸으로 바람을 만나는 갈대. 젖은 마음으로 노래 불렀지. 황홀하여 고개를 젖히면 양버들 사이로 햇살이 파닥파닥거렸어. 새미는 나비잠자리를 알까. 진청색 날개를 가진 잠자리란다. 엄마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비잠자리를 보았지. 빛깔이 어찌나 신비한지. 나비잠자리가 무대 위 발레리나 같이 빙글빙글 춤을 추면, 실잠자리, 물잠자리가 웅덩이에 엉덩이나 발을 살짝살짝 담그며 얌전히 리듬을 맞혔단다. 평화는 잠자리들의 날개짓에서 시작된단다. 동그란 평화가 퍼져나가면 가끔 밀잠자리가 물수제비를 사선으로 그려냈단다. 평화한 화포천의 절정은 노랑어리연꽃 융단이란다. 물 위를 노랗게, 노랗게 뒤덮은 노랑어리연꽃을 만나면, 숨이 딱 멎어 버리지. 아, 아름다워라!

제주 사는 사람이지만, 내 사랑 화포천, 당신이 늘 그리웠지. 드디어 운수 좋은 어느 날, 쏜살같이 화포천으로 달려갔단다. 엄마는 한림 다리부터 한 바퀴 크게 걷는 화포천을 좋아한단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낚시꾼 발자국 흔적 따라 걸었던 옛길이다. 처음에는 자본이 큰 돌들을 깔더니 점차 포장길을 만들더구나. 이번에는 더욱 넓혔더구나. 속살이 파헤쳐지는 화포천은 얼마나 아프겠니? 흐르는 하천 습지인 화포천은 한 갈래가 두 갈래가 되기도 하며 당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흐름이 있지. 그러나 사람이 두 갈래로 갈라진 사이로 징검다리를 놓기도 하며 자연을 방해했지. 둑방 위로 벚꽃을 줄지어 심더구나. 사람의 좁은 판단이 한탄스러웠단다. 하천 습지 둑길이라면 버드나무 정도는 돼야 물길이 평온하지 않겠니. 한순간 유행에 민감하며 습지 둑방에 벚꽃이라니?

하천 사이로 키 큰 양버들이 지그재그로 길쭉길쭉 멋진 곳이 있단다. 둑쪽 양버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넘어져 있더구나. 엄마 가슴이 깜짝 놀랬지. 뿌리가 드러난 것이 태풍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 않겠니. 습지에 사는 키 큰 버드나무 뿌리의 고착상태를 배려하지 않은 포장길 확대는 까닭이 아닐까? 자연은 서로를 꽉 동여매고 있는 실타래란다. 그 실타래를 사람이 공사로 중간중간 끊어버렸으니 뿌리가 땅 위로 벗겨지지. 벌거벗은 나무 뿌리와 서글픈 세상사가 겹쳐지며 엄마 마음이 허둥지둥 해지 더구나. 엄마 눈에 익숙한 나무들이 가지가 꺾이고 상해서 생동감이 없더구나. 풀이 죽어 있더구나. 의욕을 잃은 엄마 같더구나. 거칠게 달겨오는 세상을 두 손바닥으로 되받아 밀어 볼 의지를 잃은 엄마는 뿌리 드러난 버드나무다.

엄마에겐 특별난 버드나무가 있단다. 새미야, 버드나무 옹이 안에 자라던 찔레나무를 기억하니? 아기 때부터 보아온 동무님이지. 기특하게 버드나무와 찔레나무가 상생하며 잘 자라고 있었지. 이번 길에서 청년이 된 찔레나무는 없었단다. 버드나무만 파리하게 슬펐단다. 힘들더라도 째째하게 계산하지 않으며 가슴을 쫙 편 채 서로를 보듬어 안고 있었던 버드나무와 찔레나무는 함께 따뜻했는데, 엄마는 아팠단다. 밭이었던 곳에 방풍림으로 농부가 심었던 줄 선 양버들은 사라졌더구나. 그늘이 좋았었는데 안타까웠다. 억지로 밭을 하천으로 만들고 그 가운데로 사람 길을 디자인한 것은 폭력이다. 나무에 매달린 흉물스러운 사람의 새집들과 새 쉼터에 엄마는 이마가 찌푸려진단다. 새들이 집 지어달라고 했니? 철탑으로 쉼터 만들어 달라고 했니? 새들은 그들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자기 집을 짓고 쉼터를 선택한단다. 자연으로 지내지. 자유로운 새들의 세상에 사람이 개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무지가 아닐까? 무지는 강제되고 폭력이 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배려가 훌륭합니다.” 돋보이고 싶은 사람의 욕망 때문 아닐까. 새가 새 맘으로 사람의 둥지에서 살까? 새는 새 맘으로 새 둥지를 짓는다. 친절하고 훌륭한 사람들아, 새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라! 잘난 체에 새 똥을 갈겨버려라. 화포천에 펼쳐진 편한 사람의 테크길을 따라 걸으며 엄마 마음은 어지럽고 간당간당하였단다.

노무현 밀짚모자 아찌5가 화포천에 와서 쓰레기도 줍고 오리농법으로 농사도 짓고 했단다. 화포천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례면, 상동면의 물길이 모두 모여 합쳐진 하천으로 한림면에서 가장 넓게 흐르는 하천습지란다. 살펴보면 진영, 진례, 상동면 골골마다 작은 공장들이 빽빽하단다. 물이 깨끗하기 어렵지. 하천 발원지, 공장지대의 수질관리부터 개선돼야 근본이 해결 된단다.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봉하 마을 들머리와 둑길 반대편으로 지천으로 널린 공자지대부터 자연 복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끔 근사하게 차려입고 밀짚모자 아찌 이름 팔이 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EM공을 만들어 화포천에 던지며 환호성을 질러댄단다. 악수하며 떠드는 광경은 꼴불견이다. 정치의 인기몰이가 어처구니가 없지. 진영역에 ktx 노선을 만들고 봉하마을 성역화 작업에 몰두하니, 어떻게 철새들이 살 수 있겠어. 진짜 철새는 쫓겨나고 사람철새들이 바글바글 먹이를 쪼아 대지. 대한민국의 사회 갈등을 고스란히 민낯으로 견디고 있는 화포천이다.

사진제공 : 숲정이
사진제공 : 숲정이

2017년 화포천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단다. 올해 1월 31일자 신문에서 ‘육지화로 중병 걸린 김해 화포천습지에 대대적 원형 복원 프로젝트’란 제목을 보았단다. 2028년까지 150억을 들인다구나. 철새 서식지 복원을 위해 물길 정비 작업으로 기존 습지의 물길을 뚫어 오리류, 고니류 등이 월동할 수 있도록 개방 수면을 조성한다더구나. 기존 물길을 막고 밭으로 물길 돌리고 물가에 테크를 놓아 철새들을 방해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류 구간 화포천체육공원이 대표적인 복원지역이라는데, 딸아! 엄마는 정말이지 기가 찬다. 물웅덩이가 아주 큰 습지였던 그곳을 매립하고 축구장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니? 기존시설인 목교와 제방성토의 무분별한 준설로 홍수시 범람우려가 높아져서, 그걸 다시 적절한 높이로 준설 하겠다는 게 웃기지 않니? 습지는 범람이 자연이야. 범람 해야 습지다움이다. 애초에 목교와 제방·성토를 지나치게 한 것이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목교로 하천을 가로지르려는 욕망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천 주변에 앉을 자리 몇 개 놓더니 곧 지붕까지 씌웠지. 이번에 가보니 지붕 씌운 사람 자리를 늘였더구나. 육지화에 돈맛 들이지 말고 하천습지가 스스로 회복되길 인내하며 기다려야지. 습지 안으로 삵이나 수달이 다닐 수 있는 동물 숲길을 조성 한다는구나. 삵이나 수달이 사람 글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을지. 사람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알아서 길을 만들겠지. 인근 개구리산과 봉화산으로 연결되는 숲길 통로도 만든다는구나. 그 산들의 생태는 안전하고 다양할 수 있도록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환삼덩굴, 가시박 등 생태계 교란종을 특별 관리한다니 사람이 최상의 생태교란종이라고 엄마는 확신한다. 사람이 먼저 좀 더 비켜서야지.

얼마 전, 뉴트리아(생태교란종)가 줄기를 갉아먹어 화포천 노랑어리연꽃이 사라졌다는 영상을 보았단다. 뉴트리아가 얼마나 앞니를 놀려야 그 많던 노랑어리연꽃을 모두 갉아 먹을 수 있겠니. 그 많던 노랑어리연꽃을 도대체 누가 다 갉아 먹었을까? 빛깔 고운 노랑어리연꽃 하천 사진 한 장 제대로 간직하지 않은 엄마의 어설픔이 속상하구나. 엄마의 화포천에서 가득한 노랑어리연꽃이 대단하단다. 그 장엄한 노랑빛은 엄마의 세포세포에 언제나 박혀 있지. 우리 새미도 화포천을 추억할까. 기억나니? 한 여름날, 갈대집, 영강사 절집 범종 아래에서 화포천을 내려다보며 바람속에서 놀았잖아. 헝크러진 갈대꽃 사이로 찡얼대는 새미의 투정소리도 엄마는 그립구나. 새미에게도 곱디고운 그들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있는 그대로 고왔던 그들을 새길게.

기억하지. 화포천을 향할 때, 상기된 아름다운 당신 얼굴도 기억하지. 기억 속에 존재하는 노랑어리연꽃은 활짝 핀 모습보다 잎을 살짝 다문 모습이 더 갸륵했어. 청초한 그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아렸다. 만개하지 않아 작고 샛노란 꽃이 순진해 보였거든. 순진한 게 왜 멋지거나 대단하지 않고 안쓰러웠던 걸까?

엄마. 나 요새 딱 순진한 화포천 노랑어린연꽃 같다. 어떤 인생 선배들은 어리고 서툰 사회 초년생을 향해 ‘순진하다’거나 ‘무모하다’는 감상평을 쉽게도 남긴다. 아마 지켜주고 도와주고 싶어 뿜어낸 섣부른 걱정일 테지. 그렇지만 쏟아지는 성급한 평가를 꾸역 삼켜내는 건 무척 고단하다. 나름 막 대들어 보는데,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눈으로만 봐 달라고 방어해 보는데, 연결되고 환대받고 싶어 진심을 다해보는데, 역부족이다. 타인에게 스스로를 해명하고 증명하려는 노력 자체가 상처더라.

사진제공 : 숲정이
사진제공 : 숲정이

감히 내 마음대로 그 아이를 음미했다. 그냥 반가웠으면 됐었다. 괜히 안쓰러워했나 싶다. 아무래도 사랑이 부족했다. 이미 충만한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환대 하지 못한 찰나가 후회된다.

당신은 그이를 마주친 곧장 눈과 마음에 꼭꼭 붙잡았네. 사라졌나 싶지만 또다시 솟구치는 봄처럼 꾸준한 네 사랑이 참 부럽다. 사랑은 언제나 뭔지 잘 모르겠던데. 이별할 수 없는 게 사랑이가. 다 큰 줄 알고 엄마에게 대들 때가 생각난다. “가서나야, 그렇다고 해서 니가 엄마 없이 살 수 있나?” 난 할 말을 잃었지. 이별할 수 없는 우리는 화포천 같은 사랑을 하네.

요즘 화포천은 아프더나. 나도 요새 마음 아픈데. 인간이 애정도 없이 툭툭 건드렸더나. 다른 인간들도 나한테 막 그러던데. 엄마 사랑들이 고통받아서 우짜노. 사랑만 할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다. 근데 녹색을 품은 우리는 그러지 말자. 애써 힘주며 사랑하자. 엄마가 화포천을 지키려는 의지처럼 나도 나를 지키려 발버둥치는 요즘이다. 당신을 보고 배우며 견뎌볼게. 있는 그대로 고왔던 그들을 새길게. 그래서 이미 충만한 이 시절 순진함과 무모함을 맘껏 누려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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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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