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선물] ③ 비어 있는 방에 봄이 들었다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새로운 생명이 틈새에 자리 잡는다. 실외기 사이에 둥지를 튼 물까치도 그 중 하나이다. 부재는 존재의 자리가 되고, 새 존재와의 마주침은 또 다음번 만남을 기대하게 한다.

완주의 봄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산마다 연둣빛이 번져갈 때, 우리 집에서 가장 분주한 곳은 뜻밖에도 재영이 방 에어컨 실외기 앞이다. 매년 이맘때면 하늘색 날개를 가진 물까치 부부가 그곳에 둥지를 튼다.

창살 너머로 들여다본 실외기 뒤편에는 작은 둥지가 자리하고 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이끼, 그리고 어디선가 물어온 부드러운 털이 층층이 얽혀 있다. 아직 알도, 새끼도 없지만 그 비어 있는 둥지는 곧 시작될 생명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비어 있음으로써 가득 찬 공간. 노자는 말했다, 방은 벽이 아니라 비어 있는 안쪽이 쓸모라고. 둥지도 그렇다. 아직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창살 너머로 들여다본 실외기 뒤편에는 작은 둥지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장지후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차가운 기계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품는 요람이 된다. 그 단순한 사실이 이 계절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우리는 언제나 사물을 용도로 이해한다. 실외기는 냉매를 순환시키는 장치다. 그런데 물까치는 그것을 다르게 읽었다. 격자망은 천적을 막아주는 벽이고, 기계의 온기는 알을 품기에 적당한 온도이며, 사람이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그 어중간한 높이는 완벽한 은신처다. 같은 사물을 두고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본다.

물까치는 영리한 새다. 그리고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새다. 일부일처로 이루어진 가족들이 여럿 모여 가족군을 이루고, 특정 범위를 가족군 전체가 함께 지키며 살아간다. 새끼가 태어나면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공동육아를 한다. 부모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새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다. 번식 성공률은 80%가 넘는데,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무리 생활을 통해 포식자의 위협에 함께 대처하는 방식에서 찾는다.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협동번식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 단어가 조금 차갑다고 느낀다. 그것은 전략이기 이전에 관계다. 새끼의 울음소리에 반응하는 것, 위험 앞에서 먼저 나서는 것, 자신의 먹이를 다른 생명의 입에 넣는 것. 그 모든 행위 안에 오래된 신뢰가 담겨 있다. 둥지를 다듬는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본능인지 선택인지 나는 점점 구분할 수 없어진다.

둥지가 완성된 뒤로 나의 여름은 조금 달라진다. 실외기 진동이 그들을 떠나게 할까 염려되어 에어컨을 쉽게 켜지 못한다. 불편하지만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변화다. 아니, 불편하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이 제약이 나를 다른 방식으로 살게 한다. 더 천천히, 더 땀을 흘리며, 창문을 열고 완주의 바람에 몸을 맡기게 한다. 물까치가 내 생활 방식을 바꾸었다. 작은 새가, 아무 말 없이.

다행히 이 방의 주인인 아들은 지금 군 복무 중이다. 재영이가 없는 방은 한동안 그냥 비어 있었다. 문을 열면 아이의 체취가 옅게 남아 있고,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이 그대로였다. 나는 그 방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비어 있는 공간은 때로 너무 많은 말을 한다.

그런데 물까치가 왔다.

비어 있는 방은 이제 물까치에게 외부의 위협이 닿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아들이 나라를 지키는 동안, 이 작은 공간에서는 또 다른 생명이 지켜지고 있다. 누군가의 부재가 누군가에게는 안온한 정착이 되는 풍경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슬픔과 기쁨이 같은 자리를 쓰고 있다는 것을, 빈자리가 곧 채워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이 작은 둥지가 조용히 알려준다.

누군가의 부재가 누군가에게는 안온한 정착이 되는 풍경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사진 제공 : 장지후

비무장지대.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실제 비무장지대(DMZ)는 인간이 접근하지 않는 수십 년 동안 한반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생태계가 되었다. 총과 철조망이 만들어낸 공백 안에서, 두루미가 날고 수달이 헤엄친다. 인간의 부재가 자연에게는 귀환이었다. 재영이 방도 그렇다. 아들이 비운 자리에 봄이 들어왔다. 전쟁과 복무와 이별이 만들어낸 빈 공간에, 새 생명이 집을 지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언제나 이렇게 작은 곳에도 깃든다.

조용한 집 안에 물까치의 날갯짓이 드나든다. 아직은 고요한 둥지지만 머지않아 그 안에서 새로운 소리가 시작될 것이다. 재영이가 돌아오기 전에 새끼들은 이미 하늘로 떠날 것이다. 비좁은 실외기 위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은 완주의 하늘을 가로지르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아들도 돌아올 것이다. 둥지는 다시 비워지고, 방은 다시 채워질 것이다.

나는 그 순서를 물까치에게 배웠다. 비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비어 있는 동안 다른 생명을 들이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시작하는 것. 봄은 매년 온다. 완주의 연둣빛은 매년 번진다. 그리고 물까치는, 아마 내년에도 재영이 방 실외기를 기억하고 돌아올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장지후

완주 경천면 구재마을에서 태어나 신흥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고향의 자연이 준 감각을 삶의 이정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완주자연지킴이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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