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댈 곳은 자연성 회복

사람의 모든 것은 어릴 때 추억과 기억이 지배한다. 내 인생의 대부분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얻는 자연 속 경험이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 스트레스, 코로나19로 인한 후유증은 우리에게 있던 자연성과 원시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잠시 내려둔 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올봄에 냉이를 캐러 한 5번 이상을 나간 것 같다. 이제 87살이나 된 어머니와 같이 나간 것이 한 3번, 혼자 나간 것도 2번이나 된다. 겨울을 지난 냉이의 강한 향취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냉이 뿌리가 눈을 밝게 한다는 전승된 약효 때문이다.

올해 가뭄이 심해서 그런지 겨울 늦자락 잎끝은 말라 있었지만, 냉이 뿌리는 아주 깊고 실했다. 로제트형 잎은 땅과 풀섶에 묻혀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당기면 튼실하고 긴 뿌리가 뽑혀 올라오는 재미가 쏠쏠했다. 막내와 냉이 캐러 간 이야기를 노인정에 가서 했더니 부러워하며 ‘자기도 데리고 가 달라’고 아우성이었다고 어머니는 전했다. 당신이 보기에 노인 대부분이 관절이 부실해 냉이를 캐러 같이 갈 수 없는 상태라고. 이제 무릎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햇살을 맞으며 봄나물 뜯던 추억처럼 그리운 것이 없을 것이다.

냉이는 한 포기가 자라 씨앗이 맺히면 근방이 모두 밭이 된다. 사진제공 : 이동고
냉이는 한 포기가 자라 씨앗이 맺히면 근방이 모두 밭이 된다. 사진제공 : 이동고

냉이는 한 번 캐러 가면 반 자루 이상은 캤다. 식물원을 다녔고, 산골 생활을 해 본지라 냉이가 자라는 땅의 형세와 환경을 알기 때문이다. 식물마다 살아가는 꼴, 즉 생태(生態)가 있다. 식물은 우연히 날아와 씨를 틔운 뒤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맞춰 생활한다. 어쩌면 발아했다는 것 자체가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인지 모른다. 자라면서도 조건이 맞지 않은 것은 사멸하기도 한다. 식물의 생태를 안다는 것은 바로 그 식물이 살아가는 조건을 잘 안다는 것이다. 냉이는 양지바르고 다른 잡초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새로운 개척지에서 많이 나며, 배수가 잘되는 거름기가 있는 땅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봄날이면 나물을 하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웠다. 낙동강 변에 살 때는 갈대숲에서 도둑게도 잡아 게장도 담갔다. 당신은 어디서든 먹거리를 만들었다. 당신도 하지 못한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자연 속에서 엄청난 지혜와 호기심을 일깨워주었다. 어머니나 나나 단순히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손으로 만지고 뜯고 냄새 맡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원시성이 강한 체험형 인간이라 여긴다.

어머니는 봄날이면 직접 재료를 장만해 보약도 달여 드신다. 이른 봄에는 고삼 뿌리를, 한여름이면 익모초를 달여 드시는 것을 습관으로 하는지라 지금도 건강하시다. 어떤 곳에 가야 고삼과 익모초가 많은지 잘 안다. 둘 다 자연을 좋아하니 나물을 캐러 가면 잘 통하는 친구다. 식물은 수확하는 재미(인간 DNA 속 채집본능)도 있고 별의별 것이 다 있어 끊임없이 샘솟는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맞벌이 부모 슬하에 방학이면, 난 시골 고모할머니 집에 자주 맡겨졌다. 도시에서 살고 학교에 다녔지만, 방학은 언제나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이었다. 내 정서는 온통 ‘자연 속 생활’로부터 온 것이었다. 동네 형아들과 자주 개울둑을 막고 물을 퍼내서 만나는 물속 생물들, 퍼덕이는 물고기를 잡아 본 터라 개울물을 만나면 저 속에 무엇이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런 정서는 울산으로 발령받아 내려갔을 때 터져 나왔다.

심각하게 썩어가던 태화강에서 민물고기 조사를 한 것. 이를 매개로 태화강 살리기를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서울 직장생활에서 눌러왔던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태화강을 누비면서 솟구쳤고 7년째 다니는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식물원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사람의 모든 것은 어릴 때 추억과 기억이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선험기억으로 새긴 것이 전 인생에서 무의식적인 모태의식을 결정하고 이후에도 계속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갈대꽃이 피고 수가 익어갈 때 꺾어 두면 일 년 내내 하얀 갈대를 볼 수 있다. 사진제공 : 이동고
갈대꽃이 피고 수가 익어갈 때 꺾어 두면 일 년 내내 하얀 갈대를 볼 수 있다. 사진제공 : 이동고

옛날 사람들이야 식물이면 나물이고 먹거리이고 식물에 대한 지식과 이용법은 일반 상식에 가까웠을 것이다. 주 곡물과 작물은 있어도 흉년이 들면 식량을 대처할 다른 식물을 찾아야 했다. 산에 자라는 다양한 풀꽃들이나 나무순, 잡초로 자라는 강아지풀씨도 구황재료가 되었다. 먹을 만하면 닥치는 대로 거두는 방식이라 다양한 자생식물에 대한 정보가 중요했다. 어머니처럼 옛 어른들은 이런 방대한 지혜와 생태순환적 의식을 가졌지만, 지금은 잊혀지고 있다. 덩달아 우리 일상 공간에도 풍요로웠던 자생 풀꽃과 나무들을 심지 않는다. 도시민에게 자연의 대체물로 제공하는 조경문화, 정원문화도 생태순환적이 아니라 인공적인 재료를 채우기 바쁘고 이용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인 경우가 많다. 많은 예산을 쓰고도 쉴 그늘도 하나 없고 자연스러워 편한 것이 아닌 ‘모시는 조경’이 대부분이다.

현대인은 풍요는 얻었지만, 건강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 등은 높아지고 있다. 집단 감염병 장기화로 많은 이들이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성과 원시성을 일깨워 회복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거창하게 지구환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먼저 우리 몸과 마음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앞으로 쓰는 글들이 우리 몸과 마음속 원시성, 생명성, 생태문화성 등을 일깨우며, 주변 일상 공간을 어떻게 하면 치유와 회복을 위한 친자연적인 공간으로 바꿔나갈 것인지 같이 탐색해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이동고

물을 떠나 살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자연을 사랑한다. 특히 식물을 관찰하고 키우기를 좋아한다. 식물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식물에게 배우는 인문학』을 최근 발간했다. 식물을 매개로 한 자연성 회복과 생태순환적인 성숙한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도시에서 생태순환 가능한 삶을 모색하고 자생식물로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조성, 식물의 가치와 존귀함을 알리는 데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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