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 아시나요? 당신이 나무를 베어버린다면 영영 알 수 없지요. 우리는 산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해요. 우리는 바람의 색깔로 그림을 그려야 해요” 아메리카 원주민을 상대로 문명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자행되었던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는) 약탈과 자연파괴에 맞선 사랑이야기를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으로 표현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의 주제가이자 1995년 아카데미 영화상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 상을 받은 “Colors of the Wind” 가사의 일부입니다.

사진 제공 : 강세기
노래처럼 바람의 색깔로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물감이 가장 많이 사용될까요? 노랑? 빨강? 파랑? 아마도 그건 그리는 사람이 담겨 있는 시간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꽝꽝 얼어붙은 호수 위로 쌓인 눈을 흩뜨리며 휘익~ 몰아치는 겨울바람은 날 선 칼날 같은 차가운 푸른빛이 도는 흰색. 아직 마른 풀과 텅 빈 나뭇가지 사이로 푸석한 흙길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너머로 어질어질 개나리 흔들며 살랑~ 다가오는 봄바람은 뽀송한 병아리 같은 따뜻한 노란색. 뜨거운 태양 아래 빽빽하게 들어찬 축축한 나뭇잎을 흔들며 귀 따가운 매미소리를 뚫고 쏴아~ 불어오는 여름바람은 파도 일렁이는 깊은 동해바다 같은 시원한 검푸른 녹색. 어쩌면 가을바람은 가장 많은 물감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온 산을 울긋불긋 단풍들이며 불어오는 바람을 그려내려면 말입니다.

가을이 되면 왜 단풍이 들까요? 이맘때가 되면 여러 매체들을 통해 단풍이 드는 이유가 소개됩니다. 찬바람이 불면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하고, 그 과정에서 초록색을 내는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카로틴이나 크산토필과 같은 색소들이 마침내 자기 색을 드러내 초록색이 아닌 여러 색깔을 내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단풍이 ‘왜’ 드는지가 아닌 ‘어떻게’ 드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꽃이 향기로운 이유에 대해 “식물이 다양한 화학 합성물을 만들어 꽃을 통해 방출하기 때문”이라 답하면 이것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한 것입니다. 반면 “식물이 번식을 목적으로 꽃의 수정을 돕는 곤충이나 새, 작은 동물들을 불러들이기 위해”라고 답하면 이는 ‘왜’라는 질문에 답한 것입니다. 사실 요즘 세상에 ‘왜’를 묻는 질문은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목적과 의미, 본질을 궁금해 하기보다는 방편과 요령을 묻는 ‘노하우’의 답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 ‘어떻게’ 성공할 수 있나, 돈을 벌 수 있나,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나에 관심이 있을 뿐 ‘왜’ 성공해야 하는지, 돈을 벌어야 하는지,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는지는 묻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세상 얘기는 그만하고 다시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단풍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모든 것을 비워야 하는 마당에 나무는 곧 떨어뜨릴 잎에 ‘왜’ 단풍색을 들이는 수고를 할까요?

사진 제공 : 강세기
“단풍잎의 색소는 매우 아름답고 몹시 선명하지만 우리가 아는 바로는 초록잎의 필수적인 화학 반응에 따른 최종 산물이자 부산물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생물학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오랫동안의 생각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생각은 여전히 ’왜‘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책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기적 유전자’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네 명의 생물학자 중 한 명이자 다윈 이후 가장 뛰어난 생물학자라고 칭송받았던 영국의 윌리엄 해밀턴(1936-2000)은 “가을 단풍색은 나무가 보내는 경계 신호”라는 연구결과로 ‘왜’ 단풍이 드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합니다. 해밀턴에 따르면 건강한 나무일수록 선명한 색을 만드는 단풍 색소를 풍성하게 가질 수 있고, 건강한 나무들은 화려하고 뚜렷한 단풍색을 통해 해충들에게 “내가 이토록 튼튼하니 나한테 알을 낳아봐야 살아남기 힘들 거야. 딴 나무 찾아봐“라고 경계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합니다. 튼튼하고 건강한 나무들이 조화롭고 화려한 가을빛을 만든다는 이토록 아름다운 연구결과라니요.

왜 단풍이 드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나니 가을이 돼서도 선명하고 뚜렷한 단풍이 들지 못한 채 시들어 떨어져 버리는 잎들을 보며 나무 앞에서 ‘요즘 단풍놀이 재미가 예전 같지 않네, 여기가 저기 단풍색보다 못하네’라며 투덜거렸던 일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작년과 올해처럼 단풍이 늦어지면 그만큼 나무는 겨울을 준비할 시간이 줄어들어 어렵고 힘들게 추운 계절을 지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뜨거운 여름으로 아름다운 가을 단풍색도 잃어버리고 나무들의 가을도, 겨울도, 봄도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구나‘하는 생각으로 나무와 자연에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단풍을 잃어버리면 가을바람은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할까요? 가을에 해충들에게 나 튼튼하다는 경계 신호를 보내지 못한 나무들이 힘겹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희망의 봄을 맞이해서도 건강한 새 잎과 새 꽃을 피워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바람의 색깔을 볼 수 있을까요? 길고 뜨거웠던 여름 끝에 만난 이 짧은 가을, 애써 잎의 색을 바꾸고 있는 나무들에게 응원의 말 한마디 건네면 좋겠습니다. “더운 여름 수고했어. 덕분에 바람의 색깔을 볼 수 있어 고마웠어. 그리고 건강하게 가을과 겨울 보내. 우리 예전처럼 좋은 계절을 맞을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할게.”
■참고자료
* 팀 버케드, 소슬기 옮김, 가장 완벽한 시작, MID, 2017, pp145-146.
** Hamilton, W.D. and Brown, S.P. (2001). Autumn tree colours as a handicap signal. Proc. R. Soc. B. 268, 1489-1493. http://doi.org/10.1098/rspb.2001.1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