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산책] ④ 눈 덮인 어린 소나무의 꿈은…

우리가 처한 현실은 참담하고 어둡지만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빛을 비추어 줍니다. 이 빛으로 나무와 풀은 물과 공기를 빚어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지구의 나머지 모든 생명을 먹이고 숨쉴 수 있게 해줍니다. 빛은 생명이요 꿈이요 희망입니다. 이 어둠의 시기, 눈에 덮인 채 척박한 바위 틈에 뿌리내린 어린 소나무는 어떤 꿈을 꿀까요?

참담하다는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나날입니다.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야할 국가가 오히려 국민을 해치려 들고 국민을 배신한 정치에 볼모잡힌 우리의 불안하고 피곤한 삶은 파탄에 이를 지경입니다. 이 와중에 대형 참사까지 일어났으니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 나라 국민하기 참 힘듭니다.

새해 새달 새날이라는 시간의 구분이란 것은 우리의 의례에 불과할 뿐 정작 시간은 어디에도 얽매임없이 흐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분명한 것이 있으니 달력과 상관없이 날마다 태양은 새롭게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사진제공 : 강세기

우리의 무참하고 어두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 2025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 새 달력을 넘기며 지난 묵은 것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새롭고 산뜻하게 새 출발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실 새해라고 시간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의 의례에 불과할 뿐이기에 새해를 맞이해 갖는 희망이라는 것에 그리 큰 기대가 없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새해가 존재합니다. 새해 첫날이라는 1월 1일은 많은 서양국가가 따르는 그레고리력에 의한 것이고, 우리 전통은 음력에 따라 설날을 새해 첫날로 삼습니다. 농사력인 24절기에 따르면 밤의 길이가 가장 길어졌다가 태양의 기운이 다시 회복되는 동지를 새해의 첫날로 삼기도 하고 봄의 시작인 입춘을 새해의 첫날로 보기도 합니다. 페르시아 문화도 입춘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아 이란은 이 날을 새해 첫날인 노루즈(Nowruz)로 기념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대교인들은 9~10월쯤 히브리력에 따른 새해 첫날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를 맞이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이슬람 국가들은 헤지라(Hijri)력에 따라 매년 달라지는 새해를 맞이합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10~11월 즈음에 있는 날을 디왈리(Diwali)라 하여 빛의 축제를 열며 새해 첫날로 삼고 태국은 4월에 송크란(Songkran)이라는 물의 축제로 새해를 기념합니다. 기왕에 나열한 거 아프리카를 뺄 수 없지요. 에티오피아는 자신들의 달력에 따라 9월 11일을 엔쿠타타시(Enkutatash)라는 새해 첫날로 맞이합니다.

다시 말해 새해 새달 새날이라는 시간의 구분이란 것은 우리의 의례에 불과할 뿐 정작 시간은 어디에도 얽매임없이 흐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분명한 것이 있으니 달력과 상관없이 날마다 태양은 새롭게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영양물질을 만들어 살아감으로써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데 다른 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영양생물이 됩니다. 사진제공 : 강세기

박노해 시인은 “그 겨울의 시”에서 문풍지 우는 추운 겨울밤 이불 속에서 듣는 할머니의 혼잣말이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이라 했습니다. 어린 시인은 할머니 품에 안겨 ‘오늘 밤 장터들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할머니의 중얼거림과 ‘찬바람아 잠들어라 /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혼잣말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합니다.

어두운 그늘 아래 냉기 속에 떨어 본 적이 있다면, 아픔과 두려움 속에서 밤을 지새워 본 적이 있다면,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의 마음이 되어 본 적이 있다면 할머니의 ‘해야 해야 어서 떠라’는 혼잣말이 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인지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추위와 어둠의 끝에서 맞이하는 아침 햇살은 찬란한 구원이요 따뜻한 은혜의 빛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나무와 풀에게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을 받은 식물들은 땅에서 끌어올린 물과 공기에서 얻은 이산화탄소를 버무려 당분을 만듭니다. 오로지 빛, 물, 이산화탄소만으로 영양분을 만드는 이 마법을 광합성이라고 합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영양물질을 만들어 살아감으로써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데 다른 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영양생물이 됩니다. 우리를 포함한 나머지들은 식물이 만들어 놓은 영양물질을 먹고 광합성의 부산물로 나온 산소를 마시며 다른 생명을 잡아먹음으로써 목숨을 이어가는 종속영양생물들입니다. 결국 빛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깊은 어두움에 갇혀 있습니다. 상식이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을 가로막는 오래된 어두움 때문에 방향을 잃은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없이 노래로 불렀고 실제로 그러함을 지켜보았고 또다시 그렇게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주는 말,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믿습니다. 어두움을 이기는 이 빛은 우리를 보다 나은 삶으로, 보다 나은 사회로, 보다 나은 국가로 이끌어 갈 정의와 공의의 빛, 사랑과 자비의 빛, 꿈과 희망의 빛입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둡고 차가울수록 우리는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빛을 품어야 합니다.

추위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나무는 당당히 푸른 잎을 펼치고 자기의 꿈을 들려줍니다. 사진제공 : 강세기

산에서 하필이면 척박한 바위 틈에 뿌리내려 힘들게 자라나는 어린 소나무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 멀리 산이 아니라 도심 속 작은 공원이나 화단에서라도 콘크리트 바닥 가운데 겨우 얻은 좁고 메마른 땅에 뿌리내린 채 어렵게 살아가는 어린 소나무를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혹독한 겨울을 맞아 차가운 눈까지 뒤집어 쓴 그 어린 소나무의 꿈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눈 덮인 어린 소나무의 꿈은 따뜻한 봄이 아니라 언제라도 푸르른 것이라 합니다.1 아직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 깊은 어두움 속에서 맞이한 새해이지만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다시금 우리의 꿈을 품어 봅니다. 추위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푸른 잎을 펼치고 자기의 꿈을 들려준 어린 소나무에게도 응원의 말을 건네 봅니다. “고마워. 이제 나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다 높은 곳에 희망을 품고, 보다 깊이, 보다 넓게 주변 이웃들과 뭇 생명들을 살피며 살게.”


  1. 좋은날 풍경이 노래한 ‘어린 소나무의 꿈’의 가사. “나의 꿈은 나의 꿈은 봄이 아니에요 나의 꿈은 나의 꿈은 늘 푸르른 것 푸르 푸르 푸르름 늘 푸르름”

강세기

빨리 이루고 많이 누리기 위해 무겁게 힘주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천천히 조금씩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풀과 나무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숲과 산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댓글 4

  1. “어두운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되게하소서” 평화의 기도가 생각나는 글 고맙습니다.

  2. 새해 벽두, 새날의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보며 어두운 날들일수록 빛을 품어야한다는 것을ᆢ어린 소나무의 꿈을 되새겨보는 속 깊고 넓은 자연통찰의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화이팅요~!!!^^

    1.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꿈도 펼칠수 있는 소나무로 성장하길 바래봅니다~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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