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가 성공하려면

몇 년 전부터 한국사회에 커먼즈(commons) 개념이 회자되면서 곳곳에서 공유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과 실천들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지역의 커먼즈 사례들을 살펴보고, 커먼즈가 성공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본다.

한국에서 몇 년 전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한 커먼즈(commons) 개념은 공유재, 공유자원, 공동자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전에 커먼즈는 하딘(Garret Hardin)의 ‘공유지의 비극’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이론에 의하면, 공유지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소를 더 많이 몰고 와 먹일수록 이익이 되므로 모두 경쟁적으로 소를 방목하게 되고 그 결과 방목지가 황폐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 ‘사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오스트롬(Eliner Ostrom)은 공유지의 비극이 벌어지지 않는 커먼즈를 연구하면서, 공유지와 자원이 공동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많은 사례를 찾아냈다. 그에 의하면 하딘은 사람들의 이기심에만 집중하여 공동의 가치, 관행, 규범을 통해 지속되는 커먼즈를 도외시했다. 현재 커먼즈는 토지, 물, 공기, 지하자원뿐 아니라, 문화, 언어, 플랫폼 등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커먼즈의 실험과 실천은 도시에서도 발견된다. 서울의 성공적 커먼즈 사례는 대체로 쓰레기터 등 문제가 되는 공간을 바꿀 필요성에서 시작되었다. 은평구 산새마을은 공동 텃밭으로 유명한데, 그 시작은 봉산 등산로 입구의 쓰레기 더미였다. 본래 축사터였던 그 곳은 쓰레기가 쌓여가면서 악취가 진동을 하고 벌레가 들끓었는데 주민들이 모여서 같이 쓰레기를 치웠고 그곳을 텃밭으로 만들었다. 텃밭 농사는 주민들이 서로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가 되도록 만들었다. 또한 현재 도심에서 농촌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도시농부 학교인 초록학교가 세워져 운영되고 있다.

삶터가꾸기를 함께하는 친밀한 마을 공동체

커먼즈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지역 주민의 일상과 밀착되어야 한다. 보통사람들과 그들의 강아지들과 길고양이들과 고양이들을 돌보는 주민들이 오고가는 장소 자체가 커먼즈다. by Daniel Funes Fuentes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TyLw3IQALMs
커먼즈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지역 주민의 일상과 밀착되어야 한다. 보통사람들과 그들의 강아지들과 길고양이들과 고양이들을 돌보는 주민들이 오고가는 장소 자체가 커먼즈다.
사진 출처 : Daniel Funes Fuentes

은평구 갈현 1동 사례도 유사한 경우이다. 마을에 ‘갈곡리 공원’이 있었는데 이곳은 재활용쓰레기를 보관하고 분리하는 장소로도 쓰여 ‘쓰레기놀이터’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곳도 냄새가 심하고 벌레가 생겼으며, 아이들은 놀이시설 사이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놀아야 했다. 못, 유리 등 각종 폐기물 조각이 곳곳에 있어 위험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열린사회 은평시민회’라는 시민단체가 ‘삶터가꾸기’ 사업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마을주민들과 만나게 되어 공원을 복원하는 문제를 같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갈곡리 공원 제모습찾기 주민모임’이 결성되었고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의논하며 구청과 접촉하여 쓰레기장을 옮기기로 합의했다. 공원꾸미기에는 구의 지원과 함께 주민들이 참여했다. 아이들도 화단가꾸기 등을 통해 동참했다. 그러면서 마을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정기적 모임을 갖게 되었고 마을축제, 영화제, 화단꾸미기 등의 행사를 진행하며 친밀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다.

동작구 상도동 사례는 엄마들의 독서모임에서 에너지 마을까지 이룬 경우이다. 마을문고를 자주 찾던 주민 4명이 책 읽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 모임을 시작으로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이 설립된다. 시민사회단체인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와 마을주민들의 모금으로 성사된 이 계획은, 처음에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트 점장이 10만원, 한 할머니가 칠순잔치 한복 비용으로 쓸 100만원, 약사가 손님들에게 기부를 받아 모은 돈 등이 모여 도서관이 세워졌다. 그러던 중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터지자 주민들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녹색연합의 도움으로 워크숍을 진행하여 이 문제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에너지를 10% 줄이면 원전 하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성대골 절전소’를 만들어 절약을 통해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에너지자립마을을 목표로 하게 된다. 산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땔감으로 사용하는데, 마을 아이들은 어디에 땔감이 많은지, 또한 땔감으로 쓸 수 있는 나뭇가지는 어느 것인지 금방 알아낸다. 이러한 에너지 자립 활동이 수입으로도 연결되었다. 이 마을에서 양성된 에너지 전문가들이 다른 지역의 각 학교에 에너지 교사로 파견되어 강의를 하고 강사료를 받고 있다. 또한 마을이 유명해져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찾아와 식당도 이용하고 커피도 마시니 지역 경제도 좋아졌다. 2018년에는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이 출범하여, 여러 곳의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모아 파는 사업을 운영하는데, 발전 수익을 지역 주민들과 나누는 이익공유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활동가들이 만든 ‘특별한 장소’의 한계

그러나 이 사례들이 커먼즈와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지는 않는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사례는 ‘경의선공유지’이다. 마포구 공덕역 부근의 빈터인 경의선공유지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2013년 3월부터 2015년 말까지 지역주민들이 한시적으로 사용하도록 마포구청에서 임시사용 승인을 한 곳이다. 이에 마포구청은 시민협동단체 ‘늘장’에 부지사용을 허가하였고, 이곳에서 시민시장이 열리는 등 청년, 예술가들이 공터를 사용했다. 그런데 사용기간이 만료되자 늘장은 ‘경의선공유지 시민행동’으로 단체명을 바꾸고 부지를 점거하여 활동을 지속했다. 이후 도시재개발사업에서 내몰린 상인들, 세입자들과 새로운 실험을 해보려는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체들 간에 공간 이용에 대한 권리 주장, 관리와 의무의 소홀 등으로 갈등이 일어났다. 이곳에서는 수익을 내려 하거나 주거지로 삼는 집단, 다양한 실험의 장소로 쓰려는 집단 등 이질성이 존재했는데 이들 간의 협력과 조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또한 시설공단측은 계약조건 위반을 이유로 철거를 강력히 요구했고 지역주민들도 불만을 나타내어 결국 이들은 철수하게 된다.

앞서 은평구나 동작구 사례는 공동체나 마을운동으로 이야기되지 커먼즈로 불리지는 않았지만 성공한 경우이고, 커먼즈 활동으로 주목을 받은 경의선공유지 사례는 실패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일단 시작부터 다르다. 앞의 세 사례들은 그 지역 주민들의 필요와 의지에서 시작되었고 경의선공유지 사례는 관의 허가에서 출발하여 해당 지역 주민들과 무관하게 시작된 경우이다. 공유지를 점유한 주체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유동적인 사람들이었고 이용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구성원의 자격과, 구성원간 공유된 규칙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실패의 원인이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공유지를 사용하면서 강한 소유의식을 보이는 등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이 만드는 쑥덕민주주의

이를 볼 때 커먼즈가 성공하려면 우선 무엇보다 지역 주민의 일상과 밀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인보우(Peter Linebaugh)는 거리 등 일상의 공간을 공적 영역으로 보며, 세탁소, 상점, 구애하는 곳, 놀이터, 뷰티살롱, 주부들을 위한 야외휴게소, 보육원, 양육원, 고아원, 구빈원 등 이웃공동체의 사회적 서비스들에 주목한다. 셋방과 거리 사이의 비상탈출구, 현관 입구의 계단, 보도 등 중간적 단계의 건축적 요소도 커먼즈에 속한다. 그에 의하면 보도는 프라이버시를 결합하며 낯선 이들을 자산으로 만드는 곳으로, ‘비공식적 소통의 포도덩굴이 자라는 곳’, ‘평판, 잡담, 인정, 불인정, 승인의 망이 있는 곳으로 둔함과 야만을 걸러낸다.’

이렇게 보면 ‘활동가들의 특별한 장소’였던 경의선공유지가 아니라, 보통사람들과 그들의 강아지들과 길고양이들과 고양이들을 돌보는 주민들이 오고가는 경의선 숲길 자체가 커먼즈다. 또한 산책하던 노부부가 쉬어가는 숲길 벤치, 《응답하라 1988》에 나올 법한 아주머니들 서넛이 늘 앉아 있는 ‘벙글세탁소’ 앞 평상이 커먼즈다. 이런 곳에서의 평판, 잡담, 인정, 불인정, 승인이 여론을 만들고 퍼뜨리고 에너지를 키운다. 이미 오래전 옛날부터 외국인들이 보기에 쑥덕거림과 모의 꾸미기 재능이 뛰어났던 조선의 백성들도, 담으로 이어진 좁은 골목, 거리와 접한 공간인 행랑. 일하며 잡담하기 좋은 우물가 등에서 온갖 소식들을 접하고 전하고 토론했다. 이렇게 하여 서양의 숙의민주주의에 버금가는 우리식 쑥덕민주주의가 자라났다.

라인보우는, 만델라의 무계급사회 지향이 맑스주의 책과 초기 아프리카 사회의 구조를 보고 생겨난 것임을 지적한다. 그 당시 토지와 주된 생산수단은 부족에 속해 있었고 빈부의 차이와 착취가 없었다. 맑스도 러시아의 전통적 마을공동체인 미르 공동체가 코뮤니즘적 사회변형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커먼즈란 용어가, 여러 가지 번역어보다 그 자체로 쓰이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것을 정확히 번역할 우리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개념의 의미는 그 자체로 정말 우리에게 찰떡같이 맞는 것이기는 한 걸까. 정전(井田), 두레 등 우리는 우리 식의 독특한 공유적 관념과 실천의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커먼즈 개념과 이론이 주는 신선한 통찰은 받아들이되, 그것과 더불어 우리의 고유한 공유적 전통을 찾아 우리에게 잘 맞는 모델을 모색할 때이다.

이나미

한국의 정치이념과 정치사를 주로 연구해왔다. 정의가 구현되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해법은 무엇인지가 주요 관심사이다.

댓글 3

  1. 커머너는 계속 보충되고 떠나 가며 흐르는 물처럼 항상 신선하게 유지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커먼즈와 커머너의 원래 관계와는 다른 권력이 생겨나고 이런 권력은 사유화와 권리의 법적문제를 커먼즈로 유입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커먼즈를 자유롭고 신선하게 유지시키는 방법은 커머너간의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생태주의, 초인본주의, 영성 같은 수단이 필요하겠네요. 물론 그 과정은 어떤 논리적인 여정은 아닐 것입니다. 커먼즈를 유지하기 위한 많은 커머너들의 노력이 기록된 과정 같은 것이겠지요.

  2. 커먼즈의 커머너들도 컨먼즈화 되어야 한다. 커머너가 고유명사화 되거나, 권력을 작동시키는 구조화가 되는 순간 커먼즈도 사유화 되거나 구조화 된다. 커먼즈는 동사처럼 항상 유동적 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늑대가 아니라 늑대무리로서 존재해야 한다. 이름이 없는 늑대무리로. 커먼, 즈.

  3. 셋방과 거리 사이의 비상탈출구, 현관 입구의 계단, 보도 등 ‘비공식적 소통의 포도덩굴이 자라는 곳’, ‘평판, 잡담, 인정, 불인정, 승인의 망이 있는 곳’이라는 일상의 공간이 가진 공유지로서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신 글입니다. 공유지에 가시적이면서도 비가시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 비가시적인 가치들만 따로 ‘신뢰자본’ ‘평판자본’ 등으로 부르곤 하는 사회자본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사회자본이라는 개념은 그리 부정적인 개념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 어쩐지 보이지 않는 가치들에까지 ‘자본’이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그것을 가시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고 ‘계산’하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이것이 저만(^^;)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지 다함께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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