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구조주의 철학에서의 기후정의] ① 구성주의와 기후정의

이 글은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에서 발주된 기후정의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포스트구조주의에서의 기후정의 - 가타리의 ‘구성적 기후정의’ 개념의 구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이다. 이 글에서는 국제사회에 닥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라는 시급한 과제를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펠릭스 가타리의 구성주의, 도표주의, 제도적 정신요법, 분열분석, 배치와 미시정치, 소수자되기, 생태민주주의, 볼 수 없는 것의 윤리와 미학 등을 적용해 본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거의 없는 제 3세계 민중, 탄소빈곤층, 소수자, 생명, 미래세대 등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응과 적응 방법을 찾고자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 개념은,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필사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합리주의는 의미의 논리가 문제의 본질과 이유를 정확히 적시하고 구획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합리주의가 “~은 ~이다”라고 정확히 의미화하려 할수록 그 가장자리를 정확히 구획화할 수 있는 것은 생명, 자연, 사물, 미생물, 인간의 영역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를 테면 바이러스는 생명과 사물의 중간이기 때문에 생명과 사물 사이의 경계선은 모호하며, IQ로 볼 때 유인원은 6세 정도의 아동의 지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에 대한 정확한 구획화의 여지도 흔들린다. 이에 따라 근대 이후 구조주의는 본질을 대신할 구조를 통해서 다시 구획화가 가능하다고 보았고, 이는 가족주의를 설명하는 오이디푸스 삼각형의 구조나 사법적 초코드화 양식 등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68년 혁명 이후 가족주의의 전망이 없는 젊은이들이 전면에 등장하였고, 욕망이라는 탈코드화된 흐름 역시도 생성되면서 구조주의는 설명력을 잃게 되었다. 해체주의는 사물을 마치 벽돌더미처럼 와해되고 해체된 것으로 보면서 사회에 이를 적용하였으나, 사랑, 욕망, 정동, 돌봄의 구성적 실천의 중요성을 더욱 환기시켰을 뿐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구성주의가 새로운 방법론으로 건축, 예술, 보육, 교육 등에서 등장하였다.

합리주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가타리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통해서 기후정의 개념을 재창안할 수 있을지 짚어보기로 한다. 구성주의는 문제제기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이나 혹은 대답이 없을 수도 있거나 모두 대답일 수도 있는 지평을 개방하는 방식의 문제설정의 학문이다. 구성주의는 표상주의 즉 실재론(realism)처럼 하나의 문제제기에 하나의 대답이 할당된다는 인과론적인 방법론에 대해서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사지선다형 시험지에 답을 달면서 끊임없이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단 하나의 진리는, 모든 문제에 각각 답이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성주의는 천 명이 모이면 천개, 혹은 천 개 이상의 공동체가 생길 것이라는 점, 즉 한 사람은 세계에 필적하는 지위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쥘 들뢰즈(Gilles Deleuze)는 어느 신문지면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세계의 소멸과도 같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구성주의와 관련된 가장 적절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구성주의는 개인적인 세계의 재창조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좌에서 하나의 문제제기에 하나의 대답이 존재한다는 인과론적인 설정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든다. 이를 통해 기후정의와 기후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여러 가지 대답으로 응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일단 기후정의라는 하나의 문제설정에 대해서 대면하도록 우리를 붙잡고 있는 상황 자체는 혁명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는 문제설정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서 주목하면서 우리를 여러 가지 방향성으로 모색하고 탐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문제설정이 갖고 있는 다양한 대답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민감도, 유연성, 탄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문제설정의 상황 자체가 갖고 있는 에너지와 정동반응, 영감과 상상력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대답이 아닌 문제설정의 초과분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적절한 방향성을 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제기 자체가 하나의 특이점을 만들어

여기서 우리는 이제까지 유지되어왔던 기후적응의 논리를 벗어나 조절(=대응)의 논리와 자기조정(=감축)의 논리로 문제설정을 변형할 여지를 갖게 된다. 여기서 적응은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한 채 논의되는 탄력성, 융통성의 명제이지만, 조절과 자기조정은 환경 자체와 시스템의 변화라는 방향성 하에서의 탄력성과 융통성의 명제이다. 적응을 위한 정책들은 사실상 사회구조는, 불변항이라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을 거대한 전환의 흐름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변항의 곁가지를 수정하거나, 개인책임으로 떠넘기거나, 변화를 전제로 한 정책을 펼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기후적응을 개인책임으로 떠넘기게 되면, 결국 생존주의의 방법론에 따라 최적 적응한 개인만이 생존할 수 있는 제도에 머물게 된다. 즉, 기후적응을 개인책임으로 만드는 것은 극한적으로 기후정의라는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게 만드는 논리를 내부에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응과 감축 논의를 뺀 적응 논의는 보수적인 체제 유지의 논리일 뿐이다.

변화의 촉매제 ‘특이점’ 하나를 만든다는 것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a Self-Portrait〉 (1967) 기후위기는 기존의 삶의 조정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붓이 빗나가면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미학과 같은 우발적 특이점이 필요하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a Self-Portrait〉 (1967) 기후위기는 기존의 삶의 조정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붓이 빗나가면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미학과 같은 우발적 특이점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 francis-bacon.com

우리는 최적 적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적응한 개체들의 상태 속에서 어떻게 상호 의존하는 연결과 접속의 방식을 바꾸는 방향으로 향할 것인가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적응을 넘어선 대응(=조절)과 감축(=자기조정)의 차원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일단 기존 시스템을 수리하고 보완해서 유지시켜야 한다는 관점에 있다 보면 적응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이를 변화시키는 색다른 시스템을 향한 변화를 지향할 때 문제설정과 대답의 일대일 대응관계의 인과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시스템 전반, 사회구조 전반을 한꺼번에 바꿔야겠다는 – 역으로 바꾸지 않겠다는 – 수렴모델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성 속에서 그 촉매제 역할을 할 작은 특이점(singularity) 하나하나를 설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이점 설립을 통해 시스템의 균열과 변형, 사회화학적 변화를 추구하는 확산모델에 따라야 할 것이다. 여기서 특이점은 사랑, 정동, 욕망 등의 에너지가 반복을 통해서 물질로 바뀌는 포인트일 수 있지만, 구체적인 제도 생산의 영역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자 쥘 들뢰즈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를 탐색한 『감각의 논리』(2008, ㈜민음사)에서 붓의 빗나감이라는 우발성에 힘과 에너지의 덧댐을 반복적으로 계속하여 그림 자체를 일그러뜨리는 지점을 돌발표시라고 말하는데, 이는 특이점 사상의 핵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정책적인 수준에서는 에코마일리지 제도를 수정 보완하여 기후정의의 피해자인 탄소빈곤층에 대한 지속적인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방식 – 에너지절감에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유지에도 주는 방식 – 을 통해서 사실상 탄소복지의 차원을 제도적인 차원의 소득보전과 연동시키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것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 생필품이나 소득을 얻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 조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본소득 개념의 다변화와 경우의 수의 확장과도 관련되어 있다. 또한 개인별 탄소총량을 지정하고 개인끼리의 탄소거래제를 수행하는 블록체인(Blockchain)에 기반한 미시적인 탄소시장도 구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지정된 총량의 물이나 가스, 전기를 적게 쓰면 다시 탄소거래시장에 내다팔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그것이다. 개인책임으로 모호하게 “에너지를 절약하자”라는 슬로건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탄소감축에 대한 전면적인 소득보장은 실질적인 기후정의를 이끌 견인차이다. 상품소비와 관련해서는 육류세, 기후세, 탄소세 등의 증세와 함께 하면서 기후정의에 동원되어야 할 정책기금을 확보함으로써 기본소득을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서 탄소세를 통한 기본소득 모델을 통해서 실증적인 사례가 잘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탄소감축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또한 탄소시장을 통해서 기업의 자율적인 탄소감축을 유도하여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줬던 방식에서 더 나아가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제도를 연동시킴으로써 탄소감축에 대한 채찍과 당근을 함께 주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전 세계 100대 기업이 전체 탄소배출량의 71%를 배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와 자율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의 감축의 유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재생에너지를 탄소빈곤층에 우선 제공함으로써 소득보전과 연동시키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가상적인 재생에너지 시장과도 연동을 통해서 더 나아가 하드웨어적인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으며, 이 역시 재생에너지 확산과 기본소득 보장이라는 기후정의의 현실적인 필요성에 대한 해결책일 수 있다.

기후위기의 첫 번째 피해자들은, 탄소를 과배출 한 적이 없는 동물과 빈곤국가의 빈자들이다. by jillridgway 출처: https://pixabay.com/images/id-734264/
기후위기의 첫 번째 피해자들은, 탄소를 과배출 한 적이 없는 동물과 빈곤국가의 빈자들이다.
사진 출처 : jillridgway

더불어 미국의 민주당의 그린뉴딜처럼 일자리, 재생에너지, 기후정의 등의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포괄하는 정책적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거대계획, 거대프로그램, 제도 생산 등에서 주의할 점은 기후정의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 즉 하나의 대답이 없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대답의 경우의 수를 제시함으로써, 문제설정과의 대면적인 민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시스템에 대한 변형의 영구개량(=영구혁명)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린뉴딜과 같은 큰 밑그림을 그리는 거대계획의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기후정의와 관련된 논의에서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갖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하나의 특이점이 불러올 눈덩이 효과

제도의 재발견과 재창안은 하나의 문제설정에 대해 여러 가지 대답을 모색할 때 출발한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패널의 탄소빈곤층 보급정책이라는 하나의 특이점이 설립됨으로써도 기후정의라는 문제설정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 중 하나의 특이점이 설립될 수 있고, 이것이 다른 조건들에 환경이 되고, 그 환경이 다시 조건이 되는 등의 확산모델에 따라 기후정의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여러 가지 대답들에 더해서 특이점으로서의 또 하나의 대답을 설립하는 것은 상호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 사회, 공동체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우의 수에 계속 덧셈을 하는 방식으로 풍부화되고 다양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도토리 한 알이 떡갈나무 혁명을 이루듯 하나의 특이점 설립은 눈덩이 효과를 가질 것이다. 여기서 제도와 정책은 선결 문제의 오류처럼 미리 주어진 이상적인 대답에 맞는 건전한 조건과 피험자를 설정해놓고 대답을 도출하는 방식, 즉 하나마나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 자체가 갖고 있는 다채로운 수준을 응시하면서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대답으로서의 특이점을 설립함으로써 사회화학적인 변화를 도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가타리의 구성주의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현재의 배치를 변화시킬 실천적인 특이점들을 설립하는 여러 가지 대답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 다음 편에 계속

본 연구는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의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 개선방안 연구〉라는 연구과제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입니다.

신승철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