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구조주의 철학에서의 기후정의] ② 도표(=지도제작)주의와 기후정의

이 글은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에서 발주된 기후정의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포스트구조주의에서의 기후정의 - 가타리의 ‘구성적 기후정의’ 개념의 구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이다. 이 글에서는 국제사회에 닥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라는 시급한 과제를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펠릭스 가타리의 구성주의, 도표주의, 제도적 정신요법, 분열분석, 배치와 미시정치, 소수자되기, 생태민주주의, 볼 수 없는 것의 윤리와 미학 등을 적용해 본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거의 없는 제 3세계 민중, 탄소빈곤층, 소수자, 생명, 미래세대 등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응과 적응 방법을 찾고자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 개념은,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필사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diagram)는 지도제작(cartography) 혹은 지도화의 방법론으로, 펠릭스 가타리가 네트워크와 공동체, 생태계 등에서의 연결접속, 이행, 횡단, 변이 등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핵심개념이다. 보통 커뮤니티 맵핑(community mapping) 개념으로 축소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입구를 발견하는 동시에 출구를 발명하는 색다른 방법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찍이 그의 스승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마음의 생태학』(2006, 책세상)에서 지도화의 방법을 처음으로 창안하였다. 베이트슨은 “지도화는 영토화가 아니다”라는 단순한 명제를 통해서 지도그리기의 비밀의 문을 개방했다. 여기서 지도화는, 의미화의 방법론과 같이 “ ~은 ~이다”라고 하나의 의미의 본질을 적시하고 하나의 영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미를 횡단하고 이행하고 변이되는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 연애에 실패했다면, 실패한 연애를 다시 성공시키려고 재차 시도하는 대면의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그와는 달리 여행으로, 노래로, 춤으로, 귀농으로 다양하게 지도를 그려 나가며 탈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타리는 입구와 출구가 일치하는 대면의 방법론이 아닌 입구와 출구가 분열되어 있는 탈주의 방법론을 지도제작이라고 보면서 이 속에서 강렬한 에너지의 원천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양자류(陽子 流)나 분열생성론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더불어 지도화는 “~이거나 ~이거나” 등의 경우의 수를 횡단한다는 점에서 모델화가 아닌 메타모델화(meta-modelization)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하나의 모델인 정신분석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치료, 인지치료, 선수행, 명상법, 호흡법 등등으로 끊임없이 모델을 바꾸어가면서 해결방안의 경우의 수를 늘려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양한 지도를 그리며 탈주해야

이러한 지도제작의 방법론을 통해서 기후변화의 유발자와 책임자, 사회담론, 국가, 사회, 제도 등의 입구와 출구 사이의 의미 있는 특이점들 간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연결하고 지도그리기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복잡계를 이루고 있는 이행당사자들과 보이지 않는 생명과 자연, 사물 등에 대한 지도그리기를 수행함으로써, 하나의 입구에 대한 여러 출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생태적 연결망은 입구와 출구, 원인과 결과, 문제제기와 대답, 질료와 정의가 인과론적으로 일치하는 방향성이 아니라, 전혀 색다른 방향성으로 탈주로를 개척해나갔던 생명과 자연의 우발적인 표류과정을 의미한다. 물론 칠레의 생물학자이자 구성주의자들인 움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R. Maturana)와 프란체스코 바렐라(Francisco J. Varela)의 지적처럼 생태적 연결망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너지-부의 유한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유한성을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논리적 장부기재’라고 한다. 그러나 생태적 연결망에서의 유한자들은 무한한 연결접속의 경우의 수를 가질 수 있으며, 이는 입구와 출구의 분열을 전제로 한 우발적인 표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명활동에 의해서 생태계는 다양해지고 풍부해져 왔다.

흔히 유한에서 무한성으로의 이행에 대한 논의는 주로 두 가지 방향성을 갖는다. 첫째는 유한자의 무한한 ‘산술적 수의 증대’로서의 자본주의적인 진보와 성장주의적인 과정이고, 둘째로 유한자의 무한한 연결접속을 통한 ‘경우의 수의 증대’가 그것이다. 후자가 바로 가타리가 말한 지도제작의 방법론이다. 유한자의 무한한 연결접속의 가능성은 내발적 발전(Endogenous development)전략으로도 불리며, 공동체나 생태계의 각 특이점들이 교직하고 연결됨으로써 승수효과와 시너지효과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기후변화를 유발했던 과정은 함수론적인 산술적 수에 따르지만, 기후정의를 지향하는 과정은 확률론적인 경우의 수에 따른다. 즉, 의미화가 아닌 지도화를 통해서 기후정의의 모색을 해야 하는 것이며, 하나의 모델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델을 넘나들면서 확산되고 이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후정의의 차원에 대한 명백한 인과론적인 원인과 결과를 찾아서 하나의 진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색다른 경로와의 지도그리기의 방향성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도제작으로서의 도표는 다음과 같은 4 가지 차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4가지 차원의 고려

㉠ 돌발흔적으로서의 도표 : 전혀 예상치 못한 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발적인 환경재난으로도 나타날 수도 있으며, 전혀 다른 수준의 문제설정과 마주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자연과 생명의 우발성의 계기를 삶과 욕망의 반복을 바꾸도록 만드는 문제 상황으로 만듦으로써 특이점을 설립하는 것에 달려 있다. 하지만 생태계의 다양성과 회복탄력성의 소멸로 인해 점점 우발성은 감축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색다른 입구의 개방은 반복을 통한 특이점을 통해서 경우의 수를 늘림으로써 회복탄력성을 갖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성장이 불가능해진 경제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의 산술적 수가 주어지지 않는 가게가 취할 수 있는 해결방안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통한 관계 중심의 경우의 수를 설립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남극이 녹고 있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지금까지 인간이 경험을 통해 익힌 문제해결의 방식 바깥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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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이 녹고 있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지금까지 인간이 경험을 통해 익힌 문제해결의 방식 바깥에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 pxhere

㉡ 지도제작으로서의 도표 : 입구와 출구가 분열되어 있어서,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방향성을 의미한다. 입구와 출구의 분열을 지도제작하는 방향성은 연결망 자체를 와해시키고 해체하려는 시도와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입구와 출구를 일치시켜 뻔하고 비루한 것으로 보는 것과 달리, 관계와 연결망의 갖고 있는 풍부함을 각 특이점의 계기마다 색다르게 재창조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입구와 출구의 분열 사이에서는 양자류(陽子流)라고 불리는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다. 이를 테면 기후변화의 심각함과 이에 무감한 제도와 정책 간의 분열은 시민들의 기후행동이라는 저항과 항의의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러한 에너지들을 관계망 변화의 활력으로 또는 제도 생산의 상상력으로 바꾸어내는 것이 과제이다.

㉢ 비기표적 기호작용으로서의 도표 : 냄새, 색채, 음향, 몸짓, 맛, 이미지 등은 소재나 재료로 여겨지지만, 소재가 살아 움직여서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여기서 소재, 재료(material)는 그 자체가 힘과 에너지의 발생원천이 되며, 질료(matter)처럼 전문가의 형식(form)이 부여되어 구체화되는 근대적인 방식이 아니다. 이를 테면 맛깔나게 생긴 과자 앞에서 누가 먹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손이 움직이고 군침이 도는 것과 같은 것이, 소재가 살아 움직이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후정의의 영역을 굳이 정의(definition)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이 직면하는 하나의 이미지나 느낌들, 어려움, 고난, 불편 등으로도 소재적인 수준에서도 충분히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문제는 기후정의라는 소재 자체가 갖고 있는 강렬도, 속도, 온도, 밀도 등의 에너지와 힘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기후정의의 정의(definition)을 초과하고 그보다 과잉되게 지도제작을 수행할 수 있다.

㉣ 고도로 자유로우면서 고도로 조직하는 도표 : “~은 ~이다”라고 정의(definition)하여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방식과 달리, 음악의 기보법이나 회화의 채색법, 로봇의 통사법, 수학의 미적분등은 고도로 자유로우면서도 고도로 조직된 도식화작용이다. 인식 도식(schema)에 대한 사유는 칸트의 인식론적 구성주의로부터 유래를 갖지만,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인식의 도식작용 뿐만 아니라, 전혀 종류가 다른 도식화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테면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라는 개념이 갖는 도식화작용에 따라 세계가 재창조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기후정의에 대한 느낌이나 이미지, 감각 등이 그저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도식작용에 발견되고 포착되어 그 질료에 형식이 부여되는 것을 넘어서, 탄소발자국이라는 개념이 갖는 풍경성, 사물성, 기계성, 음악성, 회화성과 같은 고도로 자유로우면서도 고도로 조직된 도식화작용에 따라 발명되고 창안될 수 있다. 이러한 냄새, 색채, 음향, 몸짓, 맛, 표정 등의 비기표적 기호계를 소재로 한 도식화작용은 고도로 자유로우면서도 고도로 조직된 기호작용이라는 점에서 기표가 갖고 있는 의미화의 논리로서의 “ ~은 ~이다”라는 이기(being), “~임”, “~다움” 등의 논리로부터도 자유롭다. 즉, 이러한 도식화작용으로서의 첨예한 기호작용이 더욱 뾰쪽해짐으로써 제도와 정책의 형태로 나아가도록 도모하는 것이 기후정의의 제도 생산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 과제 : 특이점, 분열, 비기표적 질료, 자유로운 도식

이러한 도표라는 다소 어려운 개념을 통해서 의미화의 논리처럼 입구와 출구가 일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횡단하는 지도화의 논리를 탐색한다. 이를 테면 폭염에 직면했을 때 기후정의의 차원이 기후부정의, 양극화와 탄소불평등의 현실로 체감되면서도, 이를 설명하고자 할 때 하나의 의미나 논리로 그 모든 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오직 지도그리기를 통해서만 복잡계로서의 현실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폭염의 경우, 제 1세계나 탄소부유층은 에어컨 등을 통한 개인책임에 기반한 적응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지만, 이는 사회와 지구 전체로 지도그리기를 할 때 네거피브 피드백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결국 탄소불평등이라는 기후정의를 빼놓고 개인책임에 입각한 적응을 다루는 것은 지도화를 배제한 의미화의 논리에 불과하다. 복잡계(complex systems)로서의 생태계의 연결망 속에서는 상관관계의 수정이 인과관계보다 유효할 수 있고, 하나의 생명은 다른 생명에게, 하나의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에게, 하나의 모듈은 다른 모듈에게 영향을 주면서 또 받는다. 즉, 일반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준 영향을 통해 변화된 상대방을 내가 참조해서 나 또한 변화한다는 상호 참조의 오류에 빠져드는 것이다. 즉, 생태계에서는 재귀론(再歸論)적인 차원이 열리게 된다. 이에 따라 개인들의 에어컨의 과도한 사용 자체는 의미화의 논리에서는 ‘적응’으로만 규정될 수 있겠지만, 생태계에서의 지도화의 논리에서는 네거티브 피드백의 영역으로 묘사될 수 있다. 2019년 5월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breakthroughonline.org.au)에서 작성한 『실존적인 기후 관련 안보 위기 – 시나리오적 접근 보고서』의 경우가 팻-테일 리스크(fat-tail risk)를 통해서 생태적 지도제작이 포지티브 피드백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 피드백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던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도화의 논리를 더 첨예하게 전개하다보면, 에어컨 사용에 있어서 포지티브 피드백의 지도제작이 가능할 수 있게 되려면, “재생에너지 사용이 폭염에 강하며, 네거티브 피드백으로부터 자유롭다”라는 지점으로 향해야 함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을 정책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다. 우선 기후정의의 차원을 탄소빈곤층에 대한 재생에너지 설치에 기반한 기본소득의 개념으로 지도그리기를 함으로써 전혀 다른 상호참조점 – 포지티브 피드백의 확산 – 을 여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산업용 전기료 할인제도에 대한 반발을 정면 돌파할 수 없을 때, 지도그리기의 방법을 활용하여 기업에 대한 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도를 도입하여 할인부분과 더불어 재생에너지로 인한 감축분을 통해 채찍과 당근을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기업의 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의 경우 제로섬 게임에 해당하기 때문에 탄소감축을 도모하기에 유효한 방법론일 수 있다. 이는 산업용 전기에 대한 가격인상을 도모할 수 없을 때 취할 수 있는 지도제작이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정적인 전기세 절감과 더불어 재생에너지 사용에 따른 감축분까지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방법론이다. 또한 전기세 인상을 통한 재생에너지의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탈핵으로 향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일단 이 방법은 전기세 인상이라는 대칭적인 지도제작이 가능할 때의 경우이고, 그것에 대한 반발이 있을 경우 재생에너지 정책을 통한 보완적인 지도제작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인과관계를 넘어 비선형적 해법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신산업을 키우면서 동시에 기후위기를 해결한다. 그린뉴딜은 기존 산업 시스템에 부여된 마지막 임무가 아닐까?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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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늘리고 신산업을 키우면서 동시에 기후위기를 해결한다. 그린뉴딜은 기존 산업 시스템에 부여된 마지막 임무가 아닐까?
사진 출처: wikipedia

또한 그린뉴딜정책의 적극적인 도입과 적용을 통해서 기후정의의 차원을 일자리와 복지 등으로 지도그리기를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린뉴딜정책을 적용할 경우, 거대계획의 큰 그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지도제작의 가능성의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 아젠다를 통해서 흐름과 방향성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미시적인 지도제작을 제도와 정책으로 보완함으로써, 그 방향성의 뼈에 살과 피를 붙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에 4차 산업혁명과 같이 에너지효율의 면에서 지나치게 공상적이거나 전환사회의 비젼의 측면에서 지나치게 인간의 영역을 뺄셈하면서 자본의 기술혁신과 성장을 추구하는 거대계획이 방향성으로 채택되는 것은 기후정의의 상황에 부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영역을 덧셈하는 녹색일자리 사업과, 기술혁신의 맹목적인 성장정책이 아닌 지구와 생명, 자연을 생각하는 적정기술의 적용, 에너지효율을 넘어서 에너지전환으로 향하는 그린뉴딜정책으로의 방향선회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미리 전제된 선험적인(a priori) 조건이라는 근대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과 실천을 구성하고 생산하는 구성적 인간론의 방법론에 따를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 에코파시즘이나 포스트휴먼이라고 통칭되는 기술파시즘적인 영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린뉴딜정책은 일자리, 복지, 재생에너지, 적정기술, 자원순환 등의 인간의 역할과 효능을 되찾을 수 있는 인류재건의 방향성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에서의 기후정의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서 기후정의에 대한 마음의 지도제작을 유도하는 방법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이는 마음에 큰 영향을 주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환경에 대한 거대한 전환을 의미할 것이다. 특히 이미지-영상은 지도제작의 방법론에 따라 무의식의 행렬 위의 흐름의 사유방식에 따른다. 그러나 꼼짝 안 할 때의 마음인 감정생활에만 한정될 뿐, 움직일 때의 마음인 정동생활과는 무관하다. 미디어를 통한 정동(affect)을 압도하는 감정의 영역이 모두 탄소소비로 향하는 것은 탄소빈곤층을 비하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에서의 기후정의 가이드라인은 과도한 탄소소비가 부유함과 동일시되도록 만드는 고정관념과 감정생활의 주입식 교육으로부터 탈피하여, 색다른 가능성과 경우의 수가 여럿 존재함을 이미지와 영상의 지도제작으로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테면 육식이 소개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채식의 선택지를 보여주고, 자동차 생활이 송출되는 경우 반드시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보행 등이 병행되고, 일회용품이 편리하다는 인식을 재고(再考)시키고,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의 사용을 이미지-영상의 지도제작 과정에서 제거해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탄소부유층보다 탄소빈곤층의 삶이 가장 기후정의에 따라 실천하는 방향성과 일치한다는 점을 긍정하는 문화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탄소빈곤층의 에너지전환과 에너지절약 등의 가능한 경우의 수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실험, 탐색, 모험 등의 과정이 이미지-영상의 지도제작에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탈탄소의 미학 그리고 영구혁명

그러나 이는 하나의 모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델을 횡단하고 이행하는 메타모델화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도표주의는 ‘모델화=의미화=표상화’를 수행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여러 번의 실패를 과정으로 하여 메타모델화를 수행하는 실험자(=실천가)를 요구한다. 기후정의는 단 하나의 그럴듯한 모델을 통한 단번에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모델의 경우의 수와 지도그리기의 과정을 통한 영구개량(=영구혁명)의 과정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정의에 관련해서 ‘이것만이 진리이다’라고 세련된 모델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후정의라는 문제설정의 방향성을 향해 수많은 모델들의 지도그리기가 입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

본 연구는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의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 개선방안 연구〉라는 연구과제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입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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