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구조주의 철학에서의 기후정의] ⑤ 배치와 미시정치, 그리고 기후정의

이 글은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에서 발주된 기후정의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포스트구조주의에서의 기후정의 - 가타리의 ‘구성적 기후정의’ 개념의 구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이다. 이 글에서는 국제사회에 닥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라는 시급한 과제를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펠릭스 가타리의 구성주의, 도표주의, 제도적 정신요법, 분열분석, 배치와 미시정치, 소수자되기, 생태민주주의, 볼 수 없는 것의 윤리와 미학 등을 적용해 본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거의 없는 제3세계 민중, 탄소빈곤층, 소수자, 생명, 미래세대 등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응과 적응 방법을 찾고자 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 개념은,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필사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표지사진] 코스타리카의 황금 두꺼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1989년경부터 멸종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들뢰즈와 가타리의 배치(agencement) 개념은, 그 유사어로 위치, 자리, 배열장치, 행렬, 위상, 동적 편성 등을 내포하면서 독특한 위상기하학을 설정하였다. 특히 배치는 인간과 비인간이 혼재면(混在面)을 형성하면서 서로 어우러진 관계망으로서의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설정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는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행위자 네트워크이론’(ANT: Actor Network Theory)을 선취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배치의 방법론에서 중요한 점은, 인간중심주의적인 사유방식에서 배제하고 분리한 생명, 사물, 자연, 미생물 등을 하나의 관계망 위로 놓으면서, 이들 간의 상호작용, 흐름, 관계 맺는 방식 등을 조망할 수 있는 개념좌표가 설립되었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기후정의의 입장에서 보면, 폭염과 같은 환경재난의 발생 시에 그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동식물들의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지 인간만이 피해자인 것이 아니라, 말 못하는 뭇 생명들이 최대 피해자로서 기후정의의 범주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후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나치의 파시즘이 발호하는 이유에 대해서 규명했던 보고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구적 이성비판』(2006, 문예출판사)에서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그 이유로 도구적 이성을 지목했는데, 생명과 자연을 인류문명의 도구로 삼을 때 결국 생명과 자연의 속성인 욕망과 신체로 연결된 인간까지도 도구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즉, 생명의 도구화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 이주민에 대한 혐오, 노동자에 대한 착취, 장애인에 대한 분리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나와 너』(2001, 문예출판사)에서 현재의 문명이 ‘나와 그것(it)’의 관계로 나타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회복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얘기했던 바와 공명한다. 결국 생명권은 파시즘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의 이행은 단지 생명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나 애정만이 아니라, 생명과 신체로 연결된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들뢰즈와 가타리는 ‘집합적 언표행위의 배치’(agencement collectif d’enonciation)라는 개념을 통해서 언표 자체가 집합적 강렬도, 온도, 밀도, 속도 등에 따라 생성되고 출현되는 표현양식임을 분명히 한다. 이는 ‘말하는 나’(언표행위 주체)와 ‘말 속의 나’(언표 주체)의 분열이 사실상 배치에 따라 통합되어 일관성을 갖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강의를 할 때 연사의 현란하고 세련된 말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추임새와 눈빛, 감탄사와 반응을 던지는 관객들의 반응이 더 결정적일 수 있다. 즉, 말은 잡음, 소음, 잉여로 간주되었던 주변의 웅성거림, 추임새, 눈빛, 몸짓 등에 감응하는 무언의 춤사위와도 같은 것이다. 이를 테면 새나 동물, 강아지 등은 침입자에 대해 “적이다”라고 적시하지 않지만, “삐리리”, “뽀로로”, “빠바바” 혹은 “왕왕”, “으왕” 등의 절대적 변주의 화음을 통해서 그것을 표현해낸다. 배치에서 파생되는 변주의 화음이 사실상 의사소통의 핵심이 되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중심주의가 갖고 있는 본질을 적시하고 고정된 언표양식만이 언표의 전부라고 할 수 없게 된다. 기후정의의 영역에서 뭇 생명에 대한 인정적 정의를 배제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으며, 이러한 생명에 대한 배제의 방법론은 그 생명과 신체로 연결된 소수자에 대한 배제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생명에 대한 분리와 배제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인간 모두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생태계의 한 쪽이 무너져 내리면 이와 연결되어 있는 다른 생태계의 생명에게도 영향을 주듯이, 생명의 멸종과 죽음은 결국 도미노와 같이 생태계를 무너뜨려 인간의 멸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기후정의의 가장 넒은 판과 구도에는 생명권에 기반한 인정적 정의가 있음을 분명히 할 수 있다.

기후정의의 측면에서 볼 때 생명권에 기반한 인정적 정의는 결국 거대한 기후변화의 와중에서 대량 멸종되는 생물들에 대한 보전과 보호에 대한 최선의 노력을 의미한다. 만약 공리주의와 같이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의 원리에 따라 인간만의 생존을 위해 생명의 희생과 배제를 정당화한다면, 결국 인간 내부에서의 뺄셈의 방식에 따라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이주민, 난민에 대한 배제와 분리도 정당화될 것이다. 기후정의의 판짜기는 결국 생명공생주의의 입장에 선 생명권의 거대한 구도를 그려낼 때 가능하다. 최대한 생명을 보존하고 지속하고 유지하려고 하면서, 생물 종 다양성을 지켜내려는 노력은 결국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지켜내려는 행위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전체 생태계를 지켜내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일단 인간의 생존주의(=프로메테우스주의) 입장에서 자연과 생명을 보존하려는 측과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의 이행을 추구하는 측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철저히 시민적 합리성의 방식으로 생명과 자연을 보려고 한다면, 후자는 철저히 공동체적인 생태영성의 시각에서 생명과 자연을 보는 시각이다. 생태주의에서는 이 두 입장 모두 성립한다는 점에서 이율배반(Antinomy)적인 구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시각이 일관되게 견지해야 할 관점은 “생태주의는 자연주의가 아니다”라는 관점이다. 즉, 자연의 의미대로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과 같이 자연회복력이나 자생력에 따라 몸에 털이 자라듯이 저절로 생태계 위기는 치유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생명까지 확장된 기후정의는 제도적 구성주의의 시각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에 길거리의 길고양이나 비둘기조차도 돌보고 살리고 보살필 수 있는 제도적인 특이점의 선택지 하나하나가 설립되어야 한다. by HeungSoon
기후변화 시대에 길거리의 길고양이나 비둘기조차도 돌보고 살리고 보살필 수 있는 제도적인 특이점의 선택지 하나하나가 설립되어야 한다.
사진 출처 : HeungSoon

기후정의의 제도적 측면에서 거대한 식생, 절기 살이, 산림, 잡초, 미생물 등에 대한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생물 종의 멸종에 대해서 제도적인 보존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생물권역에 대한 지도제작을 통해서 기후변화 상황에 생물 종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섬세한 제도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지리산 구상나무의 멸종과 같은 사건 속에서 어떻게 이를 보존하고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식생변화에 따른 제도 창안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시에 폭염 상황과 같은 재난에서 공장식 축사와 길고양이, 유기동물, 동물원 동물 등에 대해 기후정의에 따르는 정책적 지원과 제도적인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생명을 살리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업과 동물복지축산에 대한 지원 역시도 필요한 상황이다. 기후정의는 생명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생명과 자연 모두를 고려한 제도와 정책, 시스템 등을 창안해내야 한다. 이는 이들이 멸종하면 그 다음은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직면의 의미를 갖는다.

가타리는 배치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배치가 우발성, 사건성, 외부성에 따라 자연주의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히려 제도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배치를 조성하는 것 즉 보존하고 보호의 판과 구도를 짜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태주의를 판짜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우발적인 경우의 수가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동과 돌봄, 살림의 노력을 통해서 경우의 수가 되는 특이점 하나하나를 설립해나갈 필요가 있다. 즉, 기후변화 시대에 길거리의 길고양이나 비둘기조차도 보존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 없는 한 우발적이고 자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이를 위해 돌보고 살리고 보살필 수 있는 제도적인 특이점의 선택지 하나하나가 설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가타리는 인간과 비인간이 어우러진 배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실천적이고 구성적인 노력을 적시한다.

(1) 배치 속의 경우의 수로서의 특이점 하나하나를 설립하는 특이성 생산 : 생태계의 특이점 하나하나를 설립하여 선택의 경우의 수를 늘려나가야 비로소 생태계가 복잡계로서 작동할 수 있다. 생명, 자연, 인간은 미리 주어진 전제조건이 아니라, 재발견하고 재발명해야 할 특이점 중 하나하나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명이 살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특이점 하나를 설립하는 제도와 실천일 수 있다.

(2) 배치를 끊임없이 없이 혁신하고 재창안하는 재특이화 과정 :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망에서의 상호작용, 정동의 흐름 등이 갖는 스토리와 기억, 감정 등은 끊임없이 재창조되어야 할 영역이다. 기후정의를 인정적 정의의 수준으로 확대하는 과정은 자연, 생명, 세계의 재창조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정의에서의 생명권의 영역은 끊임없이 공론화되고 제도적 절차와 과정에서 숙의되어야 한다.

(3) 배치를 재배치하는 생활정치, 미시정치 : 기존 배치를 구조라는 딱딱하고 경화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끊임없는 재배치과정으로 만드는 것이 영구혁명(=영구개량)의 과정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제도(=관계망)는 하나의 생명의 삶과 죽음에 다가갈 정도로 촘촘해지는 미시정치의 방향성으로 향해야 한다.

(4) 배치와 관계망에 입각한 자연, 생명, 인간의 공생명적인 토대 형성 : 기후정의와 관련하여 인간에 대한 미지노선만이 아니라, 인간/비인간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마지노선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탄소복지의 적용범위를 확대하여 실질적으로 소수자, 난민, 생명 등에게도 해당사항이 있을 수 있는 공생명의 판을 짜야 한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기후정의를 위한 미시정치의 방법론이자 인정적 정의의 실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작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미시적인 배치를 설립함으로써, 탄소빈곤층이나 난민, 이주민, 소수자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세와 태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생명살림의 제도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더 큰 혜택을 돌려받게 되는 거대한 배치의 판을 조성하는 의미를 갖는다. 조선시대 정조(正祖)는 해로운 벌레를 없애야 한다는 신하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농사에서 벌레가 해를 입히지만 공생의 길을 찾아보라는 칙령을 내린 바 있다. 기후정의와 관련된 생명권의 시각은 미물인 벌레나 지렁이, 미생물 등에까지 관심이 확장되어야 한다. 공생명론은 바로 인간 자신이 공생명체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공생과 상생의 거대한 판을 짜는 제도 생산으로 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정의의 정책에서 생명권에 대한 시각은 우리 자신의 보이지 않은 윤리와 미학의 배치를 조성하는 데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 다음 편에 계속

본 연구는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의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 개선방안 연구〉라는 연구과제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입니다.

신승철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