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사진 : 스위스 직접민주주의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 2009년 모습.
생태민주주의를 통해서 기후정의를 숙의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 추첨제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등의 혼합정 유형의 시스템과 제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지를 타진한다. 한국사회에서는 탈핵공론조사라는 숙의민주주의 유형의 생태민주주의를 경험한 바 있다. 탈핵공론조사의 경우, 무작위선발이라는 추첨제민주주의와 공론조사와 심의배심이라는 숙의민주주의, 표결이라는 대의제민주주의를 결합한 혼합정 유형의 생태민주주의를 구사하였다. 생태민주주의는 생명위기 시대가 심화되면 끊임없이 다가오는 유혹으로서의 에코파시즘이나 생태권위주의를 극복하는 민주주의의 방법론으로 거듭 재창안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상황이라 하더라도 에코파시즘이나 생태권위주의와 같은 독재를 통한 손쉬운 해결방안이 아니라, 생태민주주의를 통해서 기후정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에코파시즘이나 생태권위주의에서는 기후정의 자체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정의라는 아젠다가 생태민주주의의 혼합정 유형의 판과 구도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짜내면서, 시민들과 주민들의 지혜를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치 : 생태민주주의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추첨제민주주의가 가장 모든 사람에게 진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지만, 숙의민주주의는 논증과 추론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추첨제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와 같이 확률론에 따라 대표와 관료를 제비뽑기나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선발하였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형태를 개괄하자면 다음과 같다.

추첨제민주주의는 민회라는 소규모 모듈단위를 구성하여 조직될 경우 더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회라는 소규모 모듈단위의 성립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즉, 아테네와 같은 도시국가와 같은 작은 단위가 아니라, 너무 큰 인구를 가진 서울이나 한국사회와 같은 곳에서 적용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생명위기 시대에 대한 대응으로 추첨에 의한 생명민회 단위를 조직된다면, 그 핵심의제에는 단연코 기후정의 부분이 논의될 것이다. 의사결정권의 여부를 떠나 기후위기에 대한 민감성과 대응력, 회복탄력성 등을 생태민주주의를 통해 얻게 되는 데 생명민회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Lakeland School
그런데 숙의민주주의는 논증과 추론능력에 기반하여 진리를 추출해내는 방법론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에 엘리트주의의 한계를 여전히 노정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물론 숙의민주주의는 사회적 학습과정으로서의 숙의의 과정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대의제민주주의처럼 엘리트 자체를 선별하고 분리하여 물신화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칫 숙의 과정 자체에서 탈핵공론조사에서처럼 엘리트나 전문가 등의 근거와 무대에 기반하게 된다면, 옳다/틀리다의 양극적인 방향성으로 향할 소지도 높다. 그런 점에서 기후정의라는 문제설정에 대한 생명민회의 배치가 기후위기에 대면적 상황을 조성하고 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지도를 그려나가는 숙의민주주의의 과정이 요청되는 것이다.
추첨에 의한 생명민회가 숙의민주주로 넘어야 하는 것은?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에코파시즘과 생태권위주의가 발호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에코파시즘은 인간이 지구에서 암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 자체를 뺄셈하려는 생태주의를 가장한 파시즘이다. 이 속에는 절멸캠프는 없지만, 지구, 생명, 자연을 위해 제거되어야 할 것이 바로 인류문명이라고 보기 때문에 사실상 제도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생태권위주의는 지배권력의 결단에 따라 복잡한 생태계의 운명이 좌우되도록 만드는 전체주의와 독재의 사상이다. 이러한 방법은 한국사회가 성장주의 시대 때부터 이제까지 토건, 건설, SOC사업에서 수없이 수행했던 바였다.
이러한 에코파시즘과 생태권위주의의 사상적인 뿌리 역시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기원을 둔다. 추첨제민주주의 등이 작동하던 시기에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철저히 경성과학에 입각한 진리론을 구사하며, 이는 실재론, 표상주의, 객관적 진리론의 기반이 되는 이데아론을 주창한다. 그는 철저히 진리를 논증과 추론, 정의(definition)을 구사할 수 있는 엘리트의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력이라고 여기고, 철인정치로서 이집트 파라오의 왕정을 흠모했다. 동시에 실재론에 뿌리를 둔 현존 아카데미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academia, 기원전 387년경 ~ 기원후 529년경)를 설립하여 추첨제민주주의를 붕괴시키려고 했다.
현존 아카데미를 에코파시즘과 생태권위주의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생태민주주의로 견인할 필요성이 여기서 제기된다. 기후정의에 대한 생태민주주의 교육과정이 아카데미 교육과정에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학문적인 진리로서의 실재론과 경성과학의 “틀리다”라는 논점에서 생태민주주의의 “다르다”라는 논점으로의 이행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카데미를 발상적으로 전환시켜 생태민주주의로 향하게 할 때 가장 큰 의미좌표가 바로 기후정의의 부분인 점은 분명하다.
에코파시즘과 생태권위주의 해법으로는 기후정의 실현 어려워

사진 출처 : IMLS Digital Collections and Content
또한 혼합정 유형의 생태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와 전자민주주의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면대면 민주주의의 아날로그에 기반한다면, 전자민주주의는 비대면 민주주의의 디지털 기반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는 주민투표(=국민투표), 주민발안, 주민소환 등으로 제도화되었고, 대의제민주주의의 물신성에 맞서는 방법론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전자민주주의는 해적당의 리퀴드피드백(LiquidFeedback)에 기반한 전자민주주의로부터 시작하여 이제 실험 중에 있다. 그러나 전자민주주의의 구성적인 힘을 인공지능의 정치로 치환하려는 기술파시즘의 역습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기술파시즘과 생태민주주의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고, 인공지능 정치가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뺄셈하는 방향성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무조건 아날로그가 옳다거나 혹은 무조건 디지털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가상적인 것, 현동적인 것, 가능적인 것, 잠재적인 것을 포괄하는 생태민주주의의 구도를 그려낼 필요가 있다.

1. 가상적인 것에서 현동적인 것으로 : 가상실효화 과정으로 전자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의 이행의 영역이다.
2. 현동적인 것에서 가능적인 것으로 : 우발성이 특이점으로 향하는 것으로 직접민주주의에서 추첨제민주주의로의 이행의 영역이다.
3. 잠재적인 것에서 현동적인 것으로 : 사건성의 지평으로 숙의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의 이행의 영역이다.
직접민주주의 현실화를 포함한 혼합 시스템 고민해야
이러한 고려 속에서 기후정의와 관련된 전자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추첨제민주주의에 대한 혼합정 시스템의 구성과 설계 단계에서의 고민이 녹아들어야 할 것이다. 혼합정 유형의 생태민주주의는 사실상 하나의 모델에 따라 의사결정이나 협의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끊임없이 회피하면서 배치를 재배치하는 미시정치로 향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하나의 민주주의 모델이 모든 것의 해결책일 수 없기 때문에 생태민주주의는 혼합정 유형의 전략적인 지도제작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