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사상가]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과 가장자리 상황논증

피터 싱어는 모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생명권을 인간과 동등하게 가진다고 말한다. 인간은 동물을 단지 도구로 이해한다. 동물실험과 공장식 축산과 같이 동물의 고통으로부터 혜택을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문명은 결국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고 만다. 따라서 채식주의와 종차별주의 극복을 바탕으로 하는 동물해방이 인간해방의 전제조건이다.

1. 들어가며 : 동물해방의 계기가 된 피터싱어의 생애와 사상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1946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으로 아버지는 차와 커피를 교역하는 상인이었다. 그를 동물해방으로 이끈 것은 유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음에 처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파시즘의 발생 원인의 근저에 생명의 도구화라는 도구적 이성에 원천을 갖고 있다는 프랑크푸르트 써클의 입장을 더욱 발전시켜 생명의 고통을 외면하는 문명의 문제점에 천착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가두어지고 고통을 겪고 있는 동물의 유정성(Sentience)을 외면한다면 파시즘은 다시금 발생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한 천착이었다. 그는 동물권익단체 〈동물해방〉의 기본사상을 정립했을 뿐만 아니라, 초대회장을 맡아서 조직화과정에도 힘썼다. 동시에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는 가장자리 존재였던 유인원부터 동물실험을 그만두도록 만드는 유인원계획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Peter Singer at Crawford Forum 2017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Peter Singer at Crawford Forum 2017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피터 싱어의 유정성 개념은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갖고 있는 모든 존재는 존중받고 보호될 생명권을 갖는다는 사상으로 향한다. 다시 말해서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명제는 동물을 포함하여 전개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IQ가 낮은 저능아, 정신지체 장애인, 식물인간 등에도 이러한 유정성을 원리는 관철된다는 점에서 아주 독특한 생명윤리를 정립하는 것이기도 했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득동등고려의 시선에서 사고되어야 한다는 점은 인간 중심의 서구 철학과 윤리학에 심대한 파문을 남겼다. 특히 피터싱어가 1975년 발간한 『동물해방』은 서구 중심의 사유뿐만 아니라, 합리주의, 인간중심주의에 심대한 균열을 내는 것이기도 했다.

『동물해방』은 공장식 축산업과 실험실에서 고통 받는 동물들의 상황을 실증적으로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당시 농장동물이나 실험동물의 상황에 대해서 정보가 거의 없던 상황에서 동물의 처우와 조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룸으로써 사실상 일반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먹고 있는 고기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자신이 쓰는 감기약이 어떤 동물실험을 거친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대중들에게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전달은 충격으로 다가오기 충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윤리에 있어서 하등동물과 고등동물의 구분과 차이,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의 차이 등을 고려해 볼 때 유정성 하나만으로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적잖이 부담되는 논증임에도 분명했다. 그러나 피터 싱어에 대한 다양한 논쟁의 지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제시했다.

피터싱어는 복제복사는 하면서도 신진대사가 없는 바이러스와 복제복사도 하면서도 신진대사도 하는 박테리아의 차이점에 주목한다. 박테리아는 생명인 데 반해, 바이러스는 사물과 생명의 가장자리라는 점을 말이다. 서구 합리주의가 두터운 가장자리를 외면한 채 명확한 구획화를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생명과 사물,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분명 가장자리가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동물과 인간의 경계에 있어서도 IQ로 보면 6세 아동의 지능을 갖고 있는 유인원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고 구획화함으로써 도구화의 정당성 논증을 펼쳤던 서구이성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도구화의 그늘로부터 유인원부터 구출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유인원계획은 가장자리 상황논증이라는 버팀목을 가지면서 제기되었다. 그의 독특한 생명윤리는 일약 다윈주의 좌파로 그의 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중심주의에 머물고 있는 많은 단체들이나 종교기관에서는 피터 싱어에 대한 공격의 논증을 거두지 않았다.

1970년대 말 그가 이끌던 동물해방 단체의 급진활동가들은 매우 전투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동물실험의 과정에서 1년 동안 5만 마리의 원숭이를 희생시켰던 제약회사 사장의 자동차에 폭탄을 설치하는 등의 테러리즘으로 경도된 상황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활동가들에 대해서 피터 싱어는 명백히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명권의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피터싱어는 1999년부터 프린스턴대학에서 생명윤리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동물해방운동과 동물권익운동의 지도자로서 말년의 삶을 보내고 있다.

2. 유정성과 이익동등고려 : 동물과 인간을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등하게 고려한다면?

유정성(Sentience)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생명을 고려할 때 그 생명이 고통을 느끼고 쾌와 불쾌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할 것이다. 생명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불쾌를 회피하고 쾌를 추구하는 능력은 바로 고통에 대한 감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덤은 이러한 유정성의 감각이 동물에게 도 있음을 승인하면서 쾌의 증가와 불쾌의 감소를 공리주의적인 이익동등고려의 대상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동물이 동등하게 유정성 즉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고려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지칭되었던 공리주의의 방법론은 ‘최대 생명체의 쾌의 증가와 불쾌의 감소’로 해독될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고통의 여부의 측면에서 인간과 동물이 동등하게 고려된다는 점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 지각이 있는 고등동물과 지각이 없는 하등동물, 미생물과 거대생명체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상태에서 고통을 가진 보편적인 존재로 모두 포괄하는 것은 상당히 생명윤리의 입장에서 논쟁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종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종간 동등성을 얘기하다 보면 모든 고통의 등급이나 종간 차이를 드러내는 쾌와 불쾌의 수준에 대해서 간과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두는 것을 종간 차별로 비화시킬 여지조차도 있게 된다.

미생물, 하등동물, 고등동물, 메타생명체 등 우리가 다양한 생명체의 수준을 염두에 둘 때 고통이라는 유정성으로 이익동등고려를 하는 것은 하나의 기준으로 보편화하는 발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발상주의는 하나의 모델을 통해서 세상을 설명하겠다는 방식의 학문적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개념이다. 유정성이라는 고통의 여부를 두고 모든 생명체를 설명하겠다는 것은 발상주의적인 허점을 드러낼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생명체의 감각과 지각은 단지 고통여부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순감정을 넘어서 복합감정으로 진화하여 다양해지고 세분화되고 풍부해질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동물간의 협동과 연대, 기쁨, 슬픔, 사랑, 우정 등도 생명체의 감수성 속에서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언어를 매개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간과 다를 뿐 사실상 엄청난 복합감정을 언어가 아닌 매개체로 드러내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하는 것이 동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정성에 기반한 이익동등고려의 개념의 구도는 동물을 인간의 심급과 수준에서 가치론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생명의 가치를 동등하게 본다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절하하는 의미라기보다는 동물의 가치를 인간 수준으로 높여서 본다는 의미로도 판단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써클이 파시즘의 발호의 이유를 생명의 도구화에 기반한 도구적 이성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동물을 도구화하여 먹거리, 입을 거리, 구경거리 등으로 이용하다 보면 신체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 사회에 영향을 주어 인간 자체를 도구화할 가능성 – 노동자를 착취하고, 소수자를 차별하고, 이주민을 혐오하고, 장애인을 분리하는 등 –으로 향하고 그 최종결론은 파시즘인 것이다.

도구적 이성에서 도구화하는 이유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서의 상대방의 고통을 느낄 능력에 대해서 배제하는 데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를 게오르그 루카치는 사물화된 ‘관료주의=자동주의=기능주의’의 문명으로 바라본 바 있다. 그의 사물화 개념은 죽고 딱딱하고 화석화된 질서에 있는 문명의 질서 다시 말해 도구적 이성이 장악한 사회가 얼마나 생명의 활력과 생명력을 죽임으로 죽음으로 다루는지에 대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물화된 문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이외에 생명과 자연을 모두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게 권리를 자연에게 권리를 주는 배치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피터 싱어의 유정성에 기반한 이익동등고려라는 개념의 구도는 생명권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인간과 동물 간의 동등심급의 논의를 출발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톰 리건의 동물권리론과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의 차이점에서도 드러나듯이, 톰 리건의 칸트주의적인 선의지에 기반한 동물의무론이나 도구적 가치가 아닌 내재적 가치로서의 삶을 살아갈 가치에 대한 주목이나 의식(awareness)있는 존재로 동물을 바라보는 등의 태도는 피터싱어의 공리주의적 맥락과는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칸트주의와 공리주의간의 기나 긴 논쟁은 결과를 바라지 않는 동기로서의 선의지를 주장하는 칸트주의자와 결과 중심의 사고를 통해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자 간의 논쟁으로 이어져 왔다. 두 입장의 차이에서도 드러나듯이, 피터싱어의 맥락은 근본주의적인 맥락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결과 이전에 과정을 중시하는 동물복지론의 입장에서의 ‘점진주의=제도주의=현실주의’으로 향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동물권리론의 ‘근본주의=원리주의=이상주의’과 차이를 가질 여지가 있다.

3.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문명비판1 : 동물실험실에 대한 고발

동물실험실과 같은 폐쇄환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피터 싱어의 고발은 사실상 동물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가하면서 그 혜택을 고스란히 자신의 이기로 가져가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일단 동물 종과 인간 종간의 차이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은 동물실험에서 허다하다. 다시 말해 독성편차만 보더라도 종간 차이는 5%~25%에 달한다. 1%의 차이도 용납지 않는 생명공학에서 이 정도의 편차는 사실상 관행적으로 동물실험이 행해져 왔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간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실행되었던 동물실험의 결과는 ‘탈리도마이드 비극’이라는 사건을 만들었다. 탈리도마이드는 임산부 입덧 방지제로서 동물실험에서는 독성을 보이지 않아 시판되었다가 1만 명의 기형아를 낳게 되었다. 이렇듯 동물에 대한 고통여부에서는 인간과 동등하게 고려될 수 있겠지만, 정작 독성 자체에 대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인간과의 차이가 엄청난 것이다.

동물실험에서의 고통은 어느 정도이며, 어떤 상황에 실험동물들이 놓이는가에 대한 피터 싱어의 고발은 아주 구체적이다. 원숭이 약물실험에 있어서 알코홀, 헤로인, 모르핀, 코카인을 대량 투여받고 하루 다섯 시간 묶여 있는 상황이나, 모성결핍실험에서 인형 대리모를 홀로 껴안은 원숭이에게 괴물어미라는 용수철과 못을 통해 의도적으로 놀라게 함으로써 모성을 잃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이나, 의도적으로 화상에 처한 개가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를 관찰하는 학습된 무기력 실험이나, 고양이 뇌를 절제하여 성 기능과의 연관성을 관찰하는 실험이나 잔혹하고 동물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개는 처음에는 “뛰어넘으려다 머리를 유리판에 찧었다.” 개는 “똥오줌을 싸며 고통스런 소리,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댔으며, 몸을 떨며 기구를 공격”하는 등의 증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충격을 피할 수 없도록 조작된 개는 10일에서 12일이 지나자 저항을 멈추었다. 실험자들은 이로 인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유리판 장벽과 다리에 가해진 충격의 조합이 개의 도약을 막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결론 맺고 있다.

피터싱어: 『동물해방』, 98p

이 모든 실험이 인간생명을 살리기 위한 동물생명의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왔지만, 사실은 군사실험, 핵실험, 방사능실험처럼 인간생명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한 실험도 허다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57년 구소련의 우주실험에서 라이카라는 개가 사용되었던 바가 있는데, 라이카는 인민들의 영웅으로 칭송되었지만, 정착 우주실험에서는 공포와 두려움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또한 1983년에 미 육군에 있었던 철강탄환이 고양이 몇 마리의 머리를 관통하는지에 관련된 동물실험이 있었다. NASA의 실험의 우주선에서의 인간의 상태와 유사하게 동물의 상태를 두기 위해서 석고붕대에 14일 동안 놔두고, 턱뼈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 죽이는 실험이기도 했고, 피터싱어의 책에서는 다수의 방사능 실험의 잔혹함을 고발하고 있다.


특히 피터 싱어가 주목한 것은 드레이즈 테스트라는 동물실험의 관행적 절차가 갖는 잔혹함에 대한 것이었다. 드레이즈 테스트는 화장품, 세제, 생활용품이 인간에게 해가 없는지를 관찰하기 위해서 토끼의 눈에 넣어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토끼가 눈을 부비지 않도록 머리와 몸을 고정하고, 7일 동안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여하여 눈의 각막, 홍체, 결막 등의 탁도, 궤양, 출혈을 살펴보는 것이다. 특히 피터 싱어가 문제를 삼았던 것은 미를 중시하면서 외양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장품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는 잔혹한 동물실험인 드레이즈 테스트를 수행한다는 점에 있었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에서 화장품 회사들의 동물실험 금지와 관련된 선언을 이끌어냈다는 부분 역시도 주목이 된다. EU는 2013년 3월 11일부터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와 교역 금지법을 발효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터 싱어가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가장 잔혹한 실험으로 지목한 것은 반수치사량 시험이다. 이는 스프레이, 소독제, 산업용 화학물질의 안정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14일 동안 실험동물의 반수인 50%가 죽을 때까지 실험물질을 주입하여 그 양을 측정하는 실험이다. 이 기간 동안 반수치사가 성립되지 않을 때는 기간을 늘려서 3개월까지도 진행된다. 여기에 동원된 동물들의 상황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경련, 마비, 발작, 눈과 코와 입에서의 출혈 등은 기본이고, 죽음에 이르는 참혹한 고통 앞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인 것이다. 그 고통의 항목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피터 싱어는 얘기한다.

“촉진, 공격, 질식, 눈멀게 하기, 화상 입히기, 원심분리, 압박, 진탕, 붐빔, 충돌, 감압, 의약품 실험, 실험 노이로제, 냉동, 가열, 출혈, 때리기, 고정, 고립, 복합 상처, 먹이 죽이기, 단백질 박탈, 처벌, 방열, 굶주림, 충격, 척수 상해, 스트레스, 갈증”

p129

이러한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1999, 도서출판 인간사랑)에서의 선도적인 논의는 동물실험에 대한 대안적인 제도의 논의로 나아갔다. 그 결과 동물복지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3R의 원리가 실험실에서 적용되고 있다. 3R은 대체(replacement), 고통정제(refinement), 감소(reduction)이라는 원리로 작동하는 실험동물윤리원칙이다. 이를 통해서 동물실험을 줄여나가고 다른 실험으로 대체하기 위한 실험실에서의 심의민주주의를 작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동물실험실에 대한 시민사회와 동물단체 등의 개입은 동물실험실을 폐쇄 환경으로 만들어 그 안에서 동물들이 얼마나 고통 받는지에 대해서 상황정보와 지식이 외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회적인 노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4.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문명비판2 : 공장식 축산업

피터 싱어는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혜택을 얻는 문명에 대해 비판한다. 실험동물, 공장식 축산 외에도 동물에 대해 고통을 주는 문화는 다양하다. 
사진 출처 : State Archives of Florida
피터 싱어는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혜택을 얻는 문명에 대해 비판한다. 실험동물, 공장식 축산 외에도 동물에 대해 고통을 주는 문화는 다양하다.
사진 출처 : State Archives of Florida

공장식 축산업(Factory Farming)에 대한 피터 싱어의 고발은 비좁고 어둡고 축축하고 더러운 공장식 축산업의 환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조건에서 고기 만드는 기계로 전락한 동물들의 현실을 다루는 측면이 있었다. 공장식 축산업은 기존 소농 축산과는 달리, 생명을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고 고기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그런 점에서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밀집사육과 인공시술, 단일품종 등으로 고통과 학대적 처우로 향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싱어가 주목한 것은 생명경시 풍조로서의 생명의 도구화의 극한이 공장식 축산업에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생명의 부산물로 이루어진 육식을 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먼저 공장식 닭 사육 다시 말해 공장식 양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닭에 대한 소농사육은 기원전 2,500년 경 동남아에서 시작되었는데, 자연수명이 20년인 관계로 육식을 위한 수단이 된 것은 공장식 양계산업이 본격화되면서부터였다. 피터 싱어가 주목한 것은 A4 한 장 크기에 면적에 3~4마리가 사육되고 있는 다단 밧데리 케이지의 환경에 있었다. 닭이 원래 새인 관계로 날개를 펼쳐야 하는데, 그러한 조건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닭이 갖고 있는 독특한 위계서열인 쪼기서열이 있다는 점에서 상대방을 쪼아서 죽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부리를 자르는 것 역시도 닭의 생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특히 공장식 양계에서 달걀을 얻기 위한 노력의 극한에는 강제 털갈이와 같은 의식에 있다. 닭이 더이상 달걀을 낳을 수 없게 된 시점에 갑자기 인공조명으로 칠흙 같은 밤을 만들고 음식과 물을 주지 않아서 이에 위기감을 느낀 닭의 털갈이가 시작되어 더 달걀을 낳게 된다는 원리가 강제 털갈이이다. 이 역시 생산성에 생명을 종속시키는 학대적인 환경에 다름 아니다.

그 다음으로 공장식 돼지 사육을 다루는데, 송곳니 자르기, 꼬리 자르기, 거세 등을 수행하는 어린 돼지의 상황 뿐만 아니라, 스톨이라는 철골 구조물에 몸이 끼어 낳고 배기를 반복하는 어미 돼지의 상황이 등장한다. 이러한 스톨사육은 어미돼지의 임신과 출산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어미돼지로서의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고 자유로운 운동 자체가 불가능한 그러한 구속복의 상태가 매우 학대적일 수밖에 없다.

“출산할 시기가 되면 암퇘지는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옮겨지는 곳은 편안한 장소가 아닌 더욱 움직이기 힘든 ‘출산 우리(farrowing pen)“이다. (인간은 아이를 분만 give birth하며 돼지는 ”새끼는 낳는다 farrow.“) 이곳에서 암퇘지들은 마구간에 있을 때보다 훨씬 운동의 제약을 받는다. ”쇠처녀(iron maiden)“라는 별명이 붙은 이 고안물은 자유로운 운동을 막는 철제 틀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여러 나라에 도입되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것을 이용하는 표면상의 목적은 암퇘지가 새끼 돼지들을 뭉게 버리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다.”

Ibid, 223p

스톨 철골구조물의 문제점은 돼지의 자연습성인 흙 목욕과 땅굴 파기 등의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점뿐 만 아니라, 사실상 자유로운 행동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기 때문에 돼지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더 구속되고 예속된 존재로 전락한다는 점에 있다. 어떤 감옥에서 몸을 돌리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감옥이 있겠느냐는 점에서 그 학대의 수준과 심급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장식 소 사육에서 가장 먼저 학대적 조건을 삼는 것은 호텔에서 분홍빛 어린 송아지고기를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인위적으로 빈혈에 걸리도록 만들어서 가두어 놓은 어린 비일 송아지들의 상황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인위적인 빈혈에 걸리기 때문에 비틀거리고 몸을 가누지 못할 뿐만 아니라, 쇠못 등을 핥기 위해서 노력하는 송아지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단지 미각의 재미를 위해서 저질러진 일이라고 보기에는 태어나자마자 도축되는 송아지의 삶은 너무도 짧기만 하다. 동시에 싱어는 소젖과 관련된 송아지로부터의 우유의 갈취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얘기한다. 우유 대신 도살에서 나온 피를 먹이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로 젖소의 송아지의 경우에는 어미 소로부터 완벽히 분리되어 우유 자체를 먹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이러한 소와 관련된 학대적 처우는 사실상 우유를 먹기 위한 인간의 욕구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약한 존재인 송아지를 희생시키고 고통에 빠뜨리면서 이것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엄청난 농장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정이라고 할 수 있다.

5. 종 차별주의와 동물해방 : 마지막 차별, 종차별주의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 동물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학대적 상황들은 차별, 배제, 분리 등의 파시즘이 가한 상황을 겪는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여성해방, 흑인해방 등을 외치는 운동가들에게 깔려 있는 기본적으로 극복해야 할 전제로서의 파시즘의 도구적 이성을 염두에 둘 때 바로 동물해방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근본적인 차별로서의 종 차별주의는 인간 종에 한해서 삶을 살아가고 고통을 회피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존재로서의 동물에게도 고통을 줄이고 삶을 온전히 영위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삶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고통이 없는 행복의 삶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해방과 흑인해방의 경우처럼 여성, 흑인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 보지 않고 차별과 배제를 가하는 기존의 질서가 완강히 버티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런 점에서 패미니스트들은 의회를 향해서 권총을 들고 진격했으며, 흑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자구책과 민권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렇듯 여성이나 흑인은 바로 자신인 당사자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동물의 경우에는 자신의 권리의 당사자임을 주장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피터 싱어는 동물의 대리인으로서의 동물해방운동가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말 못하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호소할 수 없는 동물을 대신하여 그들의 차별과 배제를 넘어선 동물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동물보호단체와 동물복지론자, 동물해방가들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마지막 차별로서의 종 차별주의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동물과 신체적으로 연결된 소수자의 권리나 이주민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도 함께 보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종 차별주의라는 거대한 차별과 배제의 판 위에 올라가 있는 미시파시즘의 기본 구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 종 차별주의 극복 이후에 약속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인 것이다. 다시 말해 파시즘의 무의식의 심상 속에 뿌리 내린 도구적 이성의 최종산물인 종 차별주의의 극복이 사실상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과 공존을 가능케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에 가했던 차별 역시도 일소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물해방은 인간해방의 시작점이고, 인간해방이 동물해방으로 가는 길 보다 더 적극적인 반파시즘 사회로 향하게 되는 첩경인 셈이다.

피터 싱어의 종 차별주의 극복이 사실상 동물해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의 폭력과 왕따, 가정폭력, 사회범죄와 함께 뿌리박혀 있는 동물학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이는 곧 인간해방을 향하는 새로운 토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물학대와 관련된 해외연구 동향으로는 「동물학대의 목격 그리고 동물에 대한 청소년 행동 간의 연관에 대한 연구」(2006), 「동물 학대와 청소년 폭력」 (2001), 「약자를 못살게 굴기(bullying)과 동물 학대의 관계」(2005), 「공감, 가정환경, 그리고 동물학대와 관련한 동물에 대한 태도」(2006), 「청소년의 bullying과 동물 학대행위 간의 관계」(2008) 등이 있으며, 이는 청소년 시기의 동물학대가 학교폭력, 왕따로 가정폭력과 사회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종 차별주의는 동물 종에 대한 학대적 처우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학대와 차별, 배제 등에 대해서 『켈러트와 펠트하우스에 의해 제안된 동물학대의 9가지 동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제시하면서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적 처우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다. (1) 동물 통제 : 짖는 개를 중지시키기 위해 때리는 행위, (2) 동물에 대한 보복 : 구토한 고양이를 벽에 던지는 것, (3) 특정 종에 대한 편견 : 똥개라는 등의 발언, (4) 동물을 통해 공격성 표현 : 개싸움, (5) 공격성, 충격 주며 재미 느낌 : 물어!, (6) 악감정 가진 사람 보복 : 다른 사람 개 때림, (7) 분노표출수단 : 개 발로 참, (8) 동물비하 : 욕하기, (9) 동물에게 성적 행동 등을 망라한다. 이러한 학대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물보호단체나 동물복지론자, 동물해방론자 등이 나서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여야 할 것이며, 현재의 동물보호법에 있어서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고통을 주는 경우에 처벌의 항목이 있는데, 이는 “「동물보호법」 제8조제2항 또는 제3항을 위반하여 학대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동물보호법」 제46조제2항제1호).”라고 판시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동물에 대한 학대는 사회적 범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동물보호법을 농장동물이나 실험동물까지 확장해서 적용할 필요성까지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즉, 다시 말해서 포괄적인 생명권의 입법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6. 채식주의 : 동물복지에서 비건채식으로

총괄적으로 피터싱어의 동물해방론과 톰 리건의 동물권리론, 그리고 동물복지론자들의 구도를 그려본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동물해방론이나 동물권리론이 둘 다 근본적인 완전채식인 비건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채식은 피터 싱어에게는 동물의 학대나 고통의 여지로부터 완벽한 동물해방으로 향하기 위한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은 서문에서 나오는 동물애호가와 같이 육식 기반의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으면서 그저 동물에 대한 애정으로만 감응하는 그러한 사람들과도 명백한 차이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권 운동의 3분할.
동물권 운동의 3분할.

채식에는 완전채식으로서의 비건(Vegan), 우유 먹는 채식 락토(Lacto), 달걀 먹는 채식 오보(Ovo), 우유 달걀 모두 먹는 채식 락토오보(Lacto-Ovo), 생선까지 먹는 채식 페스코(Pesco), 남들이 먹을 때는 먹지만 직접 사서 먹지 않는 채식 플랙시테리안(Flexiterian), 닭고기까지 먹는 채식 폴로(Polo) 등의 종류가 있다. 이 모든 채식의 방법은 단계나 위계가 있는 것은 아니나, 피터 싱어의 경우에는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육식문명과 절연한다는 점에서 완전채식인 비건을 주장하는 것이다. 채식운동은 영성적인 채식이나 환경운동으로서의 채식, 건강을 위한 채식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최근에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서의 채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피터 싱어의 완전채식의 방법 이외에도 동물복지론자들의 “조금씩 가끔 제 값주고 제대로 알고 먹는 육식”에 대한 제안도 함께 고려해볼 만하다. 동물복지론은 동물들이 학대적인 처우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답게 길러지고 도축되는 과정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자연과 생명의 가격을 저렴하게 함으로써 외부효과로서의 이득을 바라고 있었던 성장주의자들의 논리에서 벗어나 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매김으로써 환경과 자연에 대한 고려 역시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이 동물복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동물복지는 ‘점진주의=현실주의=제도주의’의 한계 속에 있다. 피터 싱어는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 어떻게 하면 농장동물의 처우를 더 개선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한편 설령 이상적이진 않다고 해도 다음은 합리적이고도 실천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 동물고기를 식물성 음식으로 대체한다.
□ 구할 수만 있다면 공장식 농장의 계란을 방사한 닭의 계란으로 대체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계란을 먹지 말라.
□ 우유와 치즈를 두유, 두부 또는 다른 식물성 음식으로 대체하라. 하지만 유제품이 들어 있는 모든 음식을 피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자세히 알아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304p

다시 말해서 피터 싱어는 완전채식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입장을 최대테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정적이고 진행형적인 실천에 있어서는 동물복지를 최소테제로도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원칙에 충실하면서 현실에서도 유능한” 근본파와 현실파 사이의 과정형적인 실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동물해방론을 근본파로 또 어떤 사람은 동물해방론을 현실파로서의 동물복지론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동물해방론은 두 영역 모두의 장점을 취하면서 채식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7. 가장자리 상황논증과 생명윤리 : 유인원계획과 윤리적 딜레마

피터싱어는 말년에 〈유인원 계획(great ape project)〉이라는 프로젝트에 뛰어든다. 이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유인원을 통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간극을 명확한 구획화로서의 합리주의적으로 구분하는 사유방식이 아닌 가장자리를 풍부하게 함으로써 공유지점을 넓히고 결국 서로 연대와 협동으로 향하여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바로 향하자는 다윈좌파적인 계획이었다. 그리고 인간 종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부터 동물실험을 하지 말자는 실천적인 과제를 던진 운동이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인 가장자리 상황논증(Argument from Marginal Cases)이라고 불리는 논증방식이었다. 다시 말해서 가장자리 인간인 식물인간, 정신지체장애인, 장애인 등에 대한 인체실험이 불허되어 있는 것은 바로 나치의 악명 높은 인체실험과 안락사 프로그램 이후에 그것이 생명윤리에 부합하지 않는 파시즘이라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파시즘적인 생명윤리의 구도를 더욱 확장한다면 유인원이라는 가장자리 존재에게 동물실험을 불허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지적할 수 있다.1

이러한 가장자리 상황논증은 생명과 사물 사이의 가장자리 존재인 바이러스에 대한 논의로도 확장될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바이러스는 신진대사가 없다는 점에서 사물이지만, 복제복사를 한다는 점에서 생명인 역설적인 가장자리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생명과 사물이 명확히 구분될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 언변도 기각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축살처분 등의 상황이 바로 유기체와 바이러스의 공생명인 동물의 특징을 부정함으로써 사실상 대량살처분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환원주의적 질병관과 같이 외부로부터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해 들어와 질병이 생긴다는 방역의 관점이 아니라, 히포크라테스와 같이 시스템의학의 관점에서 자가면역의 관점이 등장할 여지가 생긴다. 이런 점에서 모든 생명은 가장자리 존재를 포함한 공생명인 셈이다.2

그러나 생명윤리에서 피터 싱어는 여러 논쟁의 여지를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무척추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가에 대한 부분에서의 논쟁이다. 다시 말해서 피터싱어의 유정성 개념에 따르면 종 간 차이에 입각한 고통등급 설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동물실험에서의 여러 가지 수행양식이 어렵게 되는 측면이 생긴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물론 무척추동물 역시도 다양한 사유경로를 통해 척추동물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고통 여부의 질적 차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남는다. 생명윤리의 논쟁과정에서 인간의 고통과 문어의 고통이 같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 격분하는 피터 싱어 반대론이 빈번히 제기되는 이유 역시도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생명윤리에 있어서 피터 싱어는 윤리적 딜레마 논증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끌었다. 이를테면 “자신이 키우던 개와 악인이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좌중을 얼어붙게 하기도 했다. 윤리적 딜레마의 뾰족한 이접(disjunction)적 사유 즉, “~이냐 ~이냐, 선택하라! 그것도 빨리 선택하라!”는 논증의 방식은 우리에게 생각의 여지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설정일 뿐, 그것 자체가 진리 여부를 가리는 참/거짓의 게임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피터 싱어는 생명윤리학 자체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고 참신하게 만들기 위한 자신의 특이성을 스스로 깨달았다고 할 수 있으며, 논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생명윤리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했다.

8. 결론 : 반파시즘운동과 동물해방

피터 싱어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하고 흑인해방, 여성해방으로 향하는 인류의 반파시즘의 여정에 하나 더 종 차별주의를 극복하고 동물해방으로 향하는 여정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주장하였다. 사실상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는 긍정될 수 있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하는 것, 공유하는 것은 고통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동물과 인간은 단지 신체로 연결된 것만 아닌 무수한 감수성의 기반인 유정성으로 하나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물은 인간과 동등한 지위와 가치와 권리의 입장에서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피터 싱어의 논변들의 대부분은 색다른 진화(evolution)의 과정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인류는 하나의 파열로서의 혁명(revolution)이 아닌 ‘자연과 생명으로 안으로 되말리는’ 역행(involution)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능력, 생명의 능력, 동물이 갖고 있는 감수성에 접근하는 새로운 진화가 인류에게는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인원계획은 다윈좌파의 입장에서의 진화론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전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류는 더욱 가장자리의 상황을 두텁게 하고, 가장자리 존재에 공감하고, 가장자리의 강렬도에 감응할 때라야 종 차별주의를 극복하고 동물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에서의 피터 싱어는 하나의 파문이다. 유정성을 무차별적으로 등급과 심급을 나누지 않고 적용함으로써 오히려 공생명론으로서의 생명체의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종간 차이 특히 인간과 동물과의 차이점을 밝히고 싶어 하는 많은 생명윤리학의 논의에서 피터 싱어는 인간이라는 경계가 모호하고 인간 자신의 가장자리 존재로서의 식물인간, 정신지체장애인, 장애인 등의 생명과 필적하는 유인원이라는 가장자리 존재의 요소로도 규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윤리적 딜레마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분명히 받게 되는 메시지는 반파시즘에 기반한 생명윤리라고 할 수 있다.

피터 싱어의 반파시즘은 인간해방을 위해서 동물해방이 전제되어야 함을, 여성해방과 흑인해방의 전제조건으로서 동물해방이 있음을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는 동물을 도구화했을 때, 인간을 도구화할 수밖에 없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도구적 이성의 논의를 더욱 좌파적으로 강화함으로써 도출되는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피터 싱어의 반파시즘의 출발점은 어린 싱어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아우슈비츠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그 작은 파문이 돌이킬 수 없는 파문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 시작은 바로 아이였던 싱어의 감수성에 있었던 것이다. 큰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의 거대한 파문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참고도서

  • 패이션스 코스터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13, 동물실험』한진수 감수 , 서울 : 내인생의 책, 2012
  • 김진석, 『동물의 권리와 복지』, 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5
  • 레이그릭, 진 스윙글,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 김익현, 안기홍 역, 서울 : 다른세상, 2005
  • 레이그릭, 진 스윙글, 『가면을 쓴 과학 동물실험』, 윤미연 역, 서울 : 다른세상, 2006
  •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비판』, 박구용 역, 서울 : 문예출판사, 2006
  • 피터 싱어, 『동물해방』, 김성한 역, 서울: 인간사랑, 1999
  • 김세정 외, 『우리들의 소중한 생명 그리고 윤리』. 서울 : 도서출판 이화, 2007
  • 최병인, 『생명과학 연구윤리』, 서울 : 지코사이언스, 2009
  • Tom Regan, The Case for Animal Rights, Unv of California Press, 2004
  • Frank R. Ascione, Claudia V. Weber, and David S. Wood, Society and Animals, 1997 5(3)
  • Gullone. 동물학대의 목격 그리고 동물에 대한 청소년 행동 간의 연관에 대한 연구, 2006
  • ————– 동물 학대와 청소년 폭력, 2001
  • ————– bullying과 동물 학대의 관계, 2005
  • 최훈, 『영장류 실험의 윤리와 가장자리 상황 논증』 2009, 한국과학철학회, 과학철학 12권 제1호
  • 박종무, 구인회, 『공생명론 관점에서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가축살처분에 대한 생명윤리적 고찰』 2018, 한국생명윤리학회, 생명윤리 제 19권(통권제 37호)

  1. 최훈, 『영장류 실험의 윤리와 가장자리 상황 논증』 2009, 한국과학철학회, 과학철학 12권 제1호 (125 – 153) 참고

  2. 박종무, 구인회, 『공생명론 관점에서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가축살처분에 대한 생명윤리적 고찰』 2018, 한국생명윤리학회, 생명윤리 제 19권(통권제 37호) : 17-35 참고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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