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마주보기] ⑮ 흙으로 살아가리라

새미(솔빈)는 숲정이의 딸이다. 숲정이는 새미의 엄마이다.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답게 가꾸기 위해 시민운동을 하였다. 정성스럽게 ‘선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좌절과 허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지를 잃은 엄마가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숲정이와 새미의 딸이자 언니인 백진솔(파랑새)은 6월 19일 부산 백산초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지를 잃어버린 숲정이와 새미는 지친 서로를 바라본다.

농꾼 바라기

새미야, 엄마는 사실 907 기후정의행진에 가고 싶지 않았단다. 파랑새를 기준으로 과거로 연결된 현재를 사는지? 현재로 연결 된 과거를 사는지? 성냥갑 같은 병원을 삶터로 가진 성냥개비 엄마가 화륵화륵 불꽃을 강남에서 꼭 불태워야 할까? 엄마는 서울로 집중되는 운동의 동력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지역에서 행동들이 모여서 강을 이루었으면 해. 그러나, 어쩌겠니? 현실이 어려운 걸. 기후정의란 이름으로 경남은 각자의 의견들이 순조롭게 뭉쳐지지 않더구나. 다행인 것은 힘찬 주장만큼 열심 활동을 하고 계시니 고맙지. 기후정의로 가는 길에서 불거지는 다양성은 당연하지. 갈등이 나쁜 거니? 다름을 바라보며 다양성을 알아챌 기회잖아. 갈등이 있으니까 문제를 인식하지. 해결 과정에서 경험과 성숙이 생긴단다. 엄마는 갈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야. 다만, 큰 흐름으로 꾸준한 일관성은 담보 되어야겠지. 경남 기후위기비상행동 사무국장(정진영 김해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님께 몇 분이 서울로 가시는지 여쭈어 보니 7명이라데. 어쩔 수 없지. 엄마라도 걸음을 보탤 수밖에. 갈래갈래 주장들을 이겨 버린 폭염의 승리일까. 결국 경남은 50여 분 참여하셨단다. 물론 만족할 수 없는 규모이지만.

기후정의로 가는 길에서 불거지는 다양성은 당연하지. 갈등이 나쁜 거니? 다름을 바라보며 다양성을 알아챌 기회잖아. 사진 제공 : 숲정이

강남의 빌딩들과 나란히 걸으면서 엄마는 사람 참 어리석다 싶더구나. 본디, 죽지 않을 생명이 있니? ‘기후위기’ 앞에서 ‘기후악당’이나 ‘기후정의’는 평등하게 곤란하지. 멸종 앞에서 태연하게 우뚝 선 세상이 아찔하더구나. 안간힘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사람 세상’이 허탈 하더구나. 물론, 엄마도 안간힘으로 끄트머리 딸려서 끌려가고 있지만. 새미야, 엄마는 진심으로 이제는 힘을 빼고 싶단다. 세상 덕분에 살고 싶단다.

엄마는 기후정의행동이 ‘어쩔 수 없다. 합리적이다.’란 이유로 원칙들이 허물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수단적 효율은 결국 피곤한 되돌림이거든. 생명 존중, 생태적 조화. 공동체적 사랑. 뭐 이런 것에 중심을 박아 놓고 묵묵히 헤쳐 나갔으면 참 좋겠다. 지지고 볶고 과정이 분명히 있겠지. 상처로 회피도 있고 변절도 배반도 있겠지. 건강한 모습 아니겠니? 상처가 두렵지. 변절이 괘씸하지. 실수와 잘못의 과정도 각오하며 뿌리는 지켜내며 끝내 이루어 나가는 성취를 얻었으면 좋겠어. 잘 되려나? 영악한 자본이 곧 기후도 수요와 공급을 계산적으로 따질 거야. 자본이 기후 경제에 적극 개입되는 순간, 생명은 점점 더 자율성을 잃어갈 것 같아. 생명들은 지금보다 더 비굴한 자본의 노예가 되겠지. 끔찍하다. 생명으로서 주체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할 텐데. 현실적 합의가 어려운 바램일까? 아우성으로 다툼을 딛고 더디더라도 견디며 기준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 뭐, 엄마는 오래 전부터 세상을 차갑게 좌절하고 있지만. 그래도 새미야.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잖아. 소망은 희망의 일부 아니겠니? 세상은 엄마 따위에 관심이 없지. 실제로 엄마는 먼지 같은 존재가 맞아. 그러면 뭐 어때. 엄마는 하면 좋다고 선택한 길을 떳떳하게 걸으면 그뿐이라 생각해. 주위가 왕왕대며 가끔은 억울하더라도 내 모습 그대로 나를 지키고 있으면 이해가 커지고 도모가 생기기도 했단다. 그 맛이 또 엄마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했고. 하지만 새미야, 이젠 그만! 엄마는 힘을 빼고 싶구나.

이 고백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엄은 채식에 대해 아직 아리송하단다. 엄이 육식을 지향하지는 않아. 그렇다고 채식을 우월하게 긍정하지도 않지-우리 새미는 엄이랑 생각이 다르겠지-공장식 축산업을 반대 하고, 동물권을 이해하며, 육식으로 파괴되는 숲이 비탄스러워. 그러나, 엄마는 사람이라는 동물이 잡식이니 그냥 잡식이 자연 아닐까 생각한단다. 생존을 위한 자연이 선악이 있을까 싶지.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채식도 이해해. 그렇다면 식물은 기후악당이니? 사람이 기후악당이지. 엄마에게는 구제역 살처분 동물들의 무덤들을 찾아다녔던 비통한 지난 모습들도 있단다. 어쩌다 캣맘이었던 엄마이지만 식물들을 동물보다 강렬하게 사랑해. ‘식물권’ 입장에서 ‘먹이’란 개념이 동물은 먹으면 안 되고 식물은 먹어도 된다란 명제가 엄마는 여전히 혼란스럽구나. 엄마는 식물생명의 영성에 더 밀착되어 있거든. 그런 엄마의 한심한 한탄을 들어볼래. 엄마는 파랑새의 동물로서 활동성과 상호 소통의 부재를 왜 미치게 괴로워하는 거지? 새미야, 엄마 좀 웃기지. 확실한 가치관이 성립 되지 않았지만 명확한 욕망은 있단다. 엄마는 앞으로 식물의 뿌리가 잡고 있는 흙과 뒹굴며 살고 싶구나. 사람 동물로서 흙에서 살림과 죽음을 사유하고 싶단다.

엄마는 소녀시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이 깊었단다. 눈이 옴팡 내린 겨울날, 소녀 엄마는 겨울 산으로 깊숙이 들어간단다. 마침내 지쳐서 쓰러지면 그 위로 눈바람이 불기 시작하지. 소녀 위로 켜켜이 겨울이 쌓인단다. 틀림없이 봄은 오겠지? 봄바람이 눈을 녹이고 겨울을 벗겨내면 소녀의 몸은 흐물흐물 썩어서 흙에 스며들지. 소녀 몸을 먹은 봄은 생명으로 힘차게 피어나는 거야. 소녀 엄마는 죽음을 이렇게 상상 했단다. 엄마를 너무 사랑한 파랑새는 엄마가 아프고 죽을까봐 유별나게 미리 슬퍼했지. 지금의 아픔과 죽음을 견디는 것이 파랑새가 아니고 엄마라서 그 점은 참 다행이다. 파랑새의 죽음을 기다리며 돌볼 수 있어서 그나마 엄마는 기쁘다. 지난 어느 때, 제주 비자림로 도로공사 구역에서 엄마는 로드킬 조사를 했었단다. 무차별 벌목으로 드러난 도로 위를 쌩 달리는 차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생명들을 죽이는지 세상에 고발하기 위해서였단다. 안개 낀 새벽이든. 폭우가 내리는 새벽이든. 화창한 새벽이든 꼭 주검들은 도로 위에 가득 있었지. 나와 파랑새는 로드킬 당한 그 생명들과 다를 바가 없잖니. 자본과 개발에게 순식간에 잡아먹히고 있잖아. 파랑새는 질겅질겅 씹히고 있는 중이란다. 배 터진 곤충들과 개구리, 뱀들을 무심하게 보고 있었던 엄마를 보렴. 그들이 죽어서 내지르는 비명을 묵묵 듣고만 있었던 주제에 ‘내 딸이다. 억울하다.’ 울고불고 난리법석인 엄마가 가소롭지. 꼴값 떨고 있단다. 인 척한 죗값이 파랑새의 고통 아닐까? 생명은 평등하니까. 평등한 생명이니까. 엄마는 이제라도 엄마의 소녀성을 회복하며 살아서도 흙으로, 죽어서도 흙으로 가고 싶구나.

엄마는 오롯 흙에서 몸 노동으로 살고 싶구나. 엄마는 몸 노동이 진짜라고 생각해. ‘인간의 격’는 땀을 뻘뻘 흘리는 몸 노동으로써 제대로 이뤄진다는 신념이 있단다. 중년이 된 엄마는 용기 있게 구체적으로 실천을 했었지. 식당에서 설거지와 서빙을 하고 호텔리어도 해보고 낚시공장에서 낚시 바늘도 만들어 봤잖니. 나름 치열한 시행착오를 5년 동안 했었지. 그 시간 동안 엄마는 ‘노동은 차별이 없다.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다’를 깨달았단다.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고 인간이 만든 사회가 다시 인간을 차별하더군. 하지만, 엄마는 인간으로서 흙의 노동으로 꼭 끝냄을 해야겠단 결심을 굳혔단다. 흙의 인문 과학과 흙의 자연과학을 익히고 싶단다. 엄마가 힘차게 부당한 한국사회와 적극적으로 다툴 때(시민운동을 열정적으로 했던 시기), 엄마의 갈망은 텃밭이었단다. 흙으로 나아갈 시간이 없었지. 밤낮이 없는 불굴의 투지였으니까. 엄마가 뽀개졌을 때, 엉금 기어서 흙으로 갔을 때, 엄마는 평화를 만끽했지. 엄마는 파랑새의 죽음을 돌보면서 파랑새와 함께 흙으로 살아가고 싶구나.

농꾼바라기 오늘 일기

2016416일 토요일

비가 온다 하였지만 오전에는 화창하였고 점심때가 다가오는 지금에서야 하늘이 꾸무리해질락 말락 한다. 노랗게 슬픈 오늘이지만 어쩌랴 그래도 밭으로 간다. 정겨운 새벽시장에서 바깥사람이랑 안사람 옆옆으로 앉아 2500원짜리 수제비 한 그릇씩 묵고 바깥사람은 바깥으로 테니스 하러 가고 안사람은 안으로 텃밭 왔다.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싱싱하다. 거름 냄새며 물 담은 흙냄새가 참 좋다. 경운기 몰고 다니는 농부들의 오고가는 농담들에 나도 따라 빙그레 웃으며 기쁘게 왔다. 울타리 밖으로 심은 호박이랑 박이 한 포기만 그럭저럭 기운찼고 세 포기는 골골거려서 안타까웠다. 지난주에 머리를 싹둑 자른 부추는 초록 새잎을 키워 올렸다. 모두 땅맛에 길들여진 내 새끼들이었다. 대파를 오지게 자리 잡아 널찍이 메웠고. 골 끝으로 옥수수 6포기 심었다. 수박은 벋어나갈 줄기를 계산하며 간격을 많이 두었다. 잎사귀 우엉과 고들빼기는 씨를 뿌렸다. 몸에 좋다는 당귀도 세 포기 심었다. 물 주고 거름 주면서 즐거움이 넘치면 안 되는 날이지만 가슴속이 명랑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콩도 심고 싶고 참외도 심고 싶은데 땅이 없다. 감자 캐고 심으면 된다 하니 기대가 된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기특한 감자 싹을 만났다. 야호, 트랄랄라라라. 기적 같았다. 삶이란 기적인가 보다. 오늘 내가 이렇게 숨 쉬고 바라보고 이야기 하는 기적 같은 소중한 이 순간인가 보다. 이제 단디 희망을 동여매고 노랗게 맘을 물들이며, 세월호 우리 아그들 만나러 갈까 한다.

2018318일 토

넉넉하게 늦잠자고 헐렁하게 옷 입고, 세수 따위 생략하게 따르릉 자전거 타고 텃밭 간다. 무슨 일 있지. 들른 새벽시장 모종 할배 노점에 계속 사람이 없다. 할배 자리로 옆집 과일진열대가 넘어 왔다. 분명 무슨 일 있지. 씨앗만 파는 할매도 보이시지 않는다. 시절에 맞추어 똑같이 매화가 꽃잎 열자 이어서 산수유, 목련, 살구꽃까지 너도나도 얼굴을 디미는데 할배, 할매는 뵈올 얼굴이 없다. 꼭 헤어져야 하는 만남이지만. 따시게 나만 쫒는 봄햇살에게 ‘오래 만나자’ 새끼손가락 걸어본다. 봄비 축축 오셔서 흙살이 촉촉하다. 지난 겨울, 날카로운 칼바람의 추억을 벌써 잃은 양파. 대파. 마늘이 싱글 늠름하다. 신기하게 제 모습 드러낸 부추며 딸기가 경이롭다. 겨울시금치와 겨울초는 지금에서야 인사하고 사이사이 지난번에 뿌린 상추들도 봉긋 연두로 올라왔다. 누가 누구인지는 시간을 견뎌봐야 알 수 있는 기다리는 순서이다. 골 끝으로 얕은 구멍을 15개 정도 내어 분홍 옥수수 2알씩 넣었다. 작년에는 한 골을 심었지만 한 자루의 옥수수도 따먹지 못했다. 옥수수를 따지 못해 애통한 마음 1도 없다. 수확에 대한 섭섭함이 없다. 그래서 참 농꾼님께 절로 죄송하다. 나는 땅을 밟고 흙을 만지고 생명을 기르는 것으로 대만족이다. 수확은 항상 덤이다. 누구는 천하에 팔자 좋은 년이라 부러워도 하지만 팔자는 스스로 ‘일자, 이자, 삼자에서 팔자까지’ 만들어 가는 거다. 내 팔자는 내가 만들지만 치열한 터전이신 농꾼님들께는 미안하다. 쑥갓 씨앗도 뿌렸다. 3월말 파종으로 표시 되어 있으서 추울까봐 고구마 줄기로 멀칭을 해주었다. 감자도 심었다. 호기롭게 자주 감자도 한 골 심고 따님에게 전화로 자랑질까지 했다. 고구마 좋아하시는 울 엄니께 자주감자 삶아 드릴 날 오면 참 좋겠다. 감자 위로도 멀칭을 하였다. 열무도 한 골 씨 뿌렸다. 과연 잎채소가 올해는 제대로 되어질까? 해마다 잎채소는 올라와도 벌레님들 차지더라. 농꾼 바라기 3년차 첫 해는 갖가지 모종 위주로 심었지만 지금은 땅도 늘리고 씨앗 위주로 심는다. 완두콩도 울타리 옆으로 파놓은 호박 구덩이에 3개씩 심고 구덩이와 구덩이 사이에도 심었다. 울타리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타고 올라가리라. 위가 좋지 않은 ‘남의 편’을 위하여 양배추를 심고 싶었는데 씨앗이 2만원이더라. 그래서 4월 모종으로 두어골 심을 예정이다. 내 발이 흙을 밟고 내 손이 흙을 만지고 내 머리 위로 햇님은 동그마하고 행복하다. 쑥갓 씨앗 원산지는 이탈리아고 완두콩 씨앗은 뉴질랜드더라. 토종씨앗이 일반이 되어야 사는 삶일낀데. GMO표시 국민청원도 한다던데. 행복은 부지런한 노력이 필요하다.

행복은 부지런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 제공 : 숲정이

2019510일 금

골갱이를 샀다. 섬 제주에서 ‘호미 주세요.’하면 작은 낫을 주신다. 육지것의 호미는 섬 제주에서는 골갱이다. 우선, 골갱이를 이용하여 풀을 뽑았다(제주어로 ‘검질한다’고 말한다). 쇠별꽃, 닭의장풀, 깨풀 따위를 뽑았다. 그리고 골 가장자리로 듬성하게 키 큰 가지를 3포기 심었다. 밭가로 멧돌 호박 2포기를 심었다. 지난 날 심었던 고추 자리 빈틈에(추위에 먼저 땅 되신 곳) 아삭고추 4포기와 깻잎 8포기를 심었다. 그리고 바깥 골과 가지 바깥으로 오이를 5포기 심었다. 나의 텃밭 이 아이들이 GMO(유전자 변형 식물)일 가능성도 있을까. 농부도 농꾼바라기도 시민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식탁은 GMO의 공격을 받고 있다. 패전 밖에 없는 전쟁의 밥상인 것이다. 물론 가열차게 전투에 참여하시어 씨앗을 지키는 우리님들이 계신다. 흙을 뒤집으며 치열함을 고민해 본다. 농꾼과 농꾼바라기와 시민들이 치열하게 GMO와 싸운다면 얼마나 흥이 날까. 굳이 개인이 치열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치열하다면 얼마나 안심이고 듬직할까. 하지만 ‘나’ 자신부터 치열해야 한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 국가는 무엇을 하는가? 국가란 무엇인가? 어느 시절도 국가는 답이 없다. 국가는 국가만 강요하고 개인인 나의 안전과 행복에는 이해를 구하고 인내를 요구하며 고통과 질병을 견디게 한다. 계급사회도 전체주의도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먹거리에 대해 최소의 안전을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자발적 식민지를 허용하고 있다. 식량주권도 씨앗주권도 포기한다. 슬픈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번 심었던 호박 3포기가 살 맛 났다. (1포기님은 땅으로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상추와 쑥갓을 뜯었다. 곧 밥상 위 한 접시 되시리라.

기특하게 제주살이 나의 기념으로 심은 왕대추나무에도 새순이 돋았다. 생명은 힘도 세고 생명은 힘도 없다. 생명이란 참으로 허무하다. 살아봤자 죽는다. 생명은 죽음이란 끝이 있다. 곧 죽음을 모르고 사는 사람생명은 무지가 폭력이다. 생명으로서 최선은 본디 생명의 본성을 존중하며 서로 조화롭게 서로를 인정하고 자연으로 관계하는 것이 아닐까. 생명 살이 쉽고도 쉽다.

202357일 일

흙이다. 곧 땅은 생명이다. 결국은 땅이다. 농사가 생명 존중의 가장 적합한 행동이라 확신한다. 작년 연말부터 나를 단정하게 정리하기 위해 갖가지 형식을 만들고 있다. 스피커로서 사회 활동가에서 협조자로 사회 참여자. 그리고 군중의 모래알의 위치를 정확하게 만들어 가고 싶다. 현재 실천 중이다. 소금밭(옛 테니스 코트장) 위에 농사가 가뭄이 심했던 작년에 더욱 안 좋았다. 가지는 5개 정도, 토마토는 10개, 고추는 20개 정도 수확했을까? 동서남북으로 버무려지며 농사를 소홀히 했다. 다시 뿌리를 회복하며 땅으로 돌아간다. 특히 올해는 언니네 텃밭에서 나눔 하는 토종씨앗들을 키운다. 늙은 호박과 쥐눈이 옥수수와 아주까리다. 화분에 씨앗을 심고 먼저 키운 후 이양하여 심을 거다. 아주까리는 2님만 모셨지만 옥수수와 호박은 아름답게 오셨다. 어제 호박구덩이를 나무 가지치기 후 잘게 잘라 거름으로 만든 무더기를 파서 그 안으로 퇴비를 넣어 옮겨 모실 준비를 해 놓았다. 소금밭 위로 봉긋 오른 거름 언덕에 심을 예정이다. 뼈가 아픈 건지? 근육이 아픈 건지? 요즘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다. 어제 밭으로 전환하는 화단의 잡초를 뽑았더니 손이 붓고 아프다. 이어서 다음날. 비가 왔다. 파란 우비를 입고 또 흙으로. 세화장에서 산 오이 6님을 먼저 심었다. 깻잎 5님을 한 달 전에 심었지만 2님만 계신 까닭에 5님을 다시 모셔와 그 자리에 심었다. 화분에서 싹을 틔운 호박을 어제 만든 구덩이에 호박 2님, 아주까리 1님 세트로 두 군데 모시고 세 번째는 호박 2님만 모셨다. 아주까리가 2님만 싹 나셨기 때문이다. 허리가 부러진 토마토 주변으로 흙을 북돋아 주었다. 이번 비바람에 고추가 여럿 이파리를 모두 잃었는데 살아나실지 모르겠다. 쥐눈이 옥수수는 토마토 밭고랑 뒤편으로 가지런 심었다. 화단 텃밭 한쪽에 창문 쪽으로 나머지 옥수수들을 심었다. 옥수수 앞쪽으로는 쑥갓씨를 뿌렸다. 오이 앞쪽으로는 상추씨를 뿌렸다. 부추 앞쪽과 토마토 앞으로 공심채를 뿌렸다. 부디 자라나시어요. 집 담벼락 밑으로 멀구슬 2그루와 팽나무 어린이를 화분으로 옮겨 모셨다. 팽나무는 머리골 마을 정자 앞으로 심을 것이다. 으름덩굴 숲속으로 가서 멀구슬 4님을 더 모셨다. 머리골 우리집 앞마당으로 멋지게 2그루 정도는 키우고 싶다. 멀구슬 집이 되는 거다. 봄이면 연보라색 꽃을 피우고 한여름은 초록하며 겨울은 노랑 열매를 달고 앙상하겠지. 멀구슬 열매를 탐하는 새들이 우리집으로 날아올 것이다. 멀구슬 나무 집을 꿈꾼다.

손목 관절이 너무 아프고 손가락이 부었다. 그리고, 잠시 나무 캐고 심은 ‘남의 편’에게 짧은 순간이라도 내가 부탁하는 입장이라 입술과 감정이 바짝 바른다. 친구도 몇 명 뿐이고 사교성도 없는 나는 남편도 없으면 세상 쓸쓸한 오십 대였을 것 같다. 내 남편의 존재가 고맙지만 속이 휘떡 뒤집어지기도 한다.


이곳, 변두리에서

대학교 마지막 학년이었던 재작년 열린 기후정의행진이 기억나. 그때는 서울에 살았으니 안 갈 이유가 없었지. 머리를 정성스레 땋고, 아끼던 빈티지 옷도 꺼내 입었어. 친구들과 현장에서 들려오는 타악 리듬에 맞춰 엉덩이 흔들며 간절하지만 기쁘게 거리를 걸었지. 마치 고요한 축제 같았어. 엄마도 올라온 데다 아는 친구들이 많이 보였던 그 현장이 내겐 너무 가깝게 느껴졌어.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경남에서 자랐지. 익숙한 동시에 갑갑했던 지역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서울살이에도 능숙하지 못한 나였잖아. 여백 없는 지하철에선 숨 가빠지며 어지러웠고, 대도시에 익숙한 사람들 사이를 걸을 때면 괜히 위축됐지. 엄마만큼 심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배 있는 사투리는 어딜 가도 튀었어. 서울 사람들은 사투리가 심하다고 했고, 지역 사람들은 서울말이 늘었다고 했어.

대한민국의 지역도 수도도 불편했기에 아예 국적을 바꾸고 싶었지. 졸업 후 해외에서 살며 앞으로 삶의 계획을 구체화하려고 했어. 그러다 우연한 기회가 생겼어. 지역 사회로 아주 깊숙이 들어가는 지역 기자가 됐잖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책임감과 역할이 주어진 채 지역살이가 시작됐어. 겨우 2년차지만 이제 서울은 벌써 아주 먼 곳이 돼버렸네. 가깝게 느껴졌던 기후정의행진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려.

엄마가 작게 농사를 지듯 나도 지역이란 이 땅에 소농으로 살고 있어. 사진 제공 : 숲정이

올해 서울에서 행진이 진행될 동안 나는 내 자리를 지켰어. 지역과 서울은 분명 축을 같이 하지만, 아주 분리돼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 그래서 여기에도 자리를 지킬 사람이 필요해. 하지만 지역에선 찾기 힘든 어리고 경력 짧은 여기자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아. 서울에 유학까지 다녀왔다면 더욱 존재를 부정당하지. “당신이 왜 여기에 있나요?”라는 눈빛을 종종 읽어.

반대로 서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나는 작은 오리엔탈리즘을 느껴. 서양이 동양을 환상하고 왜곡하듯, 서울도 지역에 대한 환상과 타자화가 있는 것 같아.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내 느낌엔 딱 맞는 표현이야. 누군가가 보기엔 지역 기자로 산다는 건 대단한 일일 거야. 근데 그저 직업을 가지고 거기에 맞는 일을 하는 건 아주 보통의 일이잖아. 난 나의 일상이 그다지 환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외롭고 지난한 일이야. 지역은 불균등함 속에 정지해 있고, 오히려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지. 엄마가 작게 농사를 짓듯 나도 지역이란 이 땅에 소농으로 살고 있어. 그러다 보면 나는 농꾼 바라기 엄마처럼 기뻐. 이 땅 안엔 서울에 매몰된 주류의 시선으론 절대 발견하지 못하는 다양한 식생들이 꿈틀대고 있거든. 영원하진 않겠지만 나도 지금처럼 변두리에서 흙으로 살아가려고 해.

숲정이

우리 동네를 낮게 아우르는 숲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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