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키움 특집] ① 위기의 시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 – 『기후 리바이어던』과 기후정치

기후 리바이어던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적 차원에서 강력한 주권을 통해 기후문제에 대응하는 시나리오이다. 그 대안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기후 X는,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기후문제에 대한 정치적 우선권을 특정 권력에 부여하지 않는 탈중앙화된 민주적 체제를 지향한다.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전환하고, 민주적이고 탈중앙화된 체제를 구축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지난 2025년 1월 17일(금) 생태적지혜연구소 주최로 진행된 〈[제18회 콜로키움] 리바이어던 – 기술과 환경, 정치의 교차점에서〉의 발표문과 논평문을 《생태적지혜》에 차례로 싣는다. 이 행사는 『기후 리바이어던』과 『그린 리바이어던』 두 책을 가지고 기후 위기 상황에서 세계의 정치 미래를 조망하면서, 국민국가, 인공지능, 기술과 환경의 미래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글은 첫 번째 책 『기후 리바이어던』을 다룬 발표문이다.

현실의 정치는 국민국가 단위의 일국적 차원에서나 국제정치 차원에서나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미래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삶과 지구를 망치고 있으며 기후위기 극복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비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 중 한 방향은 ‘정치’를 향한다.

조엘 웨인라이트 , 제프 만 저 『기후 리바이어던: 지구 미래에 관한 정치 이론』(앨피, 2023)

기후정치(Climate Politics)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 과정과 권력관계를 의미하며, 정책 결정, 국제 협력, 사회 운동, 경제적 이해관계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활동을 포괄한다. 단순히 기후변화에 대한 기술적・과학적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과 협력을 분석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권력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 영역이다. 기후정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기후정의(Climate Justice), 탈탄소 경제(decarbonization) 등의 개념을 통해 기후변화의 불평등한 영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사회적·경제적 구조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한다. 기후정치가 주목받기 시작한 배경에는 지구 온난화와 기후위기의 심화가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같은 국제적 협력체가 설립되었으나, 이후의 기후 협상이 자본주의 체제와 경제 성장 논리에 종속되어 기후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기후정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기후위기를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재구성하여 불평등과 권력 불균형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등장했다. 기후정치는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 글로벌 거버넌스의 역할, 민주주의의 미래와 같은 근본적인 정치적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이론적・실천적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기후불평등 문제는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재구성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후정치가 중요한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기후정치는 여전히 국민국가 단위의 제한된 주권 체제와 경제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논리에 갇혀 있으며,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않는 한 기후위기 해결은 요원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조엘 웨인라이트와 제프 만의 책 『기후 리바이어던: 지구 미래에 관한 정치 이론』은 이러한 인식과 궤를 같이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배출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 부유한 소수의 선택이나 활동의 부산물이다. 그 소수의 부자들이 왜 아무 일도 안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정치적 미래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웨인 라이트・만, 2023:6-7)1”라는 문제의식과 ‘전 세계가 모두 빠른 속도로 탈탄소화하려면 정치적으로 어떤 모습과 변화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논의를 시작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자들은 지배적 경제체제와 주권의 범위를 기준으로 네 가지 시나리오(이념형)를 제시한다.

1. 기후위기 대응 시나리오

저자들은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 번째 기준, 자본주의는 지배적인 생산방식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행성적 주권의 도래와 관련되어 있다. 이때 주권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시행되는 복잡한 규제와 감시 메커니즘을 통해 누가 탄소를 배출할 수 있고 누가 배출할 수 없는지를 결정하는 권력(정치적 권위)으로 설명된다.

기후 리바이어던(Climate Leviathan): 행성적 주권과 자본주의의 결합

기후 리바이어던 시나리오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적 차원에서 기후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강력한 주권, 즉 행성적 주권(planetary sovereignty)을 구축하는 정치적 경로를 상정한다. 이는 홉스의 리바이어던 개념을 차용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절대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기반으로 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기후문제에 대한 권력은 국제기구 또는 세계정부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며, 탄소배출 규제를 강제하고 특정 국가나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후 리바이어던은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를 문제로 삼지 않으며, 오히려 자본주의를 기후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한다. 저자들은 이를 1930년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에 대응하여 등장한 케인즈주의와 비교한다. 녹색 뉴딜(Green New Deal)이 기후위기 돌파구로 제시되고 있지만, 근본적 체제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지구공학(Geoengineering)과 같은 기술적 해결책은 행성적 주권의 도래를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지구공학은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물리화학적 방식으로 조작해 온난화 속도를 늦추는 기술이다. 대표적인 예로, 성층권에 미세입자를 방출해 태양 복사를 차단하거나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제거하는 기술이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기술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행성적 주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기술적 접근은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 권력의 집중을 촉진하고, 기존의 북반구 국가들이 기후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사회관계들을 지키려 하는 추진력이 세계를 ”기후 리바이어던“, 즉 ‘지구 위기의 한가운데서 자본주의 엘리트들이 그들의 지위를 안정화시킬 적응 프로젝트들’을 향해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 시나리오에서 주권의 성격과 형태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상정한다. 지구의 생명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선포된 예외로 규정되는, 가능성 높은 행성적 주권의 출현.(P.63)

이 시나리오에서 기후위기 대응은 친환경 비즈니스와 기술, 원자력 발전, 탄소 포집 및 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CCS), 탄소 배출권 거래제 등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기후변화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보다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기술 및 경제적 도구들이 기후 리바이어던이 지리적・정치적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행성적 주권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지구적 차원의 기후 규제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려는 과정에서 기후 리바이어던 경로를 따르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저자들은 녹색 자본주의(Green Capitalism)가 기후위기를 되돌리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일부 정책은 사회 질서의 근본적 변화나 환경적 영향을 실질적으로 줄이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기후 리바이어던은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지연시키며 기후정의와 생태적 한계를 간과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기후 베헤못(Climate Behemoth): 자본주의와 반행성적 주권의 결합

‘기후 베헤못’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여전히 지배적인 상황에서 화석연료 산업과 연계된 반동적 극우 정치세력이 기후위기의 현실을 부정하고 행성적 주권의 형성에 저항하는 시나리오이다. 이 시나리오는 국민국가 단위의 주권을 강조하며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특히, 자유로운 소비주의, 반이민 정서, 기후변화 회의론을 결합한 기후 베헤못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보우소나루 정권의 브라질 등 세계 각지에서 극우 정치세력의 부상과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은 기후위기의 과학적 근거를 부정하거나 국제적 기후 협력에 소극적이며 국가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기후위기 대응에는 비협조적이다. 저자들은 기후 베헤못이 일관성이 부족하고 파편화된 정치세력으로,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해 주류 정치 흐름이 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기후 마오(Climate Mao): 비자본주의와 행성적 주권의 결합

‘기후 마오’는 비자본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행성적 주권을 구축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나리오로, 마오주의적 통치 방식을 기후정치에 투영한 형태이다. 이 시나리오는 투쟁적 인민대중에 기반한 혁명적 권력을 통해 대규모 정치·경제적 구조개혁을 빠르게 추진하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정치적·경제적 자원을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는 체제를 상정한다. 즉,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민주주의 체제보다 효율성과 집행력 면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 정부가 대기질 개선을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이룩한 사례를 기후 마오의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통제가 단기적인 환경 목표 달성에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위주의적 접근은 민주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위험이 있으며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도 권력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기후 마오 시나리오는 기후변화 대응을 기술적 문제로 축소하고, 기후위기의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기후 X(Climate X): 비자본주의와 반행성적 주권

‘기후 X’는 자본주의와 행성적 주권을 모두 거부하고, 다양한 규모의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실천하는 시나리오이다. 지본주의에 맞서며 국민국가의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그리고 탈중앙화된 기후위기 대응 노력들이 서로 연계하고 협력하여 거대한 흐름을 형성한다. 저자들은 기후정의운동에 기원을 둔 기후 X의 세 가지 원리로 평등(모든 인간의 평등에 대한 근본적 요구), 모두의 포용과 존엄성(빈약한 형태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다수 세계들의 세계룰 구성하는 연대(주권없는 행성적 비전)를 제시한다. 기후 X는 기후위기에 대한 연대와 공동체적 노력을 강조하며 급진적인 사회 변화와 기후정의를 추구한다. 기후정의운동, 지역 기반의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 탈중앙화된 커뮤니티 중심 경제 모델 등이 그 예이다.

기후변화 해결책은 이 복잡하고 위험한 위기의 순간에 각자 자신들의 삶을 일궈 가는 장소와 공동체에 머무는 사람들부터 나와야 하고 그들이 맡아야 한다.(P.31)

2. 네 가지 시나리오와 현실적 전망

2-1. 저자들은 네 가지 시나리오 중 ‘기후 X’를 지지하고, ‘기후 리바이어던’이 부상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현재의 국제적 기후대응 노력은 기후 리바이어던의 경로를 따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한다. 기후 리바이어던 모델에서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 경로를 따르지 않도록 하는 대응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 베헤못은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 등에 의해 나타나지만, 미래의 주류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 책이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이전인 2018년에 쓰였고, 현재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점에서 기후 배헤못에 대한 전망을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후 마오는 국가사회주의의 발전된 모습으로 급속한 변화를 추동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권위주의로 인하여 개인들의 존엄성과 연대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저자들은 기후 X와 같은 민주적이고 공동체 중심의 대안을 주장하지만, 일부는 이 경로가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며 구체적인 정치적 조직화 방안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2-2. 책에서 제시된 네 가지 시나리오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현실에서는 이 시나리오들이 혼재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기후 리바이어던과 기후 X는 대립적인 축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두 시나리오가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될 때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의도 존재한다. 기후 X는 기후정의와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다양한 개인과 공동체의 욕구를 대변하며, 아래로부터의 탈중앙화된 기후 행동을 지향한다. 반면, 기후 리바이어던은 이러한 움직임을 제도화하고 정책화하여 실행력 있는 체제로 조직화할 수 있다. 이처럼 기후 X의 민주적 토양 위에서 기후 리바이어던이 형성될 때,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정치적 조직화가 완성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결합 시나리오는 기후 리바이어던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녹색 뉴딜이나 녹색 케인즈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지속적인 자본 축적 논리가 제어되지 않으면 이러한 정책들은 물질적 생산과 에너지 소비를 확대하여 기후(생태) 위기를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기후 X의 사회적 요구와 감시가 결합할 경우, 이러한 정책들이 성장 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생태적 한계와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기후 리바이어던과 기후 X의 결합은 지속가능한 기후정치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제공하며, 위로부터의 제도적 접근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요구를 통합할 때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2-3. 탄소배출에 책임이 적은 약자가 기후위기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당하는 ‘기후불평등’을 해소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 정치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저자들은 그 대안으로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기후위기에 관한 정치적 우선권을 특정 권력에 부여하지 않는 체제인 기후 X를 제시했다. 그들은 기후 X가 글로벌 기후정의운동과 같은 직접행동과 마르크스주의 좌파와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고 밝혔다.

3. 기후 베헤못 시나리오의 부상과 글로벌 협력의 위기

에너지 위기로 인해 국가 중심의 보호주의적 에너지 정책이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 베헤못의 현실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사진출처 : Mysticsartdesign

3-1. 『기후 리바이어던』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발표된 책으로, 기후 베헤못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전 세계는 ‘강한 국가’의 귀환을 목도했다.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각국은 국경 통제 강화, 공공 보건 정책의 중앙집권화, 정부 권한의 확대를 통해 국가 주권의 강화를 추구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의 극우정치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이 반이민, 보호주의, 기후변화 회의론을 내세우며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글로벌 거버넌스에 심각하게 도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정부, 헝가리의 오르반 정권과 같은 사례는 이러한 극우 정치 흐름을 잘 보여준다. 팬데믹 이후 나타난 이러한 변화는 기후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기후 베헤못을 현실화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극우정치세력은 기후위기를 과장된 위협으로 간주하거나, 기후변화 대응이 경제적 성장과 일자리에 해를 끼친다는 논리를 펴며 국제적 기후 협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는 이러한 극우 정치 흐름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우 전쟁 이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많은 국가가 화석연료 사용 확대와 에너지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고, 국제 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협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위기로 인해 국가 중심의 보호주의적 에너지 정책이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 베헤못의 현실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3-2.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의 자국 이익 중심 정책에 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편입 주장은 미국의 고립주의적 행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더욱 부각시키며, 국제 사회에서 다자주의적 협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 조치는 국제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특히,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자국 우선주의에 치우치게 될 경우, 파리기후협정과 같은 글로벌 기후 협력 체제의 지속가능성도 위협받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을 더욱 촉진하고 있다.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국 내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중심의 에너지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연대를 훼손하고, 기후 리바이어던이 아닌 기후 베헤못 시나리오로의 이행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변화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실이 적응의 언어로 은폐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적응을, 자유주의적 상상력이 갖고 있는 한계 문제에 대한 기술적 번역이라고 비판함으로써 IPCC 제2실무그룹의 연구를 보완하지 않으면 안된다.(P.161)

4. 적응 개념의 재해석

저자들은 기존의 환경정책이나 과학담론에서 사용되는 ‘적응(Adaptation)’ 개념을 정치적・경제적 권력의 재편 과정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적응은 기후변화의 물리적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해수면 상승에 대비한 제방 건설이나 가뭄에 강한 농작물 개발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러한 기술적 대응을 넘어, 적응을 기후위기에 직면한 기존 지배 체제가 어떻게 재구성되고 강화되는지를 설명하는 정치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환경 문제를 넘어 기존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는 자신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적응’을 추진한다. 즉, 기후위기를 해결하기보다는 위기 자체를 새로운 시장 기회로 전환하려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경제적 불평등이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본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려 한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적응과 지구공학과 같은 기술적 해결책, 녹색 자본주의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구공학과 녹색 정책들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 기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다. 결국, 『기후 리바이어던』에서의 적응은 기술적 대응을 넘어 기후위기에 대한 정치적 조직화와 권력 강화의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기존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고, 특정 국가나 기업이 기후 거버넌스를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기후위기 대응에서 적응은 정치적・사회적 전환을 동반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5. 기후 리바이어던의 문제점과 대안으로서 기후 X

5-1. 기후 리바이어던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적 차원에서 강력한 주권을 통해 기후문제에 대응하는 시나리오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며, 이는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를 초래한다. 따라서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전환하지 않고서는 기후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 자본주의의 무한한 축적 논리는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또한, 기후 리바이어던은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통해 기후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을 취하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약화와 사회불평등의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기후위기의 책임이 적은 약자들이 그 피해를 집중적으로 받는 ‘기후불평등’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5-2. 기후 X는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기후문제에 대한 정치적 우선권을 특정 권력에 부여하지 않는 탈중앙화된 민주적 체제를 지향한다. 이는 기후정의와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다양한 개인과 공동체의 욕구를 대변하며,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과 연대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의 성장 이데올로기와 모델을 벗어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후 X 경로는 현실적인 실행 방안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와 조직화, 대안적 경제 모델, 시민참여 강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체제 전환과 기후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사회운동세력들이 참여하는 연대를 구축하여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화와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연대와 조직화에 생태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기후 X의 실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대안적 경제 모델 개발도 요청된다.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저(탈)성장 경제 모델을 연구하고, 이를 생태공동체 등에서 실험하고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 시민들이 기후문제를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기후행동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기후 X 경로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이상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전환하고, 민주적이고 탈중앙화된 체제를 구축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6. 그람시와 불교 철학 비교: 관계론적 세계관

이 책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적지만, 4장 ‘정치적인 것의 적응’ 3절에 소개된 그람시의 이론을 읽으면서 관계론적 세계관이나 불교의 화엄적 세계관과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그람시의 인간 정의와 세계관은 관계론적이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관계에 주목한다. 그는 인간을 능동적 존재로 간주하며 인간성과 자연이 분리된 고정적 실체가 아닌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하는 관계적 실체로 파악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특히 화엄의 연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람시는 인간을 자신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능동적 존재로 이해하며, 인간본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관점을 거부한다. 인간본성은 고정되어 불변하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인간본성은 어떤 영원한 본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람시는 인간을 단순히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수동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역사적 과정 속에서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동적 주체로 정의한다. 인간은 노동(work)과 기술(technology)을 통해 자연 세계와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자연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존재로 파악된다. 이때 인간성은 행동 과정이자 관계적 실천으로 나타나며,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고 변형한다. 결국 그람시에게 인간은 고정된 본질이 아닌,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재구성되는 주체적 존재이다. 이러한 관계론적 인간관은 인간과 세계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불교의 화엄 사상은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다. 특히, 인드라망 비유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불교의 관계론적 세계관은 모든 현상과 존재가 상호 침투하고 융합하여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불교의 무아론(無我論)은 고정된 자아나 독립적인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한다고 이해한다. 이는 그람시가 주장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인간본성과 유사하다.

그람시의 인간에 대한 정의와 연기론적 인간관은 관계론적 세계관이라는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그람시가 인간을 능동적으로 자신과 세계를 변형하는 존재로 보았듯이, 화엄 사상에서도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하며 함께 세계를 구성한다고 이해한다. 또한, 그람시의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에 대한 강조는 화엄 사상의 자연과 사회의 불가분성과 맥을 같이한다.


  1. 이하 『기후 리바이어던』을 인용한 경우에는 페이지수만 표기함.

이명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인드라망연구소에서 생명평화와 문명전환, 생태공동체를 모색하며 실천하고 있다. 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며, 여기에 불교와 생태적 관점을 더한 융합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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