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게티, 횡단의 음악』 을 읽고 ① – 음악-철학되기의 순간

국내 연구서인 『리게티, 횡단의 음악』(이희경 저, 2004)에 따르면 리게티 등장 전의 현대음악 사조는 음렬주의의 태동이었습니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으로 문을 연 음렬주의는 12개 음을 구조화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리게티는 그 안에 작곡가가 통제할 수 없는 임의적인 우연성이 내재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1968)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를 기억하시나요? 광활한 우주의 소리가 나오고 대사보다는 음악적 효과에 의해 상황을 극대화시켰던 그 영화 말입니다. 그 강렬한 음악이 바로 리게티(Gyorgy Ligeti, 1923년 ~ 2006년)의 음악이었다는 건 『리게티, 횡단의 음악』(이희경)을 접하면서입니다. 그 영화 속 음악 먼저 듣고 가겠습니다.

György Ligeti – Atmosphères – 2001: A Space Odyssey
György Ligeti – Requiem – 2001: A Space Odyssey
이희경 저, 『리게티, 횡단의 음악』(예솔, 2004)
이희경 저, 『리게티, 횡단의 음악』(예솔, 2004)

이 글은 현대음악가 리게티에 대한 글입니다. 음악과 철학을 결합시켜 무엇인가를 연구하고자 하시는 분의 소개로 리게티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후 국내 연구서인 『리게티, 횡단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음악에 발만 딛고 있는 저로서는 생소한 현대음악가지만,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힘과 동시에 철학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음악-철학되기의 감흥을 받았습니다.

이에 책 소개와 함께 책 속에서 들었던 리게티 곡들을 들으면서 리게티 음악의 횡단성과 들뢰즈, 가타리의 철학과 접속된 생성의 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리게티, 횡단의 음악』의 책 소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 책 중 3부 리게티 음악의 문턱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리게티 소개

“… 트란실바니아에서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태어나, 처음에는 루마니아, 이어 헝가리, 그리고 현재는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결국 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요. 유럽의 지성과 문화에 속할 따름이죠”

마리나 로바오바와의 인터뷰(1991.11.6. 함부르크)

리게티는 루마니아 왕국 시절의ᅠ트란실바니아에 태어나 그곳에서 음악을 배웠죠. 1943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로부터 음악 공부를 금지당하고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ᅠ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수감되었고 그의 어머니만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ᅠ부다페스트에서 음악공부를 다시 시작했고,ᅠ코다이 졸탄에게서 배운 후ᅠ1949년에 졸업하고 나서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루마니아 민족음악에 관심이 있었지만, 공산주의 정권은 서유럽과의 교류를 막았기 때문에 연구가 어려웠죠.ᅠ1956년, 공산당에 대한 헝가리 시민들의 항거 이후 리게티는 비엔나로 탈출하여 1967년에 오스트리아ᅠ국적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동유럽에서 접하지 못했던ᅠ아방가르드ᅠ음악을 접했습니다. 그때부터 리게티는 작곡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ᅠ(출처: 위키백과 리게티 죄르지)

이 책 저자인 이희경은 이런 리게티의 생애를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이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리게티는 어떤 단일성보다는 이단자, 아웃사이더의 극한 작업을 선호하였고 그럼으로 해서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럼 리게티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할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리게티가 밟고 올라갔던 음악적 토대가 어떠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테마적인 것에서 음렬적인 것으로(음렬주의, Total Serialism)

1950년대는 음렬음악이 본격적으로 발전되는 시대로,
피에르 불레즈, 루이지 노노, 카렐 고에이베르츠,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등이
쇤베르크의 12음 음악에 대항하여 발전되어 갔다면
리게티가 현대음악에 등장할 때는
불레즈, 슈톡하우젠 등의 음렬음악에 대항하는 위치가 리게티의 시작이었다.

음렬주의 시작의 열쇠를 쥐어준 음악가는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974년 ~ 1951년)로 12음기법(twelve-tone technique)이라는 작곡 방식을 창시하였습니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이란, 12음들을 평등하게 사용함으로써 조성을 없앤 음악 기법으로 여기서 12음은 우리가 계이름이라고 부르는 도레미파솔라시 7개 음과 그의 반음들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여 피아노에서 도와 한 옥타브 위 도 사이의 흰건반과 검은건반의 음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성을 없앴다는 점입니다. 조성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다장조, 라장조 등의 조가 있는 음악으로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와 같은 ‘도’가 있는 음악을 말합니다. 쇤베르크는 종래의 각 조의 ‘도’를 중심으로 멜로디와 화성이 진행되었던 조성음악에 있어 그 지배적인 ‘도’를 12음 모두에게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이는 가타리가 말한 n-1에서 1을 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쇤베르크는 n대신 12였지만 말입니다.

Schoenberg: Suite for Piano, Op.25 (Boffard)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은 오직 음고(음높이)에만 집중, 총체적인 음렬 (음들의 배열)의 조직화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며 쇤베르크의 테마적 (주제) 사고와 음렬이 갖는 구조적 사고와 모순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쇤베르크는 모티브를 발전시키는 주제 (테마)를 중심으로 작곡하는 과거의 기법을 유지함으로써 12음의 해방 이후 12음의 이용에 있어 종래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마치 자유로운 12음 활용의 장점을 테마라는 12음의 자유로움에 반대되는 답답한(?) 형식에 가두는 아이러니와 같다고나 할까요?

쇤베르크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조성 해체 이후 무조음악이 조성음악의 형식상 통일성과 역동성을 갖지 못한다는 인식이 그것이었습니다. 즉, 조성을 대체할 12음의 재료뿐만이 아닌 구성하는 방식이 필요하였습니다. 이에 음렬주의가 나타나게 됩니다.

음렬주의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이를 단순화시켜 작곡을 해보면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먼저, 12개의 음들을 도부터 반음씩 올라가는 번호를 매기고 임의의 순서를 만들어 봅시다.
예를 들어 5(E, ‘미’), 3(D, ‘레’),7,12,6,2,11,8,4,1,9,10 의 순서대로 음을 만들었다면 음표는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음 길이(음가)에 대한 숫자를 나열해 보죠. 위 음들 숫자 순서를 반대로 하여 나열해 보면, 10, 9, 1, 4, 8, 11, 2, 6, 12, 7, 3, 5. 12개의 음길이는 아래의 예에서처럼 음악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실제 나눴던 음길이 나열 중 처음 12개를 사용해보도록 해보죠.

그럼 우선은 음높이와 길이가 있는 음표가 아래와 같이 만들어집니다.

강세와 음색도 12개의 숫자를 나름대로(사선이나 뒤집기 등) 나열하여 만들면 강세와 음색도 표기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게 됩니다. 우선, 우리가 만든 위 악보를 실제로 들어보죠. 어떠한가요? 왜 음렬주의 음악이 난해하다 생각되는지 느낄 수 있지 않나요?

쇤베르크의 제자였던 베베른(Anton von Webern, 1883년 ~ 1945년)은 쇤베르크가 음렬을 테마화하는 것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베른은  음렬을 탈테마화, 작품 자체의 기본구조를 각인시키는 음정(음사이의 높낮이 거리)들의 기능으로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즉 음렬은 작품 속에 내재된 관계들의 총체이자 구조적 토대라는 것입니다.

베베른의 작품 24 〈아홉 악기를 위한 협주곡〉 Anton Webern – Concerto for nine instruments, Op. 24

여기서 사용된 12음렬은 네 개의 3음 그룹(음정관계 단2도, 장3도)으로 동형적인 구조의 집합이며 이 구조가 변형 규칙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음렬의 내부구조가 작품 전체의 조직화, 리듬, 강세, 음색의 조직화에 음렬적 사고를 도입한 것으로, 주제(테마)를 통해 작품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아닌 다양한 변형태들의 음렬적 관계를 구조화함으로 주제 없는 통일성, ‘부재하는 현존’을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불레즈(Pierre Boulez, 1925년 ~ 2016년)는 음렬 취급방식을 모든 음악적 요소(음높이, 음길이, 강세, 음색)들에게 일관되게 적용하였습니다. 모든 음악적 요소들에 대한 합리적인 통제가 특징으로 음악적 사고와 형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으며, 음악적 연관은 테마가 아닌 관계들의 총체로서의 음렬적 구조의 동형성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하였습니다.

Structures for Two Pianos: Book I 1a.

올리비에 메시앙 (Olivier Messiaen, 1908년 ~ 1992년)은 〈네 개의 리듬연습곡〉 ‘두번째 음가와 강세의 모드’에서 음고, 음가, 강세, 어텍(음색) 각각의 매개변수들의 독립적인 사용과 사전조직화에 치중하였습니다.

Messiaen: Quatre Études de Rythme – II. Mode de valeurs et d’intensités

’57년 불레즈의 강연에서는 우연성의 요소들을 음렬음악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음렬주의 음악은 위 예들에서도 보았듯이 들리는 결과로 보았을 때, 엄격한 구조화에도 불구하고 우연성의 음악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음렬주의 음악이 우연성과 결합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리게티의 음렬주의의 모순, 즉 작곡가의 손에서 벗어나는 우연성의 계기가 안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음렬주의 비판을 시작합니다.

쇤베르크에서 음렬주의의 출현까지 ‘천개의 고원’까지는 아니더라도 12개의 고원이 형성되었지만 독재자들은 이 12개의 고원을 어떻게는 옭아 매려는 시도를 합니다. 쇤베르크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12개 고원들을 테마파크(?)화하였고, 뒤를 잇는 음렬주의 음악가들은 기계적인 구조를 만들어 12개의 고원을 자기 영토화, 재영토화하려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계적인 구조 또한 쇤베르크의 테마처럼 12개의 고원을 자유롭게 횡단하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여기에 리게티의 음렬주의의 비판과 12개음의 자유로운 횡단의 선이 그어집니다.

아, 이 광활한 대지에, 고원에 무슨 선들을 그어야 할까요?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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