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마감할 때를 상상해보는 자리 – 제주할망해방일지 견문록

2022년 11월 제주 선흘1리 9명의 할망들이 화가가 되어 빈 창고를 갤러리 삼아 작품을 전시하고 관객을 초대했다. 할망들이 반짝이며 설레는 눈빛으로 다소 쑥스럽게 그러나 자랑스럽게, 낯선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그 모습은 60대 이상의 노인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대가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백발의 미치광이 노인의 사연이 담겨 있다. 그가 물에 빠져 죽으려 하자 아내가 슬피 울며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를 곽리자고가 듣고 그의 아내 여옥에게 전해주어 여옥이 그 가사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백발노인이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사연을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백수광부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현실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서 좌절한 결과일까, 부정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제주할망해방일지》 전시회 포스터. 사진제공 : 우수경
《제주할망해방일지》 전시회 포스터. 사진제공 : 우수경

노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라면 좋겠지만, 최근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이 OECD 가입국에서 수년째 평균이 크게 웃도는 1위라고 한다. 전 연령에서 한국이 자살률이 세계 1위인데 60대 이상 노인 자살률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최근 10대의 자살률은 1위가 아닐 때도 있다.). 모든 사연을 알 수 없지만 통계에 의하면 건강 문제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그 이유라는데, 그들은 더이상 희망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끝없는 낙관은 유전이나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망오가 된 나도 세상 사는 게 버거운데, 인생 선배들이 살기를 포기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달라질까. 성글게 말해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미래가 아니라 근미래-나와 내 가족이 살아갈 미래를 당겨와 살면서 우리의 미래를 자본에 연결하고 상상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과거는 빨리 잊고 지금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소홀하게 여기는 것 같고, 생산은 고사하고 소비조차 할 수 없는 노인들이 상당한 박탈감을 느낄 것 같다.

먼저 떠난 이들의 사연에 가슴 아파하며 살아남은 자들은 이들을 애도하기 마련이다. 「공무도하가」의 배경설화에서처럼 자살하는 현장에서 울며 통곡하거나, 이 기막힌 사건을 가까운 이에게 말로 전달하거나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기록하게 된다. 요즘은 고독사하는 노인이 많아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이 아닌지라 처절한 죽음은 그 사연조차 알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록을 통해 전해진 사연은 고인은 물론이고, 고인의 가족과 지인, 고인과 연결된 이 사회의 오늘과 어제를 애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주 선흘1리 화가 할망들의 작품. 사진제공 : 우수경
제주 선흘1리 화가 할망들의 작품. 사진제공 : 우수경

노인이 되면 하늘의 명을 깨닫고(知天命, 50세),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70세) 줄 알았던 적이 있었다. 밀양 할매들이 지킨 양심과 품격에 비해 몹시 초라한 내 모습에 부끄러워하며, 고난의 세월 속에서 노인들이 지켜낸 인생을 무조건 존중하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나의 동심을 무참히 깨버린 노인을 통해 한 사람에게 연결되고 확장되는 대상이 나이가 들어도 세속의 어떤 가치를 벗어나지 못할 수 있음을 깨닫고 절망 속에 있을 때 제주 할망들을 만났다. 할망들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은 어떤 대상과 연결되고 심화되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계속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22년 11월 제주 선흘1리 화가 할망들이 반짝이며 설레는 눈빛으로 다소 쑥스럽게 그러나 자랑스럽게 낯선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암울한 기운을 반사한다는 의미에서 ‘반사’라는 별명을 가진 최소연 작가가 할망들의 그림 선생이 되어 동네 빈 창고를 일일 미술 스튜디오를 전환해내는 프로젝트를 동료 예술가와 2021년 봄에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을 화가가 된 할망의 집을 갤러리로 삼아 관객을 초대한 자리가 《제주할망해방일지》이다. 창고가 달린 마당이 있는 집에 사시는 할머니들이 화가가 되어 매일 보는 풍경은 물론이고 입던 옷, 시장에서 새로 산 옷 등 생활 소품, 농기구 등 100여 점의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는 할머니들의 생활 공간이었다. 외양간이 귤 창고가 되었다가 세월의 흔적이 예술로 재탄생되었고, 9명의 할망 화가들이 예리한 관찰력으로 섬세한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가 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 전시회에서 할망의 작품에 매료된 한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전시회 제안을 하기도 했다.

《제주할망해방일지》가 1년 만에 뚝딱 나올 수 없다. ‘그림 선생’ 최소연 작가는 볍씨학교 이영이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2021년에 37년생 홍태옥 할망을 소개받았다 한다. 할망들과 서울내기 최소연 작가를 연결하는 데 볍씨학교 학생들의 역할이 컸고, 그림 선생의 털털함과 섬세함, 그리고 따뜻함이 할망의 예술성을 촉진했고, 이들을 응원하는 마을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 프로젝트가 가능했으리라. 〈할머니 예술창고〉가 열리는 수요일에 드로잉스튜디오에서 창고가 있는 할머니 댁에서 그림을 그리면 청소년들이 집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할머니에게 질문도 하고 신기한 물건의 유래나 사용법도 알아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는 마음을 열리고 그림 선생의 할망에 대한 애정이 더해 할망들의 예술성이 발현되는 물꼬가 이어졌을 것이다. 이제는 혼자서도 그림을 잘 그리신다는 할망들과 마을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었을 것. 서로를 환대하며 연결된 돌봄의 세계가 만들어낸 그림이 할망의 그림이 아닐까.

생활 소품, 농기구 등과 함께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는 할머니들의 생활 공간이었다. 사진제공 : 우수경
생활 소품, 농기구 등과 함께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는 할머니들의 생활 공간이었다.
사진제공 : 우수경

할망의 그림에는 할망의 짤막한 글도 함께 한다. 그림에 대해 할망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림 선생님이 포착해내었다고 한다. 그림 속 제주 방언은 그림을 이해하는 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제주도에서는 성별불문 일단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삼춘’이라고 하는데, 시대를 앞서간 합리적인 표현이기도 하고 정감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림에는 제주 특유의 말맛과 함께 운치를 더한다. 표준어는 정서와 그 사람의 역사가 거세된 말일 수도 있다. 그림에 곁들인 글이 맞춤법에 어긋나서 할망의 입말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림 자체가 살아있는 교과서인 셈이다.

할망의 그림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잘난 것만 아끼지 않는다. “상처 난 거도 버리지 마라. 참외는 어떤 것은 상처도 나고 어떤 것은 곱게 자란다. 맛은 같다.” 그리고 하늘과 연결되어 너그럽고 포근하고 담담하다. “바람 안 불고 일기가 좋으면 푸른 오이가 하영 열었져 하늘이 도와주어서 마음이 편안하여.” 또 이해를 못해서 한참을 머뭇거리게 되지만 알고 나면 유머가 넘친다. “어거순 나시 동문 시장에 천지주”. 뿐만 아니라 무를 결혼시키는 상상력은 참으로 기발하다. 개인의 성장만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도 드러난다. “할망 친구들도 같이 그림을 그리니까 재미있어. 놈 그림 그린 것도 보고 나 그림 그린 것도 보면 더 재미가 있어.”

제주 선흘 할망의 그림 찬양은 삶에 대한 찬양이다. 그림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세상과 연결된 나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지천명(知天命),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삶 속에서 자신을 펼쳐내면서 내가 곧 하늘이 된 순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림 선생 최소연 작가는 ‘할머니 공간 곳곳에 할머니가 그려놓은 그림을 붙여놓고 그림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4.3 때 제주에서 강조돼야 할 것이 4.3뿐만 아니라 4.3으로 인해 잃어버린 교육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홍태욱 할머니가 하루가 멀다고 계속 그림을 그리시는 것에서 할머니는 스스로 불타 버린 학교를 회복하고 마음을 재건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제주 선흘의 화가 할망들은 마을을 통해, 예술을 통해, 관계를 통해 희망을 만들어간 것이리라. 많은 노인들뿐 아니라 우리들이 삶을 마감할 때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면 좋겠다. 제주 선흘 할망들이 보여준 희망의 메시지가 지역 곳곳에서 번져가기를 바란다.

우수경

‘경험디자이너’라는 자의식으로 부산에서 고등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촛불 하나 밝히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삶에 있어 기쁨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위한 사랑과 용기를 반려견 동풍이에게서 전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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