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 이야기] ⑬ 엄마는 먼 쓸데없는 오지랖을 그리 피우고 계세요?

나이가 많고 쇠약해져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는 보성댁은 칠십 초반의 큰집 셋째 조카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는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부고에 보성댁은 쓸쓸하고 허전하다. 혼자 남은 조카사위가 안타까워, 큰집 큰조카에게 가보라고 하겠다는 말을 딸에게 했다가 그런 오지랖 부리지 말라는 핀잔을 듣지만 보성댁은 단념이 되지 않고, 딸은 그런 어머니를 걱정한다.

“할머니, 저 이제 갑니다. 국 냄비에 있고 고기 남은 것도 후라이판에 있응께 이따 디어 잡솨요.”
“예, 고생했소. 내일 봅시다. 이”

그렇게 요양보호사는 떠나고 보성댁은 혼자 남았다. 리모콘을 들어 텔레비전을 켰다. 상덕씨가 세상을 뜨기 전부터 보던 TV가 슬슬 말썽을 부리고 고장이 잦아질 때, 막내아들이 저희들 집에 더 큰 거 샀다고 서울에서 가져와 설치해 준 TV는, 화면도 더 커서 보기도 좋았고 뒤가 뚱뚱하지 않아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벌써 7,8년이 지나 그런지 가끔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았다. TV에서는 예쁜 여자아이가 시장을 누비고 까불면서 시장 사람들과 물건을 흥정하고 소개하고 있었다. 다시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트로트가 나오는 채널을 찾았다. 보기에도 예쁜 남녀가 흥겹게 떠들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옴마, 동원이 저것은 째깐은 것이 어찌 저리 이쁘고 노래도 잘 흐까 이. 근디 많이 커븠다. 능청시르와지고. 근디 요새는 왜 영웅이가 쩌그에 안 나오제? 영웅이 볼라믄 딴 데 틀어봐야겄네.’

한 방송사에서 트로트 경연을 시작한 이후 보성댁은 트로트에 푹 빠져부렀다. 머리 벗겨지거나 희끗희끗거나 늙수구레해지는 사람들이 주로 부른다고 생각했던 트로트를 젊은 애들이 나와 신나게 불러젖히니 더 맘이 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트로트 방송을 보며 늦은 오후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큰집의 큰조카였다. 정식이와 일주일 차이로 태어난 그 아이, 형식이.

“어이, 나네. 먼 일로 전화를 했능가.”
“작은엄니, 강원도 누님이 죽어븠다요.”
“으이? 나랑 엊그저께도 전화했는디 죽어븠당가! 오메! 어쩌끄나!”
“예 그동안 많이 아팠는갑습디다.”
“잉, 나랑 전화함서 아파 죽겄다고 전화도 못 흐겄다고 울어쌓드만 그새 죽어부렀네. 아이고 어째야 쓸끄나.”

그저 조카를 위해 기도드리는 것이 보성댁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출처 : HeungSoon
그저 조카를 위해 기도드리는 것이 보성댁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출처 : HeungSoon

전화를 끊고 나자 슬픔과 쓸쓸함이 밀려왔다. 요 근래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그것도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 마음이 허전했다. 얼마 전, 포도밭 하던 영우네 엄마가 죽었을 때도 말할 수 없이 마음이 허전했다. 사람이 좋아 보성댁을 언니처럼 따랐고, 같이 성당도 다니고, 아들끼리 친구라서 심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졌던 사람이라 마음이 너무나 좋지 않았었다. 거기에다 장례 미사가 끝나고 장지로 떠나려 할 때 영우 엄마와 친구처럼 서로 도와주고 나누며 살던 태환이 엄마가 관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모습에 더욱 가슴이 저려 왔던 참이다. 그렇게 허전한 마음을 둘 곳 없어 하던 참에 칠십 초반인 조카가 죽었다는 소식은 보성댁을 더 쓸쓸하고 허전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처음 시집왔을 때 갓난아이였던 조카, 셋째 딸로 태어난 탓에 지나가던 이웃 아낙네가 ‘아이고 애기가 흐그니 영 이쁘네.’ 했다가 시아버지로 하여금 ‘왕산만흔 본이 멋흐꺼이요?’ 소리지르게 만들었던 조카.

며칠 전 어찌 지내나 갑자기 궁금해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더니 “작은어매, 나가 많이 아프요. 아파서 죽겄소. 전화흘 기운도 없어요.” 하며 울던 조카였지만 이렇게 급히 가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연락이 갔는지 조문 다녀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잘 갔다오라 하고 그저 조카를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보성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강원도에 갔다온 아들이 보고차 집에 찾아왔다.

“이, 초상은 잘 쳤다냐.”
“아이고 어디가요. 누님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죽었다고 부검해야 된다고 해서 조문만 받고 출상은 난중에 한다요.”
“이? 뭐 그런 경우가 있다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죽으믄 그런다요. 진짜 죽을 때가 되어서 죽은 건지 누가 와서 죽여븐 건지 확인해야 된다요. 법이 근다요.”
“그런 법이 다 있다냐. 희한도 흐다.”
“예, 그것도 강원도에서는 원주에 있는 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디, 예약이 많아가꼬 월요일에 가서 검시하고 결과 나온 담에 갖다 묻는다요.”

하, 참 법이 이상도 하다. 누가 갸를 죽였을 거라고 혼자 생각했지만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근디, 매형이 마누라 없이 못 산다고 울고불고 난립디다.”
“글디야. 그러기도 흐겄다. 여태 마누라가 다 해주다가 인자 혼자 살라믄 안 막막흐겄냐.”“긍께 말이요. 짠합디다.”

그러고 이야기를 나눈 아들은 마당에 나가 텃밭에서 괭이질 좀 하고 풀 좀 뽑다가 “엄니, 여그다가 생강 심으문 쓰겄소. 나가 난중에 생강 씨갓 갖고 올게요.” 했다.

“이, 생강 씨갓이 있는가.”“예, 좀 있어요. 갔다가 메칠 후에 옴서 갖고 오께요.”
“이, 알았네.”

그러고 아들이 간 후 보성댁은 생각에 잠겼다. 아이고 젤 마나랑 그리 좋아함서 살더만 각시가 가불고 없응게 외로운갑네. 어째야쓰까. 이, 형식이 보고 한 번 가보라 해야 쓰겄다. 한 번 잠 가보라고 해야제. 보성댁은 전화를 들어 형식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예, 작은 엄니.”
“어이, 요새 바쁜가.”
“딱히 바쁘지는 않아요.”
“이 그럼 한 번 시간 내서 우리 집 한 번 들르소. 나가 할 말이 있네.”
“예 알았어요. 한 번 갈게요.”

전화를 끊고 형식이가 찾아오면 즈그 매형한테 한번 갔다 오라는 말을 하리라 생각했다.

다음날 우체부가 와서 고지서를 하나 주고 갔다. 이것이 머이다냐? 펼쳐보니 건너편에 국유지 사용료였다. 성가셨다. 나가 젊어서 기운이 있으믄 그 땅 불하받아서 머이든 심을 건디 지금 마당에 풀도 못 매는 나가 그 국유지가 먼 소용이여? 불하도 해준다 해준다 함서 해주지도 않고. 아이고 12만 원이나 되네. 얼른 내쁠끄나. 근디 통장에 돈이 있다냐? 어매? 돈이 없네? 왜 야가 돈을 안 넣었을꼬? 전화해 봐야쓰겄다. 보성댁은 전화를 들어 셋째딸 번호를 찾았다.
“여보세요.”“아이, 나다.”
“예 엄마, 왜요?”
“이, 니가 줄 돈이 이번 달에 아직 안 들어와서.”
“예? 그럴 리가……. 아, 엄마 오늘이 며칠인디요?”
“어? 메칠?”
“12일 밖에 안 됐구만. 매달 17일에 나가게 설정했는디 아직 날짜가 안 되었응게 안 들어 갔지. 메칠만 더 기달려 보세오.”
“잉, 그러냐. 알았다.”
“근디 왜요? 돈이 없어요? 돈 쓸 일 있으세요?”
“이, 저 건너 밭 있쟎냐. 거그다 느그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썼더니 이라고 세금이 나온단 마다. 12만원이나 나왔다.”
“아니,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써서 세금이 그라고 나오믄 엄마가 내실 일이 아니라 큰집 형식이 오빠랑 의논해야지요. 아니믄 어디 성당 산이나 이런 데로 이장을 흐든지요.”
“이 그러제. 안 그래도 나가 할 말이 있어서 형식이 잠 오라고 했다.”
“아, 그래요?”
“아 포천 느그 형부가 각시 죽어븠다고 그러고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흔단다. 그래서 형식이보고 잠 가보라 할라고.”
“아이고 엄마, 그걸 왜 형식이 오빠보고 가보라 그래요? 형부가 인자 일곱 살이요, 열일곱 살이요? 칠십이 넘은 어른이여, 어른. 그러믄 밥을 묵든지 굶든지 본인이 알아서 해야지. 형식이 오빠보고 가보라 해서 멀 하라고요? 죽은 언니를 살려낼 것이요, 새로 각시를 얻어줄 것이요?”

딸이 흥분해서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엄마, 형식이 오빠 오면 행여나 그런 소리 절대 하지 말고 산소 이야기만 흐씨요!”
“이, 알았다.”
“아니, 그 먼 강원도를, 형식이 오빠가 간다고 해도 말려야 할 판에 엄마는 먼 쓸데없는 오지랖을 그리 피고 계세요. 글고 형부가 문제가 있으문 자식들도 멀쩡히 있는디 그 자식들이 어쩌든지 해야지. 마누라 죽어븐 처남이 뭘 할 수가 있다요?”

본인 어머니가 하는 양이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는지 딸의 말이 길어지고 있었다.

“형식이 오빠가 지금 재혼한 마누라 눈치 보느라 자식들하고도 멀어지고 있는디 뭐, 누나 죽은 매형? 신경이나 쓰겠어요? 엄마만 이상한 할매된께 절대로 그런 말 하시믄 안 돼요. 알았지요? 절대로 하지 마요.”

사실 형식도 사는 게 녹록치 않기는 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 덕에 물려받은 재산으로 밥 먹을 걱정을 하지 않고 살기는 하지만, 아들 둘, 딸 둘을 낳고 살던 본처가 헛바람이 들어 이혼하고 떠나버린 후에 꽤 오래 혼자 살다가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과부와 재혼을 했다. 사람이 순탄하고 모나지 않아 전처 자식들과도 별 문제없이 잘 살았는데 몇 년을 같이 살다가 어느 해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후 전처가 자신이 술장사할 가게를 내주면 재혼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조건을 걸면서 재혼을 요구해 와, 싹싹 빌고 와도 해줄까 말까인데 그런 요구를 하냐며 물리쳐 버렸다.

그 후에 둑실 사는 과부를 하나 만나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시할아버지 제삿날 작은 어머니인 보성댁도 있고 보성댁의 큰아들인 정식도 있는 자리에서 전처 자식인 큰아들에게 아버지한테 잘못한다고 시비를 걸며 소리를 질러댔다. 욕을 하며 악을 써대니 형식이 밥상을 엎으며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고선 엉뚱하게도 자신의 아들에게 화살을 돌려 야단을 치니 아들과 등을 지고 살게 되어 버렸다. 부모가 살던 집에 살면서 그 집에 모여서 제사도 지내고 했는데 그 집을 세를 내줘버리고 새로 만난 부인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버렸다. 아들하고만 거리를 두게 된 게 아니고 이후 시누이들이 찾아와도 찾아오지 말라고 거칠게 내치니 모처럼 친정에 다니러 온 조카들이 보성댁을 찾아와 하소연을 하곤 했다. 뭘 어떻게 해주는지 형식은 그 여자 만나고 사는 게 좋다고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집안에 마지막 남은 어르신이고 작은어머니라고 보성댁은 종종 들여다 보고 과일을 사다 놓거나 용돈을 주고 가거나 해왔다.

딸의 말이 길어지니 보성댁도 살짝 짜증이 났다.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알았응께 그만 해라.”
“알았어요. 저 며칠 있다가 한번 갈게요. 밥이랑 잘 챙겨 드시고 따뜻하게 하고 계세요.”
“그래 알았다.”

딸이 펄쩍 뛰며 난리를 쳤지만 보성댁은 자신이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나가 그래도 이 집안에 마지막 남은 어른인디 뭐라도 해야 쓴 거 아닐까 형식이가 언제 올랑가 몰라도 한번 가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어둑해지는 밖을 보며 저녁을 챙겨 먹어야 쓰겄다 중얼거리고 있었다.

보성댁과 통화를 끝낸 셋째 딸은 어머니의 이런 행동에 마음이 답답해져서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자신의 큰언니에게 전화했다. 우리 어머니가 너무 오래 사시는 가 봐, 저런 답답한 소리나 하고 있고… 엄마 더 망가지기 전에 얼른 데려가 주시라고 기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길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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