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 청년’ 아젠다 확산을 위한 지역 활동가 간담회

리빙랩(Living Lab)이란 시민의 문제를 시민이 해결해보자라는 게 주요한 기조라 할 수 있다. 리빙랩의 기조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가족돌봄 청년’ 문제를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해결할지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모여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였다.

1. 간담회의 전개와 목적

2023년 1월 9일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CGSN 팀에서는 대전충남세종지역혁심플랫폼이 주관하는 리빙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전세종충남 청년 돌봄자 아젠다 확산을 위한 지역 활동가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리빙랩(Living Lab)이란, 말 그대로 ‘생활 실험실’이라는 의미로 모두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곳곳을 실험실로 삼아 사회문제의 혁신적 해법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시민의 문제를 시민이 해결해보자’라는 게 주요한 기조라 할 수 있다. 리빙랩의 기조를 통해 해당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가족돌봄 청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해결책을 제시하기 이전에 지역사회에서 가족돌봄 청년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사회적으로 가족돌봄 청년 이슈와 담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청년 당사자 인터뷰, 인식조사, 유튜브 영상 제작 등을 했으며, 나아가 지역사회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NGO, 마을공동체, 청소년·청년 활동가 등 각 필드의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일반 시민이 아닌 지역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일차적인 간담회를 가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내 확산의 파급효과를 고려하였다. 간담회 이후 활동가들의 각자 자신의 필드로 돌아가서 가족돌봄 청년을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젠다 확장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둘째, 돌봄의 공동체적 속성을 고려하였다. 돌봄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사회의 문제이다. 따라서, 지역활동가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맥락은 가족돌봄 청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배경과 전개 속에서 활동가 7명과 함께 간담회를 시작하였다.

2. 지역 활동가가 제시한 지역의 가족돌봄 청년과 함께 살아가기

1) 어른친구

당장의 해결은 해줄 수는 없지만, 주변에 있는 ‘어른친구’의 존재는 가족돌봄 청(소)년들에게는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다. 
사진출처 : Priscilla Du Preez
당장의 해결은 해줄 수는 없지만, 주변에 있는 ‘어른친구’의 존재는 가족돌봄 청(소)년들에게는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다.
사진출처 : Priscilla Du Preez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가족돌봄 청년을 위한 제언은 제도적, 행정적인 부분 보다 주변에 대한 관심이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주변에 가족돌봄을 수행하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큰 지원을 해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향한 작은 관심과 조언이라도 해준다면 적어도 청(소)년 당사자 입장에서 사회적 소외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혹자에게는 이 제언이 상당히 추상적이고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영 케어러 선행연구와 당사자 인터뷰를 가지고 교차확인을 한다면,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영 케어러의 경우 자신의 돌봄을 잘 드러내지 않고, 이러한 특성이 이들의 돌봄 부담을 가중시키고 제도적으로도 발굴하기 어렵다. 실제 당사자 청년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굳이 자신의 돌봄상황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지, 부끄럽기도 하고 주변에 알린다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등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돌봄이 지속될수록 고립은 강해질 것이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관심과 조언을 해준 ‘어른’을 만났다는 당사자 청년의 인터뷰에서 활동가들의 주장과 부합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관계적인 게 어렵다 보니까 그런 관계적인 지원을 받았을 때 그게(도움이) 좀 컸던 것 같아요. (중략) 1년 반 동안 저를 저녁을 매일 사주신 분이 있어요. 거의 매일 그분이 이제 은사님인데, 감사하게도 매일 뭐 하냐고 전화하셔서 저녁 사줄 테니까 오라고 그러시고 (중략)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뭐 어떤 부모님의 역할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래서 그런 어떤 에너지들을 받을 수 있고, 그리고 회복을 할 수 있었던… 그런 것들이 사실 지금도 제 원동력 중에 하나가 되고 있고요.”

가족돌봄 청년A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듯이 청년A는 매일 저녁을 사주었던 ‘어른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 덕분에 힘든 돌봄 상황에서도 심리적 지지가 되었다고 한다. 혹자에게는 추상적이고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활동가들의 제언은 가족돌봄 청년을 위한 제언으로서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당장의 해결은 해줄 수는 없지만, 주변에 있는 ‘어른친구’의 존재는 가족돌봄 청(소)년들에게는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다.

2) 쌀보다 필요한 것

다양한 제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바로 ‘쌀보다 필요한 것’이라는 한 마을공동체 대표의 말이었다. 아마 제3자의 입장에서는 가족돌봄 청년이 겪는 어려움 중 경제적 부담이 제일 크고, 그로 인해 경제적 지원, 바우처 지원사업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해당 프로젝트에서 20~60대 500명을 대상으로 ‘가족돌봄 청년 인식조사’를 실시하였는데,1 가족돌봄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으로 23%가 ‘경제적 지원’이라고 응답하였다. 반면에 청년 당사자 인터뷰에서 이들은 경제적인 부분보다 다른 지원을 희망했다. 이러한 격차는 당사자 청년들을 위한 지원을 고려할 때는 사회인식적인 측면에 기대어 일방향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간담회에 울려펴진 활동가의 말처럼 가족돌봄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단순하게 쌀처럼 물질적인, 물화적인 것이 아니라 앞서 제시한 관계나 심리적 안정 등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삶과 돌봄을 양립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시민들은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유심히 살펴보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 이 논조는 단순히 가족돌봄 청년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존재든, 그것이 취약계층이 되었든 특정 집단이 되었든 그들은 위한 지원을 고려할 때는 반드시 당사자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쌀이 아니라 다른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 지자체, 민간 영역에서 지원하는 양과 질이 쌀과 같이 물질에 한정되기보다 지원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3) 호명을 통한 가시화, 가시화를 통한 아젠다 확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해당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만해도 가족돌봄 청년을 모르던 활동가들이 모두 과거의 기억 속에서 ‘아, 이 친구 이제보니 가족돌봄 청(소)년이었던 거 같아’라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었다. 또는 주변에서 단순히 ‘어려운, 복잡한 가정사를 가진 아이’,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 등 가족돌봄 청(소)년의 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는 가족돌봄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사회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호명이 없었을 뿐, 사회의 돌봄 사각지대에 늘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활동가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족돌봄 청년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해당 간담회를 통해 과거 또는 현재의 가족돌봄 청년에게 호명과 존재의 가시화를 시켜준 셈이다. 이러한 존재의 호명은 해당 간담회이자 프로젝트의 목적 중 하나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가족돌봄 청년의 개념이 확립된 지역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필드로 돌아가 다시 한번 자신이 있는 장에서 가족돌봄 청년을 언급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 내에서도 가족돌봄 청년 아젠다 확산은 더욱 확장될 것이라 기대한다. 낯선 존재를 호명하고, 이 호명된 존재를 공론장에서 지속적으로 불러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지역 활동가들과의 아젠다 확산에 최종 목적이자 기대효과라 할 수 있다.

3. 이후: 대전의 가족돌봄 청년 조례 제정에 한 걸음

간담회 이후, 2023년 2월 21일 대전광역시 시의회에서는 가족돌봄 청년 조례 제정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1월에 했던 간담회에 참석한 지역 활동가가 시의회에 가족돌봄 청년과 관련해서 언급하게 되었고, 조례 제정의 시작점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1월에 실시한 간담회의 이름처럼 ‘아젠다 확산’에 적합한 결과일지 모른다.

시의회에서 열린 간담회가 더욱 의미있던 이유는 인터뷰에 응해주었던 가족돌봄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간담회에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선 간담회의 ‘쌀보다 필요한 것’이라는 기조에 맞춰 당사자성을 가진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조례가 당장 제정이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시민이 직접 시민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리빙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역 활동가들과 가진 자리가 행정의 절차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성과라 생각한다. 나아가 더이상 돌봄이 사적영역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 다함께 공적인 영역에서 고민하고 담론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 해당 프로젝트에서는 가족돌봄 청년인식 및 실태조사를 패널조사를 실시함

조명아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젠더와 노인, 그리고 돌봄.
앞으로 다양한 가족과 젠더의 돌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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