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긍정하기 -『묵묵』을 읽고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철학 수업을 통하여 저자는 ‘노들야학‘에서는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 “삶의 포기”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노들야학’이라는 장애인 야학에서 이루어진 현장 인문학 강연을 통해 장애인들로부터 몸으로 배운 철학자의 실패와 배움의 기록물이다.

『묵묵』(돌베개, 2019)의 저자 고병권은 니체 연구가이며, 니체 이외에도 마르크스, 스피노자 철학에 해박한 철학자이다. 또한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으며, 친구들과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행복론’이다. 현재는 연구공간 “수유너머 104” 그리고 노들야학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철학 수업을 통하여 저자는 ‘노들야학’에서는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 ‘삶의 포기’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노들야학’이라는 장애인 야학에서 이루어진 현장 인문학 강연을 통해 장애인들로부터 몸으로 배운 철학자의 실패와 배움의 기록물이다.

고병권 저 『묵묵』 (돌베개, 2019)
고병권 저 『묵묵』 (돌베개, 2019)

저자는 어느 시설에서 ‘앎이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에 한 청중이 주저주저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저의 오빠가 지체장애인인데 저의 오빠에게도 앎이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철학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이러한 철학이 장애인들에게도 유용할까? 하는 것이 저자의 의구심이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철학은 우리에게 지적인 만족감만을 주는 것은 아닐지 하는 반성에서 저자는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철학 수업을 통하여 진정한 공부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철학을 통한 성숙’이 아니라 ‘철학의 성숙’을 강조하면서 다음을 인용한다.

“플라톤은 결함 있는 아이들은 내다 버리라 했고, 칸트는 이성이 없는 존재들에게는 인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언어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고, 그 덕분에 그저 소리만 질러대는 동물과 달리 ‘정치적 존재일 수 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듣지 못함’을 상대방의 ‘말하지 못함’으로 교묘히 바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이라는 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일깨움이라고 한다. 즉 일깨움이 만들어 내는 삶의 변화, 이것이 바로 철학의 목표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장애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들 외에도 소외되고 있는 계층인 노동자 난민 그리고 세월호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얼마 전에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도착했을 때의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나.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의식 수준의 현주소이며, 미래에 우리가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여 씁쓸해 한 경험이 있다. 저자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가 우리의 안위를 걱정하고 우리의 빵을 움켜쥐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흔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존이 있지만 사유가 없고 개인이 있지만 인간이 없다. 나를 떠나 너에게 다가갈 수 없다면, 즉 내 안에 네 자리를 허용할 수 없다면, ‘일깨움’이라는 말도 불가능하고 ‘함께’라는 말도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우리는 효율과 경쟁이라는 틀 속에서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함께’가 아니라 ‘각자도생’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희망이란 미래를 보며 갖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없는 ‘맹목’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희망’이란 결국 현실에서의 ‘결핍’을 만회하려는 하나의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루쉰도 ‘희망’에 대해서는 염세주의자였다. 루쉰은 희망이나 절망이나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절망이나 희망 모두 내 결핍을 메우려는 맹목적인 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결핍’을 결핍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결핍의 대상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견유주의 철학자인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대왕과의 대화를 인용하면서 ‘결핍’에 대한 사유를 말한다.

“‘무언가’에 대한 결핍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무언가’를 가진 사람의 권력이 커진다. 디오게네스는 ‘결핍’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당당했던 것이다.”

결핍을 긍정하며, 어두운 밤길을 침묵하며 걸어가듯이 ‘함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자는 조언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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