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관계’ 사이에 선 공동체

모든 관계는 유한하다. 부모와 자식은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 어느 시의 구절처럼 “고향이 망명지인 사람은 폐인이다”. 있던 곳, 만나던 사람들로부터 떠날 수밖에 없으며 어쩌면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 고독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서열화된 관계, 술 권하는 관계. 우리 사회는 관계 과잉의 사회이다. 우리 모두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투항하고, 고독 속에서 선명해지는 관계로 걸어가 보자.

고독은 관계의 유한성

사진 속 친구들은 언젠가 헤어지기 마련이다. 관계의 유한성은 피할 수 없다. 고독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출처 : cotk_photo
사진 속 친구들은 언젠가 헤어지기 마련이다. 관계의 유한성은 피할 수 없다. 고독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출처 : cotk_photo

“인간 본성의 본질적 구성 요소는 ‘고독’과 ‘욕망’이다.”라고 박호성 교수는 자신의 책 『공동체론』에서 말했다. 욕망은 이해가 되는데 ‘고독’은 왜일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저자는 언젠가는 죽게 되는, 끝이 있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고독을 가지게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썩 와 닿지는 않았다. ‘고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고독’이라는 감정은 나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오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저자의 말이 와 닿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 ‘고독’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가 된다. 내가 가장 처음 ‘고독’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은 아주 어릴 때였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4~5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같이 자고 있던 부모님이 없어서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을 그때 처음 느꼈다. 아주 어릴 때라 나 자신과 부모님을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상황에서 처음으로 한 몸 같았던 부모님과의 관계가 처음으로 한 몸이 아님을 인지하고, 또한 한 몸 같았던 관계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인간관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 ‘고독’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릴 때 이후로 가장 ‘고독’하다고 느꼈을 때가, 대학교 입학 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났다가 헤어질 때였다. 고등학교 때는 3년 기숙사 생활하면서 언제나 함께 할 것 같았는데, 막상 대학교에 와보니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굉장히 기뻤지만, 항상 헤어질 때가 되면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들이 그렇지 않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고독’이라는 것은 ‘관계’라는 것과 뗄래야 뗄 수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고독이 먼저일까, ‘관계가 먼저일까?

단독으로 생활하는 고양이과 동물들은 고독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출처 :  Jean-Daniel Calame
단독으로 생활하는 고양이과 동물들은 고독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출처 : Jean-Daniel Calame

그렇다면 인간은 ‘고독’하기 때문에 ‘관계’를 가지는 걸까? 아니면 ‘관계’를 가졌었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걸까? 나는 그러한 점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특징의 양쪽이 ‘고독’과 ‘관계’인 것이 아닐까 싶다. 즉, ‘고독’하기 때문에 ‘관계’를 가지는 것도, ‘관계’를 가졌었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것이 아니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질문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낳아준 사람 없이 태어날 수 없고, 자신을 길러준 사람 없이 유아기에 스스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관계’라는 것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술 권하는, 관계과잉의 한국사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 ‘관계’가 너무 많아서 피곤할 때가 많다. 가장 기본적인 가족이나 친구, 연인 같은 가까운 관계뿐만 아니라 형, 누나, 동생 같은 나이에 따른 관계들, 상사나 부하직원, 고객 같은 일적으로 만나는 관계들, 학연, 지연으로 맺어지는 관계 등등, 우리는 굉장히 다양한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나이에 따라서 생기는 관계들을 특히 싫어했다. 내가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상대보다 더 많은 것을 책임지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명의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대우를 받고 싶을 뿐이었다.

술 없는 공동체, 특히 술 없는 남자들의 만남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더 그런 것 같다. 출처 : Quentin Dr
술 없는 공동체, 특히 술 없는 남자들의 만남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더 그런 것 같다.
출처 : Quentin Dr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나이에 따른 관계들을 만날 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바로 술자리에서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술이 약하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아 술자리는 잘 가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대학교 막 들어왔을 무렵에는 분위기도 있고 해서 술자리들을 참석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그 분위기도 싫었고 개중에는 술 안마시면 섭섭하다며 술을 권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선배인 경우에 그런 식으로 술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에는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옆에는 사람과 ‘관계’를 가지려면 술은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곤 했다. 한국 특유의 술 문화 자체도 싫었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들 눈치 보느라 술 마시기 싫어도 술을 마셔야 했던 그 상황들이 싫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정말 많았을 것이고, 그래서 서열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는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공동체 : 대의에서 개인의 문제해결로

결과적으로 수직적인 한국 특유의 ‘관계’들을 수평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이 많이 있었고 지금은 꽤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이라는 명목 하에 행해지던 참견과 오지랖은 줄어들고 개인주의는 훨씬 더 보편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타인에 대한 관심은 더 줄어들었고 사회 전체를 위해서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노력과 투자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재밌게도 그렇기 때문에 다시 사람들이, 그리고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해결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농촌공동체가 그랬듯. 출처 : mark chaves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해결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농촌공동체가 그랬듯.
출처 : mark chaves

기존에 운명공동체 성격이 강한 공동체들은 대의를 위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요즘 만들어지고 있는 공동체들은 당사자 본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가령 살만한 좋은 집을 구하고 싶다던가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창작 활동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힘을 합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자신을 위한 투자이면서 동시에 함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좋은 방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이 마치 ‘관계’가 질려서 ‘고독’함을 찾아 떠났다가 다시 ‘관계’를 맺으러 돌아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독속에서 선명해지는 관계

세상은 점점 더 개인으로써 책임을 요구하지만 복잡해지는 상황 속에서 혼자의 힘으로 문제 해결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함께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관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독’과 ‘관계’가 거울의 양면과 같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거추장스러운 ‘관계’들을 벗어버리고 모두 좀 더 많은 ‘고독’함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때서야 ‘관계’에 대해서도 좀 더 선명하게, 그리고 진중하게 다가설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더불어삶

사랑하는 토끼와 함께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또한 공동체적인 삶에 대해서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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