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기술혁신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인류가 과학기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 할 것이라는 비관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의도 학제간 통섭에 대한 당위나 기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편에 머무르고 있을 뿐인데요. 필요한 일입니다만, 조금 더 깊은 이해와 대응책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왜 만나야 하고, 어떻게 조율되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이과와 문과는 물과 기름인가?

이 글의 초반은 Eric Berridge라는 기업가의 TED 동영상 <Why tech needs the humanities>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된 동영상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영상에서는 기술 중심의 사업에 인문학적 관점이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초반에 나온 사례는 좀 작위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어떤 주장을 위해서는 관련 사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강박이려니 하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Eric Berrigdge 『Why tech needs the humanities』

영상에서 발표자는 STEM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합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이공계 정도가 될 텐데요. 미국에서는 많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그리고 Mathematics를 줄인 표현입니다. 미국 이야기입니다만, 2009년 이후 미국의 인문학 전공자는 그대로인 데 반해 STEM 전공자는 43%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발표자는 이렇게 STEM 교육이 강조되는 것은 산업의 구조 및 이해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주로 소프트웨어) 기술 중심의 산업과 기업들이 큰 시장 가치를 창출하면서, 노동 시장에서 과학 기술 전공자에 대한 평가가 후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인문학 전공자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해졌겠지요. 한국은 ‘문송’이라는 표현까지 있으니, 사정이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술은 인문학이 더해져야 더 큰 가치를 가진다

그럼 과학 기술에 대한 교육만큼 인문학도 중요하다는 발표자의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은 원래 하나였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기술의 발전을 이끌 것이다, 이런 논점들이 그동안 많이 제기되어 왔는데, Eric Berridge는 최소한 이런 말들보다는 더 실질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제가 이 영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첫째, 오늘날의 기술은 직관적인 접근을 지향합니다. 시장가치를 더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셀 수 없이 많은 하이테크가 집적되어 있는 스마트폰, 전기차를 보십시오. 기업들은 하이테크를 개발하면서도 소비자와의 접촉면에서는 매우 간편하고 직관적인 제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하이테크는 모두 접혀 있고,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복잡한 기술과 간편한 조작 방법, 이런 시장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인간의 접근 방식에 대해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은 인문학과 만났을 때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동감한 부분입니다.

둘째, 소비자들의 현재 그리고 잠재적 요구사항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술마케팅을 전공하는 제 입장에서는 더 크게 느껴지는 말인데요. 사람들은 복잡한 하이테크에 관심을 표현하면서도, 어느 지점을 넘으면 급속도로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비선형적 행동 양식이라고 얘기하는데, 일견 전혀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이지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STEM에서 가르치는) 정밀한 방정식이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심리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채워주는 분야가 인문학입니다.

정리해 보면, 과학과 기술은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만, 인문학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왜 만들어야 하는지 탐구하게 합니다. 단지 제품에 대한 것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개개인의 삶에서도 이런 인식과 기능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기술과 인문학의 균형은 일상생활에서도 필요

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느닷없이 언론에 ‘라돈침대’에 관한 뉴스가 계속 등장했습니다. 시작은 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과다 검출되었다는 발표인데요.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일상적 도구인 침대와 (나와 전혀 관계없이) 어딘가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라돈이라는 물질이 왜 결합되어 있었을까요? 분석 결과는 이렇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여러 광고 문구에 음이온을 과장하는 표현들이 등장했습니다. 음이온이 만병통치약이고, 해당 제품은 그런 음이온을 가습기의 수증기처럼 뿜어낸다는 것인데요. 문제가 된 D사의 침대는 이런 음이온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매트리스 안에 음이온을 발생시킨다는 돌가루를 깔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돌가루의 원료가 라돈을 발생시키는 ‘모나자이트(Monazite)’였던 것입니다.

화학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음이온이 공기 중에 대량으로 존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음이온을 사용하여 광고하는 제품들은 한마디로 사기이고, 잘 봐줘도 과장 광고일 뿐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라돈침대’가 아닌 ‘음이온 사기’ 사건으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개인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일정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균형이 필요하다. by Perfecto Capucine 출처: https://www.pexels.com/ko-kr/photo/1329571/
과학과 인문학의 균형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 Perfecto Capucine

이렇게, 현대의 산업 구조는 하이테크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인문학을 이해해야 하고,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기술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이 두 요소의 균형점이 다르겠지만, 두 요소가 반드시 포괄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기술과 인문학의 만남은 미래사회에서 더 큰 사회적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닉 보스트롬 옥스포드대 인류미래연구소장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기술혁신 앞에 선 인간의 처지를, 질주하는 경주마와 경쟁해야 하는 망아지 신세에 비유합니다. 이 경주마는 2020년대에는 더욱 빨라질 것이 분명한데, 우리의 체력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기술의 혜택과 자신의 삶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한다면, 기술을 이해하고 인류의 공통 가치관을 투영하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이 경주마는 순식간에 프랑켄슈타인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고삐 풀린 기술혁신의 속도를, 그리고, 기술 자체를 조련하는 방법을 시급히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두 과학기술자보다 인문학자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의 거시적 정책 결정에서부터 민간기업의 제품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의 의사결정에서 과학기술자들과 인문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면서 발전적인 결과를 창출해 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

전병옥

기술마케팅연구소 소장. 고분자화학(석사)과 기술경영학(박사 수료)을 전공. 삼성전자(반도체 설계)에서 근무한 후 이스트만화학과 GE Plastic(SABIC)의 시장개발 APAC 책임자를 역임. 기술의 사회적ㆍ경제적 가치와 녹색기술의 사회적 확산 방법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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