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앞에 두고 벌이는 카지노 한판! 어디에 걸어야 크게 딸 수 있을까? -『기후카지노』를 읽고

책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고, 기후카지노라는 제목만 자꾸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기후위기를 다루는 국제회의나 정책들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마치 도박의 폐해와 정교하게 계산된 패배확률이 숨겨진 ‘카지노 광고’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후카지노』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그동안 섭렵했던 도박에 관한 수많은 만화와 영화가 떠올랐다. 제목만으로 이렇게 충분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다니 저자와 출판사의 계략은 성공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도박을 다루는 흔한 만화나 영화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별다른 인생의 목표도 없이 하루를 살아가던 중 우연히 참여한 길거리 도박판에서 돈을 잃고 인생의 부침이 시작된다. 삶의 경계에서 밀려나 도달한 어느 외딴 곳에서 엄청난 도박기술을 가진 타짜, 또는 도인을 만난다. 주인공은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장인의 밑에서 갖은 수모와 고생을 감내하며 마침내 장인의 도박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그 뒤로 승승장구하며 자신에게 위기를 안긴 집단에게 복수를 선사하며 이야기는 마감된다.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중 한 장면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중 한 장면

이렇게 보통의 도박이야기가 주인공이 승승장구하는 스토리로 진행된다면 《도박묵시록 카이지》라는 유명한 일본 만화는 그 결을 좀 달리한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처절한 패배의 연속이다. 심지어 주인공이 상대해야 할 도박은 공평하지 않게 설계된 사기의 현장이다. 사기 주사위, 절대로 당첨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파친코, 심지어 혈압 등을 체크해 심리상태를 파악하여 상대가 낼 카드를 예측하는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주인공은 이렇게 속임수가 가득한 게임의 상황에서 처절하게 패배하다가 상대방의 속임수를 역이용해 승리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며, 사람을 잃기도 한다. 특별히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대금 대신 노동력으로 채무를 상환하는 불법 지하노역장 장면을 보노라면 도박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도박을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전달하려는 의미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처럼 기후문제, 기후위기 역시 어떻게 전망하는가에 따라 그에 따른 대책이 달라진다. ‘기후카지노’라는 제목은 우리가 사는 지구, 한정적인 자원을 걸고 벌어진 커다란 도박을 연상하게 한다. 미래를 담보로 영혼까지 끌어 모아 인생 역전을 목표로 혈안이 된 채 도박을 벌이고 있는 개인과 기업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의 기후위기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빚을 져버린 상황이라 본다면 목숨을 걸고 도박에 임하는 ‘카이지’의 ‘기세’에 비해 기후카지노의 저자 노드하우스의 태도는 조금은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월리엄 노드하우스 저, 『기후카지노(2013)』, 한길사, 2017

노드하우스는 책에서 기후변화를 늦추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경제성장을 둔화시켜 생활수준을 낮추는 방법, 탄소 집약적인 활동을 억제하는 생활양식의 변화, 저탄소 혹은 무탄소 기술로의 에너지 전환. 화석연료 연소 후 이산화탄소 제거이다. 그 중에서 적용이 가능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드하우스는 비용측정을 한다.

“거금을 들여 가능한 최저수준으로 온난화를 제한하느니, 차라리 밀 수확량이나 해수면 상승의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려 할 수도 있다. 이 돈을 종자개량이나 물 관리, 농업하부시설 같은 데 좀 더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97p

이를 위해 노드하우스는 감축비용이 최소가 되고 기후편익이 최대가 되는 균형지점을 찾기 위해 경제학을 도입한다. 사람들과 기업의 행동을 이산화탄소 및 다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자는 시장메커니즘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그를 위해 탄소세와 총량제한거래제를 제안하는데, 탄소에 가격을 매기어 소비자에게 저탄소 신호를 주고, 기업들이 저탄소 기술로 이전하게 하며, 혁신가들에게 시장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현행 기술을 대체하는 결과를 내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돌이킬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라는 현실적인 위협을 인정하고 탄소배출에 비용을 지우는 경제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며 저탄소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일이다.”

466p

저자는 경제성장과 기후위기 해결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낙관론을 펼친다. 저자의 의견에 따라 영화를 만든다면 위기의 순간에 방문한 기후 카지노에서 딜러와의 신경전을 이겨내고 결국에 돈을 따고 돌아가 명예와 지위를 회복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문제를 탄소배출의 문제로만 파악하고 혁신기술에 대한 낙관만으로 당면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카지노에는 슬롯머신에서부터 바카라, 빅휠, 룰렛 등 도박을 위한 다양한 게임들이 있다. 단기적인 편차 때문에 일부 고객들은 돈을 벌수도 있겠지만 다수의 고객들이 승리확률이 정교하게 설계된 도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카지노의 입장에서는 이기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개최된 환경정상회의(P4G)는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2030을 위한 연대를 표방하며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다고 했다. 이는 노드하우스의 기후위기에 대한 접근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기업들은 소위 “그린 워싱”으로 또는 소수의 기업들은 특허 기술로 기후위기시대에 ‘잭팟’을 터트릴지 모르겠지만, 영혼까지 끌어 모아 기후위기시대를 살아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도로 설계된 카지노의 승률을 뚫고’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기후위기를 앞에 두고 벌이는 카지노 한판! 우리, 집에는 돌아갈 수 있을까?

송기훈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연히 만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며 고민하고 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