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으로 물들 내일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지역의 녹색운동에서의 탈성장의 선택지들, 나로부터의 시작, 녹색정치의 실현에서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기후위기 시대입니다. 아니 기후위기 시대라고 합니다. 모두가 기후위기를 말합니다. 더구나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함께 노력해보자고 합니다. 전기 사용을 줄이고 인터넷 환경을 개선하고, 분리수거를 잘하고, 아나바다를 하며 아껴 쓰고 돌려쓰자고 합니다. 건강 때문만이 아닌 기후환경 때문에 육식을 줄이자고 합니다. 차를 타지 말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자고 합니다. 기후위기는 나 때문에 생긴 문제이고, 내가 저런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 세계는 성장이란 이름으로 오늘을 가졌습니다. 관계를 끊고 물건을 가졌습니다. 관계는 서로가 가진 물건을 내세울 때 필요한 장치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두가 외롭다고 하면서도 누구하고도 편하게 얘기하기를 꺼립니다. 집이 아닌 건물에 살게 되었고, 땅이 아닌 공장에서 나온 것들을 음식이라고 먹고 있습니다. 그렇게 밥이 아닌 돈을 먹기 시작하며, 그것을 내 입에까지 가져다주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돈의 쓰레기가 생겨납니다. 큰돈을 지불한 밥 한 끼는 고작 한 줌이고, 만들어지는 쓰레기양은 어마무시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가 직업이 되었습니다. 이념 추구와 그 실행마저 밥벌이 직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다 보니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누리려고 합니다. 그게 생존 법칙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은 언론마저도 호도합니다. 그런가 보다 하면, 그런가 보다가 됩니다. 어느새 나는 없고 세상만 커졌습니다.

얼마 전,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생명, 그 살아있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이 우주를 보면, 우주에는 죽음이 자연스러운 거예요. 우주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생명이 더 이상한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대부분이 죽어 있어요. 돌과 땅과 바닷물, 다 죽어 있어요. 또 사실 지구 바깥에서 생명체를 본 적이 없어요. 즉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죽음이 오히려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예요. 그런데 그렇게 원자(존재의 가장 작은 단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상태로 있다가 어느 날 우연한 이유로 모여서 생명이 돼요. 이 생명이라는 정말 이상한 상태로 잠깐 머물다가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이 찰나의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자성 능력을 잃은 지구에서 수없이 많은 존재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굶어 죽고, 숨 막혀 죽어가는 이 상태를, 다시 보고, 제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사진출처 : CDD20
“자성 능력을 잃은 지구에서 수없이 많은 존재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굶어 죽고, 숨 막혀 죽어가는 이 상태를, 다시 보고, 제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사진출처 : CDD20

생명 그 존재들을, 살아있음이 바탕이 아닌, 죽음이 기본값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죽음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생명으로 살아있음이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가를 설명할 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희귀성으로 존재가 된 “나”라는 생명에 대해 존귀하고 존엄함을 인식해보기도 전에, 사회의 구성원으로 배치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존재의 가치가 없게 됩니다. 흙수저, 금수저, 엄친아, 천재, 루저라는 차별적 용어들이 만들어져서 층층이 갈려진 계급을 자연스럽다는 식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존재는 모두 다 소중하다는 자연의 기본 법칙을 어기는 현상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참여하고 있는 녹색당은 2012년 창당 때부터 탈성장을 외쳐왔습니다.

… 우리는 성장과 물신주의, 경제 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정당이며,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넘어선 태양과 바람의 정당, 문명사적 전환을 만드는 녹색정당, 반정당의 정당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정치는 기성 정당과 같을 수 없습니다.

강령 중에서

요즘 기후위기 문제로 다급해지자 탈성장이 답이란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으나, 다수가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성장을 신화처럼 믿어온 시간의 길이가 우리에게 쉽사리 그 태도를 바꿀 수 없게 합니다. 심지어는 반성장을 하자는 거냐며 탈성장론을 부정하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그 말들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합니다.

녹색당에서 말하는 탈성장은, 우리 잠시 멈춰보자는 말입니다. 잠시 멈춰서 지금 상태를 ‘다시’ 보자는 겁니다. 고작 100년도 안 된 사이,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정말 짧은 시간일 수밖에 없는 동안에, 우리 “인간군(더구나 가진 자)들의 생활 방식으로 인해” 이렇게 황폐해져 왔으니, 자성 능력을 잃은 지구에서 수없이 많은 존재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굶어 죽고, 숨 막혀 죽어가는 이 상태를, 다시 보고, 제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리는 생활 방식으로 전환해서 존재를 느끼고 살아있음을 누릴 수 있는 생태 전환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기본소득(저는 이것을 “생존 소득”이라고 바꿔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과 정치(“살림”이란 단어를 더해도 좋겠습니다) 개혁을 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보편적 인권을 넘어 생활정치ㆍ다양성 정치ㆍ녹색정치를 통해 소수자와 생명과 자연을 옹호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으며, 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강령 중에서

선거 때가 되면, 당선거(모든 선거비용을 당(후원금 포함)에서 댑니다)를 치르는 녹색당원들은 후보로 나서준 당원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합니다. 그렇게 선거운동을 하다 보면 정말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렇게 만난 시민들이 묻습니다. 녹색당에서 말하는 “함께 잘 살자”란 말이 무슨 말이냐고, 왜 다 같이 잘 살아야 하냐고, 그러면 열심히 산 사람, 노력하는 사람들은 뭐가 되냐, 는 질문을 받습니다. 역으로 질문을 드려봅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는 거냐? 고. 그러면 실망한 표정이 역력해집니다.

곱씹어보게 됩니다.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기회 주어짐이 다른데 최상의 기회를 가진 자가 기준이 되어야 할까, 여러 번 생각해도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평등, 정의의 문제까지 고민해 보지만, 아닙니다. 왜? 생명은 그 존재만으로도 너무나 신비하고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개인들의 기회가 다릅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기준으로도 사회 구성원으로의 잣대로 들이밀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주의 긴 시간 속에 찰나로 만나진 동료이고, 주민이고 시민이며, 국민인 동시에 곧 세계 시민이기도 합니다. 나의 존재 가치는 지역을 넘어서고 국가란 벽을 갖지 않습니다. 국가는 또 지역은 나의 존재를 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되어야 하지, 군림하고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장의 문제 또한, 더 이상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기술, 그 발전이 아닌, 존재를 살리는 삶의 방식으로의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과학이 탈석탄, 탈핵, 탈육식 운동의 기조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해온 그 실력으로 살리는 기술은 또한 얼마나 멋지게 그 속도와 내용을 해낼까 라고요.

생각의 전환이 태도의 전환이 되고, 탈성장의 답이 될 거라고 봅니다. 나로 집중하는 삶, 내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느끼고, 누리는 삶의 태도가 생태적인 삶으로의 전환의 시작이 된다고 봅니다. 나를 보아야 내가 되고, 내가 되어야 이웃도 나를 둘러싼 생명들의 가치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길에 우리 인류가 역사로 일구어온 인문학(생각의 길)이 친구(또는 스승)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상황 때문에 흐릿해진 인문학을 되살리고, 함께 공부하는 그룹들이 많아질수록 탈성장의 속도도 빨라질 거라고 봅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우리는 직접 만나지 않고도 함께하는 방법에 대해 금방 발전시켰습니다. 많은 강좌들이 온라인으로 개설되어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쉽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내 시간도 자주 그곳에 데려다 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는 방법에 대해 같이 생각하고 나누면 좋겠습니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 또한 더 이상 개인들의 탓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역이, 나라가,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이동이 줄어들 수 있도록 지역 안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화학물질 없이도 편리하게 살던 지난 시간의 지혜를 되살리는 생활 정치를 우리, 같이 하면 어떨까요? 그래서 더 이상 권력 쟁취를 위한 정쟁의 정치행태가 아닌, 실제 내 피부에 와닿는 삶살이부터 챙기는 녹색정치가 기후위기 시대에 처한 우리가 우선 택할 방법이 아닌가 제안해봅니다.

그래서 살리는 정치, 녹색정치를 생활 정치로 실현하는 정당이라면 어느 정당이든 당원 가입을 하고 직접 정치, 생활 정치에 나의 목소리도 내면 좋겠습니다. 그 목소리들이 모여 녹색정치가 되고, 정책이 되어 내 삶 자리를 변화시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너와 나의 존재의 시간,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때 비로소 나를 둘러싼 생명들과의 관계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는, 그래서 그들의 사정이 그들만의 사정이 되지 않고 곧 나의 사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나설 수 있고,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그 일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더 이상 미래의 일도 아닌, 지금 당장의 당면 과제가 되었으니 지구 회복 운동에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녹색정치 운동에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오영주

천주교인이고 녹색당원으로의 정체성으로, 생명평화 관련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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