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치의 원칙론과 현실론 사이에서의 과정론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한 점을 잊지 않고, 연대의 힘으로 녹색정치에서 조금 더 먼 거리에 있는 시민에게 함께 손 내밀고, 조직해나가는 동기와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는 다소 순수한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기후위기를 막는 녹색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민은 꽤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정책 입안자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위기 적응 대책보다 경제 성장 정책을 우선합니다. 그래서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녹색시민, 기후시민의 목소리가 정치의 영역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조직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 조건과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원칙론과 현실론을 취하는 입장 차의 문제로 좁혀서 논의를 해보려고 합니다.

논의에 앞서 한 줄기 희망을 먼저 나누고 싶습니다. KBS가 만18세 이상 한국인 2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신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후시민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사에 응한 2천명 가운데 74%에 달하는 응답자가 도시 개발(26%)보다 환경 보존이 중요하다고 답하고, 54%의 응답자가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돈(37%)보다 인간관계라고 답했습니다(홍진아 23/1/1). 이 정도면 두 줄기 희망이라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응답의 내용이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기에 한줄기라고 다시 정정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녹색정치의 힘을 세력화할 수 있을까요? 기후위기는 심화되고, 기후불평등으로 피해를 입는 시민은 점차 늘어나는데, 기존 정당은 경제 성장을 원하는 시민에게 응답한다고 생각해서인지, 기후위기 대응은 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탄소 배출 사업을 더 많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시민에 응답해야 하기도 하지만, 권한과 책임을 다해 시민을 설득하며 견인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아첨하는 정치인은 권한과 책임을 다해야 할 때, 시민 응답을 변명으로 삼고, 시민에게 응답해야 할 때는 권한만 앞세웁니다.

성과에 기뻐할 수 있는 만큼 기뻐해야, 그 다음 과제를 풀어나갈 힘도 생깁니다. 사진출처 : Saydung89
성과에 기뻐할 수 있는 만큼 기뻐해야, 그 다음 과제를 풀어나갈 힘도 생깁니다.
사진출처 : Saydung89

신년 설문조사 대상과는 다르게 이미 녹색정치를 가까이하는 시민 그룹을 상정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그룹 내부에 존재하는 간극을 다루고자 합니다. 이 녹색정치 시민 그룹을 논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건 이 내부의 간극을 어떻게 대하느냐, 혹은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따라 녹색정치로 조직된 힘을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기에 그렇습니다. 이 시민 그룹의 노력이나 결실에 따라 녹색정치를 원하는 시민의 의사가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녹색정치를 가까이하는 시민 그룹 내부의 입장을 원칙론과 현실론으로 구분하고, 두 입장이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한지, 협상할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일지 상상해보고자 합니다. 이런 구분은 분리가 목적이 아니고, 각각의 입장을 도출해 의견을 상호 조정하거나 하나로 택하는 논의로 진입하려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고 해서 딱 하나의 입장만 취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이 권한과 응답이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모두 다 해야 하면서도 때에 따라 하나의 태도를 더 드러내듯 조금 더 우선하는 내용으로 그 입장을 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입장 차를 드러내고, 협상을 상상해 볼 때, 다음 단계의 논의가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전선체에서의 4가지 배치와 조직모듈(신승철)

원칙론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규칙을 협상보다 우선하는 주장이며, 현실론은 현실 제약에 순응하여 원칙론보다는 협상의 가능성에 열려있는 주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원칙론의 단점은 판관의 시선으로 원칙론과 다른 입장을 비난하며 평가하고, 대안 마련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점이고, 장점은 목적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추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론의 단점은 목적성, 방향성을 상실하고, 하지 말아야 할 타협에 나서게 된다는 점이고, 장점은 한 걸음씩 목적의 일부분을 달성해내며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위 표에서 원칙론은 왼쪽 하단의 ‘체제전환파’와 비슷해 보이고, 현실론은 왼쪽 세 번째 아래에 있는 ‘기후정의파’와 비슷해 보입니다. ‘임박한 위기파’와 ‘모두의 책임파’는 어디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임박한 위기파’와 ‘모두의 책임파’는 기후시민, 녹색시민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녹색정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보여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기후정의파’와 ‘체제전환파’는 비슷한 점이 4개 중 2개나 있지만, 차이가 나는 부분에서는 그 간극이 꽤나 커 보입니다. 원칙과 현실, 이 두 가치관 사이에서 입장이 갈리면 같은 점이 있다고 해도, 굉장히 멀어지기 십상입니다.

지난 1월 11일, 기후재판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기후재판은 포스코의 한 행사장에 난입해 그린워싱을 비판하는 행동을 벌였던 4명의 녹색당 활동가가 벌금 1,200만 원 약식명령을 받은 후 정식재판을 청구해 진행된 재판이었습니다. 판결에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탄소배출 목표치 상향 조정의 목소리를 냈던 활동가의 행위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었고, 약식명령 벌금형은 절반 이상 줄어든 금액으로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 긴급성에서는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승리라고 말하는 측은 현실론이라고 할 수 있고, 무죄를 받지 않는 이상 항소해야 하고, 승리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는 입장은 원칙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현실론에 가깝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기후재판의 결과는 많은 성과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승리’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지기 마련이고, 지치기 쉬운 운동에서 소기의 성과를 확인하고, 함께 수고했다고 응원하는 건 너무 중요하고,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물론, 해결하지 못한 과제도 분명하긴 합니다. 하지만 성과에 기뻐할 수 있는 만큼 기뻐해야, 그 다음 과제를 풀어나갈 힘도 생깁니다. 정신승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내는 차원입니다.

벌금이 줄었다고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는 항소를 해야 한다는 측은 원칙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론의 입장에서는 무죄가 나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항소하지 않는 결정을 할 텐데, 이러한 결정은 ‘순응’이 아니라 ‘수용’이라고 여길 겁니다. 아무래도 원칙론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수용’을 ‘순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의 길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첨예하게 논쟁하고 갈라서는 길과 그런 입장 차이를 확인하지만, 그래도 같이 걸어가는 길……. 같이 걸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언제는 현실론이 더 지지를 받고, 또 언제는 원칙론이 지지를 받으면서 같이 갈 수 있길 바랍니다.

글의 제목에서 ‘원칙론과 현실론 사이의 과정론’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건 어떤 결과든 과정이고, 상호 배치되는 입장에 있다고 해도 서로 존중하며 조율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과정론은 결과론과 배치되는 개념으로 결과를 제외하고 과정상에서 어떠했는가를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한 점을 잊지 않고, 연대의 힘으로 녹색정치에서 조금 더 먼 거리에 있는 시민에게 함께 손 내밀고, 조직해나가는 동기와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는 다소 순수한 제안을 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참고문헌
홍진아. 2023. “[신년여론조사]① 한국인 54% “돈보다 인간관계가 중요”” 『KBS NEWS』(1월 1일). (검색일: 2023. 1. 14).

김유리

녹색 가치를 정치로 실현하는 여러 방법론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녹색당의 정치인으로 활동합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