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지역에 살고 있다 – 『지역의 발명』을 읽고

『지역의 발명』에서 발견한 “사람과 공간과 시간이 곧 지역문화”라는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다. 지역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일은 그 지역을 나만의 특별한 곳으로 보고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 지역의 사람이 스스로 이웃과 같이 지역이라는 공간에 켜켜이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발견했다.

이건 내 이야기

“사람×공간×시간=지역문화” 란 소제목을 보고 “나는 지역문화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받고 색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었다.

지역은 인간과 다른 생명 모두가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자치와 돌봄에 기초한 삶의 문화를 품고 있다. 아울러 지역은 서로 가진 것을 받고 주고 나누며 자기살림과 서로살림을 하는 순환경제의 터전이다.

p.5 머리말 中
이무열 저, 『지역의 발명』(착한책가게, 2022)
이무열 저, 『지역의 발명』(착한책가게, 2022)

지역을 둘러싼 위기와 희망에 대한 가설은 ’주민들 스스로가 누가(who), 어떻게(how), 무엇(what)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p.12 들어가는 말 中

이것 말고도 밑줄 친 구절은 많다. ‘지역의 발명학’ 개론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읽어 내려가다가. “나 자신이 지역문화라면 이건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며 의자를 바짝 당기고 자세를 고쳐 앉아 책이 뚫어져라 읽게 된 순간이다. 2012년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비조마을에 이사와 2016년부터 우연히 마을활동가로 살며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그 사랑과 튼튼한 뿌리

조한혜정 교수는 문화의 측면에서 지역의 중요성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체적인 공간이며 시간이자, 나를 구성해온 것이자, 내가 만들어갈 무엇”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직접적으로 “지역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단지 그 지역에 거주한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자기 본래대로 진가를 발휘하며 만개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내고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살리는 것이고 이는 더 오래된 의미로는 무엇이라도 그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에 거주한다는 것은 사물들을 돌보아 존재하게 하거나 그 자체가 되게끔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p.23 지역은 무엇일까? 中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쏙쏙 들어오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한 지역민이구나 싶다. 이사 올 때 한 “이곳에서 평생 살겠다”는 생각이, 한해 두해 지나며 어느 순간 “이곳이 아닌 어디에서라도 살 수 있겠다”로 바뀐 것은 이곳을 사랑하는 튼튼한 뿌리를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사랑과 튼튼한 뿌리 덕분에 ‘지역=지방≠서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서울도 지역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는 누구나 지역에 살고 있다.

문 열고 집 밖으로 한 발짝

지역의 발명을 위해서는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수 있어야 중앙의 주변부나 개발이 덜 된 곳이라는 식의 중앙과 비교되고 중앙의 기준에 의해 정의된 지역이 아니라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진 곳으로서의 지역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래야만 자기 지역을 중심에 두고 사고할 수 있으며 지역에 어울리는 다양한 일을 계획할 수 있다.

p.21 지역은 무엇일까? 中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진 곳으로 보는 마음은 발품을 팔아 뭔가를 차곡차곡 쌓고 나니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마음은 발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심부에서 교외로 이사한 후 어떤 강연회를 간 적이 있다. 강연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매일 지나다니던 공원인지 빈터에서 설치미술 같은 것(확실하지는 않다)을 시도한 이야기였다. 강연자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문 열고 한 발짝 집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이해가 쉽지 않았다. ‘문 열면 집 밖 아니냐고? 한 발짝 어떻게?’ 그러나 지금은 나도 ‘문 열고 한 발짝 집 밖으로 나온 것’ 때문에 마을산책-마을공동체-마을학교-학교협동조합까지 하게 된 것을 알고 있다. 책에서 이 과정을 읽을 수 있었다.

“먼저 자기 주변을 걷는 것부터 시작한다. 매일 다녀 익숙한 길도 있는가 하면 가끔 쇼핑하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가기 위해 걷는 길, 영화나 전시회, 또는 새로 생긴 공원을 보러 가는 길 등 다양한 길이 있다. 그런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지 말고, 걸으며 눈에 띄는 것, 관심이 가는 것을 주시해보자. 또는 자신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무엇에 눈길을 돌리는지도 확인해보자.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나 건물을 발견하면 멈춰 서서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거리의 가게 사람들에게 궁금한 이야기를 물어보기도 하고, 메모도 하고, 참고자료를 확인해보자. 거리로 나가 마음에 드는 것, 신경을 자극하는 것을 찾아보자. 목욕탕이 있으면 들어가 보자. 목욕탕은 거리와 동네의 광장 같은 곳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보자. 거리관찰에는 이런 생활 감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본다고 해서 바로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 신경을 자극하는 것에 몰두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딘가 마음에 걸린다는 것은,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그것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고, 또는 생각지도 않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당장 깨달음이 없더라도 계속 보자… 본다는 것은 매우 창조적인 행위이다. 그러니 거리고 나가 관찰해보자.“
앞의 글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디자인하우스, 2003)중에서 「거리로 나가 디자인을 배우다」를 쓴 오오타케 마코토 교수가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안내하는 관찰의 방법을 간추린 내용이다. 이 글처럼 관찰한다는 것은 생활감각을 익히는 일이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불편한 일과 필요한 일을 발견하는 일이다.

p.154~156 지역을 발견하는 관찰 中

그렇다고 디자인 싱킹이 우연히 찾아올 영감의 기회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발명이 시작되는 영감의 순간을 위해 매일매일 생활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통찰하면서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요구되는 물리적 기능과 감성적인 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본의 대표적 디자이너 하라 켄야 교수의 “디자인은 단순히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라는 말은 디자인 싱킹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p.223 지역을 발명하는 디자인 싱킹 中
지역의 발견은 문을 열고 한 발짝 밖으로 나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진: chulmin1700
지역의 발견은 문을 열고 한 발짝 밖으로 나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진 출처 : chulmin1700

이제 이 ‘지역의 발명’이란 책이 이해가 된다. 책의 1부가 ‘지역의 발견’, 2부가 ‘지역의 발명’으로 구성된 것은 보기–관찰–발견–발명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순서를 따라가는 듯하다. 사람과 공간과 시간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해져-단순한 물리적인 결합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화학적 결합!- 지역문화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사람이 가장 앞에 나온다. 2부 ‘지역의 발명’ 지역에서, 사람들과 함께, 곧바로 해볼 수 있는 것들에서도 맨 앞장이 ‘지역의 발명에 필요한 사람들’이다. 공간과 시간 속에 사는 사람이 눈길을 보낼 때 사건이 만들어진다.

보통과 다르게 구별되는 특별함

오랫동안 도시재생이나 마을사업 등을 해오면서, 결국 지역 사업은 주민들 사이에서 발명되고 실행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호혜 관계를 쌓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p. 149 지역의 발명에 필요한 사람들 中

‘호혜’라는 말을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본다.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는 일’이라고 한다. “특별한”이라고? 특별하다는 말도 찾아본다.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 “보통”도 찾아본다.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지역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지역을 나만의 특별한 곳으로 보고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 지역의 사람이 스스로 이웃과 같이 지역이라는 공간에 켜켜이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발견했다. 지역이 변하지 않기 위해 변해야 한다는 것, 돌봄, 예술, 행복, 사회적 경제, 기후 재난, 디지털 기술, 지역을 발명하는 방법들에 대해 더 소개하고 싶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읽었다고 쓰다 보니 길어져 못 썼다. 다시 책을 읽어보며 실제로 마을 활동에서 해본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다.

끝으로 특별히 강조해서 소개하고 싶고 읽으면서 나와 내가 보는 것, 나를 보는 것, 스쳐지나간 것들 모두가 지역과 지역의 사건이 창조되는 전제조건이 된다고 해서 마음이 우주만큼 넓어진 구절을 옮긴다.

책 제목을 『지역의 발명』으로 한 이유를 밝히자면, 발명이 지닌 특징처럼 주민, 공무원, 활동가 전문가 등 인간뿐 아니라 풀, 나무, 건물 학교 등 비인간까지 포함한 지역을 구성하는 행위자 사이에서 지역이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창조되는 사건적 특징을 강조하고 싶었다. 여기서 사건은 지역의 가능성을 새롭게 창조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이렇게 발명은, 지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믿음과 욕망이 연결되는 연대와 협동을 끊임없이 흐르게 한다.

머리말 中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댓글 1

  1.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부산 사하구 ‘하단’이라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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