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행성이 되는 것, 퍼실리테이터가 되기 위한 첫 걸음

퍼실리테이터 혹은 퍼실리테이션 기법 강의를 할 때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토론과정이나 결과를 도출해 내는 기술이나 도구 사용법이 아니다. 퍼실리테이터는 누구에게나 내재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 뭐든 잘 해내고자 하는 바람, 인정의 욕구 등을 인정하고 이를 이끌어 내는 조력자이자 산파와도 같다. 내가 누군가의 항성이 아니라 행성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태도가 이를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퍼실리테이터 혹은 퍼실리테이션 기법 강의를 할 때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토론과정이나 결과를 도출해 내는 기술이나 도구 사용법이 아니다.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우선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의 각자 혹은 서로의 지피지기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배려한다. 요즘 퍼실리테이터 자격증 과정을 강의 중인데, 네 번째 수업이 끝난 날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수강생 중 한분이 말씀하셨다. 그룹 상담하는 베이스와 너무 닮은 점이 많으며 우리 삶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고 말이다.

산모와 산파를 예시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조력자의 에너지 조율이 확실히 이해되도록 하는 것은, 수강생들로 하여금 많은 변화가 야기 되도록 하는 좋은 대목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 뭐든 잘 해내고자 하는 바람, 늘 최고의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인정의 욕구는 극히 평범한 것들로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다. 그러한 마음들을 왜, 어떻게, 어디에, 무엇을 위해서 (why, how, where, what for) 사용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행복지수는 달라진다.

나는 당신 아버지의 권위에 순종하며 억지로 따르느라 행복하게 살지 못했던 내 아버지의 삶을 통해, 사람의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혼자 참 많이도 생각했다. 그러한 이유로 내 아이들에게는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과정을 늘 우선시 하려고 애써왔다. 부모로서, 학부모로서, 경험 많은 어른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지름길 혹은 안전한 길로 가자고 앞장서 나서지 않기 위해 늘 많은 갈등을 겪는 중이기도 하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개척교회에서 교회 생활을 통해 받은 상처로 내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시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기도 시간을 지키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의 갈등하는 종교생활을 내가 앞장서 끌고 가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삶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함과 동시에 각 사람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인정한다.

나 또한 여전히 딸과 함께 성장하는 중임을 늘 기억한다. 
사진 출처: James Wheeler
나 또한 여전히 딸과 함께 성장하는 중임을 늘 기억한다.
사진 출처: James Wheeler

그러나 내 삶의 태도와 나아가는 방향을 곁에서 바라보며 고3인 딸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교회 생활도 삶의 한 부분으로 누린다. 나 또한 딸의 주변에서 곁을 지키며 그냥 바라볼 뿐이다. 딸의 주변에 엄마, 아빠, 동생, 친구들, 선생님들, 친인척들 등 많은 사람들이 있으므로 골고루 조언을 구하고 받고 적절히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나도 그녀 주변의 한 행성으로 존재하려 애쓴다. 물론 내 주변에도 많은 행성들이 둘러싸고 있고 나 또한 그들의 에너지를 적절히 잘 조율하며 나의 영역과 방향을 지켜나가며 나 또한 여전히 딸과 함께 성장하는 중임을 늘 기억한다.

첫아이를 양육할 때 18개월까지 모유수유하며,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으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며 노력했으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자 잔소리를 하는 등 간섭하기 시작했고 내가 가진 고정관념과 틀 속에 아이를 가두려고 했다. 특별하게 키우고 싶다는 부모들의 마음은 더 특별한 요구를 아이들에게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좋은 방향의 특별함으로 가는 것만은 아님을 종종 보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퍼실리테이터는 사회생활의 기회를 줬고, 자녀 양육의 지혜와 퍼실리테이터의 기본 태도의 연결점을 깨닫게 했다. 참여자가 의견을 이야기하도록 여유와 시간을 주는 것은 양육에서도 똑같이 중요한 부분이다. 무조건적인 간섭이나 권위적인 진행자의 태도로는 참여자로부터 좋은 의견을 끌어낼 수 없으며 그 토론자의 진심이 교류될 수 없다. 아이들이 진심을 지키고,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장하지 않고 내보이며 긍정적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곁에 물러서 지켜봐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남편은 밀착형으로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고 늘 걱정이 앞서는 한국 아버지의 전형이지만, 난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믿고 맡기려 한다. 가능한 한 주변에서 지켜보는 중요한 관계들 중 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다 보니, 자립적이고 적극적인 태도 형성에 오히려 도움을 주는 쪽이다.

요즘에는 학생들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우리가 모실 고객님은 150명 VIP 낭만 18세 고딩님들이다. 리딩 퍼실리테이터로서 내가 세팅한 테이블 퍼실리테이터들은 이미 자녀들을 다 성장시킨 단련된 학부모 퍼실리테이터들이다. 이들을 모신 이유는, 그들은 이제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 때문이다. 멍석을 깔아 주는 사람, 멍석 위에 올라가 주인공이 되는 사람, 멍석 주변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며 격려, 응원, 지지해 주는 사람… 토론은 이러한 역할들이 이뤄내는 즐거운 이벤트이며, 이러한 이벤트의 연속이 알고 보면 우리의 삶이다.

정현진

동명대 두잉학부 객원교수, 한국퍼실리테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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