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에서 상호작용을 높이는 구조를 생각하며

돌봄에서 상호작용을 높이기 위해서는 돌봄에 대한 인식을 먼저 바꿀 필요가 있다. 이 토대 위에 삶과 비전, 관계와 공동체 등을 잘 버무리면 단순한 서비스로 인식되던 돌봄이 우리 삶의 중심으로 조금 더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삶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지구와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하는 것도 곁들이면 좋겠다.

돌봄에 대한 인식 전환

올해 초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에서 공부 모임을 진행했다. 공부하자고 모인 이유는 사회적경제다운 조직운영과 경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6회로 구성된 커리큘럼 첫 회 키워드는 ‘돌봄’이었다. 소주제는 ‘사회적 경제 조직철학으로서 돌봄을 생각한다’였고, 주요 교재는 『돌봄선언 : 상호의존의 정치학』(더케어컬렉티브, 2021)과 『돌봄 민주주의』(조안 C. 트론토, 2021)였다. 조금은 의아했다. 조직운영과 경영을 얘기하는데 웬 돌봄?

『돌봄선언 : 상호의존의 정치학』(더케어컬렉티브, 2021)와 『돌봄 민주주의』(조안 C. 트론토, 2021)
『돌봄선언 : 상호의존의 정치학』(더케어컬렉티브, 2021)와 『돌봄 민주주의』(조안 C. 트론토, 2021)

돌봄은 일반적으로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정도로 여겨진다. 요즘은 아프지 않도록 미리미리 돌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조금씩 힘을 얻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이런 관점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시선이다. 그런데 왜 조직운영과 경영에 돌봄 관점이 접목되어야 하는 걸까? 이번에 조직운영과 돌봄이라는 조금은 이질적인 단어들을 한데 묶어 살피면서 조직 운영에도, 돌봄에도 인식 전환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경제 영역 중 ‘돌봄’을 주된 활동으로 두고 있는 의료사협에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돌봄에서 상호작용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별 요소를 어떻게 설정하고 배치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돌봄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두 책의 저자들이 얘기하는 돌봄은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은 돌봄이 삶의 모든 수준, 모든 영역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이고 조직과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 등 말 그대로 모든 영역에서 모든 순간 돌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은 가장 취약한 상태로 태어나는 생명체이며 성인이 되어서도 사고나 특정한 상황에 놓이면서 몸과 마음의 취약성이 높아질 수 있다. 노년기의 취약성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사람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호의존’의 범위가 사람과 사람 사이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을 넘어서 ‘공동체와 지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돌봄을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사회적 이상’을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결국 돌봄에서 상호작용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로부터 출발하여 가족, 친척, 이웃과 동료, 지역 공동체, 국가, 지구로 연결되는 상호의존적 관계와 이 속에서 필요한 돌봄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할 것 같다.

삶과 비전

돌봄에 대한 인식 전환이 큰 바탕이라면 그 위에 올려야 할 돌봄의 구성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레디컬 헬프』의 저자 힐러리 코텀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완전히 새로운 돌봄 체제를 위한 원칙을 제시하면서 비전과 역량 개발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영국의 수많은 복지 현장을 누비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한 힐러리 코텀은 도대체 왜 그 많은 복지제도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비전과 역량 개발을 제시했다. 기존의 복지 시스템은 투입과 산출을 중심으로 소요 비용을 관리할 뿐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비전이나 역량 개발을 위한 동기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복지 요원’을 만나는 걸 대단히 싫어한다. 신기한 건 ‘복지 요원’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두 주체가 만나도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 아니, 시너지 이전에 그 둘 중 한쪽은 ‘주체’가 아닌 ‘대상자’다. 대체로 대상자는 그 자체의 삶이 아닌 ‘서류’로 인식된다.

힐러리에 따르면 복지 안전망의 관리 대상자가 된 사람들은 수치스러운 충고를 받아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분노와 절망감을 표출한다. 이는 비단 바다 건너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활센터와 협업 과정을 돌이켜 보면 자활에 오시는 분들은 본인의 노동력이 바닥 중에서도 바닥이라는 점을 집요하게 증명해야 한다. 자활 프로그램을 통해 소득이 일정 수준으로 올라가면 각종 혜택이 없어지기 때문에 아예 삶에 대한 비전을 갖지 않는다. 삶과 비전이 없으니 그들은 계속 서류상의 수치로 존재한다.

힐러리는 주장한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를 이끌어줄 비전이 필요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비전은 곧 잘 사는 좋은 삶이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우리의 열정을 자극하며, 삶의 여정에 공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라고.

관계와 공동체

돌봄의 시작은 관계 맺기에서 출발한다. 그 관계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게 시장을 통한 관계 맺기다. 그냥 돈을 주고 서비스나 노동력을 구매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건 관계 맺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구매 행위다. 시장 교환 방식은 관계가 맺어지기 어렵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판매자와 구매자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그저 필요한 상품을 고르고 돈을 내면 그만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제도의 틀에 갇힌 행정과 서류 중심의 돌봄도 관계가 맺어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힐러리는 돌봄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새로운 접근의 중심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맞닿음, 즉 연결이 있고 사람들은 단단한 인간관계를 통해 지지받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의료사협 방문진료나 건강리더 활동을 보면 이 사람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할 때가 많다.

우선 어르신들은 사람이 찾아가 관계가 시작되는 것 자체에서 큰 위안을 받는다. 대체로 관계가 시작되면 그 관계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 관계망이 확장된다. 건강리더 한두 분이 안부차 방문하던 관계에서 진료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이 함께 찾아간다. 관계망 확장은 대체로 더 많은 자원 연계로 이어지며 시나브로 당사자의 역량 강화를 불러온다. 건강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던 분들이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까지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관계가 지역 공동체를 통해서 맺어진다는 점이다. 미우나 고우나 지역 공동체의 한 요소인 시장과 제도를 잘 엮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장과 제도에만 내맡기지 않는다는 점이 돌봄에서 공동체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구닥다리 시대에나 쓰던 말 같은 공동체가 돌봄이 필요한 영역에서 조금씩 조금씩 피어오르길.

김종필

의료사협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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