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㉖ 만화리 치술령, 여신의 땅

두동은 산세가 부드럽다고들 말합니다. 치술이라는 이름의 그녀가 있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신모사 댓돌에서 보이는 풍경(2022.3.22.) 사진: 김진희
신모사 댓돌에서 보이는 풍경(2022.3.22.) 사진: 김진희

만화리 옻밭마을에는 치산서원이 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 삼강문으로 들어가면 서원 한쪽에 커다란 매화나무가 있어 해마다 3월이면 꽃을 보러 갑니다. 지나가다 꽃소식이 궁금해 들러보면 꽃망울이 맺히고, 며칠 지나 꽃이 피기 시작해 환하게 피고, 꽃잎이 비처럼 떨어지고, 새 잎이 돋아납니다.

조용한 분위기에 이끌려 찾아가던 곳에서 2019년 춘향대제를 지낼 때 사진촬영으로 참가했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마음

3월 26일 신모사(神母祠)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1을 모셨습니다. 신모사는 박제상의 부인을 모신 사당입니다. 그래서 제관도 모두 여자입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제관들과 제관을 모시는 박제상유적지보존회2 회장님은 춘향대제 망지(望紙)3를 올려둔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맞절을 합니다.

3월 27일 언양고등학교에 가서 쌍정려(雙旌閭)의 제관을 모셨습니다. 쌍정려는 박제상의 두 딸을 모신 사당이어서 제관은 모두 여학생입니다. 20명의 학생들이 제관이 되어 절하는 법을 배우는 예절교육도 했습니다.

춘향대제 망지(望紙) 전달. 좌. 2019.3.26. / 우. 2019.3.27
춘향대제 망지(望紙) 전달. 좌. 2019.3.26. / 우. 2019.3.27

전날에는 의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사진을 찍다, 이틀에 걸쳐 여자 제관을 보는데다가 이번에는 여학생제관이어서 보존회 회원분께 제주가 여자인 건 처음 본다고 신기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박제상 부인은 치술신모라고 해서 옛날 신라시대부터 마을에서 산신으로 모셨고 제관도 여자가 한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서원에서 지내는 제사에 여자가 나서서 하는 전통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여기는 더 오래된 신라시대 전통이다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2019년 충열묘 제사의 축문.
2019년 충열묘 제사의 축문.

3월 28일 울주군청과 군의회에 가서 충열묘(忠烈廟)의 제관을 모셨습니다. 충열묘는 박제상을 모신 사당이어서 제관은 모두 남자입니다.

치산서원에는 사당이 세 곳 있기 때문에 세 번에 걸쳐 제관을 모시는 절차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서원을 깨끗이 청소하고 당일 제관이 입을 한복, 목화(신발), 버선, 모자, 족두리를 살펴보고 수선하고 제기를 챙깁니다.

인사하러 한번을 안 오냐?

춘향대제(2019.4.6)
춘향대제(2019.4.6)

4월 6일 춘향대제를 지내는 날은 따뜻한 봄햇살 속에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 사진기록을 부탁받았을 때는 한두 번 사진 찍으면 된다고 했는데 두세 번 촬영을 해도 끝나지 않자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네 번째로 사진을 찍던- 리허설을 하던 날 문득 치술신모인 여신님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가 여기 온 지가 몇 년인데 인사하러 한번을 안 오냐? 내가 너한테 일을 시켜서 부른다.’

특별히 종교가 있는 건 아니어서 대부분의 종교에서 가르치는 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토속신앙이나 민간신앙은 가르침이라기보다는 뭔가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일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거든요.

고요해지는 곳

2020년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이와 같이 치산서원까지 자주 산책을 하며 여신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코로나가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라고 빌지는 않았네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인사만 하고 돌계단을 내려와 매화꽃이 피고 지는 걸 봤습니다. 아이는 매화나무에 올라갔고 몇 년 전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나무 너머 먼 곳을 보면 치술령 산자락이 마을을 폭 감싸듯이 둘러있는 게 보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지금까지 제사 지낸다

신라시대는 산신으로 여신을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모계사회의 전통일거라고 하는데 경주 선도산 서술신모, 영일 운제산신모, 지리산신모가 있고 치술신모는 신라 사람들이 박제상 부인을 신격화했다고 합니다.

치술령에서 죽은 그녀의 몸은 망부석이 되고 혼은 새가 되어 아랫마을로 날아왔다가 국수봉쪽 바위로 갔다고 합니다. 마을은 새가 날아왔다고 해서 날 비(飛), 새 조(鳥) 비조마을이라 하고 바위는 새가 숨어들었다 해서 은을암(隱乙巖)이라고 합니다.

치술령 정상에 신모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1999년 울주군에서 세운 신모사지 기념비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중종 때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신모사에 “그 마을 사람들이 지금까지 제사 지낸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최신 소식을 덧붙이자면 박제상유적지보존회에서 지내던 춘향대제는 2020년부터는 울주문화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1. 헌관은 나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임시로 임명되는 제관이다. 일반적으로는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을 대표해 잔을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으로 나눠지며, 초헌관은 그 제사에서 대표격인 사람이 맡도록 되어 있다. (출처:한국문화대백과)

  2. 1981년 설립된 박제상유적지보존회는 지역주민으로 구성되어 조선 시대 영조때 세워진 치산사가 조선말기 서원 철폐로 없어졌던 것을 복원할 것을 울주군에 청원하고 해마다 박제상과 부인 그리고 두 딸의 영혼을 기리는 춘향대제를 지냈습니다.

  3. 제관으로 모시는 글을 쓴 종이.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댓글 1

  1. 신라시대에 여신과 모계전통이 있었다는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더 찾아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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