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생, 인생을 논하다.

길고양이와 집고양이의 합사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글로 써보았습니다.

월풍이. 사진제공 : 송기훈
월풍이. 사진제공 : 송기훈

월풍이, 제주도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때 운명처럼 만났던 고양이의 이름이다. 이름은 어선들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월풍04호’, ‘신월12호’처럼 월풍이라는 이름은 어촌의 풍경이 주는 정겨움이 담겨있었다. 월풍이를 처음 만난 순간은 가족과 떨어져 아파트 지하실에서 며칠 동안 울어대던 녀석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을 때였다. 비쩍 말라서 갈비뼈가 다 보일 정도였다. 동네의 꼬마들이 먹이를 달라고 다가오는 고양이를 어떻게 다룰지 몰라 길 가던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먹이를 주고 겨울을 피할 수 있도록 집 안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추운 겨울 동안 잘 돌봐주니 비쩍마른 몸에도 살이 제법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을 하루 종일 비우는 일과 탓에 월풍이를 잘 돌봐주지 못했고, 야생의 습성이 남은 탓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집을 나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억지로 잡아두었다는 생각이 들어 결과적으로 다시 보내야만 했던 미안한 기억이 있다. 그 뒤로 한동안 길거리에서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만 보면 나를 알아볼까 싶어 습관적으로 쫓아가곤 했다.

시간이 좀 지나 신혼집에 살 무렵, 지인이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를 맡아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지만,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지는 않았다. 두 마리를 키우기에는 집도 좁았고, 돌보는 방법을 잘 모르기에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양이를 다시 만날 뻔한 순간이 지나갔다.

운명을 바꾼 사진 한 장, 벼리. 사진제공 : 송기훈
운명을 바꾼 사진 한 장, 벼리. 사진제공 : 송기훈

몇 달 후 아내에게서 한 카톡이 왔다. 카톡 대화창을 열어보니 노란색 새끼 고양이 사진이 있었다. 아내의 지인이 가족을 잃고 며칠을 울어대는 새끼 고양이가 불쌍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집에서 더 키울 수 없는 사정이라 보호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그날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저무는 해가 유난히 길었던 6월 어느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벼리, 남양주 별내에서 데리고 왔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접종을 하고 약간의 치료과정을 거쳐서 도착한 고양이는 너무 작고 소중했다. 밥도 잘 먹고 호기심도 왕성했다. 이제 집사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여기서 이야기를 마치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벼리가 조금씩 자라나면서 아무리 놀아주고 훈육을 해도 야생의 습성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장난을 넘어 이빨로 깨무는 힘이 점점 세지면서 스트레스도 늘어갔다.

고양이들은 어렸을 적에 물고 장난치며 힘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벼리는 일찍 가족과 떨어져 지냈기에 서로 장난치며 힘을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정글에 홀로 떨어진 정글북의 모글 리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흔히 엄마 젖을 먹을 때 꾹꾹이(젖이 잘 나오게 발로 누르는 행동)도 할 줄 모르는 모습마저 짠해 보였다. 전에 살던 곳에서 고양이를 4마리나 길러봤던 아내도 벼리를 기르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벼리와 올리. 사진제공 : 송기훈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벼리와 올리. 사진제공 : 송기훈

결국 도움이 필요했고, 이웃의 고양이 친구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올리, 올리브처럼 작고 귀여운 모습의 ‘올’과 돌림자 ‘리’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 합사 과정이 힘든 경우도 있다지만 다행히 벼리와 올리는 싸우거나 어색해하지 않고 원만히 잘 지내게 되었다. 밥도 사이좋게 잘 나눠 먹었다. 게다가 서로 감기도 돌아 앓으며 동병상련의 과정을 통해 끈끈한 형제자매간의 우애를 다져갔다.

벼리와 올리 두 고양이가 같이 지내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벼리의 공격적인 성향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프게만 물줄 알던 벼리가 힘을 조절하기 시작했고 공격적인 성향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물론 올리가 거친 벼리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초반에 고생을 좀 했지만 금방 힘의 균형을 찾았다. 人(사람 인)이라는 글자가 서로 기대어야 살 수 있는 인간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나는 描(고양이 묘)자를 보며 비록 형상문자는 아니지만 서로 기대어 쿨쿨 자는 서로 다른 두 고양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양이 묘자처럼 어울려 지내는 벼리와 올리。사진제공 : 송기훈
고양이 묘자처럼 어울려 지내는 벼리와 올리。사진제공 : 송기훈

벼리의 묘생을 보면 외동아들로 자란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어머님께 어렸을 적에 슈퍼에 가면 동생 어디서 살 수 있냐고 기웃거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때로 친구들이 자매 형제간 다퉜다는 이야기도 가끔 부럽게 들릴 때가 있었다.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힘을 겨루거나 안전하게 싸우면서 성장하는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하였고, 깨무는 힘을 잘 조절하지 못했던 벼리처럼 인간 간의 갈등 상황에서 취약함을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벼리가 올리를 만나 인간(?) 아니, 묘간(?)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인생도 서로 깨물고 뒹굴고 먹고 자고 기쁘고 아파야 조금 더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평생 서로 치고 박고 물고 뜯고 사랑하며 사는 게 인간의 운명일까? 벼리가 올리를 만나 좋아졌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 좋아지고 있는 것이리라 기대해 본다. 벼리와 올리가 걱정없이 서로 기대어 쿨쿨 자는 모습을 보면서 거칠고 서툰 우리 인생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송기훈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연히 만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며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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