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비건] ⑤ 비건과 돌봄

3박 4일간 논산집에 계신 할머니와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돌보게 됐습니다. 일이 끝난 후에도 자꾸 생각나고 그 공간에서의 감각이 생생해서 글로 정리했습니다. 요양보호사의 직업윤리 중 ‘요양보호사는 대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비밀로 유지한다’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글을 쓰려 노력했습니다.

“2박 3일 아버지랑 같이 여행 다녀오기로 했는데 혹시 그동안 할머니 돌봐줄 수 있겠니? 일당 줄게” 어머니는 내게 전화해 제안하셨다. 어머니는 논산할머니와 여수할머니, 그리고 시각장애인 한 분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다. 타인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평소 봐 왔기 때문에 안 그래도 부모님의 마음 건강이 걱정이었다. 나는 마침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도 해서 잘 됐다 싶어 흔쾌히 제안을 승낙했다. 이후 비건 케이크를 사 들고 논산에 도착해 어머니와 나의 생일 축하를 한 뒤 며칠간 해야 할 일을 배웠다.

할머니 돌보기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할머니 밥을 차려드렸다. 끼니마다 반찬 세 가지와 밥, 국, 물을 준비한다. 반찬은 두부 채소볶음과 계란찜, 물살이 구이(생선에서 물살이로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나 느낌이 다를 수 있을까?), 호박 무침을 드리고. 국은 두부와 느타리버섯이 들어간 미역국과 부추가 들어간 콩나물을 만들었다. 물살이를 구워드리라는 어머니의 요청이 있어서 미리 처리되어있는 물살이를 냉동고에서 꺼내 굽고 살만 발라내어 3일간 나눠서 드렸다. 계란찜을 가장 잘 드시기 때문에 끼니마다 항상 드려야 한다고 해서 전날 어머니께 배운 요리법대로 만들어서 드렸다.

내가 동물성 음식의 간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어머니도 아시기에 소금양까지 알려주고 가셔서 조리는 수월했으나, 생각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동물을 음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혼란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면 이런 상황이 일상적일 텐데 내가 먹지만 않으면 되는 걸까? 나는 잘못하고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스스로 요리할 능력이 없는 할머니에게 동물성 음식 없이 밥을 드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동물권이 인권과 동등해지고 육식이 잔혹한 일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게 됐을 때, 평생 육식을 한 치매 노인에게 동물성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손가락질 받을 일일까? 물론 이런 의문이 공론화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짧은 기간 동안 할머니와 지내면서 노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거나 노인과 관련된 사회적 화두들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사실 이전까진 할머니와 심적인 거리가 있어서 할머니의 모습을 똑바로 보기 어려웠고 조금 무섭기도 했는데, 이번 기회에 할머니의 약 드시는 모습이 귀엽다는 것을 알게 됐고 서로의 살이 닿는 거리에서 돌봄을 하다 보니 조금은 정이 들어서 새로운 감각이 깨어났다. 아직도 그 돌봄의 공간에서 느낀 촉감과 냄새, 공기의 무게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동물 돌보기

수많은 동물을 직간접적으로 살해해서 얻은 부산물로 문명이 발전했고 지금의 인간사회가 그것으로 지탱되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인간사회와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동물 착취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진출처 : Kat Smith
수많은 동물을 직간접적으로 살해해서 얻은 부산물로 문명이 발전했고 지금의 인간사회가 그것으로 지탱되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인간사회와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동물 착취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진출처 : Kat Smith

우리 집은 ‘진도’라는 이름의 개와 닭 세 마리, 토끼 열다섯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많은 시골집에서 그러하듯 개는 묶어놓고 닭과 토끼는 남은 건축 자재로 뚝딱 지은 우리에 가둬놓고 키운다. 공장식 축산처럼 말도 안 되게 비좁은 축사에서 빠른 기간에 많은 동물 사체를 양산하는 환경보단 조금 낫지만 묶여있거나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논산집에 드물게 가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 동물들은 내가 책임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부모님께 개선 방향에 관해 말씀을 드릴 엄두를 못 냈는데 나중에 글감을 위해서라도 개 울타리나 더 넓은 토끼집을 지어주러 방문해야겠다.

토끼와 닭 우리에 사료와 물을 보충했다. 사료의 성분표를 보니 역시 동물유래 성분이 들어 있었다. 수많은 동물을 직간접적으로 살해해서 얻은 부산물로 문명이 발전했고 지금의 인간사회가 그것으로 지탱되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인간사회와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동물 착취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밥을 다 준 뒤 진도와 산책을 했다. 논산집에 올 때마다 진도와 산책한 덕분에 오랜만에 집에 와도 진도는 나를 알아보고 항상 반긴다. 과거 수 ㎞ 떨어진 곳으로 진도를 입양 보냈었는데 다음 날 다시 집을 찾아올 정도로 진도는 똑똑한 개다. 같이 산책을 하면 그 진가를 항상 느끼는데,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시골 개인데도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같이 걸어간다는 상황을 잘 이해한다. 산책이 끝나면 진도의 표정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읽을 수 있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 돌보기

논산집에 지내면서 생각을 정리하며 글도 쓰고 작업 구상도 할 생각이었는데 거의 하지 못했다. 일을 끝내고 잠시 쉬다 보면 또 다음 일이 생기니 내 일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저녁 10시쯤 집안일을 다 끝내고 할머니와 고스톱을 치거나 말동무를 해드리면 11시가 넘는다. TV 보면서 맥주 한 캔 마시고 자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초기화된 할 일을 반복한다.

일이 힘들긴 했지만, 세상 모든 일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듯 맡은 일을 하나하나 처리해 가는 데에서 오는 자기효능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을 매일 해야 한다고 하면 막막함이 더 클 것 같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세상 모든 것이 의미 없이 느껴져 얼마간 허무함에 빠졌다.

김이중

존재 방식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치 지렁이의 완벽함을 닮아 지렁이 인간이 되어 지렁이 말을 구사하고픈 게으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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