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위기, ‘상상력’을 찾아서

‘상상력의 위기를 극복하는 자신만의 해법’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처음 3초간은 설렜으나 그 후로는 오랫동안 좌절했다.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 나는, 하루하루가 상상력의 위기다. 요새는 스마트폰에 빠져 살고 있어서 그 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 글은 상상력 위기를 벗어날 ‘해법’이라기보다는 나의 위기 상황에서의 ‘상상력’에 가까운 글이다.

22.02.10. 코로나가 나를 가두었다

설 명절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는 나를 8평인, 집안에 가두기 충분했다. 코로나가 가둔 것은 비단 내 몸만은 아니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책을 덮어두고 핸드폰만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다 보니, 몸도 머리도 굳어졌다. 내 생각도 좁은 방안에, 아니 더 작은 핸드폰 속에 갇혔다. 요즘은 핸드폰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침, 저녁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알고리즘에 따라 소개되는 영상들이 내 세계이고, 내 세계는 무한히 넓은 것 같지만 실은 한없이 좁다. 이제 나는 상상하기를 그만두었다.

2022.04.03. 상상력, 그 설렘

상상력이라는 단어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상상력의 위기를 극복하는 자신만의 해법’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동안 들뜬 마음으로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에는 지금 날씨가 너무 좋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힌다. 앞에는 남해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푸르다 못해 투명한 남해의 바다는 마음까지 맑게 해준다.

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눈처럼 날린다. 가지마다 활짝 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맴돌고 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사람들, 행복한 표정으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행복해진다. 너무 행복한데, 이상하게 계속 묘한 기시감이 든다.

2022.04.12. 행복한 상상

행복한 상상을 할 때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는가? 눈동자가 45도 위를 향하며 이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늘도 아닌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표정인가, 아니면 눈을 살포시 감고 아름다운 꿈을 꾸는 표정인가? 불행한 상상을 할 때는 어떠한가? 주름진 이마를 손으로 잡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가. 두려운 눈으로 먼 곳을 아득히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가.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2022.02.24. 꿈에서 현실로

상상력을 일깨우는 작업에서 핸드폰은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다. 사진출처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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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일깨우는 작업에서 핸드폰은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다.
사진출처 : freepik

‘상상력의 위기를 극복하는 자신만의 해법’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나는 이 주제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풀 수 있을지 상상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한 것이라고는 고작 상상력에 관한 책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는 이렇게 오래도록 헤매고 있다.

그래도 그 책들이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4개월간 여러 강연을 들었고,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어떤 강연을 듣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강연과 책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 아이디어와 영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창의력과 아이디어에 대한 힌트는 많이 얻었으나 상상력으로 확장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의 ‘상상력의 위기’는 점점 더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다.

2022.03.01. 해법을 찾다

해법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핸드폰에는 내 상상을 벗어나는 재미난 것들이 가득하다. 그래 이게 바로 상상력이다. 그래 이게 내 세계다…

나만의 상상력 위기에서의 해법

위에는 최근 내가 겪었던 일들을 소설처럼 적어보았다. 실제로 코로나를 앓았고, 상상력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었고, 상상력에 대한 글을 쓰며 좌절하고 있다. 누가 나에게 ‘상상력의 위기를 극복하는 자신만의 해법’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배를 뒤집어 까고 길바닥에 벌렁 누워서 죽어도 모르겠으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고 할 것이다.

본인은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 아니다. 뭐든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상상이 잘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돌아다니고, 보고 들으면서 나의 경험이 쌓이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도 늘어난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나에게 주는 특급 영양제이다. 낯선 곳일수록 영양 성분은 더 가득하다.

여행은 자주 갈 수 없기에 평소에 선택하는 방법은 여백을 활용하는 것이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일상의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 순간에는 핸드폰을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다.(본인은 항상 실패해서 상상력의 위기를 맞고 있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또는 이미지가 펼쳐지도록 나둬라. 당신을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다.

여백만큼이나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다. 미술 작품이나 영화, 소설, 심지어 만화조차도 엄청난 상상력의 세계이다. 콜라주 기법처럼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콘텐츠를 합치고 분해하고 다시 배치하다 보면 기존에 없던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상상력이다.

지난해 11월 〈오늘의 한국문학의 포스트 휴먼, 관계적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김미정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이야기의 말미에 문득 내가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상황, 감정을 상상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공감은 생기는 법이니까. 우리 사회에 그런 상상력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최정훈

예술가·기획자 콜렉티브인 ‘피스오브피스’의 멤버이자 뉴딜일자리 노동자로, 현재는 지역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한량을 꿈꾸나 성격이 소심하여 마음껏 놀아본 적 없고, 더욱이 제대로 놀 줄을 모른다. 식물과 커피, 햇살 좋은 날 자는 낮잠을 좋아한다. 요즘은 ‘공동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품고 살고 있다.

댓글 1

  1. 공감도 상상력 중 하나라는 말이 마음에 남네요 내가 타인의(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불특정 물체?) 감정과 상황에 이입하는 것은 그 상황과 감정을 가정하여 느끼는 거니까,,하나의 상상력이 되기도 하네요 ㅎㅎ 새로운 관점에 대해 배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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