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 특집] ③ 추도사_고(故)신승철을 마음에 그리며

사랑과 돌봄, 그리고 삶을 긍정하는 이 철학자에게 죽음이란,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드리우는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고정되는 것, 고착화되는 것, 더 이상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포획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의 것이었습니다.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개념 지어버리고 고정관념을 만들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움직임이 바로 삶입니다. 죽음의 대척점에서 우리가 무한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올해 초 신승철 선생님과 함께 썼던 책을 펴낼 때까지만 해도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철학공방 별난의 짐을 싸고 문래동 보금자리를 비워내고, 새로운 신길동에 자리를 마련하고 신승철 선생님의 1주기 추모축제를 준비하면서 서서히 그 사실이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최소연 님 이미 잘하고 계세요. 지금도 너무 훌륭합니다.” “지치지 말아요” 그 말들이 20대 중반 황폐했던 제 마음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저를 지금까지 살게 했습니다. 사진 : 한승욱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하고 싶은 일들, 재밌을 것 같은 일들을 마구잡이로 벌려놨는데, 막상 행사가 가까워지니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행사가 어그러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사실 신승철 선생님을 뵐 때면 저는 늘 앓는 소리를 했었습니다. 그럴 때면 신샘은 때로는 온화하게 웃으며 “최소연 님 이미 잘하고 계세요. 지금도 너무 훌륭합니다.”라고 말씀해주시거나 때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지치지 말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그 말들이 20대 중반 황폐했던 제 마음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저를 지금까지 살게 했었는데요.

아마도 여기 계신 많은 분들께서 저와 비슷한 신기한 경험을 하셨을 것 같아요. 이런 말들을 하실 때 신샘의 표정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느 날은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신샘의 이런 말들 끝에는 늘 엉뚱발랄한 이야기, 생뚱맞은 것을 빌려와 들려주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등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제가 느끼는 문제들에 기발한 실마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제가 깔깔거리며 웃거나 픽하고 어처구니없어하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신쌤께서 주셨던 묘책들은 도통 떠오르지 않네요. 그게 참, 슬펐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행사를 즐겨주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자리는 비어있는 듯 보여도 늘 그랬듯 꽉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저를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활력을 북돋아주던, 사랑을 쏟아주던 신승철 선생님께선 비록 이제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 않지만 그가 연결해주었던 모든 것들은 왁자지껄 살아 있습니다. 여전히 그가 만들었던 자리에는 사람들, 그리고 마음들, 모든 존재들이 서로 어우러져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그는 저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사랑과 정동, 돌봄이라는 양분을 직접 먹여준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스스로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일깨워준 것이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무한에서 유한으로, 유한에서 무한으로” 신승철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던 시간 동안 참 많이 곱씹었던 이야기입니다.

신승철에게 죽음은 고정되는 것, 고착화되는 것, 더 이상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포획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의 것이다. 사진 출처 : Edge2Edge Media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무한하게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삶을 창조해나갈 힘이 있고, 그 끝에 다시 죽음이라는 찰나의 순간이 도래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다시 무한하게 뻗어나가며 우리의 삶은, 모든 생명체와 사물은 순환하듯 변화하며 새롭게 나아갑니다.

독서 모임을 할 때면 신승철 선생님께서는 결코 “이것은 이래야 합니다, 저것은 저래야 합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힘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랑과 돌봄, 그리고 삶을 긍정하는 이 철학자에게 죽음이란,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드리우는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고정되는 것, 고착화되는 것, 더 이상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포획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의 것이었습니다.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개념 지어버리고 고정관념을 만들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움직임이 바로 삶입니다. 죽음의 대척점에서 우리가 무한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의미 그대로의 죽음, 포획된 채 예속되어버린 죽음이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환란의 시대에서 탈주할 길은 살아냄, 살림, 삶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사랑과 돌봄과 긍정이 필요합니다.

끝으로 저는 기어이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신승철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맙시다. 비록 육신이 함께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존재 방식이 으레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한한 생명체의 방식이 아닐지라도 신승철 선생님께서는 그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삶을 이어가실 겁니다. 이 드넓은 우주 안에서 변화무쌍하게 말입니다.

우리 역시 그가 남긴 생태적 지혜를 토양 삼아, 이 환란의 시대에 맞서 삶을 지켜내고 더 풍부하게 나의 안팎과 연결된 삶을 살아갑시다.

이만 추모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연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이끌어나가기도 합니다. 예술을 통해 체현하는 감각적 경험은 강한 울림으로 우리를 사유로 이끌고, 의미를 생성해나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는 정동적 힘을 지닌 예술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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